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4화
드디어 연말 시상식이 시작되었다. T사에서 열리는 어워드를 시작으로 하이사인 모두가 시상식에 참석했다.
멤버들의 도움을 받아 레드 카펫에 올라가고 목발을 짚으면서 참가했던 장소였다.
상당히 높은 자리에 노미네이트되어 있었다는 말이 진실이었는지 대상까진 아니더라도 그 바로 직전의 상이나, 글로벌 콘텐츠 부문 등 다양한 부문에서 많은 상을 받아 냈다.
매일같이 바쁘게 장소를 옮기고, 스케줄을 이동하며 하이사인으로서 충실하게 살았던 나날이었다.
12월 31일, 올해의 마지막 날, 연말 시상식으론 끝이자 연초 시상식으론 시작점이라 불리던 오랜 정통의 음반 대상 날이 다가왔다.
간단한 공연만 했던 무대들과 달리 하이라이트에 가까울 정도로 성대한 공연이 꾸려져 있던 곳이었다.
다리 부상으로 올라가지 않았던 지금까지와는 달리 동선을 바꿔서까지 새롭게 구성했던 무대가 코앞에 다가와 있었다.
목발을 내려놓고 이동할 수준으론 호전되어, 깁스만 한 상태에서 대기실에 들어왔다.
멤버들은 무대 구성으로 인해 먼저 이동한 참이었다.
회사 스태프들의 도움에 맞춰 의상을 갈아입고 시간 단축을 위해 이동용 휠체어에 앉아 백스테이지로 들어갔다.
어두운 암막 커튼 너머로 번쩍이는 조명과 환호성들이 이어지고 있었다.
“해신 씨, 스탠바이하실게요!”
“네!”
이제 내 차례인가. 스태프의 부름에 맞춰 이어 마이크를 매만지며 휠체어에서 일어났다.
Star sign on stage. HISIGN. 무대 위에서 한참 공연 중일 녀석들에게 말을 걸어 본 순간이었다.
* * *
하이사인이 여러모로 이름을 알린 한 해였다. 한다은과 나는 오랜만에 하이사인을 보기 위해 오프를 뛰었다.
콤플렉스 활동 당시에도 높은 경쟁률과 바쁜 현생으로 공방에 가지 못했으니, 이렇게라도 원한을 풀고자 방문한 거였다.
액땜이라도 했는지 연말 시상식 내내 크고 작은 상을 탔던 멤버들이 떠올랐다.
부디 오늘도 좋은 결과가 있어야 할 텐데. 나는 하이사인이 어떻게든 올해의 음반상 내지 아티스트 상을 받길 바라고 있었다.
두 음반 연속 더블 밀리언 셀러를 달성한 걸로도 모자라서, 해외 투어는 돌아 본 적도 없었지만 크라운 게임 및 타 방송으로 글로벌 팬들까지 모았던 그룹이었다.
시청자의 연령대 폭이 넓은 예능 방송에서 반고정 게스트를 얻어내고, 자체 콘텐츠로는 입소문이 나서 타 팬덤도 찾아볼 정도로 유명세가 생겼으니.
내가 좋아하는 그룹은 이제 단순한 서바이벌 출신 아이돌 그룹이 아닌, 완전한 대중픽 실력파 아이돌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이사인의 공식 응원봉을 휘두르며 무대를 지켜보고 있길 한참이었다.
“혜성아!”
“태오야!!”
해신이만 빠진 하이사인이 무대 위로 올라왔다.
여타 시상식과 마찬가지로 활동이 많았던 그룹에 뽑혀 무대를 하기로 했던 것이었다.
그간 해신이의 부상으로 간략하게 꾸려졌던 공연들과 달리 성대한 시작이 보였다.
공을 많이 들인 듯한 영상이 무대 가운데의 대형 스크린에 떠올랐다.
별빛이 쏟아질 것 같은 어두운 밤하늘이었다. 유성우가 하늘을 가득 메우고 긴 포물선을 그린 별들이 화면을 어지럽게 장식했다.
아스라이 보이는 물가, 동이 트며 푸르스름해진 하늘, 찬 기운이 가득한 새벽녘이 이어지고, 떨어지는 유성우를 본 남자들이 고개를 돌렸다.
잔잔하던 표면 위로 물방울이 맺히며 파동을 일으키는 장면이 나온 이후엔 손과 손을 붙잡는 모습과 바람이 불어 머리카락이 흔들리는 듯한 연출이 보였다.
긴 속눈썹을 자랑하는 감긴 눈 하나가 천천히 눈꺼풀을 들어 올리고.
새까만 눈동자 위로 유성우가 쏟아져 빛무리가 그려 낸 그림이 반사됐다.
