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第二章 역천(逆天) (3)
‘숙부! 틀림없이 움직일 거야!’
허문학(許文鶴)은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그는 숙부를 믿지 않는다. 또 형과 어머니의 우유부단함이 참으로 답답하다. 한심하다.
권력을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
권력은 이양하는 것이 아니다. 쟁취하는 것이다. 권력의 속성은 주는 것이 아니다. 빼앗는 것이다.
형은 권력을 모른다. 어머니도 마찬가지다.
어머니는 성검문 안주인으로 반평생을 살아 봤으면서도 권력의 속성에 대해서 정확히 알지 못한다. 성검문에서는 하루가 멀다고 암투가 일어났는데, 아버지께서 일부러 숨기신 탓이다.
어머니는 성검문이 무사태평한 줄 아신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그렇지, 어머니도 무인인데 어떻게 권력에 대해서 그토록 모르는 것일까? 혈검경(血劍經)의 주인인 혈해검신(血海劍神)의 여식이지 않은가.
어머니께서 권력을 모르는 데는 성품이 한몫한다.
어머니는 성검문 활동에 관심이 없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어머니는 무림과 인연이 없다. 가정만 돌보는 현모양처? 그런 것만 신경 쓰신다.
형은 어머니의 성품을 고스란히 물려받았다. 그러니까 그런 결정을 한 것이다.
숙부에게 문주직을 이양하겠다고? 왜들 그렇게 한심한 생각을 한 건지.
‘숙부는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바로 움직일 거야. 장례가 끝나자마자 바로 들이치겠지. 최대로 남은 시간은 칠일 뿐.’
무림에 문주의 서거를 알린다. 조문객을 맞이하고, 아버님을 가묘에 모시고…… 딱 칠 일이다. 칠일장(七日葬)이 끝나면 틀림없이 숙부가 공격해 온다.
그 전에 막아야 한다. 선제공격을 취해야 한다.
숙부를 공격할 준비는 되어 있다. 호위 무인들을 목숨도 버릴 수 있는 결사대로 구성한 지 오래되었다. 그들의 수가 무려 백 명, 반면에 숙부는 소축십검밖에 없다.
생각만 정리되면 호위무인만 데려가도 숙부를 제거할 수 있다.
숙부를 제거해야 한다. 권력이란 그런 것이다. 형님의 자리를 탐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형님이 문주직에 무사히 오를 수 있도록 뒷정리를 하려는 게다.
벌컥! 벌컥!
허문학은 냉수를 들이켰다.
‘냉정하자.’
마음을 새롭게 다진다. 마음은 얼음처럼 차게, 하지만 결정은 질풍처럼 빠르게.
벌컥! 벌컥!
허문학은 물병을 들어서 단숨에 절반이나 마셨다.
목이 탄다. 갈증이 치민다. 말이 그렇지 숙부를 공격한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근친을 죽여야 한다는 사실이 두렵다.
아버지를 제외하고는 천하제일 무인이나 다름없는 절대 무인을 공격한다는 것도 두렵다.
일이 성공한다면 변명이라도 할 수 있겠지만, 만약 실패한다면, 그때는 형님도 위험해진다.
정말로 공격해야 하나?
‘해야 해. 숙부, 틀림없이 움직여.’
허문학은 결심을 굳혔다, 그런데,
“크윽……!”
허문학은 갑자기 배를 움켜쥐며, 허리를 숙였다.
창자가 끊어질 듯 아프다. 허문학마저 쩔쩔매게 할 정도로 복부에서 극통이 치민다. 그러고 보니 입에서 녹 맛이 난다. 혀로 녹이 잔뜩 슨 쇠를 핥은 느낌이다.
‘단장독(斷腸毒)!’
쇠 맛의 정체를 알게 되자 미간이 확 찡그려졌다.
단장독은 단장초(斷腸草)에서 추출한 독이다. 단장초는 호만등이라고 불리는 식물이며, 단장초를 복용하면 창자가 검게 타들어 가고 달라붙는다.
극심한 복통을 느끼면서 죽는 것이다.
해독약은 있다. 당장 취할 수 있는 조치로는 소금물로 위를 씻어내는 것이다. 위만 씻어내도 큰 효과를 본다. 그 후에 녹두, 금은화 및 감초를 달여서 마시면 해독이 된다.
성검문에는 단장독에 대한 해약이 있다.
단장독은 쉽게 구할 수 있고, 널리 사용하는 독이라서 늘 해약을 준비해 놓는다.
‘이것으로는 날 죽일 수 없어. 힘을 빼 놓으려는 수작. 정작 살수는 지금부터!’
누군가가 공격을 시작했다.
아마도 숙부가 공격을 시작하지 않았나 싶다. 하지만 누가 물병 속에 독을 넣었는지는 짐작하지 못하겠다. 그의 처소로 들어설 수 있는 사람은 호위무인들 뿐이기에.
그러면 호위무인들 중에 숙부 사람이 있는 것인가.
어쨌든 지금부터 공격이 시작된다.
