319화
“혹시나 했더니, 진짜 연습실 귀신이 너였을 줄이야.”
이정원은 이야기가 마무리된 이후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손을 어깨높이로 들어 올리곤 고개를 좌우로 내젓는데, 화가 난 분위기보단 나를 골려 주겠다는 심보가 보였다.
거기서 이정원의 속셈이 너무도 훤히 보여 실소를 내뱉었다.
녀석, 성격하고는. 이건 내가 죄책감을 가질까 봐 오버스럽게 행동해 준 것이었다.
이정원의 이야기에 대강의 사정을 듣게 된 다른 멤버들이 말을 얹었다.
특히 권혜성과 문채민은 이 게임 같은 시스템이 신기하면서도 묘하게 느껴진 모양이었다.
허공을 손으로 짚어 보며 이런저런 질문을 던졌다.
“그럼 뭐가 보여? 여기는?”
“…거긴 뭐 없어.”
“형, 형, 시스템이란 거 MMORPG 게임에서 보는 것처럼 나오는 거야?”
“MMORPG가 뭔데.”
말도 안 되는 현상들임을 알면서도 순순히 받아들여 주는 멤버들이 고마울 뿐이었다.
이유준도 시스템이 돌아가는 과정에 대해서는 호기심이 들었었나 보다.
과학을 운운하며 고개를 기울이는데 그 옆에 서 있던 강태오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확실히 비과학적이긴 한데 말이야. 그 시스템이란 거 만능이기는 하네. 뭐, 해신이 형 얘기를 들어 보면 그만큼 노력해야 얻는 것 같긴 하지만. 정원이 형의 과거라… 그럼 나랑 채민이 때도 봤었던 거야? 궁금해지네.”
“…과거라면. …형, 우리 반에도 왔었어?”
“뭐야, 강태오. 너도 뭐 짚이는 거 있냐.”
“헐, 태오 형!”
강태오의 물음에 모두의 시선이 내 쪽으로 돌아왔다. 나는 거기서 가만히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반이라면… 강태오의 학교 폭력 사태를 잠재우기 위해 녀석의 어린 시절로 돌아갔던 일을 말하는 거였다.
진실을 언급해 줄 강태오의 반 친구를 찾기 위해 녀석의 고등학교 시절에 잠입했었다.
교탁에서 그 반장이란 녀석의 개인 정보를 빼내고 메모리 서칭 엔진의 해제를 기다리던 무렵이었다.
강태오가 미약하게나마 내 인기척을 느낀 듯한 표정을 지었던 게 떠올랐다.
아이템 페널티가 그리 강하진 않았는지 이정원처럼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던 것 같지는 못했는데.
돌아온 이후에도 우물쭈물 물어보다가 이내 자신이 잘못 봤다는 것처럼 우스갯소리로 넘겼던 녀석이 선명하다.
그런데 이정원의 사연을 들은 덕분이었을까, 강태오가 실마리를 찾은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어수선하게 구는 멤버들 사이에서 나를 돌아보며 한숨을 내쉬는데, 꼿꼿한 눈빛을 보아 이제는 확신한 듯했다.
여기서 더 거짓말을 하는 건 의미가 없고. 체념한 느낌으로 진실이라는 말을 전했다.
“어. 네 기억이 얼마나 될 지는 모르겠지만. 거기, 갔었어.”
“…아.”
“…뭐야, 태오형, 왜 이렇게 빨개져.”
그때, 강태오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귓가까지 벌겋게 물들이고서는 민망하다는 듯 몸을 틀어 벽쪽을 바라본 것이다.
강태오를 병실로 끌고 들어온 윤명은 이런 강태오가 이상했는지 눈을 깜빡였다.
나도 저놈이 갑자기 왜 저러는 건지 이해가 안 됐다.
“그, 혹시, 다 봤어? …겉멋 들어서 삐딱선 타던 거.”
“아.”
“…호오.”
“뭐야? 그게 뭔데, 나도 들려줘!”
소란스러운 분위기를 틈타 작게 새어 나온 목소리였다. 민망하다는 듯이 어깨를 움츠린 강태오가 조용히 되물었다.
이제 보니까 강태오는 자신의 고교 시절을 민망해하고 있던 것 같았다.
확실히… 강태오는 어른스러운 녀석이라 어린 시절의 자신을 부끄러워할 만하다고 생각했다.
아니, 그래도 뭐 이유 없이 그렇게 굴었던 건 아니니까. 다 이해한다는 마음으로 괜찮다고 이야기하는데도 강태오는 움찔 어깨만 떨어 댔다.
“그럴 만했잖아. 그리고 생각보다 너 부모님 말씀 잘 듣더라.”
