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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홀도-4화 (4/600)

#4화. 第一章 용골(龍骨) (4)

“일홀도가 매섭긴 하군요.”

소년을 쳐다보는 눈길에 잔잔한 파문이 일렁거렸다.

일홀도를 두려워하는 눈빛은 아니다. 당장이라도 부딪쳐 보고 싶은 호승심이다.

“…….”

투지 들끓는 말을 듣고도 허도기는 침묵했다.

소년이, 일홀문주의 제자가 성검문 무인을 도륙하고 있다. 성검문주의 호위 무인 중 최강이라는 지옥전사대를 가차 없이 베고 있다. 지옥전사대 무공은 익히 아는바, 상당히 강한 무공을 지닌 자들인데 형편없이 베인다.

“뭔가 부족해.”

허도기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중얼거렸다.

소년은 악귀다. 피에 굶주린 늑대다. 살기를 쫓아서 정신없이 칼을 휘두른다.

무섭다. 날카롭고 강하다. 난폭하다.

하지만 일홀도가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

일홀도라면 허도기마저도 긴장하게 만들어야 하는데, 소년의 무공은 그에 훨씬 못 미친다.

“일홀도가 아니다.”

“네?”

“저놈…… 아직 서리 성을 받지 못했을 거야. 서리 성을 받은 놈이라면 저것보다도 좋아야지. 저게 일홀도라면 일홀문이라는 문파는 진작 사라졌어.”

“…….”

이번에는 소축십검이 말을 잃었다.

소축십검은 일홀도를 본 적이 없다.

일홀도는 살도(殺刀)다. 그러므로 비무 따위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살인이 벌어지는 현장에만 출현한다.

그렇게 목숨 건 싸움이라면 누구를 상대하건 신경 쓰지 않는 일홀도임에도, 일홀도는 무적도(無敵刀)로 알려져 있다. 한데, 그들이 보는 일홀도는 무적이 아니다. 저 정도 칼이라면 충분히 싸울 수 있다는 자신감이 치민다.

“일홀문주에게 제자가 몇이나 있지?”

“셋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럼 저놈은 막내군. 아직 일홀도를 얻지 못한…… 후후후!”

허도기는 미간을 찌푸리며 웃었다.

이 순간, 그는 몇 가지 의문이 치밀었다.

일홀도는 살기를 쫓아간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살기를 가만두지 않는다.

살기란 누가 나를 죽이겠다는 의사 표시다. 마음에서 일어난 투기가 몸 밖으로 흘러나온 기운이다. 그러니 죽이겠다는 생각이 없다면 살기가 일어나지 않는다.

살기가 일어나면 즉시 응대하라!

일홀문도에게 살기를 드러냈다는 것은 바로 결전을 청하는 것과 진배없다.

문주의 호위무인들이라면 이런 점을 모르지 않을 텐데, 왜 소년에게 살기를 드러낸 것일까? 아니, 호위무인들이 왜 소년을 죽이고자 한 것인가?

이 부분이 납득되지 않는다.

두 번째 의문, 소년은 강하기는 하지만 서툴다. 일홀문주를 쫓아서 대업을 치를 만한 놈이 아니다. 그럴 요량이었다면 첫째나 둘째를 데리고 왔어야 한다.

일홀문주가 왜 이런 자를 데리고 온 것이지?

무엇인가 찜찜하다.

하지만 허도기가 나서지 않을 수 없다. 문주가 머무는 은옥과 허도기가 은거한 소축은 지척에 있다. 옆에서 살인이 일어나고 있는데, 가만히 있을 수 없다.

‘형님, 무슨 일을 꾸민 겁니까? 왜 나를 끌어내는 거예요. 후후, 이런다고 달라질 것은 없는데.’

허도기는 자신이 꼭 함정에 걸렸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니, 느낌이 아니라 의심이다.

이번 일, 분명히 자신과 관계가 있다. 한데 어떤 관계인지, 어떤 수작을 부리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형이 하는 일은 손바닥 들여다보듯 안다고 생각했는데, 마지막 순간에 한 수를 놓쳤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번만큼은 형을 이해할 수 없다.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간에…… 내게 유리한 쪽으로 방향을 틀면 그만인 것.”

“네?”

제자가 되물었다.

“너희에게 한 말이 아니다. 나 혼자 한 말이야. 뇌(雷:번개), 산묘(山猫:살쾡이).”

“넷!”

소축십검 중 두 명이 즉시 대답했다.

소축십검은 무명(武名)이 없다. 강호에 출도하지 않고, 오직 허도기에게 가르침만 받았다.

“가서 잡아.”

“넷. 그런데…… 죽여도 됩니까?”

산묘, 살쾡이라고 불린 무인이 물었다.

그는 정말 살쾡이처럼 키가 작고, 어깨가 살짝 굽었다. 눈은 살기로 번들거린다.

“이런 멍청한…….”

