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일홀도-3화 (3/600)

#3화. 第一章 용골(龍骨) (3)

“일홀문주께서 오셨습니다.”

“일홀문주가?”

“확실히 봤습니다.”

“일홀문주가 왔다……? 후후후!”

허도기는 검을 거두고 뒤돌아섰다.

제자가 허리를 숙이고 보고하는 모습이 비쳤다.

허도기는 유시(酉時)부터 술시(戌時)까지 한 시진 동안은 무슨 일이 있어도 무공을 수련한다.

제자를 가르치는 시간이 아니다. 새로운 무공을 습득하는 시간도 아니다. 몸과 마음을 가다듬고자 그동안 수련해 온 무학들을 다시 수련한다.

당연한 말이지만, 수련 시간 동안에는 외인 출입이 철저하게 차단된다.

그 누구도 허도기의 수련 모습을 지켜볼 수 없다.

아무리 중한 일이 있어도 수련이 끝난 후에야 허도기를 만날 수 있다.

유시부터 술시까지.

수련 시간 동안 철저하게 외인을 차단하는 일은 이미 성검문주의 허락을 득한 사항이다.

외인을 차단하는 일은 제자들이 맡는다. 소축십검이라고 불리는 제자 열 명이 십방(十方)을 통제한다.

반대로 말하면 소축십검만은 허도기의 무학을 구경할 수 있다. 또 외인으로부터 철저하게 차단된 시간이니만치, 수련 장소에서 오간 대화 역시 비밀이 될 수밖에 없다.

지금 그와 소축십검이 나누는 대화도 세상은 알지 못한다.

“형님이 일홀문주를 불렀다……? 후후! 형님이 또 누구를 죽이고 싶으신 건가…….”

허도기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아무래도 사부님 아니겠습니까? 죽음은 목전이고, 정검(靜劍)은 미숙하고. 이래저래 불안하니 사달이 벌어질 씨앗은 미리 제거하자는 생각이 아니겠습니까?”

제자가 말했다.

정검은 허문승의 호(號)다.

허문승에게는 무상삼초검(無上三招劍)이라는 무명이 있지만, 성검문 사람들은 그를 정검이라는 호로 부른다.

“아니야. 아니야. 형님은 그런 성격이 아니야. 나를 노릴 것 같았으면 진작 처리했겠지. 형님은 대의명분이 없으면 절대로 움직이지 않으시는 분이야.”

“그렇기는 합니다만…….”

“쯧! 너희는 아직도 문주님에 대해서 모르는 거냐? 그런 눈썰미로 어떻게 무림 밥을 먹어?”

“죄송합니다.”

제자가 머리를 숙였다.

“누군가는 죽이기 위해서 일홀문주를 부른 것인데…… 생을 마감하는 시점에서 누구를 죽인다? 나는 아닌 것 같고. 누군지 상당히 궁금해지네.”

허도기가 검을 들어 올렸다.

그는 이 수련 시간 동안 종종 비밀 회합을 했지만, 사실 주는 무공 수련이었다.

한날한시도 무공 수련을 하지 않은 적이 없다.

무림에 나가지 않고, 문밖출입조차 삼가고 수축 안에서만 움직이는 검이다. 그래도 수련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언제 어디서나 늘 검을 품에 끼고 산다.

“참고될지 모르겠습니다만…… 일홀문주가 이번에는 제자를 대동했습니다.”

“제자?”

허도기가 초식을 전개하려다가 검을 내리고 뒤돌아봤다. 그리고 되물었다.

“일홀문주가 제자를 데리고 은옥(隱屋)을 방문했다고?”

“은옥에는 문주 혼자 들어갔습니다. 제자는 하마비(下馬碑)에 남겨두었습니다.”

“흠!”

허도기가 미간을 찡그렸다.

문주는 병이 깊어진 후, 외부 사람에게는 전혀 알려지지 않은 은옥으로 들어갔다.

은옥은 오직 문주만 이용할 수 있는 비밀 거처다.

문주와 시중을 드는 하인 세 명을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발길을 들이지 못한다.

부인, 자식, 형제…… 피붙이조차 누구도 들어서지 못한다. 단, 오직 한 명, 이 세상에 딱 한 명만이 예외였다. 일홀문주만은 은옥 안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

만약, 일홀문주가 제자를 데리고 은옥으로 들어섰다면 즉살해도 무방한 중죄다. 세상 율법에는 없는, 하지만 성검문에서는 제일율법을 어긴 것이니까.

은옥에서 오 리 떨어진 곳에 하마비가 있다. 그리고 그곳에 용건 있는 사람들이 머무는 오두막이 있다. 문주에게 급히 보고할 것이 있는 사람들은 오두막에서 신호탄을 쏜다. 그러면 하인들이 달려와서 용건을 받아간다.

어떤 경우에도, 그 누구도 은옥에는 발을 들이지 못한다.