“…….”
나름 위로해 준다고 위로를 해 준 것이었는데. 강태오에겐 딱히 위로로 들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 상태에서 흥미진진하단 얼굴을 하고 있던 이유준이 내쪽으로 다가왔다.
음울한 기색은 어디에 두고 온 것인지 동갑내기의 약점을 잡기 위해서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형? 뭐 좀 아는 거 있어?”
“아는 거라기보단, 그냥 본 거지.”
자세한 사정을 설명해 달라는 이유준의 물음에 강태오가 이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러곤 그 긴 다리로 척척 다가와 내게 붙어 있던 이유준을 잡아 뜯어내고자 팔을 뻗었다.
“이유준, 하여간에 넌……! 아픈 사람한테 매달리지 말고 이리 와!”
“오, 강태오가 이럴 줄도 알고. 난 반드시 알아야겠어.”
권혜성과 윤명 그리고 문채민도 가만히 있는 와중에 스물하나 먹은 둘째 라인이 나를 둘러싼 채 빙글빙글 돌아다녔다.
어떻게든 이유준을 잡으려던 강태오와 운동 실력이라면 영 꽝인 주제에 도망에는 재능이 있었는지 요리조리 잘도 피해 다니는 이유준이 보였다.
그렇게 몇 바퀴나 주변을 맴도는 멤버 두 명을 쳐다봤다. 다친 나는 건드리지 않으면서도 참 부지런히 잘 움직이는 듯했다.
이정원에게서 다소 싸늘한 말 한마디가 이어지지만 않았더라도.
이정원이 강태오와 이유준의 행동에 봐줄 생각이 없다는 듯 팔짱을 낀 채로 차가운 눈빛을 보냈다.
“거기 둘, 그만하지?”
“…정원이 형, 아까 자기가 한 건 잊었나 봐.”
“…저런 걸 내로남불이라고 하는 거야, 권혜성.”
“형들, 다 들리겠어. 난 발 뺀다.”
이정원의 살벌한 호통에 막내 삼인방이 고개를 숙여 속닥거렸다. 그제야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다.
“하하!”
“뭐야, 신해신 넌 또 왜 그래.”
속 시원하게 웃음을 터뜨리자 도망을 다니던 녀석도, 그를 잡으려고 움직이던 놈도 모두가 몸을 멈춘 채 여길 돌아봤다.
아, 속이 시원해졌어. 아무것도 아니란 듯이 어깨를 으쓱이자 아까부터 유일하게 침착함을 유지하고 있던 윤명이 입을 열었다.
“…이제 다 됐으니까, 슬슬 돌아가자. 병실에서 너무 소란떠는 것도 아니야. 해신이형, 우린 이제 가 볼게. 내일 일어나서 연락해.”
“어, 그래.”
오늘따라 윤명의 미스터리함이 가장 어른스럽게 느껴졌다.
그건 다른 멤버들도 마찬가지였는지 차분하게 돌아갈 준비를 했다.
사고 때문에 한동안은 무척이나 바쁠 예정이었다. 안 그래도 연말 무대니 시상식이니 뭐니 스케줄이 가득한데…….
잊고 있던 사태 정리가 떠오르자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걸 눈치챘는지 병실을 나서려던 멤버들 사이에서 역주행한 이정원이 내게 다가와 딱밤을 날렸다.
“…아!”
“넌 얼른 나을 생각이나 해. 무대 관련해서는 어떻게든 해결 방법이 나올 테니까. 또 혼자 대책 없이 뛰어들기만 해 봐. 오늘처럼 잔소리로는 진짜 안 끝난다.”
“어련하시겠어요.”
“그럼 간다.”
“형! 안녕!”
“…푹 자.”
“형들이라면 이런 상황에서 잠이 오겠어? 해신이 형, 너무 늦게 자진 말고~ 내일 봐!”
“형, 연락 할게.”
손을 흔들며 병실 바깥으로 사라지는 멤버들을 바라봤다.
“어, 그래. 낮에 보자.”
“…먼저 내려가 있어.”
“…뭐, 그러든가.”
그때, 가장 마지막으로 병실을 나서려던 강태오가 몸을 멈췄다.
그러고는 문을 잡은 채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이정원을 향해 말했다.
이정원은 먼저 멤버들이 사라진 복도 쪽을 바라봤다. 그것도 이내 얼마 가지 않아 마음대로 하라며 문을 닫고 사라졌다.
달칵. 문이 닫히며 적막이 찾아온 병실 안으로 내게 등을 보이고 서 있던 강태오가 몸을 돌렸다.
