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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지금 제가 더듬은 게 뭐죠? (3/170)

3화. 지금 제가 더듬은 게 뭐죠?2021.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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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장이며 말투가 청소를 담당하는 잡역 하녀인 것 같았다.

1655091843839.jpg“이, 이것 참, 카펫이 영 시원찮네.”

나는 카펫의 상태를 보기 위해 바닥에 앉아 있었다는 양, 최대한 자연스럽게 웃으며 바닥을 두어 번 두드리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1655091843839.jpg“카펫은 좀 더 부드럽고 폭신한 걸로 바꾸는 게 좋겠어. 그렇지 않니?”

16550918438401.jpg“그렇죠? 마님께서도 그렇게 생각하시죠?”

민망한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던진 질문인데 하녀가 크게 반색했다. 그녀는 눈을 반짝이며 내 앞으로 다가와 물어보지도 않은 말들을 줄줄이 늘어놓기 시작했다.

16550918438401.jpg“제 생각도 그래요. 카펫은 물론이고 커튼, 침구, 가구…… 아니, 이 성 전체를 뜯어고쳐야 한다니까요! 아, 참! 저는 안나라고 합니다, 마님! 파벨이, 아, 파벨은 성을 관리하는 집사인데, 파벨이 어서 가서 마님을 도와드리라고 했어요.”

묻지도 않은 말을 이렇게 쏟아내는 하녀라니. 바인 가에서는, 아니, 어떤 다른 귀족 가문에서도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놀라움에 입이 절로 벌어졌다. 하지만 신이 난 하녀, 안나는 그런 내 모습이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것 같았다.

16550918438401.jpg“아무튼, 예전부터 그렇게 생각했지만 영주님은 그런 일엔 영 관심이 없으시거든요. 전부 머리가 돌처럼 굳어선 예쁘고 아름다운 게 얼마나 중요한지 전혀 모른다니까요?”

1655091843839.jpg“그, 그러니?”

16550918438401.jpg“네! 무슨 말만 하면 실용성, 실용성. 성을 보수하느니 기사들과 영지 사람들 식량을 더 구하는 게 낫대요. 우리 영지는 가난하니까요.”

안나가 잠시 시무룩해졌다. 에일스포드 영지가 가난하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멜리사의 말 중에 틀리지 않은 것이 있다면, 에일스포드 남작이 ‘거지 남작’이라고 불리는 것일 테지.

1655091843839.jpg‘실제로 성의 상태도…….’

나는 가만히 방을 둘러보았다. 낡고 허름한 방. 남작부인의 방이라면 성에서는 가장 좋은 축에 속할 텐데, 성에서 가장 나은 방이 이 정도라면 다른 곳은 안 봐도 뻔했다.

16550918438401.jpg“그래도 이제 마님께서 오셨으니까요. 수도에서 오셨으니 세련된 것도 잘 아실 테지요.”

1655091843839.jpg“으응…….”

안나는 내게 대단한 남작부인의 모습을 기대하고 있는 눈치였지만, 나는 ‘우선 수도를 떠나서 살아남자!’는 생각만 하고 있었기 때문에 결혼 이후의 제대로 된 안주인 노릇에 대해서는 고민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1655091843839.jpg‘남작가의 안주인 역할이라.’

알테어도 심심해서 결혼하지는 않았을 거다. 당연히 바라는 것이 있어 결혼했을 것이고, 만약 안주인의 역할을 할 사람이 필요해서였다면…… 사실 거슬리지 않게 잘 해낼 자신이 있었다. 원체 소심해서 홀로 책을 읽는 시간이 많았기 때문에 머릿속의 지식은 많은 데다, 한때 후작가의 외동딸로서 영지 살림하는 법을 배우기도 했다. 빙의자로서의 지식도 있으니 어떻게든 상황을 헤쳐나갈 수 있을 것이다. 앞에 나서서 지휘하는 건 젬병이었지만 뒤에서 계획을 세우는 건 잘하는 편이었다. 빈틈없는 계획을 세우는 것이야말로 걱정 많고 소심한 인간들의 유일한 장기라면 장기였다.

1655091843839.jpg‘하지만 소설 속의 악역 알테어는 독신 공작이었지.’

영지에 와 보니 이해는 된다. 이렇게 가난하니 나같이 별난 사연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면 결혼하겠다고 나서는 아가씨가 없었을 거다. 공작이 되어 부와 명예를 얻고 무시무시한 모습으로 수도에 등장한 이후로는 아가씨들이 겁에 질려서 결혼은커녕 가까이 가려고 하지도 않았고. 그러니 ‘악역 알테어의 부인’의 미래야말로 소설에서조차 정해지지 않은 미지수다.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충분히 달라질 수 있다는 소리다. 물론 알테어의 얼굴을 떠올리면 또 기절할 것 같은 기분이 들긴 하지만…….

