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8화. 한눈팔지 마. (77/170)


98화. 한눈팔지 마.
2022.05.11.


오르카의 짐작처럼 매우 비슷한 계획을 그리고 있었던 건지 알테어의 표정이 미묘했다.

겉모습은 완전히 다른 두 사람의 속내가 이처럼 비슷하다니.

정말로 신기하긴 했다.

세상을 살면서 나와 생각이 완전히 통하는 상대를 만나는 건 정말로 어려운 일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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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긴. 소설 속에서도 나쁜 짓을 할 때는 둘이 죽이 척척 맞아서는…….’

괜히 최강의 악당이었던 게 아니다.

알테어의 등장으로 나와 오르카 황자의 대치는 자연스럽게 알테어와 오르카 황자의 대치로 변해 있었다.

알테어는 생글거리며 웃는 오르카를 가만히 지켜보다가 슬쩍 주위의 기척을 살피더니, 곧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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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오셨군요.”

이렇게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모든 걸 파악하는 건 아주 어려운 일이지만 알테어 정도의 실력자에게는 간단한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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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중요한 서류를 가지고 혼자 오시다뇨.”

알테어가 차분하게 말하며 오르카의 어깨를 단단히 틀어잡았다.

여차하면 무력을 사용할 수도 있다는 경고였지만 오르카 황자는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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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로 서류를 뺏어갈 수도 있을 겁니다. 사실 그래도 상관없어요. 어차피 이건 넘겨주려고 가져온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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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쪽에서 서류에 대한 대가를 아무것도 줄 수 없다 해도 말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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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해도.”

오르카 황자는 여전히 여유롭게 웃는 낯으로 알테어의 손에 서류를 넘겨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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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작이 은원이 분명한 타입인 걸 압니다. 도움을 받으면 보답해야 하고, 악의에 당하면 보복해야 하죠. 그러니 당신은 반드시 내 편에 서게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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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요. 근본적인 곳에서부터 이미 ‘보복’의 대상이었다면 이야기가 다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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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복이라.”

오르카 황자가 정말로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미간을 찌푸리며 나와 알테어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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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부터 궁금했는데 왜 이렇게 나에 대한 평가가 박한 겁니까? 남작 부인도, 남작도, 내게 원한이 있다는 듯한 태도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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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윈호퍼가 전하의 끄나풀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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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윈호퍼?”

알테어는 빙빙 돌려 말하지 않고 직설적으로 말했다.

오르카 황자가 호위도 없이 홀로 가볍게 찾아왔다는 사실을 알았으니 더욱 거리낄 것이 없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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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차하면 황자를 감금이라도 할 생각인가?’

여태까지 내가 지켜본 알테어라면 그렇게까지는 안 할 것 같았지만, 소설 속에서 보았던 악당 공작 알테어라면 충분히 벌일 만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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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하네. 그건 또 어떻게 알았지?”

너무도 확신하고 있는 알테어의 말에 잡아떼는 건 불가능하다고 느꼈는지 오르카 황자도 순순히 진실을 털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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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습니다. 드윈호퍼는 수도에 심어둔 나의 끄나풀이죠. 워낙 지방을 전전하다 보니 수도에도 사람을 하나 심어 둬야 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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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드윈호퍼의 임무가 보험설계였다는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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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설계?”

알테어의 추궁에 오르카 황자의 얼굴이 확 구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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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저히 숨겨왔던 비밀이 드러나서 당황해 그런 것인지, 터무니없는 소리를 들어 황당해 그런 것인지.

표정만으로는 정확한 상황을 읽어 내기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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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윈호퍼가 보험설계를 했나? 그의 부업까지 통제하진 않아서.”

오르카 황자는 보험설계에 대해 전혀 모른다는 뜻이었다.

나와 알테어의 시선이 빠르게 허공에서 부딪혔다.

우리의 묘한 반응에 오르카도 뭔가 문제가 있음을 깨달은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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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방향의 보험설계는 아니었던 모양이군.”

웃고 있던 오르카 황자의 얼굴이 순식간에 차갑게 식어가는 것이 보였다.

산들바람처럼 부드럽던 인상이 얼음장처럼 차가워지자 그가 왜 악당의 재목인지 확실히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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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보험설계에 대해 말해보라고 해도 당장 날 신뢰하지 않으니 입을 열진 않을 듯하고. 우선 나도 상황 파악을 할 시간이 필요할 것 같군요.”

