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이돌은 파산 안하나요-325화 (324/328)

325화

“우와~ 진짜 아까웠다.”

“원래라면 이걸로도 충분히 기뻐하고 만족했겠지만…….”

“아무래도 다 알아 버렸으니까.”

그래, 내가 미안하다. 밴 안이었다.

단체 스케줄을 끝내고 회사로 들어가려던 길목에서 멤버들의 대화를 들으며 죄책감을 느꼈다.

얼마 전 연말 마지막 시상식을 보내며 하이사인으로서 또 아이돌 신해신으로서 한 살을 더 먹었다.

그 무대, 참 좋았는데. 오랜 시간을 보내며 준비했던 무대가 무사히 끝난 시상식이었다.

거기서 성공했다면 이게 안 보였겠지. 눈앞에 떠 있는 시스템 창을 노려봤다.

하이사인은 연말 시상식에서 대상이 아닌 그 바로 아래 단계의 상을 받았다.

“그래도 무려 인기 음반상인걸요. 올해의 음반이나 아티스트는 놓쳤지만, 그 바로 아래 단계잖아요.”

운전하고 있던 박재민의 이야기에 쓴웃음을 지었다.

멤버들의 이야기를 듣고 위로차 한마디 던진 것 같았지만.

저 녀석들이 이러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으니까.

무대 분위기만 봐도, 또 주변 상황만 봐도 이제는 시스템과 안녕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었다.

그래서 내심 반쯤은 이벤트 결과를 받을 수 있겠다는 기대를 품에 안고 있었는데.

현실은 그리 녹록하지 않다는 듯이 아쉽게 성공을 놓쳤다.

그래도 이게 어디야. 과거 나라면 생각도 못 했을 자리까지 올라간 상태였다.

가장 처음 제로-원-나인, 그러니까 시스템에게서 메인 이벤트를 받았을 당시만 해도 절대 불가능한 부분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 성공의 유무가 판가름이 될 정도로 많은 걸 해낸 위치에 올라왔으니, 여러모로 감회가 새로웠다.

멤버들에겐 괜찮다며 손짓하자 반대편에 앉아 있던 이유준이 내 귓가에 대고 속삭여 왔다.

“형, 아직 그대로인 거지?”

“어, 아무래도 그렇지 뭐.”

아무래도 시스템에 관련하여 묻는 듯했다.

“제로-원-나인인지 뭔지 그 녀석… 도와줄 거면 좀 제대로 도와주든가.”

창밖을 바라보고 있던 이정원에게서도 불만이 속출했다.

“그래도 아직 연초가 있잖아. 며칠 안 남은 그거.”

“확실히 우리 반응 엄청 좋아, 형들. 분위기만 봐선 왜 대상이 우리가 아니냐는 수준이던데?”

강태오의 이성적인 반응과 더불어 문채민의 이야기에 약간은 위로가 되는 것 같았다.

하긴, 연말 시상식만 끝났을 뿐. 사실 아직 상을 받을 자리는 더 남아 있었다.

그것도 지원겸에게 말만 들었던 이야기와 달리 흐름이 우리 쪽으로 넘어온 이후였다.

저번 연말 시상식에서 무대를 보인 뒤 팬덤에서 상당히 좋은 반응들이 쏟아져 나왔다고 했다.

팬덤을 비롯하여 대중들에게서도 왜 우리가 대상이 아니냐는 이야기가 흘러나왔다는 것이었다.

사건 사고에 연루되면서 이름을 알리고, 이지 리스닝이 가능하면서도 중독적인 타이틀곡을 내세워 대중들의 마음을 많이 가져온 상태였다.

세계관과 컨셉은 유지하면서 거북하지 않을 정도의 음악을 보이니, 그게 제대로 효과를 보인 모양이었다.

거기다가 내가 아프기까지 했었지. 멤버를 구하며 희생했던 게 제법 큰 부분을 차지했나 보다.

이럴 목적으로 그랬던 건 아니었지만. 연예계에 있어선 상당히 큰 뉴스였기에 시간이 흐른 지금에서는 서사가 되어 있었다.

어찌 됐든 연초에 다시 한번 노려 보는 걸로 하고.

일단 나는 상당히 바쁜 연말을 보내고 있었다.

MXP의 동선을 확인하며, 서도경과 지원겸 그리고 김환준과 계획했던 것을 풀 준비를 하고 있던 것이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연말 시상식이 끝난 이후, 서도경에게 불려 갔었다.

멤버들을 제외하고 나 혼자만 독대하게 된 자리였다.

회사 사람들도 모두 퇴근한 늦은 저녁, 진지한 얼굴을 한 서도경이 창가를 내다봤다.

이번엔 또 뭐길래 그러지. 기다리라고 해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저 사람이 저런 식으로 나오니까 좀 이상해 보였다.

