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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은 파산 안하나요-327화 (326/328)

327화

서도경은 우리에게 이야기를 들은 즉시 견인차를 이용하여 밴을 가져갈 것을 지시했다.

내가 사고를 겪은 지 얼마 되지 않았을 시점이라, 꼼꼼하게 확인을 해 보기로 했던 것 같았다.

그 결과를 듣고 있는 게 지금 이 상황이었다.

확률이 큰 게 아니라, 진짜 벌어졌다니까. 차마 사고를 겪다가 왔다곤 하지 못하고 갑갑한 속을 억눌렀다.

“…이것도 MXP의 짓일까요?”

주제를 돌리고자 사고의 배경을 질문한 순간이었다.

서도경이 눈을 내리깔며 몸을 일으켜 세웠다.

저 사람, 오늘따라 좀 이상한데?

소파 자리에서 일어난 서도경이 창가에 다가가 블라인드를 내렸다.

“대표님?”

전화하자마자 신호음이 2번도 안 가서 바로 받질 않나, 나랑은 뒷일을 많이 도모했다지만 근거도 없는 발언에 곧장 차를 가져가서 검사를 해 주지 않나.

일단은 위기 상황을 벗어나고자 되는 대로 내뱉은 일들이었는데.

서도경이 원하는 바를 모두 해 주니 의심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거기다가 평소라면 느긋하게 기다리라며 돌아가라고 했을 인간이, 오늘따라 새벽까지 회사에 남아 있으라며 사람을 잡고 있는 꼴이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제로-원-나인, 넌 좀 알고 있는 거 있냐. 어색한 분위기를 풀고 싶은 마음에 속으로 제로-원-나인을 찾던 순간이었다.

“그쪽은 나에 대해 발언 못 합니다.”

“…네?”

서도경이 입을 열었다. 유들거리던 평소와 달리 제법 무겁게 가라앉은 얼굴이었다.

때가 됐다며 한숨을 내쉬는 게 그렇게 진지해 보일 수가 없었다.

그쪽? 발언? …설마. 나는 거기서 서도경이 내 속마음을 읽은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전부는 아니고요, 대충 내용은 들은 상황이라.”

“그게, 무슨…….”

서도경의 말에 의문만 쌓여 갔다. 들어 본 적이 있다니……. 그러다가 문득 머릿속으로 가설이 하나 스쳐 지나갔다. 그러니까 정말 말도 안 되지만…….

“말할 때가 된 것 같군요. 뭐, 신해신 씨랑 나랑은 조금 입장이 다르지만.”

서도경이 시스템에 대해 알고 있다는 것이었다.

“…대표님?”

“그렇게 겁먹을 필요는 없는데. 어찌 됐든 신해신 씨의 목적이랑 내 목적이랑은 연관이 있거든요.”

서도경이 몸을 돌려 내 쪽으로 다가왔다.

서도경은 블라인드를 내리는 게 목적이었다는 듯이 창가를 가린 후 다시 자리에 앉아 있었다.

다 식어 빠진 커피를 마시며 어깨를 으쓱이는 꼴이 내가 알고 있던 원래의 대표로 돌아온 것 같은 이후였다.

갈피가 잡히지 않는 광경에 눈을 굴리자 서도경이 입꼬리를 들어 올리며 어깨를 으쓱였다.

“다 알고 있어요. 신해신 씨, 회귀자인 거. 아, 시스템에 대해서도?”

역시나, 서도경의 말에는 마른침을 삼켰다.

아무래도 동이 트기 전까진 숙소에 돌아가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 * *

그러니까, 그러니까… 서도경과는 대화를 나눈 지 3시간도 더 지나 있었다.

창밖으로 아침 해가 떠오르는 걸 보며 차분히 머릿속을 정리했다.

“나처럼 시스템이 보이고?”

“과거형이죠, 보였었고. 아, 지금도 보이긴 하니까 맞는 말이네요.”

“대표님도 회귀자였고?”

“정확히는 두 번째입니다. 뭐, 이번엔 휘말린 것 같지만요.”

“아, 좀!”

서도경의 방해에 큰 소리가 났다. 안 그래도 복잡해 죽겠는데. 저기는 재밌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나는 오늘 여기서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됐다.

서도경이 나와 같은 회귀자 즉, 시스템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나처럼 시스템을 갖고 ‘있었던’ 사람이었다.

내가 회귀하기 전, 원래의 세상에서 나와 같은 플레이어로 살았다는 이야기를 전달받았다.

“대표님은 어쩌다가…….”

