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이돌은 파산 안하나요-329화 (완결) (328/328)

329화

[스트라이커 카운터 – 스폐셜 보상 아이템]

쪽지에 원하는 것을 적으세요. 단 한 번 소원에 맞춰 흐름을 이끌어 드립니다.

※이벤트 관련 등에는 사용할 수 없습니다.※

스트라이커 카운터. 카운터를 모두 채우며 돌려받은 스폐셜 보상이 하나 있었다.

이벤트 관련 등에는 쓸 수 없다고 말했지? 하지만 MXP건은 이벤트가 아니었으니까.

얼마든지 그 녀석들에게 제재를 가할 수 있다는 소리였다.

서도경이 기사를 터뜨린다고 알려 온 시점에 맞춰 나는 쪽지를 꺼내 들었다.

그간의 설움을 담아, 또 MXP에게 당해 온 가엾은 인물들의 원한을 담아.

멤버들과 팬들이 행복하기를 기원하며 공중에 떠오른 펜을 쥐고 글을 적은 것이었다.

[MXP가 이 판에서 팔을 뻗지 못하게 해 주세요.]

[스트라이커 카운터, 쪽지 내용이 수용됩니다.]

그게 MXP가 몰락의 길을 걷게 된 가장 큰 이유같았다.

꼬리 자르기를 시전하려는 건지 기업 비리에 맞춰서 경찰서에 출두하는 일부 관계자들이 뉴스로 보도된 무렵의 일이었다.

정말이지 연초 시상식을 코앞에 둔 신년이라고 보기엔 살벌한 진풍경이었다.

“그래도 가는 길에 좋은 건 하나 해 줬네.”

항상 사사건건 시비를 걸던 못된 놈들이라고 생각했는데. 마지막 행보로는 우리에게 이득을 줬다.

[하이사인 요즘 급부상하지 않아?]

[견제픽으로 제일 많이 호명된 그룹 목록]

[ㅅㅂ 애들 얼마나 괴롭힘 받았을까 뒤에선 진짜 지랄났었겠지]

[저런 실력파도 드문데 좀 지켜라]

MXP가 경쟁 기업 죽이기에 진심이었다는 게 알려지며 타 그룹을 비롯해 하이사인이 이름을 떨치게 된 것이었다.

그중 MXP식 괴롭힘에서 살아남은 그룹이 몇 안 된 게 큰 힘을 발휘했던 듯하다.

스턴즈부터 디레스트의 이적까지, 하이사인의 팬덤이 보다 견고해진 상황이었다.

어떻게 보면 동정론이지만 또 어떻게 보면 터닝 포인트인 거겠지.

대중픽으로 자리하고 있던 우리에게 더 많은 팬이 유입되고.

더블 밀리언 셀러 때 이지 리스닝 곡을 낸 것이 확고하게 자리를 잡은 이후였다.

“형, 뭘 그렇게 생각해?”

“…아니야.”

나는 교체된 밴 안에서 들떠 있는 멤버들을 바라보며 생각에 빠져 있었다.

이제는 MXP도 완전한 몰락의 길을 걷고, 시스템에 대한 진실도 모두 알았으니 더 이상 걱정할 게 없을 텐데.

다른 사연에 의해 머릿속이 복잡했다.

기다리고 있던 연초 시상식 날. 한껏 꾸민 복장으로 멤버들과 함께 레드 카펫을 걸었다.

다리의 깁스도 완전히 푼 첫 공식 자리였는데 아직까지 걱정이 됐는지 나를 부축하려 드는 멤버들에 팬들의 환호성을 들으며 손을 흔들어 줬다.

객석으로 둘러싼 화려한 자리에 앉은 후.

“신해신, 너 이상하다? 저번에 말한 거 말고 뭐 더 숨기는 것 있어?”

“아니라니까. 이야기할 건 다 했네요.”

