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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이것도 한 걸로 치는 건가. (10/170)

10화. 이것도 한 걸로 치는 건가.2021.07.07.

16550919996991.png“도대체 뭐가 있다는 거야.”

알테어가 짜증스럽게 블란과 카인의 뒤통수를 노려보았다.

16550919996995.png“아이고, 분명 여기라고 했는데 말입니다. 그렇지, 카인?”

16550919996999.png“그럼, 그럼. 분명 여기에 고블린 무리가 나타났댔어, 블란.”

죽이 척척 맞는 두 사람을 보며 알테어가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흘렸다. 누가 봐도 연기를 하는 말투였다.

16550919996991.png‘처음부터 이상하다 했지.’

호숫가에 고블린 무리가 나타났다는 두 사람의 보고를 들었을 땐 귀를 의심했다. 다른 어떤 영지보다 마수에 대한 방비가 철저한 이 에일스포드에, 그것도 성 코앞의 호수에 고블린이 떼거리로 나타나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였지만 두 사람이 입을 모아 강력하게 주장하니 속는 셈 치고 따라나선 것인데, ‘혹시나?’가 ‘역시나!’였다.

16550919996991.png“됐다. 어설픈 연극은 그만하고 무슨 꿍꿍이인지나 말해 보지그래.”

알테어가 한숨을 내쉬며 싸늘하게 노려보자 열정적으로 연기를 펼치던 두 사람이 서로의 눈치를 살피다 조심스레 입을 다물었다.

16550919996991.png“날 여기로 유인한 이유가 뭐야. 누가 말할 거지? 블란? 카인?”

알테어의 매서운 시선이 차례로 블란과 카인을 훑었다. 두 사람은 군기가 바짝 든 자세로 돌아와 눈동자를 좌우로 굴렸다.

16550919996991.png“아. 대답을 안 하시겠다?”

삐딱하게 서서 팔짱을 낀 알테어가 가늘어진 눈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16550919996991.png“요즘 훈련이 편해서 살 만한 모양이야? 이런 식으로 훈련 강도를 높여달라는 소리를 다 하고. 그 용기를 가상히 여겨서 내가 직접 두 사람과 대련해주지.”

알테어가 직접 나서서 대련한다는 말에 블란과 카인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에일스포드의 기사들은 모두 뛰어난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마수를 직접 상대하다 보니 어설픈 실력을 갖춘 자들은 오래 버틸 수가 없었고, 시간이 지나며 자연스레 정예 중의 정예만이 남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런 정예들조차 알테어와는 실력이 천지 차이였다. 그만큼 알테어가 강한 전사라는 뜻이었다. 흔히 말하는 규격 외의 실력자라고나 할까. 그래서 알테어와의 대련은 항상 일방적이었다. 말이 좋아 훈련이고 대련이지, 일방적으로 기사들이 얻어맞는 일이 다반사였다.

1655091999702.jpg‘그건 절대 안 돼!’

블란과 카인은 동시에 같은 생각을 하며 알테어를 바라보았다. 두 사람의 생각을 고스란히 읽어낸 알테어가 한층 여유로워진 얼굴로 고개를 까딱였다.

16550919996991.png“먼저 솔직하게 털어놓는 놈은 대련에서 빼 준다. 누가 먼저 말할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블란과 카인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손을 번쩍 들었다.

16550919996999.png“저요! 제가 먼저 말하겠습니다, 영주님!”

16550919996995.png“아닙니다! 제가 먼저입니다! 이게 다 카인, 이 녀석의 제안이었습니다!”

16550919996999.png“그렇지만 신이 나서 계획을 짠 건 블란입니다!”

이제는 알테어가 뭐라고 하지 않아도 두 사람이 알아서 이야기를 술술 쏟아냈다. 알테어는 여유로운 태도로 두 사람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이제 기다리기만 하면 두 사람의 꿍꿍이를 알아낼 수 있을 터. 하지만 멀지 않은 곳에서 들려온, 비명에 가까운 목소리가 상황을 완전히 뒤집었다.

16550920026161.png“마님!”

나디아를 부르는 안나의 목소리였다.

16550919996991.png‘마님?’

알테어는 묘하게 불길한 기분에 사로잡혀 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시야에 들어온 광경에 놀라 눈을 부릅떴다. 나디아가 물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었다. 아니, 허우적댄다기에는 움직임이 너무 소극적이었다. 그냥 물에 가라앉고 있다는 표현이 더 적절했다.

16550919996991.png“이게 무슨…….”

