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6화
일단 머리, 머리를 쓰자. 우선은 침착하게 상황부터 정리했다.
운전자의 운전 미숙이 아니라면 이건 차량 내부의 문제 같은데.
차가 말을 듣지 않는다면 가드레일에 차를 긁어 속도부터 줄여야 했다.
대놓고 정면을 박는 건 리스크가 너무 컸으니까 말이다.
복잡한 머릿속에서도 응급 상황 가이드가 나열되니, 멤버들을 확인하며 운전자인 매니저 박재민을 주시했다.
최대한 충격을 줄이며 안전하게 사고를 막고자 지시부터 내린 것이었다.
“다들 내 말 잘 들어. 혜성이, 명이, 너희는 채민이랑 주변 조심해서 잘 앉아 있어. 유준이랑 태오 너희 둘은 회사에 연락을 넣어. 정원아, 넌 차에 대해 좀 아는 것 같으니까 박 매니저님 패닉 오지 않게 잘 확인해 주고. 매니저님, 당황하시지 마시고 회사 쪽이 아닌 차가 많이 없을 고속도로로 계속 가 주세요. 중앙 가드레일이나 분리대가 있는 곳으로요. 대교는 안 돼요! 천장에 가림막이 있는 곳도 제외해야 합니다!”
“네, 네!”
“지금 시간이면 ○○ic가 제일 한적할 거예요. 안내해 드릴게요!”
불행 중 다행이라면 밴 안에 탑승하고 있는 모든 인원이 현명한 사람이었단 것일까.
박재민이 내 말에 비상 깜빡이를 켜며 지금 시간대에 차량이 적을 고속도로로 차를 몰았다.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하여 핸드폰을 켜서 지도를 확인하는 이정원까지.
굴러가는 상황만 봐선 그리 나쁘지 않은 상태였다.
문제는 이 차를 어떻게 멈춰 세우냐는 건데.
이런 건 차에 타기 전에 알려 줬으면 좋았잖아. 하여간에 사건 사고가 끊이질 않는 인생이었다.
시스템을 허투루 둔 것 같다며 한숨을 내쉬자, 회사 측에 연락을 넣었는지 통화를 끊은 이유준과 강태오가 이쪽을 돌아봤다.
“형, 일단 사무실엔 보고했어. 바로 오겠다고 하는데.”
침착한 얼굴 너머에서 불안함을 엿봤다. 그래, 나이를 먹은 거랑 이거랑은 별개의 일이지.
나도 이렇게 떨리는데 애들이라고 무섭지 않을 일이 아니었다.
“너흰 애들 잘 달래고. 남은 건 일단 나한테 맡겨.”
방도는 없었지만 그렇게 말할 순 없는 노릇이니까. 우선은 괜찮을 거라며 녀석들부터 달래 줬다.
그렇게 침묵에 잠긴 차량 내부에서 박재민이 운전을 하고 있었다.
남아 있는 기름을 확인하며 충격을 완화 시킬 가드레일 혹은 중앙 분리대를 찾고 있는데.
…괜찮을까? 일단 최악을 피하기 위해 고른 차악이었다.
하지만 이것도 안전을 보장할 순 없는 노릇이니, 다가올 충격에 앞서 패닉이 찾아오려 했다.
무엇보다도…….
[!DANGER!]
[!DANGER!]
[!DANGER!]
차량 내부에 가득 들어차 있는 저 시스템이 거슬렸었다.
멤버들부터 시작하여 박재민까지 온통 새빨갛게 물들이고 있는 빛이 신경 쓰였다.
망할, 정말 방법이 없는 건가. 운이 좋아야 골절일 게 분명한 것이 차량 급발진 사고였다.
나야 그렇다 치고, 나 때문에 다른 사람들까지 휘말리게 할 순 없다는 생각에 조바심을 느끼며 수를 찾아 시스템을 훑어봤다.
그때, 갑자기 눈앞으로 번쩍하며 흰 빛이 터져 나왔다.
저건… 오랜만에 보는 아이템 보관함 창이었다.
내가 직접 부르지 않는 한 나타날 일이 없는 인벤토리였는데, 스스로 모습을 보이니 의아함에 고개가 기울어졌다.
그러다가 그 속에서 자신을 쓰라는 듯 흔들리고 있는 아이템을 발견하곤 무언가를 깨달았다.
[(구매 불가)제로제로 게임 – 일회성 아이템]
버프 : 사용자의 위기 상황을 없던 일로 해 줍니다. 단, 능력은 퍼센테이지에 맞춰 자동 조절됩니다. 다수 시전 사용 가능.
*게이지: 100%
제로제로 게임, 멤버들의 스탯 업데이트 미션을 성공하고 보상으로 내려왔던 아이템이었다.
위기 상황을 없애 준다고 했지. 당황하여 잊고 있던 존재가 떠오르니, 숙이고 있던 고개가 번쩍 위로 들쳐 올려졌다.
