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이돌은 파산 안하나요-321화 (320/328)

321화

대기실에 있으라는 멤버들의 만류에도 목발을 짚고 몸을 일으키니 사방에서 내 고집을 이기지 못하겠다는 반응들이 터져 나왔다.

“저, 저…….”

“멤버한테 저가 뭐냐.”

“아, 복장이야.”

입고 있는 의상이 불편하지도 않았는지 제 가슴팍을 퍽퍽 내려치는 이정원이 보였다.

이정원의 옆에 있던 권혜성이 그런 이정원을 만류하듯 목소리를 낮췄다.

“해신이 형 상황 알잖아. 정원이 형이 참아.”

“하이사인, 스탠바이해 주세요!”

문밖에서 들리는 스태프의 외침에 멤버들이 무대에 나갈 준비를 했다.

이정원에게서는 여전히 불신의 눈빛이 이어지고 있었지만, 나는 꿋꿋하게 모르는 척하며 몸을 움직일 뿐이었다.

“어?”

“…잡아.”

“형, 나한테 기대.”

그때, 양옆에서부터 나를 잡는 손길들이 이어졌다.

기우뚱 기울어지는 몸에 고개를 돌려 확인하니 이번 무대에서 선보일 곡에 맞춰 세련된 분장을 하고 있던 멤버 둘이 보였다.

윤명, 문채민……? 평소보다 침착한 얼굴로 나를 돌아보던 두 녀석이 자세를 추슬렀다.

가만 생각해 보니 내가 다친 이후로 유달리 어른스러워진 구석이 있던 녀석들이었다.

다른 사람들을 통해 건너들은 이야기였지만, 윤명과 문채민이 독기를 품은 것 같다고 했다.

본공연을 며칠 앞두고 모든 대형이 바뀌면서 내 파트를 대신해줄 멤버들로 윤명과 문채민이 불렸었다고 전달받은 것이었다.

문채민 쪽은 래퍼이긴 했지만, 원래도 노래를 잘하는 녀석이었다. 그 와중에 나를 대신해서 파트를 받게 되니 책임감이라도 생긴 모양이었다.

나는 해 준 게 없는데. 미안한 마음에 팔을 뻗어 녀석들의 등을 토닥여 줬다.

얘네는 여기 있는 멤버들 중에서 유일하게 스탯을 올리지 못한 놈들이기도 해서 유달리 신경이 쓰였었다.

원래대로라면 이번 무대를 통해 올라갈 가능성이 컸는데. 내가 이 모양 이 꼴이 되어 무리라는 판단이 내려진 이후였다.

어떻게든 시상식 연말 무대에서는 녀석들의 스탯을 올려 주기로 다짐했다.

“…꽉 잡아, 다치잖아.”

“그래, 형. 가자.”

그렇게 윤명과 문채민에게 부축을 받으며 무대 바로 뒤의 백스테이지까지 이동했다.

준비되어있는 모니터가 잘 보이는 자리에 서서 멤버들이 움직이는 걸 응원하던 중이었다.

툭, 아까부터 툴툴거리던 이정원이 팔을 뻗어 내 어깨를 치고 갔다. 밀었다는 느낌보단 격려라도 해 주는 마음이 느껴지는 손짓이었다.

“거기서 제대로 지켜보고 있어.”

“오냐.”

그걸 보고 있었던 걸까. 다른 멤버들에게서도 이정원과 비슷한 행동들이 이어졌다.

어디서 가져온 것인지 잽싸게 의자를 가져와 내게 앉으라며 대령한 권혜성이 바쁜 와중에도 헤실거리며 나를 꽉 안고 달려 나간 것이었다.

“다음엔 같이 올라가자!”

“그래.”

다음 타자로는 자리가 비기를 지켜보고 있던 이유준이었다.

앞머리를 넘겨 보다 성숙한 분위기를 뿜어내고 있던 녀석이 팔을 뻗어 이정원이 치고 갔던 어깨를 두 번 토닥거렸다.

“형이 빠져서 허전할 것 같으니까, 그 다리… 얼른 나아야 해.”

이내 깁스가 되어 있는 내 다리를 보며 슬쩍 미소 짓곤 몸을 돌려 먼저 앞서 나간 멤버들을 뒤따랐다.

“…다들 말이 많네.”

“뭐야, 강태오. 너도 할 말 있냐.”

언제부터였을까, 앉아 있던 의자 뒤편에서 화려하게 꾸민 강태오가 나타났다.

조용히 걸어 나와선 팔짱을 낀 자세로 나를 내려다보더니 손을 뻗어 내가 쓰고 있던 모자의 챙을 푹 눌렀다.

“…너 뭐 하냐.”