“그러게. 분명 상황만 봐선 더 나올 말이 없을 텐데.”

“…해신이 형은 얼굴에서 너무 티가 나.”

귀신같은 놈들. 팬들이 볼 새라 목소리를 줄여 가며 속삭이는 멤버들에겐 애써 아무것도 아니라며 손을 내저었다.

며칠 전, MXP의 기사가 연쇄적으로 터지던 날의 일이 떠오르는데.

서도경에게서 무거운 내용을 전달받았다.

나뿐만이 아니라 멤버 전원, 하이사인에 관한 이야기였다.

‘신해신 씨와 나눠 보고 싶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메인 이벤트, 최종장이 그리 많이 남은 것 같지 않더군요. 그래서 신해신 씨는, 하이사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죠?’

이건 유어돌로 시작한 프로젝트성 그룹의 엔딩이 1년도 채 안 남았다는 무거운 소식이었다.

서도경은 엔필름에게서 하이사인을 유지해 보라는 제안을 받았다며 솔직한 말을 전해 줬다.

그래, 내가 이걸 잊고 있었구나. 메인 이벤트가 끝나면 나는 자유의 몸이었다.

그 상태에서 그룹의 생명에 대해 인지하게 되니 여러 가지로 복잡한 생각에 빠져들었다.

메인 이벤트와는 별개로 멤버들과 헤어질 생각이 마음을 짓눌렀기 때문이었다.

나야 하이사인이 너무도 소중해진 입장이라지만.

유어돌에 출연했을 당시부터 타 회사에 소속되어 있던 멤버들이 난제처럼 떠올랐다.

서도경은 이걸 멤버들에게도 물어봤을까?

어찌해야 할지 그 기로에 서서 고뇌하던게 벌써 수일은 지난 일이었다.

은근슬쩍 떠봐야 하나, 근데 그게 애들에게 부담을 주는 거면 어쩌지.

갈등으로 잠겨 있던 지금 나는 중요한 시상식 자리에 참석해 있었다.

기왕이면 모든 게 다 끝난 이후로 불러 줄 것이지. 하여간에 성격이 이상한 사람이라며 남몰래 서도경을 욕하던 참이었다.

화려한 퍼포먼스들과 시상식이 이어지는 내내 정신을 차리고 있지 못했던 것 같았다.

긴장감 어린 분위기에 고개를 들어 올렸을 땐 시상식의 꽃이라 할 수 있는 대상 라인에 접어들어 있었다.

시상하기 위해 나타난 전년도 대상자인 아이돌 그룹의 멤버가 큐카드를 펼쳐 들었다.

“…….”

“겁쟁이.”

무대를 바라보고 있던 멤버들이 테이블 아래에서 내 손을 잡은 것도 같은 타이밍이었다.

“20○○ ○○어워드, 대망의 올해의 아티스트 상은……!”

두근, 두근. 손끝으로, 또 머릿속으로 녀석들의 심장 소리가 전달되는 듯했다.

아닌가, 이건 내 맥박인가? 아무튼 가슴이 터져 버릴 것 같은 상황이었다.

펑! 화려한 축포가 터지며 사방으로부터 엄청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축하합니다! 하이사인(HISIGN)!”

…어? 벌떡 일어난 권혜성으로부터 몸이 앞뒤로 뒤흔들리고. 그제야 우리가 대상에 호명되었단 사실을 깨달았다.

“가자.”

“형!”

그 순간만큼은 정말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메인을 성공한 거야? 반강제로 강태오와 이유준에게 끌려가며 여기저기서 축하의 인사를 받았을 뿐이었다.

“신해신! 축하한다!”

“축하해요.”

“해신아~!”

“하이사인, 짱!”

참석자들이 앉아 있는 테이블 사이 사이를 지날 때마다 안면이 있던 인물들에게서 응원의 말이 쏟아졌다.

개중에는 지원겸과 김환준처럼 제법 단단하게 엮인 사람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하이사인!”