“죄송합니다.”

산묘가 즉시 머리를 조아렸다.

“저 정도 칼이라면 너희 중 한 명만 보내도 능히 싸울 수 있다. 한데 너희 둘을 지목했어. 한 명만 가도 좋은 상대에게 두 명을 보내는 이유가 뭘까?”

“알겠습니다. 생각이 짧았습니다.”

산묘가 즉시 대답했다.

* * *

강자다! 진짜가 나타났다!

동박은 단번에 강자의 등장을 눈치챘다.

옛날, 곰을 만났을 때 이런 기분이 들었다. 처음에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저게 뭐야?’ 하는 느낌이었다. 곰이 눈앞에서 어슬렁거려도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하지만 곰이 자신을 향해 얼굴을 돌렸을 때, 그 까만 눈빛!

날카로운 이빨은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맑기까지 한 검은 눈동자가 저승사자의 눈처럼 무서웠다. 오직 눈동자밖에 보이지 않았다. 살기 띤 눈동자!

곰이 자신을 향해 완전히 몸을 돌렸을 때, 비로소 곰 이빨에 갈기갈기 찢겨 죽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발이 꽁꽁 얼어붙을 정도로 놀랐다.

솔직히 말하면 뒤도 안 돌아보고 도주하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지금이 그렇다!

어둠 속을 걸어오는 무인 두 명에게서 몸뚱이가 찢겨져 나갈지도 모른다는 압박감을 느낀다.

공포가 일어난다. 위험이 감지된다.

“키키! 키키! 키키!”

동박은 키득거리며 웃었다.

이미 생명에 대한 애착 따위는 버린 지 오래다.

일홀문도는 중원에서 잘 먹고, 잘 자며 수련한 햇병아리들과는 차원이 다른 경험을 한다.

일홀도는 가르쳐주는 칼이 아니다. 스스로 얻어야 하는 칼이다. 그래서 갖은 죽음을 경험한다. 아마 열 살이 넘기 전부터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었을 것이다.

누가 시켜서 한 행동이 아니다.

하나에서 열까지 모두 스스로 찾아서 해야 한다. 놀고 싶으면 놀고, 싸우고 싶으면 싸운다.

일홀문도는 칼을 얻겠다는 놈들이니 무조건 싸운다.

사형들이 그렇게 해서 일홀도를 얻었다. 서리 성씨를 물려받아서 족보에 이름을 올렸다.

자신은 남들이 보면 젖비린내 나는 놈이겠지만, 죽는 것은 전혀 두렵지 않다.

‘싸움은 상대적이야!’

동박은 칼을 고쳐 잡았다.

상대가 도무지 상대할 수 없는 강자라고 해도 때에 따라서는 약해질 수가 있다.

술에 취해 있거나, 약에 취하거나, 부상을 당했다고 생각해 보자.

예전에는 늘 얻어맞던 자라도 단숨에 때려눕힐 수 있는 조건이 된 거다.

그런 일이 숲에서 일어나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하나.

어느 놈이 이길지는 부딪혀 봐야 안다.

세상에는 수많은 무공이 있고, 초식이 존재한다. 사람을 죽이는 방법도 다양하다. 하지만 정작 목숨을 건 싸움에서 취할 수 있는 행동은 한두 가지에 불과하다.

딱 한순간, 한 동작만 빼앗으면 된다.

동박은 몸을 낮게 숙였다. 먹이를 노리는 짐승처럼 배를 땅에 찰싹 붙이고 숲으로 들어서는 자들을 쳐다봤다.

두 명이다.

내뿜는 기운은 평범하기 그지없다. 동박이 감지하는 기도는 매우 강한데, 겉모습은 평범하다.

기도를 감출 수 있는 자들, 매우 강한 자들이다.

지금까지 상대했던 모든 맹수나 사람들 중에서 사부를 제외하고는 제일 강한 것 같다.

사형들이라면 상대가 될까?

동박은 사형들과 손속을 섞어보지 못했다. 동문끼리 흔히 하는 비무조차도 하지 못했다.

일홀도는 살인도다. 누가 되었든 칼을 뽑으면 목숨을 빼앗는다. 그러니 함부로 겨뤄 보자고 말하지 못한다. 혹, 사형들을 죽일 자신이 있다면 모를까.

숲으로 들어선 자들은 사형들만큼 강하다. 한 명만 해도 상대하기가 벅찬데 두 명이나 된다.

“나와라!”

두 명 중 다소 왜소한 자가 걸음을 멈추고 말했다.

그는 정확하게 동박이 엎드려 있는 곳을 쳐다본다. 어디 있는지 안다는 뜻이다.

“키키키!”

동박이 웃으면서 일어섰다.

비록 엄청난 상대들이지만 물러설 생각은 없다. 죽더라도 잠깐이면 끝나는데 무엇을 두려워하랴.

