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第二章 역천(逆天) (2)
허문승은 눈쌀을 찌푸렸다.
살기가 읽힌다. 상대방이 굳이 살기를 감추지 않았기 때문에 더욱 명확하게 읽힌다.
허문승은 암습에 익숙하다.
성검문 사람들은 잠을 자는 순간에도 기습에 대비해야 한다. 특히, 문주나 문주의 세 아들은 십만 마인의 공격 대상이다. 그러니 늘 긴장을 풀지 말아야 한다.
기습? 낯설지 않다.
하지만 그 기습이 왜 하필이면 오늘인가 싶다. 오늘만은 싸움을 피하고 싶은데. 아버지가 돌아가신 날이다. 온 정성을 다해서 상을 치르기도 부족하다.
반대로 말하면 이 기습은 준비된 것이다.
아버님이 돌아가시자마자 문주가 될 사람을 향해 날아온 칼날이지 않나.
누군가가 지켜보고 있다가 급습한 것이다.
“누구냐. 나와라.”
허문승이 차게 말했다.
기왕 받을 기습이라면 빨리 끝내고 싶다.
상대방도 암습을 할 생각은 없다. 굳이 살기를 숨기지 않고 있지 않은가. 정면 공격이다. 그러니 숨지도 않을 것이다.
“후후, 역시 소문주. 조명천검을 육성 이상 깨우쳤다고 들었는데, 어디 한번 볼까?”
음성과 동시에 눈밭이 들썩거렸다. 그리고 눈 속에 숨어 있던 네 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음산사마(陰山四魔)!’
허문승의 미간이 짙게 찌푸려졌다.
음산사마는 호북성(湖北省) 음산(陰山)을 근거지로 삼고 활약하던 마두다.
성검문은 음산사마를 토벌했다.
음산사마의 악행이 너무 지나쳤다. 인근 주민들의 탄원이 하늘을 뚫었다.
음산사마는 수하를 모두 잃었다. 모든 것을 다 버리고 간신히 몸뚱이만 도주했다. 그것도 두 번 다시 재기를 못 할 만큼 심한 상처까지 입었다.
하지만 음산사마가 도주했다는 것, 목숨을 구했다는 것, 이것이 중요하다. 성검문이 공격했는데 목숨을 건졌다는 것은 그들 무공이 범상치 않다는 뜻이다.
그때 그 공격을 주도했던 사람이 허문승이다.
허문승은 음산에서 천음마공(天陰魔功)의 흔적을 발견했다.
천음마공은 일 성을 성취하기 위해서 백 명을 살인해야 한다는 말이 있는 악독한 공부다.
사람을 죽여가면서 터득해 가는 마공이다.
사람을 베면서 실전성을 높이는 마학 중 마학이다.
음산사마의 무공이 각기 칠팔 성에 이르렀다고 하니, 적어도 각기 칠팔백 명씩은 죽였다는 뜻이 된다. 네 명이면 거의 삼천 명에 가까운 사람이 죽은 것이다.
음산사마는 살인귀다.
이들은 살인을 전혀 개의치 않는다. 이미 인간이기를 거부한 짐승들이다.
이들이 성검문 비처(秘處)에는 어떻게 들어온 것일까? 어떻게 성검문 경계를 따돌렸나? 이들이 오는 동안 왜 아무도 연락을 하지 않은 것이지?
궁금증은 나중에 파악한다. 일단, 이들을 처리한다.
스읏!
허문승은 오른발을 앞으로 내밀었다. 그리고 양 무릎을 살짝 구부렸다.
오른손으로 검을 잡는다.
손잡이에 엄지와 검지만 살짝 댄다. 두 손가락만으로 발검하려고 한다.
“후후! 네가 비조복개를 쓸 줄 알고 있었다. 다른 초식으로 바꾸는 건 어때? 괜히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음산사마는 비조복개를 알아보았다.
조명천검 중 가장 빠른 쾌검이다. 하늘을 나는 새도 갈라버린다. 배를 가른다. 날아가는 모습 그대로 배를 가를 정도로 빠르고 정확한 검초다.