“가만히 있으라고.”

그러고는 그대로 몸을 돌려 뚜벅뚜벅 걸어 나갔다.

반쯤 가려진 시야에 서둘러 모자챙을 들어 올리자 무대 입구 바로 앞까지 이동한 녀석이 보였다.

그래, 이래야 강태오지. 나는 지금 이 행동이 강태오 나름의 위로하는 법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무대 사고 이후로 멘탈에 지장이 많을까 염려하고 있었는데. 그럴 필요가 없겠다는 생각에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그럼 이제 남은 건 두 놈인가. 곰곰이 대기 중인 멤버들을 쳐다보는데, 우직한 모습을 보이던 멤버 두 명이 안 나타난 걸 깨달았다.

윤명, 문채민. 이런 내 속마음을 훤히 꿰뚫어 보고 있었는지 양옆의 어깨로부터 큼지막한 손이 두 개 얹어졌다.

“…맡겨 둬.”

“잘할게. 그러니까 얼른 와.”

평소보다 말수가 확 적어져서는 무표정한 얼굴로 내 어깨를 두들긴 멤버들이었다.

모자챙으로 시야가 방해돼서 정확한 표정은 보이지 않았지만 묵묵하게 말을 하고 떠나는 뒷모습에서 알 수 없는 든든함이 느껴졌다.

…그래, 맡긴다. 스태프의 손짓에 맞춰 또 MC의 부름에 이끌려 무대 위로 올라가고 있는 녀석들이 보였다.

나도 얼른 나아야지. 관객석에서부터 쏟아지는 환호성을 들으며 무대를 비추고 있는 모니터를 빤히 바라봤다.

부탁한다, 얘들아. 비록 다리는 이러지만 마음만큼은 녀석들과 함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말을 향한 시작이면서, 본격적인 반격에 대한 신호이기도 했다.

* * *

- 기회는 지금 뿐이야

What's that in your hands

- 걱정하지 마

A change of mind

잘하네. 무대를 보며 감탄에 사로잡혀 있었다.

저 녀석들, 대단한 놈들이었구나. 항상 함께 올라가 있어서 잊고 있던 사실이었다.

익숙한 멜로디가 귓가에서 울려 퍼졌다. 저 곡의 센터였던 내가 여기에 있는 게 의아하지만.

이번 연기 대상 축하 공연에서 하이사인이 선보이기로 했던 노래는 바로 Pandora였다.

세련된 비트에 절제되면서 화려한 퍼포먼스가 연기 대상과 잘 어울린다는 평가였었지.

다리를 다치기 전에 내려진 선곡으로 멤버들과는 오랜 연습을 거쳤었는데.

정장을 입은 상태에서 성숙해 보이는 스타일링하고 무대 위를 누비고 있던 멤버들을 바라봤다.

곧 다다를 1절 싸비에서 나를 대신해 문채민이 센터로 치고 나오고 있었다.

- 1,2,3 카드를 뒤집어

손안에 쥔 건

바로 네 Destiny

- 상자를 열어 (아니, 열지 마)

이건 널(날) 깨우는 Signal (Signal)

- Choose one over the other

Woo- ah- woo-

Yes, pandora

멤버들을 가르듯이 앞장서 나타난 문채민이 훌륭하게 제 파트를 소화해 냈다.

성인에 가까워진 탓이었을까, 이번 사건을 겪으면서였을까. 한껏 성숙해진 얼굴로 늘어난 보컬 실력을 자랑했다.

랩을 못 했어도 다른 그룹에선 보컬을 할 수 있었을 정도로 상당히 괜찮은 실력을 가지고 있던 막내였다.

유어돌에서도 알고 있었는데. 이런 모습을 다시 보니 오랜만에 옛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려고 했다.

이정원의 화음에 맞춰 라이브를 하면서 안무를 놓치지 않는 녀석의 모습에 뿌듯함이 차올랐다.

내가 키운 자식도 아닌데… 약해진 모습을 본 적이 있어서 그랬는지 묘한 감상이 뒤를 따랐다.

이를 악문 듯 독기를 품어 무대를 선보이는 멤버들의 모습에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달은 무렵이었다.

이유준의 더블링에 맞춰서 화려한 댄스 브레이크를 여는 강태오와 권혜성을 물리고 그 사이로 윤명이 등장했다.

평소 미성이라고 생각했던 부드러운 목소리가 힘을 받아 높게 고음을 찍었다.

단단한 발성과 능숙한 보컬이 격한 안무 속에서도 빛을 발하는 중이라고 할 수 있었다.

- 1,2,3 카드를 뒤집어

손안에 쥔 건

바로 네 Destiny

- 상자를 열어 (열어야만 해)

이건 널(날) 깨우는 Signal (Signal)

- Woo- ah- woo woo-

- Choose one over the other?