1655091843839.jpg‘히, 힘내자, 나디아!’

나는 두 주먹을 불끈 쥐며 떨쳐 내기 힘든 알테어의 얼굴을 애써 머릿속에서 지워냈다. * * * 나는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고개를 밖으로 빼꼼 내밀었다. 안나는 씻고 옷 입는 걸 도와준 뒤 편히 쉬시라며 돌아갔다. 하지만 태평하게 쉬고 있으려니 오히려 불안해져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괜히 마음 졸일 시간에 에일스포드 성이라도 둘러보자는 생각이 들어 열심히 설렁줄을 당겨 보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어떤 하인도 나타나지 않았다. 설렁줄이 고장 나 호출을 들을 수 없는 건지, 의도적으로 호출을 무시하는 건지. 결국 한참을 설렁줄과 실랑이를 벌인 끝에 밖으로 나가 사람을 찾아보기로 한 것이다. 복도는 인기척 없이 고요했다. 나는 그대로 방을 빠져나와 복도를 걷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가진 게 없으니 믿을 건 눈과 귀, 그리고 튼튼한 두 다리뿐이었다. 이렇게 걷다 보면 성에서 일하는 사람과 금세 마주칠 수 있으리라. 서서히 해가 떨어지고 있는데도 복도엔 불이 드문드문 밝혀져 있을 뿐이라 길이 아주 어두웠다. 덕분에 그렇지 않아도 우울한 성의 풍경이 더욱 을씨년스럽게 느껴졌다. 무시무시한 영주 밑에서 태업한다는 건 상상이 안 되니까, 역시 비용 문제 때문에 불을 적게 밝힐 수밖에 없었던 거겠지. 하지만 이래서야 제대로 걸을 수가 없었다.

1655091843839.jpg‘에일스포드 사람들은 다들 이 어두운 복도를 잘 걸어 다니는 건가?’

나는 혹시라도 넘어지지 않기 위해 손으로 벽을 짚어 가며 조심스럽게 전진하기 시작했다. 손끝에 닿는 벽도 전혀 관리가 되지 않은 상태였다. 흠집이 나다 못해 아예 떨어져 나가 큰 구멍이 뚫린 곳도 있었다. 고개를 돌려 어슴푸레한 시야 사이로 창문을 보니 질 낮은 유리를 끼워 넣은 것인지 뿌옇게 흐려 바깥의 풍경이 제대로 보이지도 않을 정도였다.

1655091843839.jpg‘성 전체를 뜯어고쳐야 한다던 안나의 말이 단순한 과장은 아니었…….’

물컹. 벽을 더듬던 손끝에 생경한 감촉이 느껴졌다. 완전히 말랑말랑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주 딱딱한 것도 아니었다. 어떻게 벽에서 이런 감촉이 느껴질 수 있지? 나는 어리둥절해져 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눈앞은 온통 검은색이라 아무리 눈을 가늘게 떠도 벽의 정체를 확인하기 힘들었다. 눈이 제 역할을 못하니 손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벽을 신중하게 더듬으며 정체를 알아내려고 애썼다. 그러니까, 머리 위에서 침음 같은 목소리가 들려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16550918468772.jpg“지금 도대체…… 뭘 하는 거지?”

확실하게 아는 목소리였다. 이런 목소리는 한 번 들으면 절대 잊히지 않는다.

1655091843839.jpg‘어? 알테어의 목소리?’

화들짝 놀라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고개를 들자마자 어둠 속에서 빨갛게 빛나는 두 개의 눈동자와 눈이 마주쳤다. 이렇게 새빨간 눈동자를 가진 건 알테어뿐이었다.

1655091843839.jpg‘그, 그, 그럼 내가 지금 더듬은 게…….’

1655091843839.jpg“악!”

너무 놀라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당황해서 황급히 뒷걸음질까지 치다 발이 꼬여 몸이 뒤로 기우뚱했지만, 쿵 하고 엉덩방아를 찧는 일은 없었다. 그렇게 되기 전에 강한 힘이 나를 앞으로 확 잡아당겨준 덕분이었다. 내 몸은 바닥 대신 알테어라는 거대한 벽에 콩 하고 부딪혔다.

16550918468772.jpg“왜 혼자 돌아다니고 있지? 도망이라도 칠 생각이었나?”

1655091843839.jpg“아, 아니에요!”

