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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화. 반응이 귀여워. (62/170)

83화. 반응이 귀여워.2022.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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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춤을 권유하는 상대가 없어서 춤 한번 못 추고 집으로 돌아가는 숙녀들이 조롱의 대상이 되곤 하는 것은 사실이었다. 권유한 모든 상대에게 거절당해 춤 한번 못 추고 집으로 돌아가는 신사 역시 조롱의 대상이었고 말이다.

16550934632699.png‘사실 결혼한 사람들은 그런 수군거림에서 자유롭지만…….’

알테어가 내게 손을 내민 순간부터 주위의 귀족들이 모두 눈을 반짝이며 우릴 주목하고 있는 게 느껴졌다. 혜성처럼 수도 사교계에 모습을 드러낸 에일스포드 남작이 춤추는 모습을 보고 싶은 거다.

16550934632699.png‘알테어를 아내에게 거절당한 불쌍한 신사로 만들 수는 없지.’

16550934632699.png“이런 자리에서 춤을 안 추는 사내도 조롱당해요.”

1655093463271.png“그럼 내 아내가 날 구제해 줘야겠군.”

나는 긴장됐지만, 입꼬리를 끌어 올려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려 애쓰며 알테어의 손을 잡아 대연회장 중앙으로 나아갔다. 귓가를 울리는 음악과 사람들의 웅성대는 소리, 온몸을 찌르는 듯한 시선까지. 소심한 내게는 재앙이나 마찬가지였다.

16550934632699.png‘알테어만 보자. 알테어만!’

나는 알테어의 얼굴에만 시선을 고정해 주위의 풍경을 흐릿하게 지워버렸다. 그러자 한결 마음이 진정됐다. 사교댄스에서는 여성을 리드하는 남성의 역할이 중요했다. 알테어는 사교댄스에 익숙하지 않을 테니 적잖이 뚝딱댈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는 의외로 부드럽게 움직여 나를 리드했다.

16550934632699.png“왜 이렇게 잘 춰요? 연습이라도 했어요?”

설마 하는 마음에 속삭이자 그가 다소 질린 얼굴로 한숨을 내쉬었다.

1655093463271.png“수도에 가기 전부터 마리가 신신당부를 하더군.”

16550934632699.png“어어…… 당부한다고 이렇게 잘할 수 있는 거였어요?”

1655093463271.png“사교댄스 교습서를 보며 이미지 트레이닝을 했다. 새로운 검법을 익힐 때 자주 쓰는 방법이지.”

16550934632699.png“검법…….”

그러니까 이건 춤이 아니라 무술인 셈……? 어쩐지 재밌다는 생각에 키득대며 웃음을 흘리자 알테어의 커다란 손이 등을 가볍게 쓸어내렸다.

1655093463271.png“이제야 좀 웃는군.”

안심했다는 듯한 목소리에 나는 치부를 들킨 사람처럼 어깨를 움찔했다.

16550934632699.png“아, 아까부터 계속 웃고 있었어요.”

1655093463271.png“그건 가짜 웃음이고. 이건 진짜.”

알테어가 내 입가를 슬쩍 바라보며 말했다. 최대한 사교계에 익숙한 척, 이 파티를 즐기는 척 웃고 있었지만 날카로운 알테어의 감각을 피해 갈 순 없었던 모양이다. 나는 민망함에 우물대며 조금 더 알테어에게 밀착했다.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민망함에 달아오른 내 얼굴을 가리기 쉬웠기 때문이다.

16550934632699.png“오늘 봐서 알겠지만…… 난 수도의 멋진 숙녀는 아니었어요. 미안해요.”

1655093463271.png“네가 말하는 ‘수도의 멋진 숙녀’라는 건 뭔데?”

16550934632699.png“뭐긴요. 말 그대로 멋진 숙녀죠.”

사람들이 흔히 수도의 귀부인에게 갖는 환상이 있었다. 능숙하게 사교활동을 하고, 파티를 즐기고, 친구도 많은 사랑스러운 귀부인. 그걸 수도의 멋진 숙녀라고 한다면, 나는 그것과는 거리가 아주 멀었다. 에일스포드에는 사교 행사가 거의 없으니 나의 부족함이 크게 드러나지 않았지만, 사교활동이 중심이 되는 수도에서는 당연히 어설픈 게 보일 수밖에 없다.

16550934632699.png‘특히 가까워서 매일 비교 대상이 됐던 멜리사는…….’

나는 슬쩍 고개를 돌려 멜리사의 움직임을 눈으로 좇았다. 그녀는 젊은 귀족들 사이에서 유쾌하게 웃으며 분위기를 주도하고 있었다. 남자뿐 아니라 여자들도 사교계 숙녀들에게서 보기 힘든 멜리사의 시원시원한 성격을 좋아했다. 숙부는 싫다는 날 억지로 파티에 데려가 눈앞에서 나와 멜리사와 비교하며 ‘나디아 바인’이 얼마나 부족한 애인지를 떠들어대곤 했다. 물론 그런 비난을 ‘모자란 조카가 걱정스러워서……’라는 듣기 좋은 이유로 포장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알테어는 내 시선을 따라 멜리사가 있는 쪽을 슬쩍 바라보더니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흘렸다.

