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3화
“…예?”
여기서 가장 당황한 사람은 나였다. …어, 걱정이 돼서 왔다고? 믿기지는 않았지만, 그 말이 진실이었다는 듯 지원겸이 고개를 푹 숙였다.
흩어진 머리카락 사이로 얼핏 드러난 귀가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유어돌 때부터 느꼈지만 진지한 상황은 견디지 못하는 타입이었던 듯하다.
지원겸이 입고 있던 후드티의 모자를 푹 눌러쓴 채 눈만 들어 여기를 쳐다봤다.
“그, 그럼 후배 걱정도 못 하냐!”
“…오, 멘토님. 얼굴, 대박.”
“야, 윤명. 너 그런 단어 안 쓰잖아.”
윤명과 권혜성의 만담이 고요하던 연습실 내부로 울려 퍼졌다.
…이럴 거면 그냥 너희도 합류하지. MXP 등 위험한 일들에 대한 이야기가 아님을 깨닫고 멤버들이 앉아 있던 방향을 쳐다봤다.
솔직히 말하자면 너무 어색해서 견디기가 힘들었던 것이었다.
같이 있자, 그래야 덜 숨 막힐 것 같아. 내 행동을 본 김환준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허락을 해 줬다.
지원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멤버들의 합류가 정해진 참이었다.
가장 먼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건 아무 말 없이 여기를 쳐다보고 있던 이유준과 강태오였다.
재밌다는 듯이 싱긋 웃은 이유준이 능글맞은 멘트를 내뱉으며 이쪽으로 다가왔다.
“그럼 어디, 합류해 볼까요~”
“…실례하겠습니다.”
그 뒤를 곧장 따라온 것은 강태오였다. 원래라면 귀찮은 일에는 절대로 끼려고 하지 않았을 텐데.
무대 사고 이후로 마인드가 바뀐 것인지 이런 측면에선 긍정적인 행보를 보였다.
줄줄이 소시지처럼 현재 사태에 흥미를 느낀 윤명과 권혜성이 문채민을 데리고 발걸음을 옮겼다.
“…그럼 나도 낄래.”
“멘토님! 저희 이렇게는 오랜만에 얘기하죠!”
“아, 형! 옷 늘어나!”
윤명과 권혜성, 마지막으로 문채민이 자리에 앉았을 무렵, 이정원이 녀석들을 헤집고 나타났다.
녀석은 아주 잘 걸렸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선배들 앞이라고 나름 내숭을 떨어 주려나 싶었는데, 그건 내 희망사항이었다는 듯이 웃고 있었다.
이유준과 마찬가지로 입꼬리를 들어 올린 상태면서도 묘한 분위기를 풍겼다.
지원겸과 김환준은 그런 이정원을 희한하단 얼굴로 쳐다보고 있었다.
“…왠지 잘못 찾아온 것 같은데.”
“하하, 저도 이런 대면은 처음이라서요.”
“실례할게요.”
내 옆으로 이정원이 착석하고 눈치를 살피는 멤버들 사이에서 이정원이 서두를 읊었다.
그동안 궁금해서 어떻게 살았나 싶었을 정도로 빠르고 매서운 선제공격이었다.
“두 분, 뭐 좀 알고 있죠?”
“…….”
이런, 망했네. 다친 걸로 단순히 병문안을 왔다던 두 사람과 달리 이정원은 꿍꿍이가 있는 듯했다. 지금 이 자리가 그간 있던 일들을 알 기회라고 여겼던 것 같았다.
선배니, 멘토니 그런 건 하등 신경 쓰지 않는다는 어투로 지원겸과 김환준에게 질문을 던졌다.
지원겸은 이정원의 날카로운 외마디에 붉게 달아올랐던 얼굴을 수습했다.
쓰고 있던 후드티의 모자를 뒤로 젖히며 팔짱을 끼고 씨익 웃었다.
거기서 나는 기가 센 사람들 사이에 끼어 있다는 기분을 떨칠 수가 없었다.
김환준, 좀 말려 봐. 도와 달라며 김환준을 쳐다봤다. 그런데 저기는 이쪽보다 더한 상황이었던 듯했다.
이정원과 나를 제외한 멤버 모두의 시선을 받고 있던 김환준이었다.
“그렇게 쳐다보면 부끄러운데요.”
멤버들이 그런 김환준을 보며 무슨 말을 해야 할까 고민하고 있었다.
가장 먼저 입을 연 것은 성격이 급한 권혜성이었다.
“정원이 형보단 저희가 나을걸요? 해신이 형이 또 사고 칠까 봐 그러는 거니까 이해 좀 해 주세요~”
“……진짜 바보 같다. 그럴 거면 넌 조용히 있어.”