오르카 황자가 언제 싸늘한 표정을 지었냐는 듯 다시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자연스럽게 뒤로 물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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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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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만에 가능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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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손안에 있는 사람입니다. 하루면 넉넉하죠.”

차분하게 대답하는 목소리 속에서 은근한 분노가 느껴졌다.

부하들을 강하게 통제하지는 않지만 일탈에는 가차 없이 처벌하는 보스.

조용히 행동을 지켜보다 선에서 벗어나면 찍어 내치는 보스.

오히려 이런 보스가 명령과 잔소리를 달고 사는 쪽보다 훨씬 무서운 법이다.

나는 흔들림 없는 걸음으로 서재를 떠나는 오르카 황자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어깨를 떨었다.

이런 무서운 사람과 결국 엮이고야 말았다는 사실에 서늘함이 몰려온 것이다.

알테어는 아무런 말 없이 떨고 있는 내 어깨를 감싸주었다.

나는 저항 없이 그의 품에 기대어 조금이나마 두려운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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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응만 봐서는 보험설계에 대해 전혀 모르는 것 같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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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큼 연기를 잘하는 걸 수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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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수도 있겠지만…….”

내게는 내일 다시 찾아오겠다며 자리를 박차고 나간 오르카 황자의 반응이 썩 진실되게 느껴졌다.

깊은 곳에서부터 분노가 끓어오르는 걸 분명히 볼 수 있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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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다른 감정은 몰라도 화내는 걸 알아차리는 데는 자신 있단 말이야.’

누군가의 분노는 내가 살아오며 가장 많이 접해본 감정 중 하나니까.

그러나 미묘한 나의 옹호를 어떻게 받아들인 건지 알테어가 슬쩍 내 어깨를 밀어내며 눈을 가늘게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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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자꾸 황자 편을 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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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편든 거 아니에요. 그렇게 느껴졌다는 것뿐인데……. 게다가 자꾸라뇨. 내가 언제 오르카 황자 편을 든 적이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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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오르카 황자 편을 들었어. 진짜 팬이라 이거야?”

알테어가 부루퉁한 얼굴을 하곤 나를 위아래로 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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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긴. 난 무섭게 생긴 데다 답답할 정도로 외골수인데, 그쪽은 산들바람같이 부드럽고 융통성도 있으니까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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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그, 그건!”

오르카 황자를 띄워주느라 늘어놓았던 말이 알테어의 입에서 흘러나오자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누군가에게 아부하며 딸랑거리는 모습을 남편에게 들킨 아내라니…….

얼마나 민망하고 수치스러운 상황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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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내가 진짜 그렇게 생각하겠어요? 오르카 황자가 알테어에게 괜히 동질감을 안 가졌으면 해서 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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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내 얼굴이 안 무섭다고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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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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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성격이 답답하지도 않고 외골수도 아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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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아니.

또 그렇게 물으니 아니라고 말하기가 애매한…….

미적대는 날 보며 알테어가 단단히 화가 났다는 듯 허리를 굽혀 나와 눈을 맞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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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눈팔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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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팔아요. 남편 하나 감당하기도 힘들어 죽겠는데, 밖으로 눈 돌릴 여유가 어디 있다고…….”

나는 투덜대며 두 손으로 팔을 쓸어내렸다.

함께 밤을 보낼 때면 집요하게 사람을 괴롭히는 그의 태도가 떠올라 억울한 기분까지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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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감당하기 힘든 일은 하나도 안 했는데. 그런 소리를 들으면 내가 억울하지.”

알테어가 투덜거리는 내 입술 위로 가볍게 입을 맞춰왔다.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니 그가 본격적으로 내 안으로 파고들어 오며 무게를 실어 왔다.

그에게 떠밀려 뒷걸음질 치다 책상에 걸려 몸이 휘청 뒤로 넘어가자, 알테어가 당황하지도 않고 자연스럽게 손을 뻗어 내 허리와 머리를 단단히 받쳐 주었다.

서로가 입안에서 섞이며 농염함이 짙어지는 순간.

입구에서 무엇인가 쿵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넋을 놓고 알테어의 리드에 끌려가던 나는 화들짝 놀라 정신을 차리고 그를 밀어냈다.

나야 인기척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게 당연하지만, 알테어라면 누가 근처에 오는 걸 충분히 알 수 있었을 텐데!

