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0화
[하이사인 해신 군의 향후 활동에 관하여 안내해 드립니다.]
────────────────────────
안녕하세요, 메이터스 ent입니다.
하이사인 해신 군의 향후 활동에 관하여 안내해 드립니다.…
.
.
.
────────────────────────
사고로 입원한 이후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다. 그중 가장 먼저 진행된 것은 내 활동에 대한 공지가 나가는 것이었다.
문병을 핑계로 찾아온 회사 사람들과 긴급 미팅을 잡았었는데.
거기서 당장 코앞에 다가온 연말 무대와 시상식 등에 대한 일정들이 논의됐다.
‘그래도 좀 쉬는 게 어떨까요? 마침 타이틀 활동도 끝났고요.’
‘맞아요, 해신 씨. 우선은 다리 치료에 힘을 쓰는 게…….’
회사 측에서는 내가 쉬기를 바라는 듯 활동 중지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목숨에 지장이 올 만큼의 부상은 아니었지만, 결코 작다고 볼 수도 없었을 인명 사고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는 거기서 반대 의견을 꺼냈었다.
‘아니요. 가능하다면 계속 활동하고 싶어요. 연말이잖아요.’
모두의 염려를 물리치고 활동을 이어 가고자 했던 것이었다.
다른 스케줄로 자리에 참석하지 못한 멤버들을 제외하고서도 매니지먼트실에서 괜찮겠냐는 질문을 백번은 더 들은 것 같았다.
아직까지 환청처럼이나마 잔소리가 들리는 것 같을 정도였다.
‘해신 씨.’
‘팀장님이나 다른 분들 마음은 뭔지 알아요. 그래도…….’
지금이 얼마나 중요한 시기인데, 여기서 나 혼자 발을 빼는 건 무리였다.
다른 것보다 내 마음이 그런 행동을 납득하지 못했다.
혼자였다면 쪽수로 밀려서라도 의견을 피력하기 힘들었겠지만.
그날은 든든한 지원군이 하나 있었다. 회사 사람들과 함께 상태를 보러 왔다던 대표 서도경이었다.
서도경은 내 의견을 가만히 듣고 있다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여 줬다.
지금까지 나와 논의했던 점이 많은 사람답게, 내가 향후 계획하고 있던 일들을 알아채고 긍정해 준 것이었다.
‘그렇게 하세요.’
‘대표님!’
서도경은 매니지먼트실을 비롯하여 다른 사람들의 반대에도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라며 허락했다.
물론 그 뒤에는 다른 조건이 따라붙었었지만 말이다.
‘아티스트가 원하잖습니까. 우린 그 뒤를 백업하는 사람들이고요. 대신 조율을 좀 하죠. 며칠 안 남은 축하 공연에선 빠지는 걸로 하세요. 이건 사측도 양보 못 합니다. 잘못하면 여론이 안 좋아지거든요. 이 정도는 신해신 씨도 이해하고 있죠?’
‘네.’
‘좋아요, 그럼 얘기가 쉽네요.’
아무튼 그 자리에서 이후 활동에 대한 조정이 시작됐었다.
최종 결론으로 나온 것은 활동을 이어 가되 일부 무대는 구분하여 올라가자는 것이었다.
당장 코앞에 있을 연기 대상의 축하 공연은 넘기는 걸로 하고.
연말 시상식과 연초 시상식에선 무대 편성을 바꿔 멤버들과 함께 모든 자리에 참석하기로 정해졌다.
물론 기존 대형에서 모든 게 바뀌어 미안한 마음이 뒤따랐지만. 그래도 어떡해. MXP 걔네가 무서운 기세로 달려들려고 하는데. 나로서는 더 이상 양보할 구석이 존재하지 않았다.
남은 건 멤버들뿐인가. 문채민이랑 윤명의 스탯 업데이트가 걸린 축하 공연만큼은 서고 싶었는데…….
다리가 붙기는커녕 퇴원 기간에도 아슬아슬할 시기에 걸려 있던 무대였기에, 여기는 내 쪽에서 포기하기로 한 뒤였다.
멤버들의 격한 반대에 혼이 나갈 뻔했던 건 보너스 같은 일이었다.
‘신해신, 너 제정신이야?!’
‘정원이 형, 진정, 진정해~!’
회사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전달받은 것인지 뒤늦게 병실로 멤버들이 찾아왔었다.
그중 가장 앞장서 들어온 이정원을 권혜성이 뒤에서 끌어안듯 잡아챘다.