서도경은 창가 너머로 반사된 나를 보곤 조용히 고개를 돌렸다.

편해 보이던 차림과 달리 셔츠와 정장 바지 차림을 한 채 속을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어 보이고 있었다.

‘일단 상 축하합니다.’

‘아, 네. 감사합니다.’

이런 말을 하려고 부른 건 아닐 텐데? 의아해하며 고맙다고 말하는데, 서도경이 피식 실소를 내뱉으며 말을 걸었다.

‘거창한 건 아닌데, 나도 사람이라서 말이죠. …죄책감이 좀 드는걸요.’

‘네?’

‘…음, 아닙니다.’

뭐야, 진짜. 그날따라 유달리 묘하게 굴었다.

어깨를 으쓱이며 내게 서류 뭉치 하나를 전달했었다.

‘…이건.’

그건 지금까지 서도경과 한지헌 그리고 지원겸과 김환준의 증언을 통해 얻어 모았던 자료였다.

전에 봤을 때보다 종이 뭉치가 더 두꺼워져선 이젠 일반 서류라고도 보기 힘든 규모였다.

얇은 홀더에 끼워져 수십 개를 이룬 파일들을 보며 이게 뭐냐고 고개를 들어 올렸었다.

‘다 모았습니다. MXP의 비리 리스트 그리고 그 뒤로 이루어진 커넥션 라인.’

‘…정말요?’

‘네, 언론에 풀면 아마 끝이겠죠. 파장도 제법 클 겁니다. 연루된 쪽에 거물들이 많았거든요. 내로라하는 공인도 있고, 그전에 말이 많았던 사건 배후에도 MXP가 있었으니 아무튼 참 여러 가지로 세상이 떠들썩해질 겁니다.’

서도경의 말에 정신이 번쩍 드는 기분이었다.

이걸 알려 준다는 것은… MXP를 칠 시간이 별로 안 남았다는 뜻 같았다.

당장 시작인 건가? 놀란 마음에 서도경을 바라보다가 아쉽다는 듯이 고개를 내젓는 대표를 목격했었다.

‘미안하지만 조금 더 기다려야겠는데요. …그전만큼은 아니고, 이젠 정말 코앞입니다.’

아무래도 서도경에겐 눈여겨보고 있던 타이밍이 따로 있는 듯했다.

아직 아닌 것 같다는 생각에 아쉬움 반, 당장은 붙을 일이 없을 거라는 생각에 안도하는 마음 반으로 일단은 한숨을 집어삼켰다.

‘코앞이라니까, 그동안 각오라도 좀 하고 있을게요.’

또 애먼 일로 사람 불렀던 거군. 숙소에서 기다리고 있을 멤버들이 떠올라 이만 가 보겠다며 몸을 일으킨 순간이었다.

문을 열고 나가려고 인사를 하는데, 서도경이 의미심장한 이야기를 꺼냈다.

‘길어도 일주일. 일주일이면 해결됩니다.’

‘네?’

‘아닙니다. 가 보세요.’

일주일… 처음으로 서도경이 구체적인 시간을 말해 준 것이었다.

놀란 마음에 서둘러 서도경을 바라보다가 서도경에게 그만 가 보라며 축객령을 들었었다.

일단은 이것도 준비라고 할 수 있겠지?

일방적으로 이야기를 듣게 된 자리였지만 뭐, 그것도 허투루 시간을 보낸 건 아니니.

아무튼 그런 식으로 바쁜 일상을 보내던 중이었다.

“일주일이라…….”

“…형, 뭐가?”

“아, 아니야.”

내 혼잣말을 들은 듯 고개를 내민 윤명에게 아무것도 아니라며 손을 내저었다.

이상할 정도로 침침했던 분위기와 묘하게 미안하다는 듯이 굴던 서도경, 거기에 정확히 짚었던 날짜까지. 여러모로 머리가 복잡한 상황이었다.

스케줄이 없는 날이었다면 괜찮았을 텐데. 일주일이라고 한다면 참석하기로 했던 연초 시상식의 바로 전날이었다.

그래서 괜스레 더 찜찜하다며 매일같이 주변의 눈치를 살폈다.

생각이 있겠지. 돌발적인 행동을 잘하고 무서운 구석이 있었던 대표였지만. 일단은 같은 편으론 누구보다 믿음직한 인간이었으니까.

남은 일들만 잘해 내자며 회사에 도착하기만을 기다리던 찰나였다.

덜컹-

…뭐지? 귓가로 낮지만, 신경을 건드리는 듯한 불쾌한 소리가 들렸다.

잘못 들었나? 사방을 둘러봐도 태연한 멤버들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시 창밖을 내다봤다.

삐- 긴 이명이 귀를 찌르며 눈앞이 어지러워졌다.