“얘들아! 사랑해!”

“꺄아아악!”

팬들의 환호에 맞춰서 단상 위에 올라가고.

선배 아이돌로부터 상을 전달받고 꽃다발이 품에 안겨 왔다.

눈앞에 펼쳐진 수많은 인파에 머리가 온통 새하얗게 물든 것처럼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상태였다.

“저희 리더가 이런 상태여서 우선은 막내인 저부터 말하겠습니다. 형들, 봐줄 거지?”

마이크를 든 자세에서 어버버 입을 다물고 있지 못하자 해맑게 웃어 보인 문채민이 먼저 소감을 발표했다.

채민이, 너……. 그게 나를 위한 배려였다는 걸, 멤버들이 심경을 말하는 모습을 보며 알 수 있었다.

문채민에서 윤명과 권혜성으로, 권혜성 이후에는 이유준과 강태오로. 서로 짤막한 말을 전하며 팬들과 가족들 그리고 도움을 준 많은 이들에게 감사의 메시지를 남겼다.

그 안에는 감출 수 없는 환희와 기쁨이 담겨 있으니, 귀가 웅웅 울릴 정도로 심장이 빠르게 뛰고 있었다.

이정원이 회사 사람들과 하이눈 그리고 가족과 멤버들에게 고마움을 전한 이후였다.

“자.”

불쑥 내밀어진 마이크에 주변을 둘러보자 나를 감싸고 있는 멤버들이 보였다.

본능이었던 걸까. 망가진 것 같은 머리와 달리 입이 떠듬떠듬 소감을 발표했다.

정말 오랜 시간 그토록 바라던 자리였는데. 왜 눈물이 나려고 하는 건지는 이유를 몰랐다.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과거의 저라면 절대로 생각하지 못했을 그런 사랑이었습니다.”

스태프 신해신일 때는 몰랐을 소중한 인연들이었다.

제로-원-나인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절대로 일어나지 못했을, 또 절대로 느껴 보지 못했을 귀하고 귀한 감정이었다.

“긴 시간이었지만 힘들었다곤 생각하지 않습니다. 돌이켜 보면 하루하루가 말도 안 될 정도로 행복했으니 이건 아주 많은 분들의 은혜입니다. 그 값진 시간의 끝이 이런 큰 상이라니. 저는 얼마나 운이 좋은 사람인 걸까요?”

거기서부터 차례대로 기억나는 자들을 호명했다.

하이눈부터 메이터스의 직원들과 대표 서도경, 거기에 은사님과 주형이까지.

“그리고…….”

마지막으론 절대로 빼먹을 수 없는 사람들의 이름이 추가됐다.

“그동안 제대로 말하지 못해서 미안한 사람들입니다. …멤버들, 너희에겐 정말 많은 걸 받았어.”

내 어깨에 팔을 얹은 채 나를 보고 있던 하이사인의 멤버들이었다.

“신해신 인생에서 빠지면 너무도 허전할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너무 소중해서 하루하루가 정말 눈물이 날 정도로 기쁘고 행복했습니다. 아직은 모자란 것도 많고, 갈 길도 먼 그런 저입니다. 그런 저라도…….”

계속 사랑해 주실 수 있으신가요? 그 말을 기점으로 눈앞에 번쩍, 빛이 터져 나왔다.

째깍… 째깍……. 이건 익숙한 시계 초침의 소리였다.

흑백으로 물들어 가는 사방에 눈가로 고여 있던 눈물이 떨어졌다.

[이벤트 발생]

‘축포는 장대하게’

시상식에서 올해의 아티스트 상을 수상하세요.

실패 시: 잔고 ‘0’원 + 파산

[Clear!]

[이벤트 ‘축포는 장대하게’를 성공하셨습니다.]

축포는 장대하게, 드디어 마지막 이벤트를 성공했다.