일홀문도는 편히 침상에 누워서 죽을 팔자가 아니다. 누군가의 칼에, 검에, 창에 찔려서 죽을 운명이다. 언젠가 일홀도는 부러진다. 그리고 칼 주인은 부러진 칼을 보면서 눈을 감는다.

이것이 일홀문도의 운명이다.

그 운명이 어떤 것인지 동박은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칼을 잡는 순간부터 사부에게, 사형들에게 노상 들어온 말이라서 귀에 딱지가 앉았다.

파앗!

동박은 몸을 일으키자마자 곧바로 왜소한 무인을 향해 달려들었다.

창! 창!

찰나에 날카로운 금속성이 터졌다.

왜소한 무인은 동박이 가까이 달려올 때까지 진득하게 기다렸다. 그리고 순식간에 검을 뽑아서 칼을 하늘 높이 쳐올렸다. 그것이 첫 번째 금속성이다.

두 번째 병기 부딪치는 소리는 동박이 일으켰다.

칼이 검력에 떠밀려 하늘로 솟구쳤다. 순간, 동박은 회선도(回旋刀)를 펼쳐서 다시 공격했다. 처음에 노렸던 그대로, 왜소한 무인의 정수리를 곧장 쪼개갔다.

무인이 검을 돌려 막았다.

두 번의 금속성은 연이어 터졌다. 소리가 하나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빠른 순간에 터졌다.

가가각!

왜소한 무인이 검을 바짝 붙여왔다.

가까운 거리에서 동박의 칼은 위력이 반감된다. 도신(刀身)이 한쪽뿐이기 때문에 고동(古銅: 방패막이)끼리 부딪쳐서 내력 싸움이 되면 극히 조심해야 한다.

반면 검은 양날이다.

고동끼리 부딪힌 상태에서도 능히 검신을 쓸 수 있다.

두 사람 모두 병기의 손잡이를 붙인 채 서로를 노려보았다. 강한 힘이 서로에게 전달된다.

“치잇!”

동박이 이 앓는 소리를 흘리며 칼을 비틀었다.

상대가 밀어오는 힘을 역이용해서 칼날을 살짝 비틀려는 속셈이다. 허면 목을 그을 수 있다. 그때,

스읏!

동박의 목에 검이 대였다.

또 한 사람…… 그를 잠시 놓쳤다. 아주 잠깐 놓친 것인데, 치명적인 실수가 되었다.

아니, 알고 있었다. 상대방이 빙 뒤로 돌아서 다가오는 것을 알았다. 알고 있으면서도 막을 방도가 없었다. 한 사람만 상대하기도 벅찬데 두 사람을 어떻게 상대하나.

‘빠르다!’

동박은 목에 검을 댄 자가 뇌(雷)로 불린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소축십검 중에서도 검속이 번개처럼 빨라서, 빠름만으로는 상대할 사람이 없다.

“키키킥! 잡혔네? 키킥!”

동박은 그대로 칼을 놓아버렸다. 그리고 두 손을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동박이 말했다.

“항복! 항복!”

* * *

“묘한 놈이군. 일홀문도라기보다는 정통 살수에 가까운 놈이야. 살기가 너무 짙어.”

허도기가 동박을 보면서 혀를 찼다.

“일홀문주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은옥에서는 이미 떠났는데…… 제자를 버린 것 같습니다.”

“후후! 그것도 재미있군. 제자가 사로잡혔는데 사부라는 자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네.”

“후후후! 형님이 무슨 일을 하는지 도무지 모르겠군. 지금 뭐 하자는 건가?”

“이놈은 어떻게 할까요?”

“일단 본문에 통보해라. 본문에 침입해서 살인을 저지른 자가 있어서 잡았다고. 본문에서 살인을 한 자는 신분 고하를 막론하고 참형(斬刑)이지?”

“네.”

“참형시켰다고 해.”

“그렇게…… 보고합니까?”

“그래. 이놈은 철뇌(鐵牢)에 가둔다. 이놈에게서 일홀문에 대한 것을 캐내 봐. 누가 할래?”

“제가 하겠습니다.”

허도기 앞으로 외눈 사내가 나섰다.

“그래. 독안(獨眼). 네가 해. 일홀문도는 강철로 뼈를 만들고, 바위로 살을 채우며, 독수(毒水)로 피를 삼는다는 말이 있다. 정말 그런지 알아봐.”

“알겠습니다.”

외눈 사내, 독안이 외눈을 번뜩거렸다.

사부는 무엇을 알아내라고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안다. 지금 일홀문주가 하려는 일이 무엇인지, 왜 일홀문주를 따라서 성검문에 왔는지, 우선 이런 것들부터 알아내고 더불어서 일홀도에 대한 것도 알아내면 좋을 것이다.

“가자. 우리 지금부터 좋은 시간을 보내게 될 거야. 후후!”

독안이 동박의 뒷덜미를 낚아채서 질질 끌고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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