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第一章 용골(龍骨) (1)
“저 사람이 낭야(狼琊)야?”
“딱 봐도 살인귀처럼 생겼지?”
“에구! 누가 칼잡이 아니랄까 봐 칼잡이티를 팍팍 내고 다니네. 꼭 저렇게 하고 다녀야 하나?”
낭야를 쳐다보는 눈길이 곱지 않다.
낭야는 누더기 같은 옷을 입고 있다. 머리는 더부룩한 장발이고, 며칠 동안 씻지 않은 얼굴에서는 땟국물이 자르르 흐른다. 하지만 두 눈에서 쏟아지는 살기는 칼날처럼 매섭다.
아무리 봐도 호감이 가지 않는 모습이다.
“저놈이 왜 죽지 않고 매번 이기는 줄 알아?”
“칼이 매서워서지.”
“그런 게 아니라니까. 저놈 얼굴을 봐. 귀신도 잡아먹을 인상이지. 저승사자가 저놈 잡으러 왔다가 지레 놀래서 도망가는 거야. 그러니 죽지 않고 이길 수밖에.”
“에끼, 이 사람아. 큭큭!”
혈무대(血舞臺)를 쳐다보는 사람들이 연신 수군거렸다.
하지만 성검문(聖劍門) 대문이 열리고, 한 사람이 모습을 드러내자 모든 소음이 사라졌다.
침묵이 흐른다.
긴장감 어린 눈길들이 성검문 무인과 낭야를 지켜본다.
낭야가 말했다.
“큭큭! 내 위치가 이 정도인 줄은 몰랐네. 내 이름 정도면 바로 문주와 겨룰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저를 이기시면 아버님께서 나오실 겁니다.”
성검문 무복을 입은 청년이 정중하게 말했다.
사실, 청년은 이토록 정중하지 않아도 된다. 다소 건방지게 말해도 뭐라고 할 사람이 없다.
성검문주의 장자(長子), 허문승(許文丞).
오늘날의 성검문을 존재하게 만든 조명천검(照明千劍)을 육성(六成)이나 수련한 차기 문주.
삼십사전(三十四戰) 삼심사승(三十四勝), 신화의 주인공.
그가 건방지지 않으면 누가 건방질 수 있을까. 다소 도도해도, 무례해도 뭐라고 할 사람이 없다.
하지만 허문승은 과례(過禮)라고 할 정도로 정중했다.
원래 성검문의 예법이 그렇다. 벼는 익을수록 머리를 숙인다는 예법을 뼈에 새기며 자란 탓이다.
낭야가 허문승을 쏘아보며 말했다.
“큭큭, 큭큭큭! 당연히 나와야겠지. 그건 염려하지 않아. 자식이 죽었는데 나와보지 않을 부모가 어디 있으려고. 내 칼에 대한 소문은 들었지?”
“들었습니다. 일격필살(一擊必殺). 살인도(殺人刀). 혈귀도(血鬼刀). 낭야 님의 칼을 부르는 말이 무척 많더군요. 어떤 칼이든 마음껏 펼쳐 보이셔도 좋습니다.”
“하하하! 하하하!”
낭야가 온 세상이 쩌렁 울리도록 크게 웃었다.
“하하하! 하하하하! 하하!”
낭야가 웃자 수많은 사람이 따라 웃었다.
낭야에게는 추종자가 있다.
낭야는 청년 도객들의 우상이다. 칼 한 자루로 이름을 날린 호객이니 우상이 아닐 수 없다.
허문승이 말한 대로, 낭야를 부르는 별호는 수십 개나 된다.
그만큼 많은 사람이 죽었다.
낭야는 칼에 사정을 담지 않는다. 싸움이 벌어지면 반드시 시신이 생겼다. 피가 튀고, 살점이 떨어져 나가고, 생명이 끊어진다. 이것이 낭야의 칼이다.
- 누구든지 도전하라. 언제 어느 때든 도전하라. 술에 취해 있을 때 암습을 가해도 좋다. 어떤 식으로든 공격하고 싶으면 하라. 하지만 나 역시 손속에 사정을 담지 않을 터, 나를 죽이고 싶은 자는 자신도 목숨을 걸어라.
그가 공언한 말대로 많은 사람이 도전해 왔고, 죽었다.
대체로 이 정도 살겁을 저지르면 무림에서는 살인귀, 마인으로 낙인찍힌다.
정도 무림에는 존재할 수 없는 살인마로 전락한다.
낭야도 그랬다. 정도 무인이라고 자칭하는 사람들이 정도의 이름으로 그에게 병기를 겨눴다. 일대일의 공정한 승부가 아니라 살인마를 척살, 제거하려는 것이었다.
낭야는 많은 공격을 받았다.
살인마를 제거한다는 명목 아래 온갖 암수가 난무했다.
낭야는 그런 고통의 세월을 견뎌왔다. 칼 한 자루로 모든 도전을 뿌리치고 당당히 무림에 섰다.
