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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화. 소문의 에일스포드 남작 부부. (60/170)

81화. 소문의 에일스포드 남작 부부.2022.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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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맡겨둔 시계를 찾으러 갔다가 남작 부인을 만난 건 순전히 우연이었지만, 이후의 행동에는 사심이 섞여 있었다.

16550934205759.jpg‘아마 상대도 느꼈겠지만.’

최대한 태연한 척하려는 것 같았지만 커다란 눈을 도로록 굴리며 연신 제 눈치를 보던 남작 부인의 얼굴이 떠올라 오르카는 자신도 모르게 큭큭 웃음을 흘렸다. 남작 부인은 제 팬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을 불편해하고 경계한다. 하지만 곤란한 질문에는 항상 ‘팬이니까요!’라는 말로 피해 가지. 귀족들은 오르카 황자를 존중하고 잘 보이고 싶어 한다. 그가 황족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의 존중은 딱 거기까지였다. 그건 ‘황족’에 대한 존중이자 두려움이지 ‘오르카’라는 인간에 대한 감정은 아니었다.

16550934205759.jpg‘그렇지만 그 여인은…… 어쩐지 황족이 아닌 날 두려워하는 것 같단 말이야.’

처음 만났을 때도, 에일스포드 영지에 머물렀을 때도, 수도의 거리에서 마주쳤을 때도. 그녀의 눈이 항상 ‘나’를 살피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16550934205759.jpg‘그게 내 착각인지 아닌지는 오늘 밝혀지겠지.’

오늘 이 자리에는 황제를 비롯한 황족들이 모두 참석할 예정이었다. 황제의 실버 쥬빌리라는 큰 행사를 축하하기 위해 높으신 분들은 죄다 참석할 예정이니, 남작 부인이 그들을 어찌 대하는지 살피면 답을 내릴 수 있을 테다. 그래서 오르카는 여러모로 오늘을 기대하고 있었다.

16550934205759.jpg‘사실 난 흥미를 좇는 인간은 아닌데.’

때론 흥미를 좇는 것처럼 보여도 목적은 결국 실리였다. 여유롭게 흥미를 좇아도 제 몫을 챙길 수 있는 형들과 달리, 오르카는 오로지 실리만을 향해 달려야 겨우 제 몫을 얻을 수 있었으니까. 그런데도 그 남작 부인은 순수하게 흥미로웠다.

16550934205759.jpg‘아니지. 내가 그리는 계획에 알테어 에일스포드가 꼭 필요하니 그리 순수한 흥미라고도 할 수 없나?’

오르카는 오랫동안 알테어 에일스포드라는 남자를 지켜봐 왔다. 그의 무력에 큰 관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16550934205759.jpg‘감정이 메마른 마수 사냥꾼이라고 들었는데 말이지.’

알테어가 싸우는 모습을 지켜본 그의 수하가 한 말이니 거짓 정보는 아닐 거다. 그런데 실제로 만난 알테어는 그가 전해 들은 정보와 아주 많이 달랐다. 틀리지 않은 건 눈을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사람을 오싹하게 만들 정도로 무서운 인상과 큰 체격을 가졌다는 것 정도?

16550934205759.jpg‘그가 아내에게 안달복달하는 그런 남자였다니…….’

그 아내가 외모만 아름다운 여인이었다면 알테어에게 실망해 자신의 계획에서 깨끗하게 지워버렸을 텐데, 에일스포드 남작 부인은 그런 여자가 아니었다.

16550934205759.jpg‘물론 아름답지만.’

오르카는 제게 분홍 장미를 건네받고 눈을 동그랗게 뜨던 남작 부인의 모습을 떠올렸다. 능숙한 귀부인이라면 여유롭게 꽃을 받았을 테지만, 남작 부인은 소녀처럼 당황하며 어쩔 줄 몰라 했다.

16550934205759.jpg‘그런 걸 보면 그리 영악한 여인도 아닌데.’

에일스포드 성을 꾸민 솜씨며 자신을 대접하던 세심함은 어디에서 나온 건지. 또 감정이 메말랐다는 마수 사냥꾼은 어떻게 꾀어낸 건지. 의문스러운 점이 많았지만 결론은 하나였다.

16550934205759.jpg‘알테어 에일스포드를 움직이기 위해서는 남작 부인이 필요하다.’

원래는 에일스포드의 어려운 사정을 원조하는 대가로 알테어와 손을 잡을 생각이었다. 그러나 갑자기 발견된 마석 광산으로 에일스포드는 돈방석에 앉게 되었고, 광산이 마르지 않는 이상 그들이 곤궁해질 일은 평생 오지 않을 터였다. 가난함은 알테어 에일스포드의 거의 유일한 약점이었다. 그다음은 낮은 작위 정도? 그러나 본인이 작위나 명성에 연연하는 타입이 아니었으니 마석 광산의 등장으로 그는 약점 없는 무결한 인간이 된 셈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나타난 남작 부인은 알테어 에일스포드를 꾀어낼 수 있는 유일한 줄이었다.