그는 검을 꽉 잡고 방을 나섰다. 그 순간,
쒜엑! 쒜에엑! 쒜에엑!
사방에서 날카로운 파공음이 터져 나왔다.
‘이럴 줄 알았어!’
허문학은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검을 쳐냈다.
타앙! 탕탕! 탕!
두 뼘 길이의 가느다란 철시가 검에 맞고 퉁겨져 나갔다.
‘……이건!’
허문학은 자신을 공격한 철시가 무엇인지 짐작해냈다.
노궁인혼마(弩弓引魂魔) 곽충(郭沖)!
노궁을 쏘아서 무려 일흔두 명을 죽인 살인마다.
그는 적이 많다. 많은 사람이 그를 죽이고자 했다. 노궁으로 일흔두 명이나 쏘아죽였으니 원수가 오죽 많겠나. 하지만 그를 징벌하기가 쉽지 않았다. 공격했던 자들이 되려 일순십시(一瞬十矢)라는 절기에 걸려서 절명했다.
노궁인혼마 곽충을 죽인 사람이 허문학이다.
‘노궁인혼마는 그때 분명히 죽었는데……’
그렇다. 이 화살은 노궁인혼마를 흉내 낸 가짜다. 노궁인혼마가 공격한 것처럼 위장한 것이다.
“숙부!”
허문학은 빈 허공에 쩌렁 고함쳤다.
그의 거처는 구중심처에 있다. 무려 일곱 겹의 경계망을 뚫어야 도달할 수 있다. 노궁인혼마가 아무리 뛰어나도 그의 거처에서 난동을 부리지는 못한다.
숙부다! 숙부가 다른 날도 아니고 아버지께서 운명하신 날에 검을 뽑았다.
쒜에엑!
느닷없이 머리 위에서 파공음이 일어났다.
‘지붕!’
그는 즉시 신형을 돌렸다.
검초를 전개하기는 늦었다. 상대가 누구인지 모르지만, 무척 빠르다. 그래서 검만 살짝 들어 올렸다. 검을 창처럼 쓴다. 검을 휘두르지 않고 검첨으로 상대를 가리키기만 한다.
검은 흉기다. 단지 가리키는 것만으로도 공격과 방어 역할을 충실히 할 수 있다. 시간차만 잘 맞추면 어떠한 절공보다도 뛰어난 절초가 된다.
검극지월(劒極至月)!
그런데 상대방은 조명천검 중 방어 초식인 검극지월을 알고 있다는 듯 대번에 검신을 후려쳤다.
타앙!
검극지월이 단숨에 밀려 나갔다. 그리고 가슴에서 섬뜩한 통증이 느껴졌다.
퍽!
살을 찢는 소리는 나중에 들렸다.
허문학은 미간을 찌푸리면서 상대를 쳐다봤다.
두 명이다. 한 명이 검을 쳐냈고, 또 한 명이 가슴을 쳤다.
두 사람, 안다. 한 명은 진개(塵芥)다. 쓰레기라는 말이다. 숙부가 흘린 쓰레기는 진개가 모두 처리한다. 또 한 명은 점박이다. 목에 커다란 점이 있다.
“크크큿!”
그는 실없이 웃었다.
숙부가 공격한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더는 어떻게 할 수가 없다.
가슴이 쩍 갈라졌다. 그리고 붉은 핏물이 샘솟듯이 흘러나왔다. 화타가 와도 치료할 수 없는 치명타다.
쿵!
그는 썩은 나무토막처럼 쓰러졌다.
* * *
장례를 준비해야 한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무림에 알려야 한다. 형님들은 정신이 없을 테니, 자잘한 지시는 자신이 내려야 한다.
허문기(許文基)는 보전(補殿)을 향해 걸었다.
보전은 성검문과 무림의 연락을 담당한다. 문서에 관한 모든 사무가 이루어진다.
일단 성검문에 문주의 서거 사실을 알리고, 무림에도 기별을 넣으라고 지시하고.
그런데…… 허문기는 우뚝 걸음을 멈췄다.
주위에서 음산한 기운이 일어난다. 늪지대를 걷는 것처럼 습기가 가득 피어오른다. 후덥지근하다. 몸에서 열기도 일어난다. 웃옷을 벗고 싶다.
지금은 겨울이다. 사방에 흰 눈이 덮여 있다.
햇볕이 쨍쨍 내리쬐어서 쌓인 눈이 녹는다면 질퍽거리기는 하겠지만 습기가 가득 피어나지는 않는다. 후덥지근한 느낌이 일어나는 것도 비정상이다.
‘원음독진(元陰毒陣)!’
원음독진은 사파에서 사용하는 기문진(奇門陣)이다.
진의 묘리는 간단하다. 난석진(亂石陣)이다. 미로진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일단 바위 같은 장애물로 발길을 잡아놓고, 곳곳에 뿌려놓은 마약(痲藥)으로 정신을 혼미하게 만든다.
답답함을 느꼈다면 이미 마약에 중독된 것이다.