일곱 개의 별이 이어진 다소 익숙한 별자리 모양의 이펙트.
이건 하이사인이 유어돌 파이널 자리에서 공개했었던 공식 로고였다.
그와 동시에 다수의 목소리가 공연장에 울려퍼졌다.
[Hold hand]
이건… 해신이를 제외한 하이사인 멤버 6명의 목소리였다.
“미쳤나 봐!”
한다은의 비명을 끝으로 허스키한 미성이 하나 더 추가됐다.
[Complex]
“해신이다.”
리더이자 지금까지 무대를 함께하지 못했던 신해신의 목소리였다.
그렇게 영상이 끝나고 대형 스크린이 반으로 갈라지며 거대한 트레일러가 모습을 드러냈다.
Complex의 뮤직비디오에서 나온 강가를 구현한 세트였다.
낮은 잔디와 이끼가 낀 바위, 새벽녘 하늘을 표현한 듯 푸르스름한 천개가 달린 세트장이었다.
쏟아지는 스모그와 열기를 뿜어내는 조명들 사이에서 이유준이 보였다.
강 한가운데 다리가 긴 의자 위에 앉아 있던 이유준이었다.
한쪽 다리를 끌어안은 상태에서 이유준이 무대의 막을 열었다.
- 나만 그런 게 아닐까
생각에 빠져
길을 잃은 아이처럼
방황하던 모습을 떠올려
해신이를 제외한 하이사인 6인의 Complex였다.
시상식 무대 용으로 편곡했는지 서로의 파트를 체인지하여 지금까진 본 적 없었던 구성으로 공연을 보여 줬다.
응원법에 맞춰 소리를 지르고 환호하며 응원봉을 흔들어 댔다.
“얘들아~!”
1절 싸비가 넘어가고 전주가 시작될 무렵부턴 화려한 볼거리들이 넘쳐나는 중이었다.
다른 곳에서 나타난 대형 트레일러가 이유준이 타고 있던 트레일러와 합쳐지며 엄청난 규모의 공간이 만들어졌다.
그 위로 등장한 댄서들과 쏟아지는 특수 효과, 그리고 이를 악문 듯 퍼포먼스를 주도하는 강태오와 권혜성까지. 정말 장관이었다.
이정원과 윤명의 미성이 귓가를 울리고, 무대의 가장 하이라이트이자 서사가 드러나는 파트에 돌입하려던 순간이었다.
트레일러 위에 올라가 있던 멤버 전원이 셔츠를 펄럭이며 크게 몸을 회전시켰다.
트레일러로 시선이 쏠리며 까맣게 암전되어 있던 무대 정중앙 후면이었다.
“헐, 쌤!”
하프의 현이 튕기는 듯한 신비로운 소리와 맑고 깨끗한 피아노 사운드가 공연장에 울려 퍼졌다.
팟, 백색의 핀 조명이 암전된 부분을 밝히고.
멤버들이 타고 나타난 트레일러보단 작은 사이즈였지만, 가장 화려하게 꾸며져 있던 세트가 나타났다.
강가와 바위 그리고 한기가 가득하던 여타 광경과 달리 봄이 찾아온 듯 화사한 꽃밭이 올라가 있는 트레일러였다.
주변을 타고 올라가는 덩굴들과 그 사이를 메꾼 엷은 색의 꽃잎이 조명을 받아 반짝거렸다.
아치형으로 이루어진 꽃 담장에 공간을 두고 연한 분홍빛의 천개가 하늘하늘 흔들렸다.
하이사인의 뮤직비디오에서 종종 봤던 신비로운 장면을 눈앞에 가져다 놓은 것 같은 광경이 펄쳐졌다.
설치되어 있던 장치로부터 꽃잎이 쏟아져 내리니 그 위에 올라가 있던 사람이 손을 뻗어 떨어지는 꽃잎을 받아 내는데.
“해신아!”
저건 내가 계속해서 기다리고 있던 신해신이었다.
- 거짓말이라도 영원히 머물러 줘
만개한 꽃잎처럼 얽히고설킨 손가락
그래 혼자가 아니야
“꺄아악!”
“해신아!”
해신이는 멤버들과 똑같이 품이 넓은 흰 셔츠에 하얀 바지를 입고 있었다.
다른 점이 하나 있다면 한쪽 다리 위로 두꺼운 깁스를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멤버들처럼 맨발을 하고 있던 상태에서 높낮이가 맞지 않았는지 반대편 발아래에 작은 돌판이 깔려 있었다.
안쓰러운 마음도 잠시 깁스 위를 수놓듯 꽃과 줄기가 다리를 휘감고 있는 것을 보며 넋을 놓은 채로 비명을 질렀다.