“뭐야, 신해신, 너 왜 그래?”

“어…….”

그때였다. 운전석에 앉아 있던 박재민에게서 당황스러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어? 어?! 이거 왜 이러지?”

“왜, 왜 그러세요? 매니저님!”

“속도계가 이상해요! 어?”

“네?!”

이게 무슨 일이야. 박재민이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했다.

그러고 보니까… 아까부터 창밖으로 보이는 장면이 점점 흐무러지고 있었다.

쉽게 말하자면 차량의 속도가 붙어 밖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소리였다.

달리고 있던 고속도로라서 그런 건 줄 알았는데.

박재민의 이야기를 들어 보니 박재민의 의사로 차가 빨라진 게 아닌 것 같았다.

“브레이크는요? 브레이크 좀 눌러 보세요!”

“안, 안 먹히는데요?”

박재민은 진즉부터 액셀에서 발을 떼고 있었던 것이었다.

패닉이 왔는지 있는 힘껏 브레이크를 누르며 핸들을 잡은 모습이 보였다.

가장 뒷자리에 앉아 있던 권혜성과 문채민 그리고 윤명이 사색이 되어 박재민과 우리를 연달아 쳐다봤다.

쉬이익- 공기가 새는 듯한 소리에 창밖을 힐끔 돌아보다가 지금 이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걸 깨달았다.

운전면허가 없던 이유준과 강태오 역시 할 말을 잃은 듯 희게 질려 운전석을 바라보고 있었다.

지식이 있었던 건지, 이정원이 미간을 찡그리며 자동차 급발진 제어법 등을 읊조렸다.

“일단 브레이크 세게 눌러 보시고, 그래도 안 되면 최대한 침착하게 차를 몰아 주세요. 속도가 줄면 중립 기어로 바로 옮기셔야 해요! P, P는 안 돼요!”

“네, 네……!”

박재민의 손에 힘이 잔뜩 들어가는 게 보였다.

“채민아, 얼른 핸드폰으로 차량 급발진 좀 찾아봐!”

“응, 형!”

정신을 차렸는지 이유준이 문채민에게 해야 할 일을 시키고.

“…윤명, 권혜성. 너희 안전벨트 매고 있지.”

“…어.”

“혀, 형, 왜 그래!”

“권혜성, 대답부터 해!”

“으, 으응.”

“쿠션이나 담요 있으면 단단해 보이는 곳에 둘러 놔. 우리 등받이 단단하게 잡고 있고, 충격 같은 게 오면 바로 머리랑 허리 그리고 배 쪽 보호해. 알아들었어? 채민이도 챙겨!”

“…어, 권혜성. 이거 너 들어.”

“윤명, 너나 갖고 있어!”

안전 수칙에 따라 움직이던 윤명과 권혜성이 주변을 정리했다.

이정원은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초조해하다가 나를 돌아봤다.

어쩐지 불길하더라니… 가드레일을 긁으면서 속도를 좀 줄여 볼 수 있나. 지금까지 중에 가장 이성적으로 머리를 굴리던 무렵이었다.

들어 본 적 있는 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눈앞으로 시스템의 알림 창이 떠올랐다.

[!DANGER!]

[!DANGER!]

[!DANGER!]

이건… 무대에서 조명이 떨어지던 사고 당시, 알림이 왔던 D 트레일러였다.

[(구매 불가)D 트레일러 – 다회성 아이템]

버프 : 사용자의 위험 상황을 예고해 줍니다. (횟수: 3회)

[D 트레일러]

사용 가능 횟수: ☆

[D 트레일러 ‘위기 경보’를 알립니다.]

[D 트레일러 ‘위기 경보’를 알립니다.]

[D 트레일러 ‘위기 경보’를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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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 트레일러 ‘위기 경보’ 9단계 – 매우 위험]

9단계? 거기서 난 기함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다리가 골절당하던 6단계보다도 3단계나 위를 가리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D 트레일러 ‘위기 경보’ 9단계 – 대형 사고를 조심하십시오.]

[D 트레일러 ‘위기 경보’ 9단계 – Target 조정]

[D 트레일러 ‘위기 경보’ 9단계 – Loading…]

[D 트레일러 ‘위기 경보’ 9단계 – Target 확인]

그와 동시에 빨간 창이 나타나서 밴 내부를 가득 메웠다.

[!DANGER!]

[!DANGER!]

[!DANGER!]

놀랍게도 타깃은…….

“망할.”

차량에 탑승 중인 박재민과 하이사인 멤버 전원이었다.

조명이라도 받은 듯이 멤버들의 얼굴 위로 붉은빛이 쏟아졌다.

나 혼자 다치는 거면 모를까, 멤버들까지 위험한 상황에 휘말리게 된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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