[신해신, 이걸 써!]
갑자기 아이템 보관함이 떠서 이상하다 싶었는데, 시스템 신해신, 그러니까 내가 나를 돕기 위해 사고에 개입한 모양이었다.
고마워, 이거라면 그 누구도 다치지 않은 상태에서 무사히 벗어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해신아, 저기, 중앙 분리대 나왔다.”
“…이대로 갈까요?”
방법을 찾은 순간 길이 보였으니, 나는 이걸 거절할 명분이 없었다.
마음의 준비부터 하라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타이밍은 박재민의 핸들이 중앙 분리대 쪽으로 기울어지는 순간. 충격이 오기 일보 직전에 아이템을 사용할 속셈이었다.
“다들 꽉 잡아.”
“…갑니다.”
셋, 둘, 하나. 끼이익- 박재민의 핸들이 중앙 분리대가 있는 왼쪽으로 꺾였다.
덜컹, 그와 동시에 뒤통수를 때리는 듯한 강한 충격이 차량 내부를 뒤흔들었다.
“으아악!”
“…멍청아, 꽉 잡아!”
제로제로 게임 사용할게! 밴 안에 탑승하고 있는 모두를 구해!
그리고 나는 즉시 속으로 아이템명을 외쳤다.
아이템이 보관되어 있던 보관함으로부터 빛이 터져 나온 것도 같은 타이밍이었다.
번쩍! 아까와는 다르게 파란빛이 시스템 창으로부터 거세게 삐져나왔다.
파란 빛은 멤버들의 주변을 감싸고 있던 D 트레일러의 경고창을 서서히 잡아먹었다.
위험 문구가 제로제로 게임에서 나온 강한 빛에 의해 공중으로 사라지는 광경을 보며 손잡이를 부여잡았다.
[제로제로 게임 사용, 위기 상황을 ‘Roll back’ 합니다. 시전자 차량 탑승 전원, 퍼센테이지 100%.]
머릿속으로 들리는 음성에 탁하고 의식이 흐려지려고 했다.
그래서 이젠 어떻게 되는 건데? 좌우로 흔들리는 차량에 속이 메스껍던 무렵이었다.
이대로 괜찮은 건가? 로봇처럼 딱딱한 문구 한마디에 의지하며 그렇게 눈을 감았다.
뭐가 어떻게 된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멤버들의 비명이 들리지 않으니 괜찮을 거란 생각이었다.
* * *
“…헉!”
“뭐야? 형, 왜 그래?”
“신해신, 서서 잤냐?”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길바닥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정확히는 주차장 내부. 밴에 탑승하려는 시점이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차량 급발진 사고로부터 아이템을 쓴 일이 떠올랐다.
없던 일로 해 준다는 게 이거였어? 나는 지금 사고가 벌어지기 1시간 전으로 돌아와 있는 것 같았다.
정확히는 사고 차량에 탑승하기 바로 일보 직전 말이다.
회사에 가 봐야 한다며 박재민이 우리를 안내했다. 운전석을 열고 차 키를 꼽아 뒷문을 열어 준 박재민에 저도 모르게 움찔 몸을 떨렸다.
“그럼 가 보실까요?”
“네, 윤명, 뒷자리에 탈 거지?”
“…응, 채민아, 오늘은 네가 가운데에 앉아.”
“에이, 거기 등받이 없어서 불편한데.”
아무것도 모르는 권혜성과 윤명 그리고 문채민이 열린 문에 발걸음을 옮겼다.
내가 이걸 어떻게 되돌렸는데. 다시 찾아온 기회에 주차장이 울릴 정도로 큰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안 돼!”
“…어?”
“…뭐, 뭐야? 형, 왜 그래?”
“우리 뭐 잘못했나?”
“어…. 그러니까, 그게…….”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하지. 우선 이 차는 절대로 타면 안 됐다.
누가 탑승하던 사고가 벌어질 위험한 물건이었다.
하지만 그걸 설명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아니지, 가만 생각해 보니까 박재민을 제외하곤 나머지 멤버들은 내 편이라는 게 떠올랐다.
당황한 멤버들을 불러 모은 이유이기도 했다.
“…얘들아, 지금부터 내 얘기 잘 들어. 저 차에는 아무도 타면 안 돼.”
“…야, 신해신. 너 왜 그러ㄴ…….”
“형, 설마 이것도 시스템 어쩌고야?”
내 말을 들은 권혜성이 대강의 사연을 눈치챘는지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되물었다. 나머지 멤버들도 권혜성의 말이 정답이냐며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멤버들의 물음에는 일단 정답이라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형, 뭐 아는구나.”
“…그럼 타지 말아야지.”
“뭔데. 도대체. 갑자기 이러니까 무섭잖아.”