1655093463271.png“설마 ‘저런 게’ 수도의 멋진 숙녀야?”

16550934632699.png“다들 그렇게 말해요.”

1655093463271.png“타인의 평가가 멋진 숙녀의 기준인가?”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 살짝 고개를 갸웃거리는 알테어의 모습에서 스스로에게 확신이 있는 자만이 가질 수 있는 자신감이 엿보였다. 이런 사람들은 타인의 평가에 결코 연연하지 않겠지.

16550934632699.png‘사실은 수도의 멋진 숙녀보단 이런 사람이 되고 싶었어.’

어떤 말에도 흔들리지 않는 심지가 곧은 사람. 아무런 대답도 못 하고 침묵을 지키자 알테어가 툭 말을 던졌다.

1655093463271.png“넌 멋져.”

16550934632699.png“위로 안 해 줘도 괜찮아요.”

1655093463271.png“내가 입에 발린 위로나 할 사람이야? 난 멋진 건 멋지다고 해. 아닌 건 아니라고 하고.”

고개를 들어 알테어를 보니 그는 흔들림 없는 표정으로 날 보고 있었다. 이런 표정을 한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게 진심이 아니라는 건…… 생각조차 못 할 일이다. 나는 참지 못하고 고개를 푹 숙였다. 그 반응에 알테어가 당황한 듯 내 얼굴을 살피는 게 느껴졌다.

1655093463271.png“나, 방금 칭찬한 거 아니었나?”

16550934632699.png“했어요. 그러니까 이러죠. 머, 멋지다고 하니까 부끄러워서…….”

얼굴이 확 달아오른 게 스스로도 느껴질 정도였다.

1655093463271.png“……멋져.”

16550934632699.png“읏.”

1655093463271.png“넌 정말로 멋져, 나디아.”

16550934632699.png“왜, 왜 계속해요!”

반박하며 고개를 번쩍 들자 알테어가 어울리지 않게 입가에 슬쩍 미소를 짓고 있었다.

16550934632699.png“설마 날 놀린 거예요?”

1655093463271.png“아니. 진심이었어. 그냥 반응이 귀…….”

16550934632699.png“귀……?”

알테어가 말을 하려다 말고 입을 꾹 다물었다. 무슨 말을 하려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이 그런 말을 내뱉으려고 했던 걸 스스로도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눈을 껌뻑이며 끊어진 알테어의 말이 이어지길 기다리자 그가 눈에 띄게 내 시선을 피하며 작게 헛기침했다.

1655093463271.png“사실을 말하는데 부끄러울 이유가 없지. 괜히 그런 기분이 드는 건 익숙하지 않아서야. 그러니 네가 익숙해지도록 질릴 때까지 말해주지. 넌 멋져, 나디아.”

마지막으로 ‘멋져’라는 말을 할 때는 슬쩍 피했던 시선이 다시 부딪혀온다. 그 순간 밀려오는 감정이 너무나도 벅차서 나는 하늘에 붕 뜬 기분이었다. 음악을 따라 움직이는 발걸음이 한없이 가벼워서 현실감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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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억지로 잊으려 했던 주위의 시선이나 사람들의 목소리도 어느새 저만치 사라져 있었다. 이렇게 확신으로 가득 찬 사람이 날 멋지다고 해준다면…….

16550934632699.png‘믿고 싶어져.’

내가 정말 멋진 사람이라고. 적어도 이 사람에게 나는 그렇다고. 분에 넘칠 정도로 다정한 말에 나는 진심으로 활짝 웃으며 알테어를 바라보았다. 미소를 정면으로 마주한 알테어는 놀란 듯 굳어버렸다. 마침 흘러나오던 음악이 끝나 춤추던 이들도 서로에게 인사하고 원래의 자리로 돌아갔다. 남은 건 나와 알테어뿐이었다.

16550934632699.png“……알테어?”

조심스럽게 묻자 그제야 알테어가 정신을 차리고 겨우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능숙하게 춤을 추던 움직임은 어디로 간 건지 삐걱대며 걷는 모습이 영 어색했다.

16550934632699.png‘왜지.’

알테어가 갑자기 고장 났어. 급히 몸이 안 좋아지기라도 한 걸까? 아니야. 알테어는 튼튼해서 그럴 리가 없지. 홀로 이유를 고민하는 사이 한 무리의 남성들이 주위에 다가왔다.

1655093471675.jpg“부인. 괜찮으시다면 남작을 잠시 빌려 가도 되겠습니까? 여러모로 이야기 나누고 싶은 부분이 많아서요.”

이제 본격적인 사교의 시간이었다. 신사들끼리 나누고픈 이야기가 있는 모양이니 알테어를 보내줘야 했다.

16550934632699.png‘음. 알테어가 갑자기 이상해서 조금 걱정되기는 하는데…….’

힐끗 쳐다보니 어느새 알테어는 평소와 다름없이 차분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역시 그라면 걱정할 필요가 없지.

