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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이 분이 우리 마님이라고? (4/170)

4화. 이 분이 우리 마님이라고?2021.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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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슬쩍 시선을 돌리니 모두가 술잔을 손에 든 채로 고개만 돌려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16550918603532.jpg‘누가 악역 부하 아니랄까 봐 다들 눈빛이 무시무시하잖아.’

나는 어깨를 움츠리고 다시 정면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더 큰 적과 눈이 마주쳤다. 알테어가 결혼식에서보다 더 무시무시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16550918603532.jpg‘흐엉. 자기보다 늦게 왔다고 저러는 거지, 지금!’

금방이라도 무릎을 꿇고 죄송하다며 엉엉 울고 싶었지만 보는 눈이 너무 많았다. 아무리 무릎이 가벼운 나라도 이 많은 기사들 앞에서 덥석 무릎을 꿇는 건 자존심이…….

16550918603532.jpg‘자존심이 뭐가 중요해!’

그랬다. 어차피 여긴 알테어의 소굴이다. 자존심을 챙기느라 쥐도 새도 모르게 목이 달아날 것이다. 목이 달아난 뒤에는 자존심도 소용없었다.

16550918603532.jpg“잘못…….”

내가 사죄하며 무릎을 꿇으려는 순간.

16550918603549.jpg“마님! 이쪽으로 앉으셔요!”

안나가 팔을 잡아 나를 자리로 이끌었다. 당연하다는 듯 알테어의 옆자리로. 나는 기겁해서 알테어의 눈치를 살폈다. 다행히도 그는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내가 옆에 앉는 것을 허락한 모양이었다.

16550918603532.jpg‘조금 전에 열심히 하겠다고 어필한 덕분이었을까?’

그렇다면 용기를 낸 보람이 있었다. 안심한 내가 자리에 앉자 다시 내부가 조금씩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16550918603549.jpg“여기, 저희가 준비한 음식이에요. 동부 전통식이랍니다.”

내가 알테어의 기분을 살피는 동안 안나가 내 앞에 음식을 내어왔다. 통으로 구운 커다란 닭과 토마토 향이 물씬 나는 스튜였다. 수도에서는 이렇게 재료를 통으로 조리하지 않아서 낯설었지만 아주 먹음직스럽게 보였다.

16550918603532.jpg‘게다가 닭은 절대 실패하지 않는 메뉴거든.’

이미 이곳 주방장의 솜씨를 본 뒤였다. 늦은 아침으로 먹었던 수프와 빵도 훌륭했으니, 닭고기와 스튜도 맛이 대단할 것 같았다. 나는 알테어가 옆에 앉아 있다는 것도 잊고 신이 나 식기를 들었다. 하지만 작은 나이프로 커다란 닭을 분해하는 게 쉽지 않았다.

16550918603532.jpg‘다들 어떻게 먹지?’

기사들을 보니 그들은 자연스럽게 손으로 닭을 뜯어 먹고 있었다. 기분 같아서는 나도 그렇게 먹고 싶었지만 나디아로 다시 태어나 몸에 익힌 예법이 그걸 허락하지 않았다.

16550918619193.jpg“이리 줘.”

내가 낑낑대며 닭을 해체하는 것이 답답했던지 알테어가 한숨을 내쉬며 접시를 가져갔다. 나는 하늘이 무너진 듯한 기분으로 망연하게 멀어지는 접시를 바라보았다.

16550918603532.jpg‘아니. 조금 답답하게 굴었다고 내 닭을 빼앗다니!’

먹는 걸 줬다 뺏는 놈이 세상에서 제일 나쁘다고 했는데. 역시 알테어는 악역 중의 악역이었다. 서러운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알테어는 능숙하게 포크와 나이프로 닭을 해체했다. 나와 같은 도구를 사용했다는 걸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깔끔한 분해였다. 깔끔한 솜씨에 억울한 것도 잠시 잊은 채 감탄하고 있으니 알테어가 다시 접시를 내밀었다. 되돌아온 접시의 의미를 몰라 눈을 껌뻑이자 알테어가 미간을 찌푸렸다.

16550918619193.jpg“안 받아?”