내 반응에 멤버들이 사뭇 진지한 얼굴로 운전석에 앉아 있던 박재민을 쳐다봤다.
“설명은 나중에 할 테니까, 매니저님 차에서 내리게 해야 해. 차 키도 빼앗고. 저 차, 아무도 몰면 안 돼.”
“그건 나한테 맡겨. 강태오, 너, 나 좀 도와라.”
“하아, 뭔데. 일단 알았으니까 얘기해.”
이유준과 강태오가 운전석으로 향하는 걸 보며 긴장이 풀렸다.
비틀비틀 다리에 힘이 빠져 뒤로 몸이 쏠리는데, 그런 나를 받쳐 든 윤명과 문채민이 낮은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올라가서 다 얘기해 줘.”
“그래, 형.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안색이 진짜 안 좋아.”
저 앞에선 이유준과 강태오가 박재민을 불러들이는 중이었다.
“매니저님~ 저희 실장님께 연락이 왔는데요. 미팅이 딜레이돼서 늦게 출발하라고 하셔서요. 시간이 많이 떠서 그러는데, 매니저님도 숙소에 들어와 계실래요?”
“네? 어, 전 그런 연락을 못 받았는ㄷ…….”
“강태오, 너 문자 받았다고 했지?”
“…이런, 이거였냐.”
“네? 태오 씨?”
“…예, 저한테 문자가 와서요. 올라가서 보여 드릴게요. 일단은 내리시죠.”
이유준의 능청스러움과 멤버들 중 가장 거짓말이라곤 할 줄 모를 것 같은 이미지의 강태오가 나서니 박재민이 시동을 끄고 밴에서 하차했다.
차 키를 가방에 넣는 걸 본 이유준이 박재민의 가방을 빼앗듯이 들어 준 것도 동시에 일어난 일이었다.
“어? 유, 유준 씨?”
“요즘 저희 때문에 고생이 많으시잖아요~ 혜성아? 뭐 하냐, 매니저님 안 모시고.”
“어? 나? 어, 어! 매니저님 저희 올라가요! 냉장고에 윤명이 사 둔 디저트 맛있는 것 있거든요? 그거 제가 대접할게요!”
권혜성에게 등을 떠밀린 박재민이 엘리베이터가 있는 건물 내부로 이동했다.
박재민을 차에서 내리게 한 강태오와 능청스럽게 키가 들어 있는 가방을 빼앗은 이유준,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하여 박재민을 우리와 떨어뜨려 놓은 권혜성까지.
물 흘러가듯 이어진 연계 작전에 관자놀이를 짓누르던 두통이 사라졌다.
“형, 혜성이한테 먼저 올라가라고 했으니까. 빨리 얘기 좀 해 봐. 그래야 장단을 맞춰 주든가 하지.”
“…잘 들어, 그러니까.”
남은 건 멤버들에게 내가 겪은 사고에 대해 이야기를 해 주는 것뿐이었다.
* * *
“차량 확인 결과 나왔습니다. 컨베이너 벨트를 이용하여 주행 거리를 검사해 보니 그대로 달렸다간 급발진이 발생했을 확률이 크다고 하더군요.”
서도경의 말에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은 우리가 차에 탑승하려던 오전으로부터 한참이 지난 다음 날 새벽이었다.
캄캄해진 창밖에 마른세수하며 서도경을 바라봤다.
박재민을 차량에서 빼낸 이후 멤버들에겐 모든 사실을 고했었다.
사고가 일어나기 바로 일보 직전, 내가 갖고 있던 일련의 아이템으로 시간을 돌려 돌아왔다고 말한 것이었다.
아무것도 모를 때라면 믿지 못했겠으나, 과거 연습생 시절 날 본 적 있던 이정원과, 고등학생 시절 교실에서 목격했다는 강태오의 이야기를 근거로 멤버들이 놀랐다는 표정을 내비쳤다.
저 차는 누가 타던 사고가 났을 위험한 물건이니까. 어떻게든 그걸 서도경에게 알려야 한다는 이야기까지 진행이 되었었다.
그간 이런저런 일을 함께하며 나름의 신뢰도가 있던 서도경에겐 시스템에 관련된 사실을 제외하고 적당히 뭉뚱그려 설명한 참이었다.
뭐라고 했었더라? 요즘 차가 이상한 것 같다고 말했나.
나뿐만 아니라 멤버들 역시 스케줄을 가는 길에 이상을 느꼈었다며 차량을 검사해 달라는 청을 전달했었다.
매니지먼트실의 팀장님들과 친분이 있던 이유준이 간밤에 꿈자리가 안 좋았다며 앓는 소리까지 한 게 제법 잘 먹힌 것 같기도 했다.
덕분에 오후에 잡혀 있던 미팅까지 취소되었다.
박재민과 나만이 다른 스케줄로 뒤늦게 합류한 오병은의 차에 탑승하여 회사로 넘어온 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