얘는 또 무슨 할 말이 있다고. 윤명이 아니었다면 병실 안으로 한 발자국도 들이지 않았을 놈이 떠올라 심란해졌다.
이제는 괜찮은 거 아니었어?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강태오의 얼굴부터 살폈다.
“괜찮은 거지?”
“응.”
다행히도 강태오는 멤버들과의 대화를 통해 어느 정도 감정이 추슬러진 모양이었다.
내가 알던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와서 안도하던 찰나였다. 강태오가 내 쪽으로 성큼 다가왔다.
침대에 앉아 훌쩍 다가온 녀석을 올려다보는데. 나를 내려 본 놈이 고개를 푹 숙였다.
“너, 뭐 하냐?”
“…고마워.”
찰랑거리는 앞머리 사이로 보인 강태오의 얼굴에 나는 그대로 할 말을 잃어버렸다.
강태오가 예의라도 차린 것처럼 내게 반듯이 목례를 해 줬기 때문이었다.
결연한 목소리로 내 질문에 답하고는 이내 됐다는 듯이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렸다.
흐트러진 앞머리 사이로 반듯하고 단정한 눈빛이 보였다.
아무래도 강태오는 무대 사건을 아직 마음에 담아 두고 있던 것 같았다.
멤버들과 시스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느라 애써 괜찮은 척을 했나 본데.
모두를 먼저 내려보내서라도 말만큼은 따로 전하고 싶었던 것 같았다.
아까 같은 표정이었다면 나도 속이 불편했겠지만. 한결 가벼워보이는 강태오의 얼굴에 이제는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알겠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여 줬다.
하지만 한 가지는 듣고 가라, 너.
강태오가 나중에 땅굴이라도 팔까 봐 서둘러 녀석을 향해 입을 열었다.
“그것만 알아 둬. 내가 다시 그 상황으로 돌아가더라도 난 또 똑같은 선택을 할 거야.”
“형.”
“오해하지 마라. 그건 너뿐만이 아니니까. 다른 멤버들이 네 자리에 있었더라도 내 마음은 안 변해. 그리고, 좀 생각해 봐. 나만 이랬겠냐?”
강태오는 내 질문에 잠시 할 말을 잃은 듯했다. 정곡을 찔린 사람처럼 침묵을 유지할 뿐이었다.
그래, 이게 정답이지. 강태오가 나와 같은 입장이었어도 멤버를 구하기 위해 위험 속으로 달려 나갔을 것이었다.
그건 우리뿐만이 아니라 병실 밖으로 사라진 모두에게 해당하는 사항이었다.
우리 이제 이런 대화 그만 나누자. 어색함에 멤버들이 기다리겠다며 녀석을 내려보내려던 순간이었다.
번쩍, 흰빛이 눈앞으로 터져 나오며 익숙한 시스템 창들이 강태오의 주변으로 쏟아져나왔다.
[히든 스탯 깜짝 미션 멤버 ‘강태오’의 댄스 스탯, 운 스탯 업데이트에 성공하셨습니다.]
[댄스 스탯: A- → A]
[운 스탯: B+ → A-]
[강태오]
나이: 21
외모: A+
보컬: B+
댄스: A
운: A-
끼: A-
[히든 스탯 깜짝 미션]
멤버들의 스탯을 업데이트해 주세요. 그에 따른 보상이 주어집니다.
종료 기한 – 7인 모두 달성 시
보상 – 랜덤 지급
[멤버]
이정원 – 보컬 스탯 업데이트 완료 [A+ → S]
이유준 – 랩 스탯 업데이트 완료 [A- → A]
강태오 – 댄스 스탯, 운 스탯 업데이트 완료 [A- → A] [B+ → A-]
권혜성 – 끼 스탯 업데이트 완료 [A- → A]
윤명 - ??
문채민 -??
이건 강태오가 스탯을 업데이트하는 데에 성공한 것이었다.
이상하다, 무대는 무사히 끝냈다는 느낌이 아니었는데?
태오를 구해 내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공연 자체로는 완곡을 하지는 못한 상태였다.
병실에서 처음 마주쳤던 녀석의 스탯 창도 그대로였으니, 이건 실패한 거라고 확신했던 아까가 떠올랐다.
그런데 강태오의 스탯 창이 변화하다니. 놀란 마음에 녀석을 쳐다봤다. 강태오는 피식 미소 짓고 있었다.
해피 엔딩이라고 할 수 있지, 이거?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나름 좋은 결말이 나온 것 같았다.
부러진 내 다리만 아니라면 말이야. 앞으로의 상황은 미래의 내게 맡기고 일단은 녀석에게 웃어 주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