씩씩거리는 꼴이 대충 봐도 달래는 것이 힘들 것 같았다.
아니, 나도 사연이 있어서…….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나를 쳐다보는 멤버들에게 손을 흔들어 줬었다.
‘그 다리로 활동을 어떻게 하려고.’
흥분한 이정원과 그를 뜯어말리기 바쁜 권혜성을 무시한 채 걸어온 이유준이 걱정스럽단 표정을 지으며 나를 내려다봤다.
하고 싶은 말이 무척이나 많아 보였지만 환자라서 참아 주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아픈 게 벼슬이군. 거기서 처음으로 다친 것에 대해 긍정적인 생각이 들었다.
뭐, 그것도 아주 조금, 거의 없다시피 했던 거지만 말이다.
일단은 녀석들을 달래는 게 우선이라며 침착하게 계획하고 있던 것들을 설명해 주기로 했다.
시스템에 대해서도 받아들여 준 놈들이니까. 내 속사정을 알게 되면 어느 정도는 수용해 주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었다.
심란해 보이는 강태오를 기점으로 윤명과 문채민이 내 쪽에 다가왔다.
아직도 씩씩거리는 이정원과 그런 이정원을 뜯어말리는 중인 권혜성을 제외하면 어느 정도 이야기가 통할 것 같은 모습에 안도했었다.
‘얘기하자면 좀 긴데…….’
나는 그 자리에서 MXP에 대한 일부 사실들을 밝혔다.
지금 얘기해 놓지 않으면 또 나중에 혼자 위험한 짓을 했다고 욕을 먹을 테니까.
임시방편으로나마, 또 이번 일을 받아들이게 하기 위해서 어느 정도는 진실을 꺼낸 것이었다.
지원겸과 김환준 그리고 서도경과 맺은 비밀스러운 회동은 감춘 채 이번 사고에 뒷배경에 MXP가 연루되어 있을 가능성에 대해 알렸다.
이정원의 오갈 데 없던 분노가 그쪽으로 향한 것도 순식간이었다.
‘이, 이……!’
‘으악, 정원이 형!’
‘뭐 하냐, 이유준, 형 안 잡고!’
아까는 권혜성이 잡고 있다는 생각에 어느 정도 힘을 덜 주었던 걸까. 이정원이 본격적으로 문 밖으로 달려 나가려고 했다. 등 뒤에 매달려 있던 권혜성은 반쯤 끌려나가는 중이었다.
하여간에 힘이 장사야. 저 무거운 놈을 달고서도 씩씩하게 병실 바깥으로 움직이는 녀석이 경이로웠다.
그런 이정원의 살벌한 기색에 강태오가 질색하며 이유준을 불러들였었다.
이정원의 한쪽 어깨를 잡아채며 이유준에게 반대쪽을 잡으라 명한 것이었는데.
아무튼 난리도 이런 생난리가 없는 듯했다.
멍한 얼굴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윤명과 낄 엄두가 안 났는지 내 옆에 서서 미간을 찌푸리고 있는 문채민을 제외하면 마치 한 편의 코미디 쇼라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야! 이정원! 그렇게 나가서 뭐 할 건데!’
‘……그럼! 가만히 있냐? 솔직히 네가 운이 좋아서 다리로 그친 거지. 머리라도 맞았어 봐! 여기서 끝났을 거 같아?!’
솔직히 말하자면 이정원의 말이 어느 정도 일 리는 있었다.
걔네가 뭐 조명을 조절해서 떨어트릴 수 있는 능력이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강태오가 다쳤더라도 나처럼 팔이나 다리 정도에서 그쳤을 거라는 시스템의 알림이 있긴 했지만.
MXP의 더러운 수법에는 앞, 뒤 구분이 없는 편이었다.
자기네 사람을 여기저기에 흩뿌려 놨다고 해도 한동준 PD 때처럼 꼬리 자르기에 용한 인간을 섭외해 놨겠지.
어쩌면 이보다 더한 걸 꾸미고 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당장 막무가내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이럴 때일수록 차분하고 침착하게 상대방의 숨통을 조일 방법을 구하는 게 최선이었다.
가능하다면 재기 불능하도록……. 그래서 나도 꾹 참고 있는 거였다.
활동을 쉬지 않기로 결정한 것에는 이 이유가 가장 큰 상태였는데.
그걸 흥분한 이정원과 이정원을 뜯어말리기 바쁜 멤버들의 뒤통수에 대고 외쳤다.
정신 차려, 잘하면 이번으로 끝낼 수 있는 거 평생 시달리며 살래?