“뭐?! 그럼 넌 뭐 물어보려고 그랬는데!”
물론 얼마 안 가서 튀어나온 윤명의 팩트 폭력에 투닥거렸지만 말이다.
싸우는 형들을 놔둔 채 그 사이에 끼어 있던 문채민이 김환준을 향해 실례했다는 듯이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러는 와중에도 김환준을 경계하는 얼굴을 보이는게, 어떻게 보면 막내가 제일 어른스러운 듯했다.
“앞으로 계획이 있으신 거예요? 저희가 봐선 뭔가 생각이 있는 것 같았거든요.”
“저요? 아니면 신해신 씨요?”
“음, 둘 다로 치죠.”
역시 비슷한 타입끼리 대화하는 게 맞았던 걸까. 이유준의 질문에 김환준이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 옆에서 이유준을 돕고 나선 건 침묵을 지키고 있던 강태오였다.
이정원의 매서운 질문이 지원겸에 쏟아지는 걸 보더니, 차라리 이쪽이 낫겠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것만 알려 주세요. 해신이 형이 위험해질 일인지.”
“위험해진다면?”
“말려야죠, 최선을 다해서.”
강태오의 물음에 김환준이 고민하는 뉘앙스를 보였다.
턱을 괴곤 나와 멤버들을 훑어보고선 사랑받는 리더라며 은근슬쩍 놀리려 들었다.
됐으니까, 적당히 무마나 해. 이정원과 지원겸 쪽이 붙는 걸 말리려고 김환준에겐 가만히 있으라 눈짓한 이후였다.
“걱정할 정도는 아니에요. 위험 수위로 따지면 셋 다 비슷한 상태고. 이번 일에 신해신 씨가 연루된 건 우리도 예상하지 못했던 거거든요. 선배들이 되어서 후배를 위험에 빠지게 두겠어요?”
김환준의 이야기에 지원겸과 이정원까지 모두가 이쪽을 돌아봤다.
“맞아, 그러니까 이정원, 눈빛 좀 죽여라. 따가워 죽겠다.”
“…네.”
“신해신 다리가 저렇게 된 건 우리도 유감이야. 나름 꼼꼼하게 확인한다고 했는데, 이건 놓쳤어. 그 부분은 미안하게 생각한다. 진심으로 사과할게.”
“아니, 이걸 둘이 어떻게 막아요. 그리고 거기가 당할 수도 있었던 일이잖아요.”
지원겸의 사과에는 됐다며 손을 내저었다.
우리가 무사히 활동하던 시간에는 디레스트나 인클루가 당하던 것이 있었다.
따지고 보면 모두가 비슷한 상황에 처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선배와 멘토라는 이름으로 지원겸과 김환준이 직접 찾아왔다.
이만하면 이제 믿을 만하지 않냐. 멤버들에겐 그런 의사를 담아 눈빛을 보냈다.
김환준과 지원겸의 다소 진솔한 사과 및 인사 덕분이었을까, 딱딱하던 분위기가 풀어졌다.
화목까지는 아니더라도 나쁘진 않아 보이는 모습이었다.
그렇게 가벼운 안부 인사차 지원겸과 김환준과는 간단한 대화를 나눴다.
애초부터 오래 있을 생각이 아니었던 듯이 이만 가 봐야겠다고 말했다.
우리도 슬슬 연습을 해야 해서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여 줬다.
“형, 어디가!”
“야, 신해신, 넌 좀 가만히 있어!”
지원겸과 김환준을 마중 나가겠다며 몸을 일으킨 순간이었다.
뒤에서 외치는 멤버들의 부름에 엘리베이터까지만 다녀오겠다며 빠르게 이동했다.
등 뒤로 문이 닫히고 멤버들과 공간이 나눠지자 그제야 참고 있던 한숨이 쏟아져 나왔다.
“휴. …어.”
“잡아요.”
목발을 겨드랑이에 낀 상태에서 몸을 움직이려는데 그걸 보고 웃은 김환준이 내 어깨를 부축해 줬다.
반대편에 서 있던 것은 툴툴거리는 얼굴로 자신을 잡으라며 팔을 내어 준 지원겸이었다.
“저 녀석들, 아주 사나워. 예전엔 안 그랬던 것 같은데.”
멤버들이 사납다든지 멘토도 못 알아본다든지 하나같이 불퉁한 말이었지만 부축하는 자세는 조심스럽기 그지없어서 웃겼다.
“진짜 마음에 안 들었으면 애들 얼굴도 안 봤을 거잖아요.”
“…뭐, 이젠 제법 태가 나. 어디 둬도 자기들이 알아서 잘하니까.”