말도 안 되는 오해에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상한 오해를 받았다가는 언제 목이 뎅겅 잘릴지 모르니 사실을 정정하는 건 아주 중요했다. 그러나 알테어는 내가 이렇게까지 빠르고 크게 제 말을 부정할 줄은 몰랐는지 한동안 말이 없었다. 나는 서서히 익숙해져 가는 어둠 속에서도 유독 선명한 알테어의 붉은 눈동자에 담긴 감정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1655091843839.jpg“저는 도망가지 않아요. 여기에 온 것도 제 의지였으니까요. 절대 도망 안 쳐요.”

선택을 했다면 그에 따른 책임을 져야 한다. 마주한 상황에서 분명 최선이라 생각한 수를 선택했으니 이제는 책임을 질 차례였다. 나는 정면으로 쏟아지는 알테어의 서늘한 눈빛을 감당하기 힘들어 고개를 푹 숙였다. 두 손으로 치맛자락을 꽉 쥐니 말을 이을 정도의 작은 용기 정도는 쥐어짜낼 수 있었다.

1655091843839.jpg“결혼식장에서 처음 뵈었으니, 영주님께서 아내에게 어떤 역할을 원하시는지는 아직 잘 몰라요. 그래도 결혼했으니까 저는 최선을 다할 거예요. 말씀만 해주시면, 뭐든 열심히 할 수 있어요. 생각하시는 것보다 제가 아는 게 많거든요. 분명 실망하지 않으실 거예요.”

길어지는 말에도 알테어는 줄곧 침묵을 지킬 뿐이었다. 나는 불안해져 그의 반응을 살피기 위해 슬그머니 눈을 뜨고 고개를 들었다. 물론 입은 계속 성실하게 이야기를 쏟아내는 중이었다.

1655091843839.jpg“그러니까 제가 뭘 하면 될지 알려주시면…… 영주님?”

나를 서슬 퍼런 눈으로 바라보고 있던 알테어는 어느새 커다란 손으로 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16550918468772.jpg“도대체 내가 뭘 원할 줄 알고 열심히 하겠단 거야…….”

혼잣말인 것 같기도, 질문인 것 같기도 했다. 대답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는 와중에 알테어가 얼굴을 가리고 있던 손을 아래로 내렸다. 그의 얼굴이 화난 것처럼 붉으락푸르락했다. 아무래도 내 대답이 마음에 차지 않았나 싶어 다시 고개가 바닥으로 꺼지려는 순간.

16550918468772.jpg“제대로 뭘 하고 싶다면 그 영주님이라는 호칭부터 어떻게 좀 해 봐.”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1655091843839.jpg‘다들 영주님이라고 부르던데.’

실수하지 않으려고 주의 깊게 들었으니까 확실했다. 나는 어리둥절해져 조심스럽게 물었다.

1655091843839.jpg“하지만 영주님이 아니면 뭐라고 불러야…….”

16550918468772.jpg“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아는 게 많다며. 그 정도는 스스로 생각해야 하는 거 아닌가?”

1655091843839.jpg“그, 그렇군요.”

이건 일종의 테스트인가? 내가 정말 원하는 역할을 맡길 정도로 유능한지를 시험하는……! 그렇다면 내게 기회는 주겠다는 뜻이다. 갑자기 희망의 빛이 화악 밝아지는 듯했다.

1655091843839.jpg“반드시 알아낼게요. 제가 답을 찾아내면 그 뒤에는 원하는 걸 말씀해주시는 건가요?”

16550918468772.jpg“……그러지.”

1655091843839.jpg“약속대로 열심히 할게요.”

다시 한번 다짐하자 알테어가 미간을 찌푸리며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16550918468772.jpg“……장담컨대, 넌 절대 내가 원하는 것에 대해 잘 몰라.”

1655091843839.jpg“그럴 수도 있겠지만 모르면 공부할게요. 책을 봐도 되고, 잘 아는 사람에게 물어보면서 해도 돼요.”

16550918468772.jpg“잘 아는 사람에게 물어보면서라니…… 아주 첩첩산중이네.”

알테어가 질렸다는 듯 깊게 한숨을 내쉬더니 내게 바짝 다가왔다.

16550918468772.jpg“벌써 해가 떨어졌으니, 보다시피 아무것도 구경 못 해. 성은 내일 파벨, 그러니까 집사에게 안내해달라고 하든지. 설렁줄은 여태까지 쓰는 사람이 없어서 그냥 뒀는데 그것도 고쳐두라고 하겠어. 그리고 돌아가는 길은…….”

무엇을 생각하는지 내가 선 자리와 내 방이 있는 곳을 잠시 번갈아 보던 알테어가 한 손으로 가볍게 내 허리를 감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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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5091843839.jpg“꺅!”

예상치 못하게 두 다리가 붕 떠올라 당황한 내가 이리저리 퍼덕대자 알테어가 쯧- 하고 혀를 찼다.

16550918468772.jpg“지금까지 본 것 중에 가장 활기 넘치는 모습이군.”