16550918603532.jpg“바, 받아요!”

나는 화들짝 놀라 접시를 받아 들었다. 내가 그 상태로 가만히 굳어 있자 알테어의 얼굴이 더욱 일그러졌다.

16550918619193.jpg“계속 그러고 있을 거야?”

16550918603532.jpg“네……?”

16550918619193.jpg“그거 안 먹을 거냐고.”

16550918603532.jpg“어…… 머, 먹어요.”

나는 얼떨떨한 기분으로 접시를 앞에 내려놓고 포크로 조각 하나를 찍었다. 알테어는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16550918603532.jpg‘혹시 내가 어려워하니까 도와준 건가?’

내가 아는 알테어의 인성이라면 말도 안 되는 생각이었지만 정황이 그랬다. 나는 여전히 얼떨떨한 기분으로 포크에 찍은 닭고기를 입안으로 밀어 넣었다.

16550918603532.jpg‘와아…….’

깊은 풍미를 내는 조각을 베어 무는 순간 모든 생각이 사라졌다.

16550918603532.jpg‘미쳤다. 왜 이렇게 맛있지? 미친 맛이야, 이건.’

나는 감격해서 접시 위의 닭고기를 바라보았다. 수프와 빵도 맛있었지만, 이 닭고기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고기 특유의 잡내가 없으면서도 촉촉하고, 껍질이 바삭하게 익혀진 것이 아주 일품이었다. 수도에서 먹은 닭고기는 이보다 퍽퍽하고 껍질도 물컹한 편이었다. 나는 신이 나서 포크를 놀리기 시작했다. 한 번에 두 조각을 집어 입에 가득 넣자 이보다 행복할 수가 없었다.

16550918603532.jpg‘역시 맛있는 게 최고야. 인생은 맛있는 걸 먹기 위해 사는 거지.’

그렇게 흐뭇한 기분으로 입을 오물거리며 자연스럽게 고개를 돌리는 순간. 나는 아직도 나를 무시무시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알테어와 눈이 마주쳤다. 당장이라도 사냥감을 향해 달려들 준비를 하고 있는 매와 같은 눈빛이었다. 그 매서운 눈빛을 마주하자마자 소설 속의 알테어가 무자비하게 사람들을 죽이는 모습이 떠올랐다. 피폐 소설답게 잔인한 묘사로 상세히 표현되었던 그 장면들이 파노라마처럼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자, 나도 모르게 손에 힘이 풀려 포크가 테이블 위에 떨어졌다. 동시에 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16550918603532.jpg‘그래. 날 도와주긴 뭘 도와줘. 이번에도 늦게 온 벌로 내가 준 거 남기지 말고 다 먹으라고 한 거지.’

나는 접시를 가까이 끌어당기며 알테어에게 소심하게 나의 의사를 전했다.

16550918603532.jpg“아, 안 남겨요.”

16550918619193.jpg“더 먹고 싶다면 더 가져오라고 하지.”

이건 배 터져 죽을 때까지 한번 먹어보라는 뜻인가.

16550918603532.jpg‘먹는 걸로 사람을 고문하다니. 역시 악독한 놈.’

나는 속으로 이를 갈며 다시 포크를 들었다. 알테어가 나를 계속 감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으니 조금 전만큼 닭고기가 맛있게 느껴지지 않았다. 꼭 모래를 씹는 기분이었다.

16550918619193.jpg“스튜도 같이 먹어.”

그래. 스튜도 남기지 말고 다 먹으라는 뜻이구나.

16550918603532.jpg“네에…….”

나는 속으로 훌쩍이며 스튜 그릇도 내 앞에 바짝 끌어당겼다. 무거운 마음으로 식기를 놀리고 있으니 누군가 내 옆으로 다가왔다.

16550918633489.jpg“안녕하십니까, 마님!”

넉살 좋은 목소리에 끌려 고개를 돌리자 서글서글한 인상의 기사가 의자를 끌어와 내 옆에 앉아 있었다.

16550918603532.jpg‘목소리도 이상하게 익숙하고…….’

잠시 생각하던 나는 금세 그 이유를 알아챘다.

16550918603532.jpg“어, 아까 노래 부르던 그 기사분?”