16550934205759.jpg‘내가 황자라는 걸 모르는 것도 아니면서 아주 눈빛으로 죽일 기세였지.’

오르카는 약이 바짝 오른 고양이처럼 날카롭게 자신을 바라보던 알테어의 눈빛을 떠올렸다. 대놓고 ‘제가 분홍색을 좋아해서’라며 자신을 견제하던 그 눈빛이라니.

16550934205759.jpg‘조금 부럽기도 하고.’

상대가 온전히 제 것이라는 걸 확신할 때만 그런 식으로 경계할 수 있는 법인데, 오르카에게는 그런 확신이 드는 존재가 하나도 없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오르카는 대연회장에 다다랐다.

16550934221784.jpg“오르카 3황자 전하 드십니다!”

입장을 알리는 시종의 쩌렁쩌렁한 목소리와 함께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귀족들이 우르르 예를 갖추며 인사했다. 물론 그건 형식적인 예의로, 누구 하나 그의 곁으로 다가와 친근하게 말을 거는 사람은 없었다. 그건 오르카 황자가 대부분의 시간을 수도 바깥에서 보낸 탓에 수도 귀족들과 그리 가깝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들에게 그가 공들여 띄워줄 만큼 중요한 인물이 아니기 때문이기도 했다. 오르카는 이런 취급이 익숙했다.

16550934205759.jpg‘아직 에일스포드 남작 부부는 도착하기 전인 듯하군.’

덤덤하게 정해진 자신의 자리로 가 착석하니 먼저 와 있던 1황자와 2황자가 가볍게 혀를 찼다.

16550934221784.jpg“형님들보다 늦게 나타나다니. 이러다 아버지보다 늦게 나타나는 줄 알았다.”

16550934221784.jpg“누가 보면 네가 큰형님인 줄 알겠구나.”

오랜만에 연회에서 만난 동생이 반갑지도 않은지 한심하다는 듯 고개를 내젓는 모습에 오르카는 빙긋 웃는 가면을 쓴 채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16550934205759.jpg“송구합니다. 아시다시피 제 몸이 마음처럼 잘 따라주지 않아서요. 앞으로는 더 신경 쓰겠습니다.”

16550934221784.jpg“앞으로는?”

1황자가 말꼬리를 잡고 늘어지며 흥- 하고 코웃음을 흘렸다.

16550934221784.jpg“앞으로 그럴 기회나 있겠느냐. 또 골골대며 지방으로 요양을 다닐 텐데.”

16550934221784.jpg“그러게 말입니다. 황족으로서의 의무는 죄다 부모님과 우리에게 맡겨두고…… 아주 상전이 따로 없지요.”

이어진 비난에도 오르카의 표정에는 변함이 없었다.

16550934205759.jpg“전부 제가 부족한 탓이지요.”

끝까지 몸을 낮추는 오르카의 모습에 두 황자는 만족한 듯 코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돌렸다. 그와 동시에 입장을 알리는 시종이 큰 소리로 새 손님의 등장을 알렸다.

16550934221784.jpg“바인 후작과 레이디 멜리사, 그리고 동부 제국령의 에일스포드 남작 부부입니다!”

그 소문의 에일스포드! 이미 에일스포드에 대한 소문이 수도에 파다하게 퍼져 있었던 터라, 시종의 외침에 친한 사람들끼리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사람들이 동시에 대화를 멈추고 입구로 고개를 돌렸다. 덕분에 잔잔한 소란함으로 가득 찼던 대연회장이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고요해졌다. 그 고요함 속에서 오르카가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이 등장했다. 선두에는 바인 후작과 레이디 멜리사가 있었고, 에일스포드 남작 부부는 그 뒤를 따르고 있었으나, 알테어가 후작보다 머리 몇 개만큼이나 키가 더 컸던 탓에 누구보다 먼저 그의 모습이 눈길을 끌었다. 단정한 예복을 차려입은 알테어는 싸늘하고 무서운 인상이었지만, 워낙 자세가 올곧고 걸음이 침착해서 싸늘하고 무서운 인상이 오히려 진중함처럼 포장되었다. 어린 아가씨들은 ‘세상에. 저런 미남이 어디에 숨어 있었던 거야?’ 하고 수군대며 호들갑을 떨어대다가, 그의 에스코트를 받는 부인의 존재를 확인하고 탄성을 내뱉었다. 그렇지 않아도 흔치 않은 따뜻한 분홍색 머리카락은 온통 검은색인 남작 옆에 있으니 더욱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눈동자 색에 맞춘 연하늘색의 드레스까지 더해지니 하늘하늘하고 우아한 레이디의 자태라 흠잡을 구석이 없었다.