그 뒤로는… 익숙한 보상 창이 아닌 아주 오래 전 나를 시스템에 엮이게 만든 문구들이 떠올랐다.

[메인 미션] - 갱신

1군 아이돌이 되어 보자

[성공 시]

저당 금액 반환

메인 미션 소멸

[실패 시]

잔고 ‘0원’

파산

[플레이어 ‘신해신’ 님께서 메인 미션에 성공하셨습니다.]

[이벤트 ‘축포는 장대하게’가 제거됩니다.]

[메인 미션 ‘1군 아이돌이 되어 보자’가 제거됩니다.]

[플레이어 ‘신해신’ 님의 ‘Bug’가 제거됩니다.]

- 호칭 비공개 Bug가 호칭 공개로 전환됩니다.

- [Bug] 종결: ‘깨달음’: 코인 관련 시스템 정지 → 코인 캐기 + 박스 상점 + 스타 코인 스탯 해금 사용 불가능 [제거]

연속적으로 울리는 알림에 눈물로 얼룩진 고개를 들어 올렸다.

종결, 두 글자가 가슴을 거세게 짓누르는 기분이었다.

[저당 금액 전액을 반환해 드립니다.]

[저당 금액]

2억 7,048만 5,981원

[A 통장 입금 완료. 그동안 이용해 주셔서 감사드렸습니다.]

피부처럼 붙어 다니던 시스템 창 위에서 저당 금액 구간이 사라진 뒤였다.

예전의 멘트가 아닌 끝을 암시하는 문구에 가만히 눈을 감았다.

시스템은, 아니 제로-원-나인은 그게 끝이 아니라는 듯이 수십 개의 창을 띄워 보냈다.

기계적인 음성이 모든 사실을 받아들이라는 듯이 귓가에 생생하게 울려 퍼졌다.

[Bug]

‘(호칭 공개)인과관계’ - 제거

‘(호칭 공개)당위 손실’ - 제거

‘(호칭 공개)필수 불가결’ - 제거

‘(호징 공개)오류 복구’ - 제거

‘(호칭 공개)선택한 자‘ - 제거

‘(호칭 공개)운명 공동체’ - 제거

‘(호칭 공개)종결’ - 제거

[7개의 잔여 버그 기록이 모두 말소됩니다.]

[이벤트]

‘당신의 아이돌, 그 시작’ - 제거

‘데뷔는 성대하게’ - 제거

‘데뷔는 성대하게(부속 이벤트)’ - 제거

‘활동은 화려하게’ - 제거

‘활동은 화려하게(부속 이벤트)’ - 제거

‘인정은 강렬하게’ - 제거

‘축포는 장대하게’ - 제거

[7개의 잔여 이벤트 기록이 모두 말소됩니다.]

[보유 스킬/코인/블랙 쿠폰이 전원 잠금(LOCK) 처리 되었습니다.]

[미사용 아이템과 키워드룸이 운영 정지 되었습니다.]

상태 창을 수놓았던 글씨들이 사라져 감을 느끼며 눈을 뜬 상황이었다.

파란빛으로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시스템 창들의 마지막 인사였다.

길게 나열된 문구 위로는 정말 끝이라는 듯이 새 멘트가 적히고 있었다.

[[Bug] 주어져선 안 될 행운(특수)가 소멸됩니다.]

주어져선 안 될 행운, 이 모든 일의 시초였던 버그였다.

[플레이어 ‘신해신’ 님의 삶의 행복도와 사랑 수치가 게이지를 꽉 채웠습니다.]

[Loading…]

[더 이상의 잘못된 루트는 탈 수 없는 운명이 주어졌습니다.]

[[Bug] 잘못된 시작(악성)이 소멸됩니다.]

[신해신]

나이: 24

외모: A

보컬: S

댄스: A-

운: B

끼: A+

정보: 플레이어

[특성]

-

그리고 그 주어져선 안 될 행운을 받게 만든 잘못된 시작까지 모두 파괴된 모습을 확인했다.