16550918633489.jpg“그걸 들으셨습니까?”

16550918603532.jpg“문밖까지 기사님의 노랫소리가 들렸거든요.”

16550918633489.jpg“그랬군요. 마님께 보여드릴 솜씨는 아닌데, 이거 참.”

기사가 머리를 긁적이며 민망하다는 듯 웃었다. 확실히 남에게 선보일 만한 솜씨가 아니긴 했지만, 덕분에 긴장을 풀 수 있었으니 내겐 나쁜 노래가 아니었다.

16550918603532.jpg“왜요. 잘 부르시던걸요.”

16550918633489.jpg“진짜 노래를 잘 부르는 사람은 따로 있죠. 전 그냥 분위기 띄우는 놈이고요.”

16550918603532.jpg“재미있는 기사님이시네요.”

16550918633489.jpg“어이쿠, 기사님 말고 카인이라고 불러주십쇼! 제가 드리는 술도 한 잔 받으시고요. 아, 맥주는 안 드시나요? 와인을 준비할 걸 그랬나?”

혼자 잔을 내밀었다가 거두며 횡설수설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절로 웃음이 나왔다. 나는 이 산만한 기사가 엉뚱한 결론을 내리기 전에 그의 손에 들려 있던 잔을 받아 들었다.

16550918603532.jpg“아뇨. 맥주도 좋아해요. 잘 마실게요, 카인.”

16550918633489.jpg“다행이네요. 제가 마님께 첫 번째로 술을 드리기 위해 얼마나 큰 고생을 했는지 모르실 겁니다.”

나는 카인이 건넨 맥주를 한 모금 넘기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16550918603532.jpg“큰 고생이요?”

16550918633489.jpg“예. 다들 혈안이 돼서 싸우는 바람에.”

카인이 질렸다는 얼굴로 기사들을 훑어보더니 다시 나를 바라보며 방긋 웃었다. 찬바람이 쌩쌩 날리는 기사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인상이 선한 사람이었다.

16550918633489.jpg“아무튼 제가 첫 번째입니다, 마님. 잊으시면 안…….”

카인이 가슴을 두드리며 말을 하다 말고 하얗게 질린 얼굴로 입을 꾹 다물었다. 그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리자, 조금 전보다 더 차가워진 얼굴의 알테어가 카인을 쳐다보고 있었다. 내가 그것을 깨닫는 것과 동시에 카인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16550918633489.jpg“아, 영주님! 너무 치사하십니다!”

눈짓으로 서로 무슨 대화를 나눈 건지 카인이 길길이 날뛰며 항의했다.

16550918633489.jpg“영주님이 어영부영하다 첫 번째를 뺏긴 게 제 잘못도 아닌…… 억!”

하지만 카인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알테어가 손 위에 손톱만 한 작은 구체를 만들어 내 카인의 이마에 날려버린 것이다.

16550918633489.jpg“아오, 오러를 이럴 때 써도 되는 겁니까?”

16550918619193.jpg“어차피 남아도는 거, 어떻게 쓰든 내 맘 아닌가?”

16550918633489.jpg“어이구, 그것참 잘 나셔서 좋겠습니다!”

16550918603532.jpg‘저게 오러구나.’

눈으로 직접 보는 건 처음이었다. 오러를 쓸 수 있는 건 소드 마스터의 경지에 다다른 사람들뿐인데, 그들은 손에 꼽을 정도로 수가 적었다. 수도에서 마스터라는 사람을 몇 명 본 적이 있긴 했지만 그들은 쉽게 힘을 보여주지 않았다. 게다가 그들은 모두 중년의 기사들이라 알테어처럼 어린 검사는 새로웠다.

16550918603532.jpg‘이때부터 오러를 다룰 정도로 강했으니까 악역님이 전쟁에서 큰 공을 세우고 공작이 되시는 거였구나.’

알테어가 공작이 되어 수도에 등장하기 전의 모습은 묘사된 적이 없어서 정보가 극히 적었다. 유일한 정보는 그가 앞으로 터질 이웃 나라와의 전쟁에서 큰 공을 세웠다는 것뿐이었다.