알테어의 손에 제압당해 그의 팔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고 생각하니 금방이라도 기절할 것 같았다.

1655091843839.jpg“내, 내, 내, 내려주세요!”

물론 그는 간단하게 내 요청을 묵살했다.

16550918468772.jpg“완전히 어두워진 거 안 보여? 너 혼자 방까지 못 돌아가.”

1655091843839.jpg“제가 안 보이면 영주님도…….”

16550918468772.jpg“난 보여.”

망설임 없이 척척 걸음을 옮기는 걸 보니 정말로 앞이 보이는 것 같았다. 나는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다른 핑계를 댔다.

1655091843839.jpg“아, 안 보여도 벽을 더듬으면서 걸으면 돼요!”

16550918468772.jpg“그러다 넘어져서 뼈가 부러지면?”

1655091843839.jpg“안 부러져요. 절대로요. 누가 고작 넘어지는 걸로 뼈가 부러지겠어요.”

16550918468772.jpg“보통은 그렇겠지. 하지만 넌 피곤하다는 이유로 쓰러지는 별종이니 예외다. 난 내 성에서 누가 다치는 꼴은 못 보니까 그만 퍼덕대.”

아니에요…… 저는 지극히 보통이에요…… 보통이 아닌 건 당신의 상식이야……! 나는 차마 입 밖으로 내뱉을 수 없는 말과 함께 속으로 눈물을 삼켰다. 흑흑. * * * 악역 새싹 알테어는 성에서 누가 다치는 걸 죽어도 못 본다. 새롭게 알게 된 정보를 머릿속에 새기며 넋을 놓고 있으니 예고도 없이 문이 벌컥 열리고 안나가 들이닥쳤다.

16550918438401.jpg“마님!”

1655091843839.jpg“무슨 일이니?”

16550918438401.jpg“저녁 만찬이요, 마님. 다들 마님을 기다리고 있어요!”

안나가 해맑게 웃으며 내 곁으로 다가왔다. 그녀의 말을 듣고 보니 알테어가 만찬에 꼭 참석하라며 미간을 찌푸렸던 것이 떠올랐다.

1655091843839.jpg‘힉!’

그 얼굴을 떠올리자마자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1655091843839.jpg‘조금이라도 늦으면 또 죽일 듯이 노려볼 거야.’

아직 제대로 된 계획을 세우기도 전이었다. 그 전에 악역님의 심기를 거슬러 목이 잘릴 수는 없었다.

1655091843839.jpg“어, 응, 가야지. 만찬. 준비하는 것 좀 도와줄래? 아니면 이대로 갈까? 많이 늦었어?”

갑자기 허둥대는 나를 보며 안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16550918438401.jpg“너무 서두르지 않으셔도 돼요. 마님이 조금 늦게 나오신다고 누가 뭐라고 하겠어요?”

1655091843839.jpg“악여…… 아니, 영주님이…….”

16550918438401.jpg“우리 영주님이요? 마님께 뭐라고 한다고요? 말도 안 돼요!”

안나가 별 우스운 소리를 다 들었다는 듯 웃음을 터트렸다. 안나는 알테어가 하나도 무섭지 않은 것 같았다. 나중에 그가 미친 악역이 된다는 걸 모르니 그럴 수 있는 걸까?

1655091843839.jpg‘하지만 악역님의 눈빛만 봐도 오싹해져 덜덜 떨리는데.’

갑자기 안나가 존경스러워졌다. 담력이 좋은 것인지 지나치게 둔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느 쪽이든 대단했다.

1655091843839.jpg“……그냥 이대로 갈게.”

나는 고민하다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어차피 안나가 제대로 준비를 도울 수 있을 것 같지도 않고, 에일스포드의 분위기를 보면 그다지 철저하게 머리 손질이나 화장할 필요도 없을 것 같았다.

1655091843839.jpg‘조금이라도 책잡힐 짓은 하지 말자.’

나는 그렇게 다짐하며 걸음을 옮겼다. * * *

1655091843839.jpg‘전쟁터로 나가는 장수의 기분이 이렇지 않을까.’

나는 등불을 든 안나가 안내해 준 연회장 입구에 서서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이제 문만 열고 들어서면 되는데, 또 알테어를 마주할 생각을 하니 차마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벌써 만찬이 시작되었는지 문 너머로 기사들이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누군가는 웃음을 터트리고, 누군가는 노래를 불렀다.

1655091843839.jpg‘엄청 못 부르네.’

차마 노래라고 할 수도 없는 괴상망측한 소리에 웃음이 터지며 조금 긴장이 풀어졌다. 나는 마지막으로 심호흡한 뒤 안나에게 눈짓했다. 안나가 열어준 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떠들썩하던 내부가 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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