그제야 나는 온통 멈춰 있는 시간의 흐름에 비명을 지르듯 소리를 쳤다.

“제로-원-나인! 신해신!”

이대로 가는 거야? 얼굴도 못 보고? MXP가 무너져내리는 걸 지켜보며 어렴풋이 마지막임을 눈치채고 있었지만. 이렇게 다가온 이별이 너무도 어색했다.

하지만 제로-원-나인과 시스템 신해신은 권한이 없다는 듯, 무심하게 시스템 창만을 띄웠다.

한 손에는 대상 트로피를 쥐고, 반대 손에는 꽃다발을 들고 있는 상태로 주변을 휘휘 돌아보길 한참이었다.

[미.안.했.습.니.다.]

“어?”

번쩍! 빛이 터지며 픽셀들이 모여 6개의 글자를 공중으로 띄워 올렸다.

[플레이어 – 신해신]

[시스템 관리자 – 0-1-9/H]

.

.

.

[시스템을 종료합니다.]

“꺄아악!”

“하이사인!”

“얘들아!!”

정신을 차렸을 때는 시간의 흐름이 돌아온 상태로, 서로를 껴안은 채 울고 웃고 있는 멤버들이 보일 뿐이었다.

성공했다는 기쁨을 누리는 한편, 이별의 아픔에 눈물이 새어 나왔다.

기껏 해 놓은 메이크업이 엉망이 될 정도로 눈물을 터끄리자 나를 껴안고 있던 멤버들에게서 위로의 말이 쏟아져 나왔다.

그대로 무대를 내려갔다면 그것도 웃겼을 텐데.

멤버들이 속삭인 말에 고개가 번쩍 들어 올려졌다.

“우리도 너랑 마음이 같아.”

…뭐? 흐려진 시야가 맑아지길 기다리던 사이 멤버들에게선 의외의 이야기를 전해 받았다. 이건 나만 모르고 있던 사실이었다.

“형~! 그럼 형만 여기가 소중할 줄 알았어?”

“…난 빠져나오기 쉬운데. 잊은 거 아니지? RD보이스는 우리 형네 회사라는 거.”

“강태오, 넌 좀 빡세겠다?”

“지금 너는 쉽다고 놀리는 거냐.”

“나나 채민이, 혜성이, 태오 이렇게 넷은 좀 번거롭겠지만.”

“그래도 지은 죄가 있는 곳들이 무려 둘이잖아.”

“함께하자.”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서.”

서도경, 너……. 멤버들은 모두 나처럼 하이사인을 지키고 싶어 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나와 모두 같은 마음이었단 뜻이었다.

그때 지잉- 어디선가 기계가 가동되는 듯한 소리가 울려 펴졌다.

철커덕, 잠금이 되는 것과 같은 묵직한 소리가 귓가에 떨어지고 째깍… 째깍……. 사라졌던 시계 초침이 다시 무대 위를 가득 메웠다.

이게, 이게 뭐야? 점차 흑백으로 물들어 가는 시야에 당황하기를 한참.

“으악! 무슨 일이야!”

“어? 시간이…….”

“신해신! 너 이거 뭔지 알아?”

얘네가 왜? 나는 멈춰 있는 수많은 인파 사이에서 유일하게 색상을 유지한 채 움직이고 말하고 있는 멤버들을 발견했다.

[시스템 관리자 0.1.9로부터 제안이 들어왔습니다.]

달칵- 버튼이 눌리는 알림과 함께 나타난 파란 창이었다.

제로-원-나인? 이건 이벤트 거래 제안이었다.

너, 너……. 사라진 게 아니었어? 당황스러운 마음에 시스템 창을 향해 손가락질했다.

“거래 제안?”

“저건 또 무슨 소리야.”

무서운 건 이 모든 걸 멤버들이 지켜보고 있단 점이었다.