16550934632699.png“물론이에요. 신사들의 자리를 제가 방해할 순 없지요.”

나는 예의를 갖춰 인사하고 서둘러 뒤로 물러났다.

16550934632699.png‘이건 알테어에게 사교의 기회를 주기 위해서지, 마침 잘됐다 싶어서 도망치는 게 아니야.’

암. 그렇고말고. 하지만 드디어 사람으로 넘쳐나는 중심에서 멀어질 수 있다는 생각에 안도의 한숨이 나오는 것까지는 막을 수 없었다. 그러나 ‘드디어 탈출!’이라는 생각은 큰 오산이었다.

1655093471675.jpg“어머나, 에일스포드 남작 부인! 이쪽으로 와서 같이 이야기 나누시겠어요?”

1655093471675.jpg“맞아요! 저희와 같이 이야기해요!”

존재감이 미약했던 예전과 달리, 지금은 너무 화려하게 소문이 나서 모두가 날 주목하고 있었기 때문에 슬그머니 조용한 곳으로 튀는 건 불가능했다…….

16550934632699.png“무, 물론이에요…….”

나는 속으로 눈물을 삼키며 모여 있는 귀부인들 틈으로 걸어갔다. *** 알테어는 자신을 탐색하는 귀족들의 시선을 느끼며 시종이 건넨 샴페인을 한 모금 마셨다. 사람들은 흔히 무리에서 레이디들의 눈치 싸움이 치열하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사내들의 기 싸움도 그에 못지않았다. 이놈이 내 위인가, 아니면 아래인가, 그것도 아니면 이 무리에 낄 가치조차 없는가. 사람을 처음 만나면 그런 서열을 정하는 과정이 꼭 들어가곤 했다.

1655093463271.png‘물론 난 그런 싸움에서 아래에 깔린 적은 단 한 번도 없지만.’

알테어는 여유로웠다. 아마 이 자리에 있는 사람 중에서 자신이 작위는 제일 낮겠지만, 어차피 서열이라는 건 꼭 그런 걸로만 정해지는 게 아니다. 항상 꼭대기에 앉은 자만이 가질 수 있는 풍모에 그를 탐색하던 신사들은 살짝 기가 죽고 말았다. 모두 눈치만 보던 그때. 한 사람이 조심스럽게 나섰다.

1655093471675.jpg“크흠. 그…… 에일스포드 남작은 황제께서 주최하는 연회엔 처음 참석하는 거지요?”

1655093463271.png“예. 그렇습니다.”

1655093471675.jpg“앞으로는 자주 얼굴을 보겠군요.”

1655093463271.png“네. 아무래도.”

1655093471675.jpg“역시 그렇겠지요. 폐하와 비오스케스 공작과도 인연이 닿으신 듯했으니…….”

남자가 언급한 알테어의 인맥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혜성처럼 등장한 신입의 위치가 자신들과 다르다는 사실을 새삼 느낀 것 같았다. 이런 상황에서는 꼭 상대를 끌어내리기 위해 억지로 약점을 찾아내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고, 이 자리에도 그런 인간이 있었다.

1655093471675.jpg“그나저나 아주 아쉬우시겠습니다. 일이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혼인을 좀 더 미루셨으면 좋았을 텐데.”

시작부터 비꼬는 기색이 역력한 말투에 알테어가 눈썹을 꿈틀하자 주위 사람들이 숨을 홉 들이켰다. 무시무시한 알테어의 인상 때문이었다. 그러나 알테어에게 시비를 걸기 위해 입을 연 남자는 자신의 목표에 열중하느라 그의 험악한 얼굴을 제대로 살피지 못했다.

1655093471675.jpg“그렇잖습니까? 아무리 남작 부인이 후작가 출신이래도 가문에선 끈 떨어진 신세고…… 아무리 현 후작이 조카라고 챙겨 줘도 한계는 있지요. 처가 덕 보기는 글렀습니다.”

1655093463271.png“…….”

1655093471675.jpg“남작이 후계자 문제가 급해서 부랴부랴 결혼했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이리될 줄 알았다면 더 좋은 여자를 골라 결혼할 수도 있었겠지요. 아직 후계자 소식도 없는 걸 보면 원래의 목적도…….”

파직-! 묵묵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알테어의 손에 들려 있던 샴페인 잔이 요란한 소리를 내더니 그의 손에서 박살났다. 당연히 잔을 들고 있던 알테어의 손에서는 피가 뚝뚝 흘렀다. 그런데도 알테어는 태연하게 입을 나불대던 남자를 바라보기만 했다.

1655093471675.jpg“히이익!”

그 공포스러운 광경에 그가 주춤대며 뒤로 물러나자 알테어가 빙긋 웃으며 놀란 사람들을 향해 어깨를 으쓱했다.

1655093463271.png“잔이 너무 약하네요, 이거. 불량인가.”

황실에서 쓰는 샴페인 잔이 불량일 리가! 당연히 최고의 장인이 만든 최상품일 텐데!

1655093471675.jpg‘그럼 저 남자는 저걸 그냥 손의 악력으로 산산조각을…….’

그의 주위에 몰려든 사람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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