- 누구든 도전하라. 언제 어느 때든 받아 주겠다. 내 칼을 꺾을 수 있는 자, 내 목숨을 취할 수 있는 자는 언제든지 와라. 단, 당연한 말이지만 내 목숨을 빼앗으려는 자는 자기 목숨도 버릴 줄 알아야 한다. 최소한 유서 한 장은 써놓고 와라.
낭야의 울부짖음은 피 끓는 청춘들을 요동시켰다.
젊은이들이 낭야에게 모여들었다. 낭야가 하는 행동을 보고, 낭야가 하는 말을 듣고 그대로 따라 한다.
낭야가 갈비를 먹다가 이빨에 고기가 끼워서 인상을 찡그리면 그것조차도 따라서 한다.
많은 사람이 낭야를 존경한다. 또 두려워한다.
그런 낭야가 성검문 앞에 섰다.
사실 이런 일은 언젠가는 벌어질 일이었다.
무림을 영도하는 최고 문파 성검문과 칼 한 자루에 의지해서 단신으로 거마(巨魔) 위치에 올라선 낭야가 부딪칠 것이라는 예측은 굳이 무림인이 아니라고 해도 할 수 있었다.
언젠가는 일어날, 당연한 싸움이다.
낭야가 말했다.
“긴말은 필요 없겠지? 시작할까?”
“칼을 쓰시기 전에 다시 한번 묻겠습니다. 아! 이것은 저희 성검문의 요식행위이니 언짢아하지 말아 주세요.”
“후후!”
낭야가 웃었다.
낭야는 장소를 가리지 않고 아무 곳에서나 싸운다.
들판에서건, 논밭에서건, 산속, 강가, 모래밭…… 어떤 장소에서도 칼을 뽑는 데 망설이지 않는다.
성검문은 상당히 많은 것을 가린다.
싸우는 장소만 해도 그렇다. 반드시 혈무대라고 명칭된 무대 위에서만 검을 든다. 꼭 많은 사람이 지켜보는 앞에서만 싸운다. 그것도 쓸데없는 말을 중얼중얼 늘어놓으면서.
혈무대(血舞臺), 성검문 결전장.
혈무대라고 하니 피가 철철 흘러넘칠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혈무대에 피가 묻은 적은 없다.
성검문은 살수를 펼치지 않는다.
죽이지 않고, 다치게 하지 않고, 상대방이 스스로 물러서게 만든다.
그만큼 성검문 조명천검이 도전자들의 무공에 비해서 압도적으로 강했다는 뜻이다.
허문승이 말했다.
“이곳은 혈무대, 피를 흘려도 무방한 장소입니다. 결전 중 목숨을 잃어도 괜찮습니까?”
“괜찮다.”
“결전 중에 목숨을 잃을 경우, 시신은 어디로 보내 드려야 할지요.”
“불에 태워 날려 버리면 된다.”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동안 혈무대 아래에서는 성검문 서기(書記)가 대화를 기록했다.
“세상에 남기고 싶은 말이…….”
“내가 묻지. 너는 여기서 죽어도 좋나?”
낭야가 허문승의 말을 중간에서 잘랐다.
허문승이 옅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좋습니다.”
“죽으면 시신은 어떻게 할까?”
“성검문 뒷산에 가묘(家廟)가 있습니다. 성검문에서 장례를 치러줄 것이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세상에 남기고 싶은 말이 있나?”
“유서를 적어두고 왔습니다. 그것도 걱정하지 마시기를.”
“좋다. 내가 세상에 남기고 싶은 말은 이것으로 대체하지. 할 말이 더 남았나?”
“요식적으로 확인해야 할 말은 더 있습니다만, 급하신 것 같군요. 그만 무공을 겨뤄볼까요?”
스릉!
허문승이 검을 뽑았다.
“훗!”
낭야는 피식 웃었다.
낭야의 낭도(狼刀)는 칼집이 없다. 그저 어깨 툭 걸쳐 메고 다니는 칼이다. 칼집이 없으니 칼을 뽑을 필요가 없다. 언제, 어느 때든 사용하기만 하면 된다.
칼 한 자루조차 제대로 다루지 못해서 조심해야 할 정도라면 차라리 칼을 버리는 것이 낫지.
허문승은 검을 중단 높이로 들었다.
검끝이 낭야의 가슴을 겨눈다.
살기는 느껴지지 않는다. 누군가가 칼을 겨누고 있으면 살 떨리는 한기가 느껴지기 마련인데, 허문승에게서는 그런 예기(銳氣)조차도 느낄 수 없다.
매우 편안한 검이다.
검은 잘 다듬어져 있어서 날카롭기 그지없건만, 검을 마주 대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마치 나무 막대기나 날 없는 목검을 대하고 있는 기분이 든다.
반면에 낭야는 금방이라도 터져버릴 듯 팽팽하다.
칼을 어깨 위에 올려놓고 있지만, 지금 당장 폭발력 있게 터져 나와도 하등 이상해 보이지 않는다.
이런 차이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선명하게 부각되었다.
낭야는 더욱 강해졌고, 허문승은 매우 평온하다. 아니, 점점 나약해진다.
칼이 움직이면 검이 부서진다.
