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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홀도-5화 (5/600)

#5화. 第一章 용골(龍骨) (5)

농가는 무척 허름했다.

마을로부터 뚝 떨어진 곳에 있어서 사람이 찾아올 것 같지 않다.

위치는 매우 좋다. 야산 밑자락에 있어서 아늑해 보이고, 야산 앞은 탁 트여 있어서 경치가 일품이다. 방 안에 앉아 있기만 해도 다가오는 사람을 일찍 알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좋게 봐도 농가는 폐가다.

흙으로 쌓아 올린 벽에서 흙더미가 부서져 나가 대나무 골재가 환히 드러나 있다. 집주인이 어지간히 게으른지 손을 보지 않았다. 간신히 지붕만 얽어서 비 새는 것만 막았다.

농가로 들어서면 길도 매우 협소하다.

샛길이나 다름없는 좁은 길이 이리 비틀 저리 비틀 구불구불 이어진다.

도로에서 멀찍이 떨어져 있는 집인데, 길이 좋지 않아서 그나마 더 멀게 보인다.

소로를 걸어가면 뒷간부터 만난다.

뒷간을 지나가면 허름한 창고가 나오고, 창고마저 지나쳐가야 비로소 마당에 들어선다.

마당에는 잡초가 무성하다.

노인은 마당 한쪽에 있는 우물로 갔다.

우물에는 긴 줄에 두레박이 묶여 있다.

노인은 우물물을 길면서 집을 살펴봤다.

멀리서 봤을 때도 폐가나 다름없다고 생각했지만, 가까이서 보니 진정 폐가다.

길가는 과객이 하룻밤 이슬을 피하기에는 적당하지만, 머물러 살기에는 많이 피폐하다. 머물 생각이라면 손을 봐야 한다. 이대로는 살기 힘들겠다 싶다.

하지만 이곳에는 엄연히 사람이 산다.

방 두 칸짜리 집이지만…… 한쪽에는 농사꾼 부부가, 다른 방에는 그들의 아들이 자고 있다.

스으읏!

노인을 두레박을 들고 벌컥벌컥 물을 마셨다.

“커어! 시원하다.”

노인이 기분 좋게 말했다.

거짓말이 아니다. 우물물이 참 맑고 깨끗하다. 맛이 달고 부드러우며, 청아하다. 그때,

덜컹!

방문이 열리며 농부가 얼굴이 내밀었다.

“뉘쇼?”

노인은 농부를 보면서 활짝 웃었다.

“자는데 미안하네. 많이 놀랐나?”

“…….”

대답 없는 농부의 얼굴에 경계심이 가득했다.

낮에도 찾아오는 사람이 없는 곳이다. 그런 곳을 불청객이 야밤에 불쑥 찾아왔으니, 반가울 리 없다.

“수고했네.”

노인이 농부를 보며 말했다.

농부의 눈가가 꿈틀거렸다. 그리고 지금까지보다 훨씬 더 긴장한다. 눈에 살기까지 띤다.

노인이 피식 웃으며 지금 상황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말을 했다.

“사개인중유일인도진료수구(四個人中有一人掉進了水溝). 나마즘마양(那麼怎麼樣)? 나지방시활하거적노니(那地方是活下去的路呢).”

넷 중 하나가 도랑에 빠졌구나. 그럼 어떤가? 그곳이 살길인데.

누구냐는 물음에 이상한 대답이다.

한데 그 말을 들은 농부가 한달음에 달려 나와 옷깃을 여미며 부복했다.

농부의 부인인 듯한 아낙도 달려 나왔다.

그녀 역시 농부처럼 옷깃을 단정하게 여미고 공손하게 부복했다.

두 명 다 무인이다.

방문을 넘는 발걸음이 무척 가볍다. 방 안에서 뛰쳐나오는 행동이 다람쥐처럼 날렵하다.

농부는 노인이 소로를 걸어올 때부터 지켜봤다.

노인이 지나쳐 온 뒷간 지붕에는 암기가 가득 설치되어 있다. 헛간 역시 마찬가지다.

표창, 수리검, 비표…….

줄만 당기면 발사되게끔 설치해 놓은 것으로 보아서 인술(忍術)이 뛰어난 살수 부부다.

“도련님은 저 방에 있습니다.”

농부가 작은 방을 가리켰다.

“내가 누군지 묻지도 않나?”

“밀마(密碼)를 들었으니 됐습니다. 그 밀마, 딱 네 명만 압니다. 문주님, 우리 부부, 그리고 어르신. 다른 것은 차라리 모르는 것이 더 낫습니다.”

“그런가?”

노인은 두 부부를 측은한 눈길로 쳐다봤다.

이 밤, 많은 생명이 스러지고 있다.

차문량, 그는 죽었을까? 차문량은 강자이지만 동박보다는 한 수 아래다. 지옥전사대는 몸을 던져서 문주를 보호하는 자들이지, 무공으로 보호하는 호위무인이 아니다.

아마도 죽었을 것이다.