16550918619193.jpg“시끄럽게 떠들지 말고 그만 꺼져. 정말 특별 훈련을 받고 싶은 거라면 남아 있어도 되고.”

알테어가 마지막으로 경고하자 카인이 두 손을 들며 후다닥 자리를 떠났다. 그가 떠나자 다시 주변의 공기가 무거워졌다.

16550918603532.jpg‘내가 편하게 밥 먹는 게 보기 싫다 이거냐.’

나는 속으로 눈물을 흘리며 카인이 주고 간 맥주를 홀짝였다. 이제 겨우 결혼 후 이틀 밤이 지나고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 * * 에일스포드의 기사들은 안주인이 생겼다는 사실에 잔뜩 들떠 있었다. 원래 기사들의 로망은 레이디를 모시는 것 아닌가? 사실 그들은 자신들만의 레이디를 모시는 걸 반쯤 포기하고 있었다. 대장이자 에일스포드의 영주인 알테어가 평생 결혼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알테어 에일스포드는 생긴 건 참 멀쩡했다. 멀쩡한 수준을 넘어서 아주 잘났다. 뛰어난 검사에 성격도 무던했다. 말투가 거칠고 인상이 다소…… 무서운 것만 빼면 꽤 괜찮은 사내였다. 하지만 영주님에게는 모든 것을 상쇄할 정도의 단점이 있었다.

16550918673887.jpg“빈털터리잖아.”

16550918673887.jpg“그냥 빈털터리 수준이 아니지. 이건 그냥 거지지.”

16550918673887.jpg“거지 영주를 모시는 우리는 거지 기사고?”

가난뱅이 귀족, 그것도 시골 깡촌에 틀어박혀 사는 귀족과 결혼하려는 여자가 있을 리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수도의 귀족과 혼담이 오가더니, 순식간에 결혼이 결정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에일스포드는 완전히 발칵 뒤집혔다. 상대는 후작가의 귀한 레이디라고 했다.

16550918673887.jpg“……그 아가씨 제정신이래?”

16550918673887.jpg“어디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 절름발이라든가, 말을 못 한다든가.”

16550918673887.jpg“아니면 엄청난 박색이라 수도에선 혼처를 못 찾았나?”

기사들은 머리를 모은 끝에 영주님의 신부가 박색이 분명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 말도 안 되는 결혼을 할 리가 없었다.

16550918673887.jpg“그래도 어쩌겠어. 이런 영지에 와주시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일이지.”

16550918673887.jpg“맞아. 영주님은 어떤 마님이 오시든 감사하다며 절하고 평생 떠받들고 사셔야 하는 처지라고.”

기사들의 평가는 가차 없었지만, 그게 진실이기도 했다. 그들은 어떤 마님이 오시든 진심으로 자신들의 레이디로 모시자며 마음을 다잡고 결혼식을 맞이했다. 그런데 결혼식 당일 모습을 드러낸 신부는 그들의 예상과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마님은 박색도, 절름발이도 아니었다. 사랑스러운 분홍 머리에 반짝이는 푸른 눈동자를 가진 미인이었던 것이다. 기사들은 결혼식 내내 입을 떡 벌리고 믿을 수 없는 현실을 바라보았다. 신랑이 나타나지 않는 혼란스러운 상황에서도 꼿꼿하게 서서 품위를 유지하는 레이디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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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50918673887.jpg“내가 지금 꿈을 꾸는 건가?”

16550918673887.jpg“야. 그런 대사는 신랑이나 하는 거야.”

16550918673887.jpg“그래도 꿈인지 생신지 모르겠는데. 한 대만 때려주면 안 되냐?”

나란히 앉은 기사들은 서로의 팔을 꼬집어주며 이 순간이 꿈이 아님을 확인했다. 신랑의 대리인으로 마님의 옆에 섰던 기사는 혼인 서약서에 서명한 글씨마저 아름다우셨다며 황홀한 눈빛을 하는 바람에 모두의 시기를 한 몸에 받았다.

16550918673887.jpg“그런데 영주님이 그렇게 나타나실 줄은 몰랐네.”

16550918673887.jpg“우리도 놀랄 정도였으니까, 마님이 기절하실 만도 했지.”