- Woo- ah- woo-

Yes, pandora

저 녀석… 평소 멍하던 인상과 달리 또렷한 눈동자가 객석과 카메라를 잡아먹듯이 사납게 돌아갔다.

미약하게나마 일그러진 미간과 비틀리듯 올라간 입술이 알고 있던 윤명을 떠오르지 않게 만들었다.

야, 살살 해라. 인터넷에 올라올 반응이 떠올라 이제는 헛웃음이 나오려고 했다.

문채민도 윤명도 이번 무대에 얼마나 이를 악물고 덤벼들었는지 알 수 있는 파트였다.

괜히 더 미안해지는데. 완전체가 아닌 상태라서 스탯 업데이트는 글렀다고 보고 있던 과거였었다.

그런데 뭐지? 그 순간 모니터 위 윤명과 문채민에게 알 수 없는 흰빛이 떠올랐다.

설마… 나는 그대로 홀린 듯 자리에서 일어나 모니터를 바라봤다.

윤명, 문채민… 내 예상이 틀리지 않았다면 이건 바로 그거였다.

올리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던 스탯의 업데이트 창 말이다.

모니터 위로 윤명과 문채민의 상태 창이 떠올랐다.

이게 이렇게도 볼 수 있는 거였구나. 익숙한 홀로그램을 보며 자조하듯 헛웃음을 지었다.

[히든 스탯 깜짝 미션 멤버 ‘윤명’의 끼 스탯 업데이트에 성공하셨습니다.]

[히든 스탯 깜짝 미션 멤버 ‘문채민’의 랩 스탯 업데이트에 성공하셨습니다.]

[끼 스탯: C+ → B-]

[랩 스탯: A+ → S]

[윤명]

나이: 20

외모: A

보컬: A-

댄스: B

운: A+

끼: B-

[문채민]

나이: 19

외모: A-

보컬: B+ / 랩 S

댄스: B+

운: A-

끼: B+

[히든 스탯 깜짝 미션]

멤버들의 스탯을 업데이트해 주세요. 그에 따른 보상이 주어집니다.

종료 기한 – 7인 모두 달성 시

보상 – 랜덤 지급

[멤버]

이정원 – 보컬 스탯 업데이트 완료 [A+ → S]

이유준 – 랩 스탯 업데이트 완료 [A- → A]

강태오 – 댄스 스탯, 운 스탯 업데이트 완료 [A- → A] [B+ → A-]

권혜성 – 끼 스탯 업데이트 완료 [A- → A]

윤명 - 끼 스탯 업데이트 완료 [C+ → B-]

문채민 - 랩 스탯 업데이트 완료 [A+ → S]

- Don’t be afraid

숨겨진 미지를 향해

그 걸음을 내디뎌 봐

- 벽을 열고

깨어난 것뿐이야

- Pandora 어서 그 상자를 열어

쏟아지는 환호성 너머로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던 녀석 둘이 보였다.

윤명은 지지부진하던 끼 스탯이 올라가고, 문채민은 멤버 중 세 번째로 S 스탯에 입성하는 쾌거를 보여 준 것이었다.

파랗게 빛나는 스탯 창과 황금빛이 스며든 스탯 창을 바라보며 묘한 감상에 빠져 있었다.

어째서였을까, 그 순간 나도 모르게 녀석들과 함께 무대 위를 누비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객석의 응원을 받으며 백스테이지로 들어올 멤버들을 기다리길 한참이었다.

현장 스태프들 사이로 회사 스태프들의 안내를 받으며 이쪽으로 걸어 들어오고 있는 녀석들이 보였다.

진지한 얼굴로 나섰던 아까와는 달리 한결 가벼워 보이는 얼굴들에 기분이 좋아졌다.

“형! 봤어? 1절 싸비, 괜찮았지.”

“…2절, 형처럼 해 보려고 했는데. 잘됐는지는 모르겠어…….”

들뜬 기색의 문채민과 다시 늘어지는 말투로 돌아온 윤명에 나는 그대로 팔을 뻗어 두 녀석을 끌어안았다.

“어, 어? 형?”

“…음, 형, 왜 그래?”

“…아니, 잘했다고. 장하다.”

“헐, 뭐야! 해신이 형! 쟤네만 안아 주고!”

등 뒤로 달려든 권혜성이나 자기네는 칭찬 안 해 주냐며 투덜거리는 이정원의 잔소리는 잠시 넘긴 이후였다.

지금은 마냥 이 둘이 자랑스러웠다. 한편으론 든든함에 가슴이 쿵쿵 뛰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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