허문승은 눈을 반개(半開)했다.
뜬 듯, 감은 듯……. 눈을 반쯤 감고 모든 신경을 귀에 집중시킨다.
음산사마는 동서남북 네 방향을 점했다.
전면에 있는 자는 가장 불리하다. 그는 허문승의 검을 바로 마주하고 있다. 반면에 등 뒤에 있는 자는 매우 편안하다. 오직 기습만 신경 쓰면 된다.
반대로, 허문승은 등 뒤에 있는 자를 가장 경계한다.
눈으로 보지는 못하지만, 오감과 육감을 총동원해서 등 뒤의 움직임을 읽는다.
“타앗!”
공격이 시작되었다. 음산사마가 일제히 병기를 휘둘렀다.
전면에 있는 자는 쇠사슬이 달린 철퇴를 사용했다.
쇠사슬에 철추가 달린 형태인데, 쇠사슬이 상당히 길다. 검을 뻗어낼 수 있는 거리, 허문승이 움직일 수 있는 거리, 검권(劍圈) 안에 들어서지 않고도 공격할 수 있다.
좌측에 있는 자는 맥도(陌刀)를 사용한다. 창대에 유엽도 칼날을 붙인 형태로 장병기(長兵器)다.
오른쪽에 있는 자도 장병기, 창을 사용한다.
뒤에 있는 자는 아예 암기를 던졌다. 파공음만 들어도 어떤 암기인지 알 수 있다. 비표(飛鏢)!
이들은 철저하게 접근전을 피한다.
원래 음산사마의 병기는 검과 도끼, 극(戟)으로 알고 있는데, 낯선 병기를 택했다.
그만큼 접근전을 경계한 것이다.
검이 다가올 거리를 주지 않는다. 다가오면 물러서고, 쫓는다. 돌아서면 또다시 거리를 벌리고 공격한다.
이들은 서두르지 않는다. 성검문 안에서 소문주를 공격하는데 전혀 다급해 하지 않는다. 천천히 사냥을 즐기겠다는 투다. 얼굴에 웃음까지 머금고 있다.
또한, 이들의 공격은 천음마공에 기초한다.
병기를 움직일 때마다 비릿한 냄새가 풍긴다.
독(毒)!
병기는 가까이 다가올수록 흐릿해진다. 그리고 지척에 이르면 아예 사라져버린다. 천음마공의 음기가 그림자처럼 번져 나와 병기를 감춰버린다.
“타앗!”
허문승은 미끄러지듯 앞으로 쏘아 나갔다.
무리한 반격처럼 보이는데…… 그는 어느새 이 장을 쭉 미끄러져 나가서 철퇴에 매달린 쇠사슬을 위로 쳐올렸다.
쩌엉!
철추가 끌어올려지듯 위로 쳐들렸다.
묵직한 철퇴가 하늘에서 뚝 떨어졌다. 허문승을 그런 철퇴를 검으로 쳐올렸다. 이 두 힘이 부딪쳤는데 오히려 철퇴가 거침없이 들어 올려진다.
허문승의 내공은 음산사마를 압도한다.
“웃!”
전면에 있던 자가 경악성을 내지르며 눈을 부릅떴다.
스읏! 페엑! 퍽!
검은 들어 올린 철퇴를 옆으로 밀어냈다. 그리고 그대로 허공에서 아래로 낙하하며, 전면에 있던 자를 가로로 그었다.
한 사람이 피식 쓰러졌다.
허문승도 비틀거렸다. 무리하게 공격을 감행하면서 병기에 깃든 독기를 마셨다. 하지만 독기가 발효하려면 시간이 걸린다. 그리고 그 전에 싸움은 끝난다.
츄아악!
허문승의 신형이 허공에 둥실 떠올랐다.
선풍추자(旋風錐子)!
회오리바람이 일어난다. 육신과 검이 회오리바람처럼 빙빙 휘돈다. 검은 송곳이 되고, 몸은 자루가 된다. 검신일체(劍身一體), 검과 몸이 한 몸이 되어서 송곳처럼 쏘아진다.