문주는 은옥에 머물며 비밀 수련을 할 수가 있다. 또 무림 중대사를 결정할 수도 있다. 세상으로부터 떨어져서 무림사를 변화시킬 만한 결정을 내릴 수도 있다.

은옥은 문주에게 혼자 있을 공간을 제공하기 위해 만들어진 곳이다.

“일홀문주가 제자를 데려온 적은 없었는데…… 이건 또 무슨 일이지?”

허도기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건드려 볼까요?”

“……아니, 지켜봐라. 건들지 마. 무슨 생각인지 짐작도 못 하고 있잖아? 이럴 때는 그저 지켜보는 것이 상책이야. 두고 보자고. 도대체 뭘 하려는 건지. 하하하!”

허도기가 검을 떨쳐냈다.

쒜엑! 쒝! 쒜에엑!

검이 세 번 그어졌다.

허리춤에서 머리 위로 사선을 그으며 쳐올려 졌다. 그리고 정면을 내리쳤다. 한 발 옆으로 빠지면서 허리를 숙이고, 다시 검을 쳐올려 목을 그어낸다.

초식인가? 아니다. 발검술(拔劍術)이다.

성검문 검법, 조명천검은 발검하는 순간부터 공격이 시작된다.

검을 뽑으며 상대방의 검을 밀어낸다. 밀어낸 자리로 일격을 가해서 승부를 결정짓는다. 용케 일 검을 피해내면 즉시 한 발 옆으로 빠져서 두 번째 공격한다.

이 모든 움직임이 발검하는 한순간에 이루어진다.

순간, 소축십검의 눈가에 이채가 번뜩였다.

성검문 사람이라면 모두가 알고 있는 발검술이다. 너나 할 것 없이 모두가 같은 발검술을 수련한다. 이런 발검술이 무려 삼십여 가지나 있지만…….

허도기가 펼친 발검술은 차원이 다르다. 너무 빠르다.

“아!”

자신도 모르게 탄식이 흘러나온다.

‘저 검, 못 막는다!’

그들은 은연중에 사부의 검과 자신의 검을 비교했다. 그리고 사부의 빠름을 감당할 수 있는지 자문했다. 그 결과, 절대로 막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발검은 누구나 빠르다. 어떤 문파든 발검 속도는 눈부시다고 말할 정도로 빠르다.

허도기는 그런 빠름을 압도한다.

그들은 사부가 십 성의 내력으로 펼쳐낸 발검술을 처음 봤다.

다른 사람이 발검하는 짧은 순간에 그는 이미 검을 뽑고, 공격하고, 다음 공격까지 준비한다. 그리고 여차하면 이차 공격까지 연이어 펼친다.

소축십검의 눈에는 넘지 못할 벽을 만난 사람들처럼 암울함이, 그리고 경외심이 가득 어렸다.

* * *

이런 일이 있을 줄 알았다.

어떻게 불길한 예감은 그토록 정확하게 들어맞는지…… 이런 느낌은 딱딱 들어맞지 않아도 되는데.

혹시나 하는 심정에 제자를 데리고 오기는 했는데, 정말 생각했던 일을 하게 될 줄이야. 이런 일만은 벌어지지 않기를 간절히 고대했는데.

“……자네가 죽어 줘야겠네.”

“이미 문주께 바친 목숨입니다. 다만, 저희가 죽는다고 해서 대세가 달라지겠습니까?”

“대세는 바꾸지 못하겠지. 하지만 문주께서 바라시는 바는 이룰 수 있을 것이네.”

“그럼 됐습니다. 죽겠습니다.”

“무슨 일인지 묻지 않나?”

“말씀드렸는데요. 이미 문주께 바친 목숨이라고요.”

성검문주 호위대 중 최고 독종만 모였다는 지옥전사대 대주 차문량(箚雯諒)이 웃음기 없는 얼굴로 말했다.

“이번 일, 문주는 알지 못하네.”

“상관없습니다. 이미 문주께서는 아무 일도 못 하십니다. 이것을 문주님 마지막 명령으로 알면 되는 거지요.”

“저놈…… 일홀도를 얻지는 못했지만, 능히 백 명 몫을 해낼 도객(刀客)이지. 잘 가시게. 미안하네.”

노인이 답답한 표정으로 말했다.

“키키! 키키! 키키!”

동박은 어깨를 들썩이며 키득키득 웃었다.

“키키! 키키! 키킥!”

웃지 않으려고 했는데, 웃음이 실실 새어 나온다.

솜털이 쭈뼛 곤두선다. 신경이 꿈틀거리고, 머리칼은 빳빳하게 곤두선다. 살까지 부들부들 떨린다.

“킥킥킥!”

동박은 두 손을 들어서 자신의 머리칼을 쥐어뜯었다.

머리에 쥐가 나는 듯하다. 소름이 오싹 끼친다. 그리고 소름은 강렬한 희열이 되어서 찾아왔다. 참으려고 했지만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쾌락이 밀려든다.

“키킥! 키키킥!”

동박은 연신 웃었다.