이 상황에 놀라기는 블란과 카인도 마찬가지였다. 나디아와 알테어, 두 사람을 호수로 끌어들인 건 그들의 계획이었지만, 나디아가 물에 빠지는 상황은 상상 속에 없었다. 그날, 제1회 대책 회의에서 정해진 계획은 이랬다. 1. 안나의 도움을 받아 나디아에게 뱃놀이를 하자고 꼬드긴다. 2. 배가 호수 가운데 왔을 때, 안나가 실수인 척 노를 멀리 버린다. 3. 나디아가 호수에 고립되어 있다고 믿고 불안해할 때쯤, 블란과 카인이 알테어를 호수로 유인한다. 4. 곤란한 상황에 빠진 나디아를 보고 알테어가 도와준다. 5. 도와준 알테어에게 나디아가 호감을 느낀다! 나름대로는 완벽하다고 생각했던 그 계획에 나디아가 물에 빠진다는 건 없었다. 하지만 계획이 이랬다 저랬다를 따지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조금이라도 지체했다가는 정말로 큰일이 날 것 같은 위급한 상황이었다. 그 사실을 깨달은 두 기사가 동시에 호수를 향해 뛰었다. 하지만 두 사람이 어떻게 손을 쓰기도 전에 엄청난 바람이 그들의 옆을 스쳐 갔다. 그들보다 먼저 알테어가 호수에 뛰어든 것이다. 알테어는 능숙하게 수영해 호수 가운데로 나아갔다. 서두른 덕분에 다행히 나디아가 완전히 물에 빠지기 직전에 몸을 건져 올릴 수 있었지만, 이미 그녀는 정신을 잃은 뒤였다.

16550919996991.png“이봐! 정신 차려!”

알테어는 호수에서 빠져나와 나디아를 땅에 눕히고 그녀의 뺨을 가볍게 두드렸다. 정신이 번쩍 들게 하려면 더 강하게 쳐야 했지만, 조금만 세게 쳐도 하얀 얼굴에 멍이 들 것만 같아 도무지 힘을 줄 수가 없었다. 그때, 어쩔 줄 몰라 입술을 질끈 깨무는 알테어의 귀에 떨리는 카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16550919996999.png“여, 영주님!”

16550919996991.png“허둥대고만 있을 거야? 의사를 불러 와!”

16550919996999.png“그, 그렇지만, 마님께서 숨을 안 쉬시는 것 같습니다.”

16550919996991.png“뭐?”

짜증스럽게 대꾸했던 알테어가 놀라서 나디아를 확인했다. 창백한 얼굴에 정신이 팔려 제대로 살피지 못했었는데, 나디아의 가슴이 오르락내리락하지 않고 평온했다. 숨을 안 쉰다는 뜻이었다. 온몸에 핏기가 가시는 기분이었다. 그는 본능적으로 물에 빠져 숨을 잃은 사람에게 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처치를 시작했다. 나디아의 입을 벌리고 간절한 마음으로 숨을 불어 넣었다. 규칙적인 박자로 가슴을 압박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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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게 몇 번이나 같은 행동을 반복했을 때.

16550920054214.png“푸흡!”

나디아의 입에서 물이 뿜어져 나오며 그녀의 숨이 돌아왔다. 기분 탓인지 지나치게 창백했던 얼굴에도 혈색이 조금 도는 것 같았다.

16550919996999.png“도, 돌아왔다…….”

잔뜩 긴장하고 있던 카인은 다리에 힘이 풀려 그만 제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나마 블란 쪽은 정신을 제대로 차리고 있었다.

16550919996995.png“의사…… 의사를 데려오겠습니다!”

16550919996991.png“서둘러!”

알테어는 블란을 재촉하며 나디아를 안아 올렸다. 겨우 숨이 돌아왔을 뿐 여전히 축 늘어진 나디아를 보니 불안함에 심장이 쿵쿵 뛰었다. 맞닿은 그녀의 체온이 너무 낮았다. 어렸을 적, 부모님을 화재 사고로 잃었을 때도 이렇게 심장이 불안하게 뛰었었는데.

16550919996991.png‘……웃기지 마. 그때와는 달라.’

우선은 체온을 높여야 한다. 해야 할 행동을 정한 알테어의 발이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16550920054214.png‘으으…… 더워…….’

눈을 뜨자마자 후끈한 열기가 느껴졌다. 정신을 잃기 전에는 분명히 추워서 몸을 떨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너무 더워서 땀이 줄줄 흘렀다. 그런데도 여전히 몸이 덜덜 떨리고 있다는 게 조금 이상했다. 나는 이 더위에서 벗어나기 위해 본능적으로 몸 위에 덮여 있는 이불을 걷어찼다. 아니, 걷어차려고 했다.

16550919996991.png“안 돼. 의사가 몸을 따뜻하게 해야 한다고 했다.”

단호한 목소리와 함께 이불을 단단히 붙잡는 손이 아니었다면 분명히 그렇게 했을 것이다.

16550920054214.png‘누구지?’

익숙한 목소리인 건 분명한데, 열에 들뜬 탓인지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16550920054214.png‘더운데…….’