빠각! 빠가가가각!
창을 들고 있던 자의 머리가 사라졌다.
선풍추자는 머리를 가격했다. 하지만 무섭게 회오리치는 검이 머리를 통째로 분쇄시켜 버렸다.
그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풀썩 쓰러졌다.
허문승의 신형은 잠시도 멈추지 않고 곧장 제삼의 마인을 향해 쏘아졌다.
파앗!
좌측에 있던 자와 허문승의 거리가 단번에 좁혀졌다.
두 사람의 거리는 상당히 멀었는데, 도약 한 번에 바로 검권이 형성되었다.
맥도는 사용하기 힘든 거리, 검은 매우 유용한 거리!
빠깍! 빠가가각!
맥도가 부서졌다. 순식간에 펼쳐진 십칠연검(十七聯劍)이 맥도를 작은 나무토막으로 만들어 버렸다.
스읏!
검이 복부를 그었다.
허문승은 쓰러지는 자를 보지 않았다. 즉시 몸을 돌려서 날아오는 비표를 쳐냈다.
뒤에 있던 자는 비표를 열두 개나 던졌다. 그리고 허문승 일 장 앞에서 감쪽같이 사라졌다. 존재 자체가 눈 녹듯이 쓱 사라져버려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허문승은 날아오는 비표를 정확하게 파악했다.
천음마공의 음기로 형체는 숨길 수 있다. 하지만 철기(鐵氣), 쇠가 뿜어내는 기운은 숨기지 못한다.
쇠붙이가 토해내는 날카로운 예기가 허문승을 자극한다.
탕탕! 탕! 탕탕!
허문승은 비표를 쳐냈다. 그리고 마지막 남은 무인을 쳐다봤다.
그는 이미 자신의 죽음을 예감했다. 오늘이 어떤 날인가? 성검문주가 죽은 날이다. 허문승의 아버지가 죽은 날이다. 그런 날에 찾아와서 급습을 가했다면 그 누구든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평소 인의대협(仁義大俠)이라고까지 불리던 허문승이 가차 없이 살수를 퍼붓고 있지 않은가.
순간, 허문승의 신형이 갈지(之) 자를 그리며 움직였다.
왼쪽으로 가는 듯하더니 오른쪽으로, 오른쪽으로 가는 듯하더니 다시 왼쪽으로 튕겼다. 그리고 어느새 코앞까지 다가와 검을 썼다. 아래에서 위로 쭉 그었다.
“큭!”
마지막 마인이 비명을 내질렀다.
옆구리에서부터 오른쪽 가슴까지 인두로 지지는 듯 화끈한 통증이 치밀었다.
* * *
허문승은 음산사마를 죽이고도 움직이지 못했다.
한 사람이 남았다. 그가 뒷짐을 지고 눈길을 걸어온다.
‘숙부……!’
숙부일 줄 알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날, 이런 일을 벌일 사람은 숙부밖에 없다.
아버지가 병석에 누우셨을 때, 성검문 무인들의 의견은 분분했다.
문주 사후를 대비해야 하는데, 제일 먼저 숙부부터 정리해야 한다는 의견이 상당했다.
특히 동생들은 숙부를 소축에 묶어놓거나 성검문에서 내보내야 한다고 강력하게 강권했다. 숙부와 인연을 끊는 한이 있어도 정리는 깔끔하게 해야 한다고.
모르는 말이다.
암암리에 파악한 바로는, 이미 성검문 실세 중 칠 할이 숙부 손에 있다.
숙부를 향해 눈만 흘겨도 숙부는 검을 들 것이다.
권력으로, 실세로, 무공으로, 인맥으로……. 모든 면에서 상대가 안 된다.
피를 흘리지 않는 유일한 방법은 문주 이양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 이미 어머니와 이견조율을 끝낸 상태다. 성검문에 장자 계승이라는 불문율이 있기는 하지만, 원로들의 동의를 구해서 문주직을 이양할 생각이다.