사부는 꼼짝하지 말고 오두막에 있으라고 했다. 하지만 움직이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사람과 절대 만나지 말라고?

사람이 다가오면 차라리 숨으라고?

물론 그럴 생각이었다. 누가 한 명령인데 어기랴. 야밤에 인적 끊긴 오두막을 찾아올 사람도 없거니와, 설혹 온다고 해도 미리미리 눈치채고 피해 있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건…… 피할 상황이 아니다.

“여긴 잡벌레가 꽤 많네. 무슨 벌레가 이렇게 많아. 벌레는 치워야 되는데. 자근자근 밟아 죽이고, 날개를 분질러버리고, 다리를 꺾어버리고. 키킥!”

소년의 눈이 살기로 번들거렸다.

오두막 주위로 사람이 모여들었다.

저들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캄캄한 숲에 배를 깔고 엎드려 있다. 하지만 살기가 드러난다. 동박을 향해서 아주 강렬한 살기를 쏘아낸다.

살기가 살기를 자극한다.

저들이 먼저 살기를 일으키지 않았다면 동박 역시 살기를 피워내지 않았을 것이다.

싸울 줄 아는 자에게 살기는 희열이 된다.

때리겠다, 죽이겠다 하는 마음은 곧 있을 승리를 생각하게 만든다. 그리고 엄청난 희열, 쾌락이 되어서 신경을 자극한다. 투지를 불러일으킨다.

“키키! 키키! 키키!”

동박은 목을 휘둘렀다.

목뼈에서 으득! 소리가 났다.

싸움꾼에게 살기는 마약과 다름이 없다. 상대방을 짓이길 쾌감에 온몸이 저려온다. 설혹, 싸움이 잘못되어서 반대 상황이 되더라도 후회하지 않는다.

동박은 어린 나이지만 싸울 줄 안다.

물론 동박은 동물들하고만 싸웠다. 늑대와도 싸우고, 곰과도 싸웠다. 멧돼지는 슬슬 가지고 놀 정도가 된다. 들개 무리라도 나타나면 아주 신나는 날이다.

하지만 사람을 해쳐 본 적은 없다.

일홀문도는 일홀도를 얻은 다음에야 살인이 허락된다. 엄밀히 말하면 일홀도를 얻기 전에는 강호 활동조차 금지된다. 평생 동안 일홀도를 얻지 못하면 평생 산에서만 살아야 한다. 누구와 만나는 것도 허락되지 않는다.

지금까지 사람을 죽인 적은 한 번도 없다. 이번이 처음이다.

“키키키키키……!”

동박은 마약에 중독된 사람처럼 낄낄 웃었다.

사람에게 느끼는 살기가 이토록 강렬할 줄은 몰랐다. 아주 강한 춘약(春藥)을 복용해서 한순간에 정신을 잃어버릴 때처럼…… 손발이 덜덜 떨려서 참을 수 없다.

“……이젠 도저히 못 참아.”

동박은 오두막을 벗어났다.

쓋!

한 명이 한 칼에 넘어갔다.

죽은 자는 목이 갈라졌다. 두 손으로 목을 움켜잡고 무너진다.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폐를 찔러서 허파에 바람구멍을 냈다. 그다음, 목을 베었다.

상대는 비명을 지르고 싶어도 지르지 못한다. 폐에서 바람이 일어나지 않는다. 성대로 바람이 흐르지 않는다. 목 울림을 토해내고 싶어도 할 수 없다.

동박은 자신감을 얻었다.

“이게 왜 일홀도가 안 되지? 꺾으라는 사람들을 모두 꺾어 버리는 칼인데. 이 정도면 일홀도로 인정해 줘도 되잖아. 사부는 너무 인색하다니까.”

스으읏!

동박의 눈에 잠복해 있는 자가 보였다.

그는 매우 당황한 듯, 고개를 내밀고 연신 사방을 훑어본다.

오두막에 있던 동박이 사라졌다. 감시해야 할 대상자가 소리 소문 없이 없어졌다.

매우 당황스러울 것이다.

‘다음은 너!’

스으읏!

동박은 그자에게 다가섰다. 그리고 다짜고짜 상대의 등에 칼을 찔러 넣었다.

“큭!”

상대방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이번에도 소리 없이 죽일 수 있었다. 하지만 죽이는 재미가 없다. 자고로 생명을 끊을 때는 팔딱팔딱 뛰는 것에 딱! 칼을 찔러 넣어야 한다.

꿈틀거리는 놈이 한순간에 경직되는 맛!

그래서 일부러 비명을 토하게 했다. 지금부터는 많은 자가 암습을 알게 될 터이다. 당연히 대응해 올 것이고, 지금보다는 조금 더 활기찬 살인을 할 수 있다.

‘네놈들이 먼저 살기를 쏘아냈어. 날 죽이겠다는 소리잖아. 그러니 나도 죽일 거야.’

쒜에에엑!

동박은 매우 빠르게 신형을 쏘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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