문주를 위해서는 진정 목숨도 아끼지 않는 자인데, 그런 자는 죽어서는 안 되는데…… 하지만 세상은 불공평하게도 그런 자부터 데려간다.

정말 죽었으면 하는 사람은 끈질기게 살아남고, 살았으면 하는 자는 재빨리 낚아채 간다.

“휴우!”

노인은 한숨을 내쉬었다.

농가 부부 역시 죽을 것이다.

허도기가 네 번째 조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모를까. 안다. 알면서도 내버려 두었다. 그러니 그가 반심을 품는다면 제일 먼저 이곳으로 달려와 뿌리를 끊을 것이다.

농가 부부가 사는 길은 허도기가 반심을 품지 않았을 때뿐이다.

“칠 년 전, 이곳에 맨몸으로 들어와 살기 시작했습니다. 남들은 왜 폐허에서 사느냐고 하지만, 이렇게 어지러운 장소가 우리에게는 싸우기 편합니다.”

“그렇겠지.”

노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난 세월 동안 도련님을 저희 자식이라 생각하고 키웠습니다. 문주님께서 무공과 관련된 것은 일절 손대지 말라고 하셔서 기본 체력조차 다지지 않았습니다.”

“잘했네.”

“들어가시지요.”

농부가 작은 방을 가리켰다.

덜컹!

노인은 쪽문을 열고 방 안으로 들어섰다.

작은 방에는 이제 겨우 일곱 살배기 어린아이가 잠들어 있다.

새근 새근

숨을 가늘게 쉬며 잠자는 모습이 매우 귀엽다.

‘……응? 용골(龍骨)이 아냐?’

노인은 미간을 확 찡그렸다.

잠자는 아이의 근골이 무척 평범하다. 농가 부부가 기본 체력조차 건드리지 않았다고 했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너무 평범해서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허(許) 가(家)는 용골이다.

타고난 무인이라고 할까, 무인이 되기 위해서 하늘이 만들어준 골격이라고 할까.

흔히 잘난 사람을 가리켜서 인중지룡(人中之龍)이라고 한다.

사람들과 섞어 놓아도 단번에 파악할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난 인재라는 뜻이다.

허가 사람들이 그렇다.

그들은 삼류 무공만 수련해도 일류 고수로 비약한다. 무공을 수련하지 않아도 타고난 근골로 대충은 싸울 수 있다. 통뼈에 바윗덩어리 같은 살, 무엇보다도 굳건한 의지를 물려받았다.

성검문이 무림제일문파가 된 것은 조명천검이라는 검공 때문이 아니다. 조명천검을 수련한 허가 사람들이 워낙 특출난 무인들이기 때문에 강한 것이다.

허가 사람들을 보면 절로 시샘이 날 정도다.

문일지십(聞一知十)? 허가 사람들이 그렇다. 문(文)에 대해서는 문일지십이 아닌데, 무공에 대해서만큼은 하나를 말해주면 열을 깨닫는다.

무림에서 하는 말이 있다.

허가 사람들이 각 문파에 입문하여 무공을 수련하면, 향후 삼십 년 후에는 천하 모든 문파의 장문인이 모두 허가 사람들로 채워질 것이라고.

무림에서 허가 사람들은 성골(聖骨)이다.

그런데 잠자고 있는 아이는 용골이 아니다. 무척 평범해서 주변에 있는 아이를 본 것 같다.

용골이라면 가슴이 단단해야 한다. 체력을 전혀 단련하지 않았어도, 타고난 근골만으로도 단단해져 있어야 한다. 뼈가 굵어서 몸집도 크다. 키도 크다. 팔다리의 비율이 좋아서 어떤 무공이든 단번에 수련해 낸다.

아이에게서는 그런 모습이 전혀 읽히지 않는다.

우선 뼈가 가늘다. 팔다리가 마치 새 다리를 보는 것처럼 야위고 말랐다.

살도 물렁거린다.

‘응?’

노인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성검문주의 피를 이어받은 아이라면 용골이어야 한다. 절대 이런 모습이어서는 안 된다.

아이가 이런 모습이라서 숨긴 것인가?

무림에서 살기에는 너무 연약해서, 쉽게 잡아먹힐 먹잇감밖에 되지 않아서 숨긴 것인가?

‘왜 다른 아이도 아니고 이 아이를……?’

노인은 또다시 고개를 갸웃거렸다.

성검문주에게는 장성한 자식이 세 명 있다. 그들은 모두 성장했고, 무인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

활검문주에게 자식을 부탁할 요량이라면 그들 중 한 명을 부탁해야 하지 않았을까?

그런데 마지막 순간, 노인의 손에 쥐여 준 밀지에는 노인은 알지도 못했던 네 번째 자식, 일곱 살배기 아이를 부탁한다는 말이 적혀 있었다.

성검문주는 아이를 숨겨서 키웠다.

노인은 성검문주를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문주에게 네 번째 자식이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성검문에 관한 일이라면 부엌에 수저가 몇 개인지까지 세세하게 아는데, 하물며 가족사를 까마득히 몰랐다.