원망하며 입구를 보니 서재를 청소하러 들어왔던 건지 청소도구를 바닥에 쏟아버린 하녀가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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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 죄송합니다! 하, 하시던 거 계속하세요!”

하녀가 꾸벅 고개를 숙이더니 청소도구를 챙기지도 않고 요란스레 자리를 떠났다.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팔꿈치로 알테어의 옆구리를 쿡 찔러 그를 질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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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내 아내가 투덜거려도 억울해할 수가 없군.”

알테어가 오히려 즐겁다는 듯 가볍게 두 손을 들었다.

소설 속의 악역 공작 알테어는 이런 사람이 아니었던 것 같은데.

스킨십을 이렇게 좋아하고 여자를 이렇게 밝히는지 몰랐다.

소설 속에서는 정말로 바위처럼 여자 보기를 돌같이 하며 오로지 적을 처리하는 일에만 몰두하던 사람이…….

나는 감당하기 힘든 악당의 변화에 한숨을 푹 내쉬며 그가 입을 맞추느라 책상에 대충 내려놓은 서류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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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건 어떻게 하죠? 순순히 넘겨준 걸 보면 살짝 의심스럽기도 한데.”

하지만 그만큼 매력적인 증거라 갈등이 되었다.

그러나 알테어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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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황자가 드윈호퍼에 대한 변명을 가지고 돌아올 테니 그때 판단하면 되겠지. 그리고 내가 저걸 놓치고도 대안을 준비하지 않았을 리가 없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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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이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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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당신에게 굳이 밝히고 싶진 않았지만…….”

알테어가 머쓱하다는 듯 손으로 제 뺨을 매만졌다.

이건 매우 불법적인 일을 저질렀을 때 알테어가 보이는 반응이었다.

알테어는 내게 합법적인 첩보나 작전은 잘 공유하면서도 지극히 불법적인 일들은 자기 선에서 조용히 처리하는 경향이 있었다.

나쁜 건 내가 다 짊어지고 간다- 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그의 마음을 알기에 질책하지도 못하고 가만히 말을 기다리고 있으니 알테어가 헛기침하며 ‘대안’을 설명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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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도둑질을 좀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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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네에?!”

오늘의 날씨를 이야기하는 것처럼 태연한 말투였지만 내용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도둑질이라니!

역시 악당은 악당.

오르카 황자와 행보가 정확히 일치하는구나…….

넋이 나가 허허 웃음을 흘리고 있으니 알테어가 씩 웃으며 악당다운 대사를 이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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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인 후작은 전형적으로 ‘증거는 내 주머니에’라는 철학을 가진 인간이더군. 그래서 인장을 숨겨두는 곳에 온갖 중요한 걸 다 넣어뒀더라고. 멍청하게도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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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그것도 장물이니 재판에서 써먹을 수는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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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에게 공개할 수는 있지. 사람들은 이미 증거를 보았는데, 그걸 공식적인 증거로 채택할 수 없다고 한들 그게 무슨 소용이겠어. 이미 결판은 난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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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걸 가져왔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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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건 방으로 돌아가서.”

하녀가 드나드는 열린 공간이라 그랬는지 알테어가 짧게 말을 자르더니, 오르카 황자가 가져온 서류를 힐끗 쳐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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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저 서류는 어떻게든 공식적인 증거로 만들고 싶은데…… 흐음.”

확실히 이게 공식적인 증거만 될 수 있다면 무엇보다 좋은 상황이다.

여론을 우리 편으로 만드는 건 당연히 필요한 일이지만, 알테어가 따로 확보한 장물도 있으니 여론을 선동하기엔 차고 넘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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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공식적인 증거로 만들 방법이라…….’

고민하며 턱을 매만지는 순간.

어째서였는지 머릿속에 드윈호퍼가 우리에게 팔았던 그림이 번뜩 떠올랐다.

그걸 계기로 번개처럼 아이디어가 뇌리에 박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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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

작은 중얼거림에 알테어의 시선이 내게 닿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고개를 번쩍 들어 알테어를 바라보며 명랑하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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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서류, 다시 보험사의 창고에 돌려놓는 건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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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게 훔친 걸 다시 돌려놓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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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이 서류가 합법적인 방식으로 공개되기만 하면 증거 채택에는 문제가 없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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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방법이…… 불?”

알테어가 조금 전 내가 중얼거린 단어를 꺼내며 고개를 갸웃거렸고, 나는 그를 향해 씩 웃었다.

그래.

답은 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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