나를 위한 이야기이기도 했지만, 이건 전부 멤버들을 위한 조언이기도 했다.
우리가 하이사인으로 활동하고 계속 연예계에 남아 있는 이상, MXP의 라이벌 처단식은 영원했을 테니까.
이정원을 비롯하여 멤버들은 모두 내 이야기에 몸을 멈췄었다.
‘…그럼, 뭐 어떻게 할 건데.’
이를 악물기라도 한 건지 이정원에게서 아득바득 끓는 듯한 음성이 새어 나왔다.
그러고는 팔다리에 힘을 빼고 등을 돌린 상태로 자신을 잡은 멤버들에게 손을 떼도 된다며 고개를 들어 올렸다.
‘음, 계획이 없는 건 아니야. 이쪽 건도 이미 대표님한테 부탁드려 놨고.’
비리 파일이라면 서도경을 통해 진작부터 알아보고 있었다.
이번 사태로 위험한 곳까지 수위까지 손을 내밀었으니, 제대로 엮어서 터뜨리기만 한다면 골로 보내는 게 가능할 일이었다.
아직은 그 타이밍이 아니어서 그렇지. 나도 서도경도 지원겸과 김환준도, MXP 실세가 이성을 잃고 실수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지금 이 지경까지 온 걸 보면 MXP는 수세에 몰려 있는 것이 분명했다.
‘…좋아, 그러면 그 빌어먹을 기다림에 나도 넣어.’
‘뭐?’
이정원이 내뱉은 말에 나는 크게 놀랐다. 아… 그것도 잠시 몸을 돌린 이정원의 얼굴을 보며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정원은 살벌한 눈빛으로 허공을 노려보고 있었다.
내게 하이사인이 중요한 것처럼 이정원에게도 이 그룹이 너무나 소중했던 모양이었다.
‘…거기에 나도 끼워 줘.’
‘형, 나도.’
얌전하던 윤명과 문채민이 이정원의 폭탄 발언에 힘을 실으며 병실 안은 멤버들의 다짐으로 한껏 시끄러워졌다.
‘뭐야~ 윤명, 문채민. 너희만 멋있게. 형! 쟤네가 끼는데 내가 빠질 거라곤 생각 안 했지?’
권혜성의 익살스러운 한마디에는 내가 져 줘야겠다며 한숨이 절로 튀어나왔었다.
어른스럽던 이유준과 강태오라고 해서 다를 바는 없어 보이는 몰골이었다.
팔짱을 낀 채로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고 있던 이유준이 강태오를 채근해 보였다.
‘너 혼자 빠질 건 아니지?’
‘…말을 해도 꼭. 해신이 형, 이 사고 가장 중심에는 내가 있었어. 그러니까 뺄 생각은 하지 마.’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멤버 모두를 이 일에 끼워 넣어 주기로 한다는 약속을 하고 모두에게 활동에 대한 허락을 받아 냈다.
일단 말로는 알겠다고 대답해 놨었지만. 위험한 일에는 절대 들이지 않으리란 각오를 하며 녀석들에겐 대강 가벼운 설명을 해 놨었다.
그 뒤로는 제법 일사천리로 일들이 진행되었다. 진짜 마지막일 수도 있어.
계약 기간까지 따지면 내년 연말 시상식까진 버텨 볼 수 있겠으나, 시기상 뭔가 지금이 적격이란 생각이 강했었으니까 말이다.
근래 일어난 사건 사고들과 그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대중들의 시선이 한껏 쏠려 있었기에, 적군을 치우고 상황을 이끌어 가는 것에는 이번 연말과 연초 시상식이 베스트일 거라는 계획이었다.
무엇보다도 시스템, 제로-원-나인과 시스템 신해신이 하는 행동이 마지막이라는 걸 짐작하게 해 줬다.
정체를 밝힌 걸 보면 종장이 그리 많이 남아 있지 않다는 뜻 같은데.
초반에는 마냥 나를 괴롭히는 것 같았으나 후반부에 들어서자 내 편임을 알려 준 녀석들이었다.
은연중에 이런저런 힌트를 많이 줬으니, 내 앞에 모습을 드러낸 행동만 봐도 거의 끝이 다가왔음을 알게 된 것이다.
그렇게 사고가 난 이후로 벌써 며칠이 더 지나 있었다. 나는 지금 병원을 퇴원하여 방송국에 와 있었다.
오늘 바로 무대에 서게 된 것은 아니고, 멤버들이 올라가게 될 연기 대상의 축하 공연을 모니터링하고자 쫓아 온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