“그쪽이랑 비슷할 거예요. 운명이 꼬였다나 뭐라나, 자수성가할 인물이었는데, 원래 인생은 좀 많이 비참했거든요. 그걸 되돌려주겠다느니 뭐 하느니 하면서 시스템이 나타났었죠. 20년도 전으로 사람을 돌려놓고 말이에요.”

나랑은 좀 다른 점이 많았지만 말이다.

서도경은 원래의 나처럼 태어나길 운명이 틀어져 원래의 삶과 다른 인생을 살았다고 얘기했다. 자세한 사정까지는 모르겠고, 그게 꽤 힘든 인생을 살았던 것 같았다.

그걸 제로-원-나인과 같은 서도경의 담당자가 되돌려 주겠다며 회귀를 시켰다고 했다.

나처럼 메인 이벤트가 있는 건 아닌 것 같았으나, 시스템을 비롯하여 여러 가지 능력을 주면서 서도경의 삶이 달라질 수 있도록 도와줬다고 했다.

나와는 달리 프로듀싱과 연예계 인재를 찾아내는 데에 능력이 있던 서도경은 20년도 전의 과거로 돌아와서 엔필름의 직원이 됐다고 설명했다.

알고 있던 미래의 일들과, 사건들을 이용하여 오르고 올라간 자리가 엔필름 미국 지부의 담당자였다는 것이었다.

“뭐, 솔직히 거기도 나쁘진 않았어요. 예전 인생에 비하면 천국과 다를 바가 없었죠. 하지만 사람이란 게 한번 욕심이 생기면 더한 걸 원하게 되는 법이잖아요? 내 쪽 담당자는 신해신 씨의 담당자와 달리 상당히 친절한 구석이 있었고 말이에요. 그런데 때마침 기회가 한 번 더 주어지더군요. 자고 일어났는데 다음 날 눈 떠 보니까 몇 년 전으로 또 돌아가 있지 뭐예요. 완전히 처음까지는 아니고… 한 6년 정도? 회사에 갔다가 기절하는 줄 알았네요. 한국 지부에서 유어돌 2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고 전달받았으니.”

서도경이 두 번째 회귀를 하게 됐다고 말했다. 정확히는 내 회귀에 휘말려 함께 건너오게 됐다는 이야기였다.

“처음에는 약간 억울하기도 했는데, 가만 보니까 이거 기회가 되겠더라고요? 미국에서 하고 있던 건 완성형 기업에 아래에 있던 거라 자수성가하는 데에는 어느 정도 제약이 있었거든요. 한국 지부에서 새로 만들려고 했던 엔터는 제로 베이스에서 시작하는 일이었잖아요? 그래서 이쪽이 낫겠다 싶었죠. 기존 엔터가 어떻게 진행되는지는 지켜본 바가 있어서 그렇게만 안 하면 되겠다 싶었던 것도 있고. 뭐, 향후 몇 년간 벌어질 사건들과 시대의 흐름은 모두 알고 있었으니 무서울 게 없었다고 봐야겠네요. 여기 실패하면 알고 있던 주식 정보로 먹고 살아도 되는 노릇이었고요. 하하!”

“…지금 농담이 나오세요?”

서도경은 그렇게 세 번째 인생을 살기로 다짐했었다고 말했다.

두 번째 인생에서 쌓아 올린 커리어와 정보를 이용하여 세 번째에선 더 나은 삶을 살기로 했다는 것이었다.

메인 이벤트가 없는 시스템을 달고 있던 서도경에겐 그리 어려운 선택이 아니었다고 전달받았다.

시스템이란 건 말 그대로 도움만 주는 인공지능 아이템과 같은 거였으니, 어르고 달래 가며 자기 수족 부리듯 살아왔다고 부가적인 내용까지 전부 알게 됐다.

…그게 그렇게 쉬운 거였나? 나는 개고생하며 기어 올라온 자리가 떠올라 눈앞이 흐려지려는데.

서도경은 아무렇지 않다는 얼굴로 그 뒤의 이야기들을 마저 꺼냈다.

메이터스 엔터테인먼트를 준비하며 유어돌의 참가자 리스트를 확인했다던 시점이었다.

“거기서 알아챘죠. 신해신 씨, 당신이 내 인생을 다시 시작하게 만든 원인이란 걸.”

“…사과, 해야 하는 겁니까.”

“아뇨, 그럴 목적으로 꺼낸 건 아니고. 난 지금이 꽤 마음에 들거든요.”

서도경은 주변에 있던 시스템 관리자와 변해 버린 상황을 토대로 회귀를 한 나를 찾아냈다고 말했다.