16550934205759.jpg‘역시 눈길을 끄는 부부라니까.’

본인들은 그걸 전혀 모르는 것 같지만. 오르카는 그런 생각을 하며 빙긋 웃었다. 그러는 사이 눈치를 보던 귀족들이 슬금슬금 걸음을 옮겨 두 사람의 곁으로 몰려들었다. 그들과 함께 등장했던 바인 후작과 레이디 멜리사는 몰려드는 사람들 때문에 튕겨 나가듯 대연회장의 구석으로 밀려난 상태였다. 지금까지는 어떤 연회에 참석해도 주인공이었던 레이디 멜리사는 그런 상황이 짜증스러운 듯 불만스러운 표정이었고, 바인 후작 역시 탐탁잖은 표정으로 태연한 척 헛기침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당사자 두 사람은, 특히 남작 부인 나디아는……. 당연하게도 매우 쫄아 있었다. ***

16550934242766.png‘사, 사람이 이렇게까지 많다니……!’

등 뒤에 식은땀이 주르륵 흘러 마리가 예쁘게 입혀준 드레스가 땀으로 푹 젖는 건 아니겠지 하는 걱정이 들었다. 몰려든 귀족들은 다양했다. 골드 리시안서스를 잘 받았다며 인사하는 사람, 친근하게 안부를 묻는 사람, 대놓고 마석 광산에 관해 운을 띄우는 사람……. 다양한 사람들이 몰려왔지만 모두 나와 알테어, 즉 에일스포드 남작 부부에게 호의를 가지고 있단 점에서는 같았다. 적의가 있는 사람은 무섭지만, 호의가 있는 사람들은 무섭지 않다. 그래도…….

16550934242766.png‘부, 부담스러워…….’

스스로 소문을 키워 주목을 자처하긴 했지만, 그래서 연회에 참석하며 엄청나게 각오를 다지고 오긴 했지만, 사람의 천성이 어디 쉽게 변하겠나. 게다가 수도 귀족뿐만 아니라 제국의 모든 귀족들이 초대를 받은 터라 내가 상상하던 것보다 사람이 더 많았다.

16550934242766.png‘쪼, 쫄지 마, 나디아!’

나는 사람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워질 때마다 알테어의 손을 꼭 붙잡으며 마음을 다잡았다. 그가 옆에 있다는 사실을 되새기면 긴장된 마음이 조금은 편안해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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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50934221784.jpg“에일스포드 남작.”

그때, 누군가의 목소리에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사람들이 반으로 쫙 갈라져 목소리의 주인공에게 길을 터주었다. 사람들이 이런 반응인 걸 보면 아주 높은 사람이 등장한 모양이었다. 그 사이로 등장한 진중한 인상의 중년 남성은 내 기억에 없는 사람이었다. 알테어 못지않게 거대한 체격을 가지고 있으니 한 번이라도 눈여겨보았다면 분명 누군지 기억했을 거다. 하지만 알테어는 이미 그를 알고 있는지 친숙하게 고개를 숙였다.

16550934242794.png“비오스케스 공작께 인사드립니다.”

16550934242766.png‘비오스케스?!’

황제의 장인! 제국에서 가장 영향력이 강한 공작!

16550934221784.jpg“그렇게 딱딱하게 인사할 필요 없네. 이미 편지로 많은 이야기를 나누어서 자네가 오랜 친구처럼 느껴지거든.”

16550934242794.png“그리 말씀해주시니 감사합니다. 하지만 존경할 만한 분께 예를 갖추고 싶은 제 마음도 이해해 주십시오.”

16550934221784.jpg“뭐? 존경? 아하하!”

입에 발린 아부가 기분 나쁘지 않은 건지 비오스케스 공작이 호쾌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는 알테어가 아주 마음에 드는 눈치였다. 나는 의외의 상황에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단순히 알테어가 내가 알지 못하는 대단한 인맥을 만들었다는 사실 때문에 놀란 게 아니었다.

16550934242766.png‘비오스케스 공작이라니…… 이 사람은…….’

소설에서 ‘알테어’가 목을 뎅겅 잘라 성벽에 내걸었던 그 사람……! 강한 무력을 가진 황제의 장인이라는 이유로 중요한 숙청 대상이 되었기에 누구보다 잔인하게 죽었던 인물이건만.

16550934242766.png‘지금 두 사람, 왜 이렇게 친해 보여……?’

전개가 달라져도 너무 극단적으로 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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