“신해신!”
그건 나와 한다은을 제외한 하이눈 모두가 그런 듯했다.
아까보다 훨씬 밝아진 멜로디에 해신이가 올라가 있던 트레일러가 움직이며 멤버들이 있는 세트장과 합쳐졌다.
- 그 Complex를 벗어나
벗어날 수가 없다면
- Complex를 안고
한 바퀴 자리를 돌아
그 노래가 귓가에 맴돌아
고개를 돌려 해신이를 본 이유준의 선창을 시작으로, 이정원이 피치를 올리며 고음을 내질렀다.
그와 동시에 팟, 팟, 팟 연달아서 밝은 빛의 조명이 터져 나오고.
“미친…….”
다소 축축하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뿜어내고 있던 기존의 세트장이 변화했다.
스르륵, 강가를 제외한 풀판의 풀 무더기가 바닥을 뒤집으며 꽃밭으로 수놓인 것이었다.
해신이가 올라가 있던 트레일러에서부터 세상을 물들이듯 무대 위가 엷은 분홍빛으로 바뀌었다.
배경에 떠 있던 스크린 위로 몽글몽글한 이펙트가 흘러나오며 백댄서들과 권혜성 그리고 강태오가 춤 선을 달리했다.
문채민의 랩이 공격적이던 플로우의 발음에서 멜로디를 섞은 싱잉에 가깝게 변한 것도 비슷한 타이밍이었다.
- 꼬일 대로 꼬인 마음
어루만지는 손가락
그제야 고개를 들어 올려
하늘을 확인했어
아, 이렇게 파랬구나
깨달은 사실 하나로 모든 걸 인정해
- MY complex 이제는 그것도 나야
쏟아지는 햇살을 받으며 그렇게 한 걸음 내디딜게
오케스트라처럼 풍성해진 화음 너머로 스탠드 마이크를 쥐고 서 있던 해신이가 멤버들을 돌아보며 슬쩍 웃었다.
바람에 맞춰 흩날리는 머리카락과 그 뒤를 수놓듯 쏟아지고 있는 꽃잎을 보니 괜스레 울컥하는 기분이 들었다.
- 그 Complex를 벗어나
벗어날 수가 없다면
- Complex를 안고
한 바퀴 자리를 돌아
그 노래가 귓가에 맴돌아
윤명의 더블링을 시작으로 이유준이 신해신이 있던 트레일러 쪽으로 넘어갔다.
그러고는 그 주변을 빙글빙글 돌며 부드러운 느낌의 퍼포먼스를 이어 갔다.
중첩된 하모니와 멤버들의 목소리, 화려한 볼거리와 숨 쉴 틈도 없이 이어지는 서사가 팬심을 마구 뒤흔들었다.
신비롭지만 다소 어두운 분위기에서 시작한 곡이라고는 볼 수 없을 정도로 온화하고 따스한 무대였었다.
신해신이 손에 쥐고 있던 스탠드에서 마이크를 떼어 내며 몸을 틀었다.
비틀, 비틀, 그러고는 무대 정중앙에서 단체 군무를 추고 있던 멤버들의 방향으로 발을 돌렸다.
애드립으로 고음을 쏟아 내고 있던 이정원이 고개를 틀며 몸을 비켜섰다.
센터에서 무대를 이끌고 있던 이유준이 웃은 것도 같은 타이밍이었다.
양 사이드에서 합을 맞춰 춤을 추고 있던 강태오와 권혜성이 팔을 뻗어 뒤로 물리고.
뒤쪽에서 동선을 바꿔 움직이던 윤명과 문채민이 신해신 쪽으로 다가갔다.
어느 순간 백댄서에게 꽃으로 수놓인 의자를 건네받아 가운데에 올려놓은 권혜성이었다.
느리지만 착실하게 걸음을 옮겨 가운데에 자리한 신해신이 멤버들을 올려다보며 노래했다.
- 벗어날 수 없다면 안고 돌아
춤을 춰 외롭지 않아 빙글빙글
마지막은 멤버 모두가 함께 부르는 화음이었다.
서로의 어깨에 손을 올린 멤버들이 꺼져 가는 조명 속에서 웃음을 터뜨렸다.
- Complex MY complex
Help me Save me
Find me Hold hand
이젠 모두 괜찮아
“꺄아아!”
“얘들아!”
“해신아! 얘들아!”
흩날리는 꽃잎과 연달아 이어지는 부들부들한 장면이 괜스레 마음을 울컥하게 했다.
그래, 내가 보고 싶었던 게 이거였어.
하이사인은 반드시 대상을 타게 되어 있었다.
그게 오늘이 못 될지언정, 그리 먼 훗날의 이야기는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