회사의 이름도, 주인도 바뀌었으니. 그 멤버들도 변하는 게 옳은 거지. 당시 서도경이 떠올린 생각은 파격적인 내용이었다.

“신해신 씨도 알다시피 초창기 멤버들로 이루어진 그룹은 끝이 좋지 않았거든요. 모두 회사를 벗어나 각자 갈 길을 갔죠. 전이라면 모를까, 내가 있는 회사에서? 음, 그건 절대 안 될 일이지.”

그래서 서도경은 자신을 휘말리게 한 나를 주시하며 그룹을 기획했다고 했다.

어떤 일로 어떤 목적을 갖고 어떤 역경을 겪고 있는지도 몰랐으면서, 프로듀싱 능력 하나만으로 날 컨택해 인생을 뒤집자고 마음먹은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나는 유어돌에서 데뷔에 성공했고, 서도경은 자신의 직감이 맞았다며 앞일을 계획했었다.

그 계획안에는 메이터스를 자신의 지분이 쌓인 회사로 만들면서, 엔필름의 인정을 받아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기업의 대표가 되는 것도 포함돼 있었다.

“아주 잘해 줬어요. 오히려 내 생각 이상으로 여기저기서 활약해 줬죠. MXP에 대한 견제까진 바라지도 않았는데. 사건들을 해결하는 능력을 보며 신해신 씨여서 참 다행이라고 본 기억이 나네요. 처음엔 성격이 영 유약해 보이길래 될까 했더니…….”

뒷말은 좀 안 들리게 하지. 서도경의 설명에는 헛웃음만이 줄지어 새어 나왔다.

어쩐지 대표가 지나치게 유능하다 싶었더니, 서도경은 나처럼 제3의 능력이 있었다.

미래에 일어난 사건을 알고 있고, 시스템처럼 특수한 힘이 존재하고, 거기다 알아서 움직여 주는 회귀자인 내가 있으니, 서도경은 현재의 삶이 만족스럽다고 했다.

게다가 내게 걸린 메인 이벤트가 1군 아이돌이라는 걸 알게 되면서, 보다 힘을 키울 수 있는 길까지 발견했다고 했다.

“신해신 씨는 이대로 1군 아이돌이 되고, 난 그 1군 아이돌을 보유하고 있는 회사의 경영진이 되고. 이만하면 해피 엔딩이라고 보는데요?”

어이없지만 서도경의 말은 전부 사실이었다.

얄밉긴 하나 이 정도로 든든한 대표는 만나기 힘들었으니까 말이다.

차량 급발진 사고도 시스템 관리자를 통해 들어 알고 있었다고 말하니, 이쯤 되면 서도경과는 척지는 게 손해란 생각이었다.

아니, 그보다 그 관리자는 뭔데. 제로-원-나인과는 너무도 비교되는 담당자에 한숨을 내쉬던 찰나였다.

내가 이렇게 수긍을 잘하던 인물이었나. 수면 부족 때문이었을까, 사고에서 피했다는 안도감 때문이었을까. 서도경과는 술술 안 하던 이야기까지 전부 나누게 됐다.

“궁금한 게 더 있나 보네요?”

“…그럼 대표님은 계속 시스템이 보이는 겁니까? 저처럼 미션이나 메인 이벤트도 없는데…….”

시스템만 뽑아 먹으면서 누리고 있는 거냐고요.

불공평하단 생각이 들어 눈을 흘기는데 서도경은 코웃음도 치지 않았다.

“뭐, 예전에 난 신해신 씨보다 훨씬 잃은 게 많은 사람이거든요. 그래서 일종의 특별 서비스? 관리자가 착했던 것도 있고……. 그쪽네 그 관리자보다 훨씬 윗선인 것도 있겠고요?”

“…윗선이요?”

그저 여기서 새로운 사실을 하나 더 알게 되었을 뿐.

서도경의 시스템, 즉 관리자의 정체에 대해서 알게 됐다.

“슬슬 들어올래요? 신해신 씨가 궁금해하는 것 같아서.”

끼익- 서도경의 부름에 줄곧 닫혀 있던 문이 열렸다. 언제부터였을까, 인기척을 줄이며 바깥에 서 있던 사람이었다.

“…어, 어?”

“오랜만에 뵙습니다, 신해신 씨.”

저건 나도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불러 놓고 기다리게 해서 미안합니다, 한 실장님. 아니지, 시스템 관리자 제로-제로-원 님?”

한지헌 실장, 메이터스의 총괄이며 미국에서부터 서도경의 수족과도 같이 움직였다던 남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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