왜 이불을 못 치우게 하지? 신종 고문인가? 정말 나빴다. 속으로 투덜거리는 걸 알아챘는지, 아니면 타이밍이 좋았을 뿐인지는 모르겠지만 단호한 목소리가 계속 이어졌다.

16550919996991.png“덥다고 느끼겠지만 사실 체온이 낮아. 착각하고 있는 거다. 그러니 얌전히 있어.”

하지만 나는 이렇게 더운데? 착각이라니 믿을 수가 없었다. 아니, 그게 사실이래도 지금 더워 죽을 것 같은데 그게 무슨 상관이야. 항의라도 해보고 싶었지만, 입 밖으로 끙끙 앓는 소리만 흘러나왔다.

16550919996991.png“큰일이군. 의식이 돌아와야 체온을 올리는 약을 먹을 텐데…….”

난처한 듯한 중얼거림과 함께 이마에 시원한 기운이 닿았다. 이불에 꽁꽁 갇힌 상태에서 단비처럼 만난 시원함이 반가워 나는 그 기운에 얼굴을 비비며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그러자 기운이 움찔하며 내게서 조금 멀어졌다. 사라진 시원함이 아쉬워 나도 모르게 앓는 소리가 나왔다. 동시에 머리 위에서 다른 느낌으로 앓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16550919996991.png“하아…… 미치겠군.”

그 뒤로 한동안 주변은 고요했다. 나는 여전히 끙끙 앓았고, 몸은 계속 떨렸다.

16550919996991.png“이봐. 더는 기다릴 수 없어. 의사가 그랬다. 한 시간이 지나도 의식이 돌아오지 않으면 강제로라도 약을 먹이라고. 그러니까 오해하지 마. 알았어?”

희미한 의식 사이로 신기하리만치 선명한 목소리가 계속 이어졌다.

16550919996991.png“……어차피 의식도 없는데 내가 혼자 뭘 계속 말하는 건지. 깨어나면 기억도 못 할걸.”

의미 모를 투덜거림과 함께 입술에 차가운 감촉이 닿았다. 낯설었지만 부드러운 감촉이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한 것을 비웃기라도 하듯 곧 이상한 액체가 목구멍을 타고 넘어왔다. 뱉어내고 싶었지만 억지로 밀려 들어오는 것을 거부하기 힘들었다. 도대체 그게 무슨 액체였는지, 그것을 삼키자마자 몸이 축 늘어지며 떨림이 잦아들더니 다시 정신이 몽롱해지기 시작했다. 희미해져 가는 의식과 함께 입술에 닿았던 차가운 감촉도 멀어졌다. * * * 알테어는 나디아의 숨이 편안하게 돌아온 것을 확인하고 침실 밖으로 빠져나왔다. 아직도 그의 입 안에 약의 쓴맛이 남아 있었다. 복도에는 블란과 카인이 무릎을 꿇고 앉은 채 두 손을 번쩍 들고 있었다. 어린아이에게나 줄 법한 벌을 성인에게, 그것도 기사에게 내렸으니 상당한 모욕이었다. 차라리 알테어가 대련을 빙자해 흠씬 두들겨 팼으면 마음이 더 편했을 것이다. 하지만 알테어는 두 사람이 그런 식으로 마음의 짐을 내려놓는 것도 허락하지 않았다. 물론 두 사람이 나쁜 마음을 먹고 일을 벌인 게 아니라는 걸 알테어도 알고 있었다. 이런 사태가 벌어질 줄은 이들도 몰랐을 거다.

16550919996991.png‘내가 얼마나 멍청하게 굴었으면 이 녀석들이 이런 일까지.’

두 사람에게 벌을 주었지만, 사실은 자신이 벌을 서고 싶은 심정이었다.

16550920085325.png“영주님!”

알테어가 복잡한 심경으로 블란과 카인을 바라보고 있으니 복도 끝에서 파벨이 다급한 목소리로 다가왔다.

16550920085325.png“조금 성가신 손님이 왔습니다.”

침실 안에서 앓고 있는 나디아를 생각한 건지 목소리는 속삭이듯 작았다.

16550919996991.png“손님? 우리 영지에 올 손님이 어딨다고.”

16550920085325.png“한 사람, 올 만한 자가 있지 않습니까. 발하일 님이 오셨습니다.”

발하일. 그 이름에 알테어는 물론이고 시무룩한 얼굴로 벌을 서고 있던 두 기사까지 날카롭게 반응했다.

16550919996991.png“흥. 암살자를 보냈는데도 소식이 없으니 직접 상황을 살피러 온 모양이군.”

발하일의 얄미운 얼굴을 떠올리며 빈정거린 알테어가 잠시 침실을 힐끗 쳐다본 뒤 파벨에게 고개를 까딱였다.

16550919996991.png“가자. 그 자식이 도대체 무슨 헛소리를 하려는 건지 구경이나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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