파란빛을 내며 떠 있는 시스템 창 위로 고개를 들이민 이유준이 시스템을 창을 눌렀다.

[메인 미션]

하이사인을 지켜라

[성공 시]

그룹 유지

[실패 시]

페널티 제로

[계약 기간 만료 전 하이사인을 프로젝트성 그룹이 아닌 하나의 그룹으로 다시 만드세요.]

“하하, 하…….”

눈앞에 나타난 내용에 더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울다가 웃으면 뭐랬는데.

너희, 진짜 나한테 미안하긴 했구나. 아무튼 내게 새로운 기회가 주어졌다.

페널티가 없는 미션이라니. 회귀에 엮여 이능만 지닌 채 과거로 돌아온 서도경처럼 나 역시도 능력만 갖을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다.

잃는 게 없이 제로-원-나인과 시스템 신해신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기회에 두 눈이 번쩍 떠졌다.

그것도 나와 녀석들 모두가 간절히 바라고 있던 사실이 미션으로 걸린 이벤트였다.

이거라면 이 험난한 싸움을 모두 헤쳐 나갈 수 있지 않을까.

내가 고민하던 사이 눈치 빠른 멤버들은 시스템 창이 말하던 바를 모두 알아챈 모양이었다.

내 옆에 일렬로 서서 창이 암시하는 바를 구경하며 흥미롭다는 듯이 제스처를 취했다.

[제안을 수용하시겠습니까?]

YES / NO

“안 해?”

“그럴 리가.”

새로 나타난 창에 이정원의 물음을 듣자마자 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내가 누르려는 동작 위에 멤버들의 손이 포개져 올라왔다.

[YES]

[거래가 완료되었습니다.]

그 뒤의 일은 아주 자연스러운 것들의 연속이었다.

기계가 부팅되는 진동음이 들리고, 번쩍, 멤버들과 내 주변으로 여러개의 시스템 창들이 떠오른 장면이었다.

“우, 우와아!”

“이게 뭐야.”

“해신이 형, 형은 이런 세상에서 살았던 거야?”

멤버들의 반응에는 쉼없이 웃음이 터져 나왔다.

우리 바로 앞에 있던 창 위로 커서가 떠오르며 타이핑이 쳐졌다.

[시스템 관리자 – 0.1.9 / H]

[시스템 관리자 – 0.1.9 / 신해신]

[시스템 관리자 – 0.1.9 / 하이사인]

[Loading 완료]

제로-원-나인, 너……. 플레이어가 아닌 관리자에 떠오른 이름에 놀라는 것도 아주 잠시였다.

그대로 몸을 돌려 멤버들에게 뛰어들 듯이 달려 안겼다.

“으악! 해신이 형!”

“야, 신해신!”

“…형도 참.”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좋은 일 같으니까.”

“형!”

“하하! 형들~!”

[시스템을 시작합니다.]

이건 새로운 시작이었다. 그것도 끝난 줄 알았던 시스템과의 협업이었다.

하지만 더 이상 나는 두렵지 않았다. 파산도 이겨 낸 몸인데 까짓것.

멤버들과 함께라면 그 어떤 길도 헤쳐 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얘들아.”

“왜, 뭐.”

“정원이 형, 이런 날은 좀 친절해져 봐.”

“얘가 말을 하다 말잖아.”

“…아니야.”

그냥, 고맙다고. 그리고 잘 부탁한다고.

두 번의 인생, 두 개의 버그, 그 속에서 찾아낸 값진 진실에 나는 웃음이 멈추지 않았다.

아이돌은 파산 안 하냐고? 당연하지. 이제는 더한 것을 해내고자 스스로 뛰어든 몸이었다.

스태프 신해신은 시간이 흘러 아이돌 신해신의 삶을 살게 됐다.

돌아온 24세, 어느 날 문득 깨닫게 된 행복이었다.

-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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