허문승은 초식을 전개해서 칼을 막아내겠지만, 어떻게 종이 한 장으로 거센 폭류를 막을 수 있을까. 칼과 검이 부딪치는 순간, 검은 단번에 두 동강 난다.
허문승은 기세에서 밀렸다.
얼핏 봐도 허문승과 낭야의 내력 차이는 엄청나다. 낭야가 천력을 지녔다면 허문승은 이제 겨우 닭 모가지 비틀 힘 정도밖에 지니지 못했다.
“후후후후!”
낭야가 하얀 이를 드러내며 칼을 콱 움켜잡았다.
* * *
성검문 망루(望樓)에서는 혈무대가 환히 내려다보인다. 싸움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이다.
그곳에 세 사람이 있다.
한 사람은 의자에 앉아 있고, 두 사람은 시립해 있다.
“끝났군.”
키가 크고, 몸이 바위처럼 단단해 보이는 중년 무인이 웃으며 중얼거렸다.
그는 이목구비가 크고 시원했다.
웃으면 눈가에 주름이 잡혔고, 볼에는 중년 남자답지 않게 살며시 보조개까지 패었다.
허도기(許道琦)!
성검문 문주 허도강(許道强)의 친동생.
낭야가 싸우고 있는 허문승에게는 숙부(叔父)가 된다.
성검문에는 조명천검을 십성으로 수련해 낸 검신(劍神)이 두 명 있다. 허도강과 허도기 형제다.
하지만 무림은 허도강만 기억한다. 허도기를 아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밖에 안 된다. 허도강이 성검문주에 오르자, 허도기는 자진해서 은둔생활에 들어갔다.
뒷산에 붙은 작은 집에 기거하며 일절 무림과 교분을 쌓지 않았다.
“끝났습니까?”
허도기 뒤에 시립해 있던 무인 두 명 중 오른쪽에 있던 자가 물었다.
그는 왼쪽 눈에 검은 안대를 하고 있다. 짙은 검흔(劍痕)이 이마에서부터 왼쪽 눈을 타고 입술 부근까지 그어져 있는 것을 보면 눈을 잃은 것 같다.
“후후후, 끝났는지 아닌지 보지도 못하나?”
“죄송합니다.”
“죄송할 건 없겠지. 용골(龍骨)의 용검(龍劍)을 알아볼 사람이 몇이나 된다고……. 그래도 분발해라. 무인이 믿을 건 내 허리에 찬 검밖에 없어.”
“알겠습니다. 분발하겠습니다.”
외눈 무인이 허리를 숙였다.
허도기는 무림에서 은거했지만, 무공까지 접은 것은 아니다. 계속 검을 닦았고, 오직 성검문 사람들에게만 알려진 제자도 거둬들였다.
열 명의 제자, 소축십검(小畜十劍).
허도기 뒤에 선 두 명이 소축십검 중 두 명이다.
“문승이가 펼치고 있는 건 은장재계이살(隱藏在溪裏殺)이라고 한다. 개천 같은 얕은 물, 누구라도 경계하지 않은 물에 살법을 숨긴 거야. 낭야가 저걸 감지하지 못한 걸 보면 낭야도 폭도(暴刀)에 불과했던 거지. 가자.”
허도기가 더 볼 것 없다는 듯 몸을 일으켰다.
* * *
까가가가각!
칼이 움직였다. 폭풍처럼 휘몰아쳤다. 강한 벼락이 허수아비처럼 힘없이 서 있는 허문승을 향해 떨어졌다.
슷!
허문승이 위태롭게 움직였다.
낭야는 빠르고 강했다. 허문승은 약하고 느렸다.
“아……!”
“위험!”
싸움을 지켜보는 사람 중 허문승이 다치는 것을 원치 않는 사람들 입에서 경악성이 토해졌다. 한데,
슷!
폭풍처럼 휘몰아친 칼은 혈무대를 내리찍었다. 칼날이 베어낸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당장이라도 요절낼 것 같던 허수아비가 눈앞에서 감쪽같이 사라졌다. 그리고 어느새 낭야의 목에 허문승의 검이 닿아 있다.
“사, 사술이다!”
낭야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말했다.
“성검문 십이 보법 중 이환보(離幻步), 조명천검 중 직사광류(直射光流). 비무는 끝났습니다. 사술로 생각하시는 건 자유지만, 목에 대어져 있는 검은 진검입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계속할까요, 물러서시겠습니까?”
“으……!”
낭야가 침음했다.
낭야는 이런 패배를 원하지 않는다. 성검문 규칙대로 무공만 비교하는 싸움 따위…… 자고로 싸움이란 한 사람이 죽어야 끝난다고 생각한다.
낭야는 두 손으로 목에 대인 검을 잡았다. 그리고 일말의 망설임 없이 목을 들이밀었다.
푹!
낭야의 목에서 피가 철철 쏟아졌다.
목이 삼분지 일이나 베일 정도로 깊은 상처다.
“끄으윽!”
쿵
낭야가 쓰러졌다. 그가 쏟아낸 피로 혈무대가 빨갛게 물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