그런데 숙부가 오늘…… 아버지의 장례도 치르기 전에 뜻을 밝혔다. 아주 처절한 방법으로.
“숙부.”
허도기는 거침없이 다가왔다.
“좋은 검이다. 일 초에 한 명. 일격필살. 네게도 이런 강단이 있었구나.”
“숙부님, 이러시지 않아도 됩니다. 문주직은…….”
“조카야! 무인이지 않으냐! 무인이면 검으로 말해야지!”
허문승은 숙부의 뜻을 분명하게 알았다. 숙부는 자신뿐만이 아니라 동생들까지 모두 제거하려고 한다. 문주를 계승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모든 사람이 척살 당할 것이다.
허문승은 음산사마를 쳐다봤다.
이제야 왜 이들이 자신을 공격했는지 알겠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날, 마인들이 대거 급습해 온 것이다. 그리고 자신을 비롯해서 삼형제는 마인의 칼에 죽은 것이 된다.
문주직을 이양하면 조카 자리를 빼앗았다는 소리를 듣지만, 마인들에게 조카가 죽으면 더욱 강력한 지배력을 가질 수 있다. 칩거를 깨고 무림에 나서는 명분이 된다.
숙부가 검을 뽑았으니 동생들은 죽을 게 확실하다. 어머니는 어떻게 될까?
허문승은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집중! 집중! 집중!
지금은 싸움에 집중할 때다.
허문승은 검을 홱 휘둘러서 검에 묻은 피를 눈밭에 뿌렸다.
숙부는 거침없이 걸어왔다. 허문승의 검은 아예 신경도 쓰지 않는다는 투다.
허문승은 먼저와 마찬가지로 오른발을 앞으로 내밀고 두 무릎을 살짝 구부렸다. 손에 든 검으로는 숙부의 미간을 겨눴다. 새총을 사용하듯 오른손으로는 검자루를 잡고, 왼손으로는 검신을 살짝 받들어 올렸다.
“조카야. 검은 한 번밖에 쓰지 못한다!”
숙부가 웃으며 말했다.
숙부의 무공은 누구보다도 잘 안다. 자신은 상대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최선을 다한다. 최선을 다하면 이길 수도 있다.
온 신경을 검에 집중시킨다.
숙부를 쏘아본다. 솜털이 움직이는 것까지 읽으려고 노력한다.
“간다!”
차앙!
검이 뽑혔다!
순간, 허문승은 그 어느 때보다도 빠르게 검을 쳐냈다. 숙부에게 선제공격까지 허용하면 끝장이다. 전력을 다해서, 후회 없는 일격으로 먼저 치고 빠져나온다.
허문승은 지금까지 이렇게 빠른 공격을 해본 적이 있던가 싶을 정도로 전력을 다해서 검을 내리쳤다.
창!
검과 검이 부딪쳤다.
‘웃!’
순간이지만…… 허문승은 전신에 소름이 쫙 끼쳤다.
숙부는 허문승을 공격하지 않았다. 허문승이 어디를 공격할지 아는 듯 검을 사선으로 비스듬히 세웠다. 몸을 옆으로 숙이고, 검을 들어 올렸다.
까아아아아악!
허문승의 검이 날카로운 마찰음을 흘리며 미끄러졌다. 숙부의 검을 따라서 사선 밑으로 떨어졌다.
그의 검은 숙부를 벗어났다. 왼쪽으로 완전히 벗어났다. 그리고 허문승의 오른쪽이 텅 비었다.
파앗!
당연한 공격, 숙부의 검이 위에서 아래로 곧장 떨어졌다.
검을 사선으로 들고 있으므로 굳이 쳐올릴 필요 없이 내리긋기만 하면 된다.
퍼억!
허문승은 옆구리에 강한 타격을 느꼈다.
“조카야. 아버지를 잘 모셔라. 정 억울하면 지옥에서 한 판 더 겨루고.”
숙부가 눈길을 걸어갔다.
허문승은 푹 쓰러졌다. 쏟아져 나오는 비명을 꾹 눌러 참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