16550918673887.jpg“야. 나는 기절하는 레이디는 처음 봤어.”

16550918673887.jpg“우아하게 풀썩 쓰러지시는 걸 영주님이 턱, 잡는데! 크!”

16550918673887.jpg“에일스포드 토박이인 우리 누님들이었어 봐. 어쩌다 피를 묻히고 왔냐고 등짝이나 때리겠지.”

기사들은 우아했던 마님과의 첫 대면을 떠올리며 신나게 떠들어댔다. 정작 그들의 ‘우아한 마님’이 속으로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전혀 모른 채였다. 소란스러운 결혼식이 끝난 그날 밤에는 누가 마님께 첫 번째로 기사의 맹세를 할 것인가를 두고 대련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들의 대련은 수도 기사들의 우아한 싸움보다 실용적이고 거칠었다. 늘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국경 지대에서 실용적으로 검을 쓰다 보니 생긴 습관이었다. 이 분야의 최고는 단연 알테어였다. 알테어가 빠진 자리에서는 카인이 1등을 거머쥐었다. 원래도 기사단 안에서는 가장 실력 좋은 놈으로 꼽히는 터라 모두가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카인은 마님을 첫 대면하기로 한 만찬이 시작되자 신이 나서 노래를 불러댔다. 기괴한 노래에 몇몇은 배를 잡고 쓰러졌고, 또 다른 몇몇은 귀를 틀어막으며 그에게 땅콩을 던져댔다. 그러던 와중에 마님이 등장했다. 기사들은 하던 것을 모두 멈춘 채 넋을 놓고 마님을 쳐다보았다.

16550918673887.jpg‘저분이 앞으로 우리가 모실 분이야!’

기사들은 나디아가 자리를 잡고 앉을 때까지 숨도 쉬지 못한 채 그녀의 모습을 살폈다. 나디아가 식사를 시작한 뒤에는 그녀의 작은 행동 하나에도 감탄하며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16550918673887.jpg‘우리가 저런 분을 모실 수 있다니.’

16550918673887.jpg‘이렇게 영주님께 감사한 건 처음이야.’

기사들은 속으로 줄줄 눈물을 흘리면서도 겉으로는 근엄함을 유지했다. 마님에게 멋진 기사로서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카인은 그런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 원래도 엉덩이가 가벼운 데다, 체면이나 진중함과는 거리가 먼 성격이었다. 에일스포드 토박이 중에서는 별종이라고 할 수 있었다.

16550918603532.jpg“잘 마실게요, 카인.”

카인은 나디아가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자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았다. 그는 자신이 나디아의 첫 번째 기사가 되겠다며 가슴을 두드렸지만, 말을 미처 끝내기도 전에 자신을 죽일 듯이 쳐다보는 알테어와 눈이 마주쳤다. 그가 이를 바드득 갈며 눈짓으로 말했다.

16550918619193.jpg‘누가 첫 번째야. 죽고 싶냐? 빨리 꺼져. 특별 훈련하기 싫으면.’

알테어가 말하는 특별 훈련이란, 훈련을 빙자한 일방적 대련이었다. 끝나고 나면 분명 도움이 되지만 하는 동안에는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느라 죽을 맛이었다. 카인은 사색이 되어 항의했지만, 알테어에게 손쉽게 제압당했다. 기사단 중에서는 제가 제일이라지만, 마스터인 알테어는 당해낼 수가 없었다. 기사들은 무참히 패배하고 터덜터덜 걸어오는 카인의 어깨를 두드리며 그를 위로했다.

16550918673887.jpg“네가 이해해라. 어쩌다 보니 첫날밤부터 소박맞으셨는데, 옆에서 네가 그러고 있으면 당연히 화나시겠지.”

16550918673887.jpg“그래. 보니까 아직 이름도 못 부르시는 것 같더라.”

16550918673887.jpg“어쩌면 평생 못 부르실지도 몰라.”

16550918673887.jpg“맞아. 대장님이잖아. 대장님이면 그럴 수도 있어.”

속닥거리는 기사들의 대화 속에 알테어는 점점 더 불쌍한 남자가 되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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