네 번째 아이라면 늦둥이다.

셋째 아들과도 거의 이십 년 터울이 난다.

그런 아이라면 귀여워서 물고 빨기에도 부족한데 왜 감쪽같이 숨겼을까?

심지어는 친자식들도 자신들에게 늦둥이 동생이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성검문 사람은 아무도 알지 못한다.

노인은 아이를 숨겨서 키운 이유가 무척 궁금했다.

아이의 모습을 본 지금은 더 궁금해진다. 아무리 근골이 미약해도 그렇지, 자기 자식인데 이토록 철저하게 숨겨서 키울 이유가 어디 있나?

아이가 누워서 잠을 잔다.

무공을 배우지 않은 아이라서 천진난만하기 이를 데 없다. 잠자는 모습이 무척 편안해 보인다.

스읏!

노인은 손에 진기를 운집했다.

겉모습을 보고는 실망했지만, 속 근골은 어떤지 진기로 살펴볼 생각이다. 그런데,

스르륵!

아이가 눈을 떴다.

아이는 눈을 뜬 후에도 꼼짝하지 않는다. 가만히…… 가만히…… 기다린다.

‘엇!’

노인은 깜짝 놀랐다.

아이가 깬 것은…… 진기를 느껴서다. 노인의 손에 운집된 진기를 느끼고 잠에서 깨어났다.

‘이놈! 진골(眞骨)이다!’

근육을 물려받지 않았다. 기운을 물려받았다. 싸움꾼에게 가장 필요한 촉, 반사 신경, 순간을 잡아채는 눈썰미…… 이런 것들을 물려받았다.

성검문 허가 사람 중 진골을 타고 태어난 사람은 없었다.

진골은 허가에서도 전설일 뿐이다.

수많은 사람이 명멸했지만, 기(氣)를 물려받았다는 소리는 들어보지 못했다.

용들의 종류는 많다. 청룡, 황룡, 백룡, 흑룡…… 하지만 그놈들 중에도 우두머리는 존재한다.

진골은 우두머리 용이다.

노인은 비로소 성검문주가 왜 아이를 은밀히 숨겨서 키웠는지, 왜 아이를 부탁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이 아이, 성검문에서 키웠다면 진작 암살당했다.

자신이 알아본 진골인데 허도기가 몰라볼 것 같은가. 허가 사람들이 모를 것 같은가.

성검문에서 키우지 못하고, 어미에게 맡기지 못하고 은밀히 키운 이유가 진골 때문일 줄이야.

이 아이는 어떤 무공이든 배우기만 하면 곧바로 대성할 수 있다.

무공을 위해서 태어난 아이가 아닌가. 진짜 용으로 탈바꿈시키는 데 오랜 세월이 걸리지 않는다. 일홀도를 얻으라고 하면 가장 강한 일홀도를 얻을 것이다.

“눈 떴냐?”

“……네.”

아이가 차분하게 대답했다. 일곱 살짜리 답지 않게.

“그러면 일어나 앉아야지? 어른이 찾아왔는데.”

“불청객이잖아요.”

“나랑 같이 가야겠다.”

“…….”

아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어깨가 파르르 떨리고 있다. 아이는 아이다. 아무리 성검문주의 자식이라고 해도 부모와 떨어지기 싫은 꼬마 아이일 뿐이다.

하지만 아이는 가야만 한다는 사실을 안다.

아이는 이미 힘의 우위를 읽어냈다.

노인은 누구든 죽일 수 있다. 반항을 거부한다. 노인의 기운, 내공을 읽었다.

아이의 아이답지 않은 행동은 힘을 느꼈기 때문에 나온 것이다.

이 노인, 우리 부모님도 이길 수 있는 사람이야. 아주 강해. 말 잘 들어야 해.

“억지로 데려가는 건 아니다. 네 부모와 상의했고, 너에게 좋은 길을 찾은 거지. 네 부모가 밖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작별 인사하거라. 잠시 떨어져 있는 것뿐이니까.”

마지막 말은 거짓이다. 허도기가 반심을 품는다면…… 아마도 이번 이별이 이승에서 만나는 마지막 만남일 것이다. 반심을 품지 않는다면 노인의 말이 사실일 것이다.

스륵!

아이가 일어섰다.

아이가 노인을 쳐다보며 말했다.

“내가 안 간다고 해도 억지로 데려갈 거죠?”

“그렇다.”

“얼마나 가 있어야 하는데요?”

“내가 뭘 가르칠 건데, 네가 얼마나 빨리 배우느냐에 달렸지. 부모님을 빨리 보고 싶으면 죽어라 배우거라. 다 배우면 미련 없이 보내줄 테니.”

“알았어요.”

어린애가 일어섰다.

“휴우!”

노인은 한숨을 토해냈다.

허도기…… 아무런 행동도 하지 말아야 한다. 만약, 잘못된 판단을 내린다면 끝이 좋지 못할 것이다. 그 역시 이 세상에 진골이 태어나 있다는 사실은 모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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