지원겸의 솔직하지 못한 행동에 작게 웃었다.
둘의 움직임에 맞춰 보폭을 옮기는데 지원겸이 턱짓으로 엘리베이터가 있던 방향을 가리켰다.
“됐으니까 저기까지만 나와. 김환준, 넌 좋겠다? 바로 위층에 멤버들 있어서?”
“그럼 너도 여기로 이적하든지.”
“흥.”
하여간에, 이러면서 잘도 어울린다니까. 디레스트 멤버들이 있는 위층으로 올라간다는 김환준을 두고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른 지원겸이 슬쩍 뒤를 돌아봤다.
뭔가 더 할 말이 있던 건가. 멤버들이 있을 연습실 방향을 쳐다보는 모습에 자연히 김환준과 지원겸에게 시선이 돌아갔다.
김환준은 그런 지원겸과 나를 보며 웃고 있던 입꼬리를 슬쩍 내렸다.
그러고는 고개를 숙여 목소리를 낮춰 지원겸에게 무언가를 물어봤다.
“지금 할 거야?”
“지금 말곤 시간이 없잖아.”
아무래도 둘은 내게 하고 싶었던 말이 있는 것 같았다.
아까는 연습실에서 분위기를 맞추느라 가만히 있었던 모양인데.
여기까지 나와서 하는 걸 보면 중요한 것 같아보였다.
그리 긴 내용은 아니었지만 바뀌는 숫자를 살피며 지원겸이 입을 열었다.
“야, 신해신. 너 조심해라.”
“네?”
이건 또 무슨 소리야. 지원겸의 경고에 딱딱하게 몸이 굳었다.
“너희, 시상식 중 한 군데에서 대상에 노미네이트됐다는 이야기가 들려. 우리 귀에 들어왔을 정도면 MXP 쪽에서도 들었을 거야.”
지원겸의 말에 머리가 멍해졌다. 대상? 이건 나도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이번 시상식 중 한 군데에서 이벤트를 끝낼 생각이 있긴 했었다.
그런데 그게 진짜 가능하다니. 확정된 사실은 아니었지만 어리둥절하기만 했다.
여기까지만 했으면 기쁜 소식이었을 텐데… 뒤이어 따라붙는 MXP의 이야기에 입술이 말라붙었다.
무슨 내용이냐며 김환준을 쳐다보자 골치가 아프다는 듯이 쓰게 웃은 김환준이 입을 열었다.
“보시다시피 신해신 씨네는 사고를 한번 당했잖아요. 그런데도 행보를 멈출 기미가 없으니, 거기선 잔뜩 약이 올랐겠죠.”
“아…….”
“게다가 너 활동 중지도 안 했잖아. 연말 무대에도 전부 나가겠다고 공지했다며. 그놈들이 하는 짓거리를 보면 너희가 메인 타깃이 되었을 가능성이 커. 대상을 받는 건 업계 최고의 보상이니까. 어떻게든 그것만큼은 막아 보고 싶겠지.”
그러니까 김환준과 지원겸의 이야기는 그거였다.
온갖 방해 요소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버틴 우리에게 무슨 일이 벌어질 확률이 보인다는 것이었다.
확실히… 사고가 난 것치곤 여론이 상당히 좋은 편이었다.
걔네가 바란 것은 부정적인 형태로 이미지가 씌워짐과 동시에 멤버 중 하나가 활동 중지를 하며 시상식 내의 존재감을 흐리게 만드는 거였을 텐데.
우습게도 멤버들의 역량이 늘어남과 동시에 무대로는 인정받게 됐다.
활동을 쉬지 않겠다고 선언한 나까지, MXP의 입장에선 총체적 난국이었을 것이다.
어딘지는 모르겠지만 시상식에서 노미네이트가 됐다고 했지.
우리가 이 이상 몸집이 커지면 방해하기 힘들어질 테니까, MXP에겐 시간이 별로 안 남아 있었다.
지원겸과 김환준은 그 사실을 눈치채고 내게 먼저 말해 주고 싶었던 듯했다.
이 사실을 알자마자 느낀 첫 감정은 놀랍게도 신기함이었다.
내가 담이 커지긴 했나. 오히려 최종장이 보이는 느낌에 후련하기까지 했다.
걱정으로 물든 지원겸과 김환준에겐 괜찮다며 피식 미소를 지었다.
“문제는 없을 것 같은데요.”
“…깡이 좋다?”
“많이 바뀌었네요, 신해신 씨.”
“뭐 그런 거보다는…….”
왠지 괜찮을 거란 예감이 들었다.
멤버들 때문인지, 아니면 좋은 사람들이 지척에 널려 있음을 알아서였는지.
뭐든 잘 해결될 거란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