원음독진에 걸리면 탈진할 때까지 헤매다가 죽는다. 환영을 보는 눈으로 미로진을 헤쳐나온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더욱이 마약에 중독된 상태이기 때문에 자해하기 쉽다.
숙부다! 숙부가 기어이 반기를 들었다!
난석진을 구축하려면 많은 인력이 필요하다. 여러 사람이 진형에 맞춰서 돌을 놓아야 한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까지만 해도 아무 이상이 없던 길이었는데, 느닷없이 난석진이 나타났다. 더욱이 난석진이 펼쳐진 곳은 은옥에서 보전으로 가는 길목이다.
도저히 펼쳐질 수 없는 장소에 원음독진이 펼쳐졌다.
누군가가 방조하지 않고서야 원음독진이 펼쳐질 리 있나. 그리고 이 정도로 크게 방조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한 사람, 숙부밖에 없다.
‘숙부님!’
허문기는 조명신공을 운기했다.
기침단전(氣沈丹田), 기를 가라앉혀서 단전에 모은다.
외부를 쳐다보지 않고 내면만 본다. 기혈을 헤집고 돌아다니는 미약을 한 곳으로 모은다.
미약에 흔들리지만 않으면 미로진은 쉽게 탈출할 수 있다.
모르면 걸려들고, 알면 빠져나올 수 있는 것이 진법이다. 복잡하게 생각하면 너무 복잡하다. 하지만 아는 사람이 보면 너무 간단해서 헛웃음만 나온다.
허문기는 반 각도 되지 않아서 원음독진을 빠져나왔다.
‘이렇게 쉽게 보내줄 리 없고…… 원음독진을 빠져나가는 순간부터 진짜 공격이 시작되겠지.’
허문기는 원음독진 밖으로 발을 내디뎠다. 그때,
쉬익!
어디선가 비침이 날아왔다.
허문기는 간단하게 비침을 퉁겨냈다. 비침 같은 암기에 당할 정도로 약하지는 않다.
그는 비침을 퉁겨내면서 어떤 형태의 비침인지 자세히 살폈다.
비침이 특이한 형태를 띤다. 끝부분이 갈고리처럼 여러 가닥으로 갈라져 있다. 살에 틀어박히면 살을 뭉터기로 떼어내지 않는 한 뽑을 수 없는 비조침(飛釣針)이다.
비조침은 잔악해서 사용이 금지된 암기다.
또 한 가지 놀란 점이 있다. 비조침을 쳐내는 순간 손목이 자르르 울렸다. 비조침에 깃든 내력이 범상치 않다.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막강하다.
허문기가 놀란 점은 막강한 내력 때문이 아니다. 내력 속에 깃든 양강신기(陽綱神氣) 때문에 놀랐다. 아주 익숙한 기운, 조명신공을 사용했을 때 드러나는 기운이다.
비조침을 던진 자, 조명신공을 사용했다!
쒝! 쒝! 쒝!
삼방(三方)에서 검풍이 일어났다.
북쪽, 서남쪽, 동남쪽!
정확하게 삼각 형태를 이루고 검풍이 쏘아진다.
허문기는 즉시 풍차급전(風車急轉)을 펼쳤다.
풍차급전은 조명천검 초식이 아니다. 강호에 널리 알려진 일반적인 초식이다. 팔방풍우(八方風雨)와 흡사하지만, 일격에 전력을 담아서 휘두른다는 점이 다르다.
풍차급전은 중간에 그쳐서는 안 된다. 시작점부터 한 바퀴 휘돌아 제자리로 돌아오기까지 막힘없이 연속으로 검을 그어내야 한다. 그래야 원하는 풍차급전 속도가 나온다.
까앙!
풍차급전은 제일 단계에서 막혔다.
첫 번째 상대와 검을 부딪치자마자 허문기의 검은 더 나아가지 못하고 교착 상태에 빠졌다.
검과 검이 부딪쳐서 서로를 힘껏 밀어낸다. 순간,
퍽! 퍽!
검 두 자루가 몸을 훑고 지나갔다.
서남쪽에서 불어온 검풍은 옆구리를 베었다. 갈비뼈를 베고 들어와서 몸통을 반이나 갈랐다. 동남쪽에서 다가온 검풍은 가슴을 갈랐다. 폐를 가르고 척추까지 베어냈다.
쿵!
허문기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쓰러졌다.
“용골은 이런 것인가? 마약에 중독된 상태인데…… 나 혼자 왔으면 내가 당했을 것 같군.”
한 사람이 중얼거렸다.
“두 명이 왔어도 당했어. 세 명이기에 이긴 거지.”
허문학은 단장산을 경시했다. 허문기는 마약을 가벼이 여겼다. 그런 독에 미처 신경이 돌아갈 여유도 없었지만…… 먼저 중독시키지 않았다면 승부를 장담하지 못한다.
허문기의 검은 정확했다.
마약에 당한 상태가 아니었다면 풍차급전은 성공했을 것이다. 지금과는 정반대로 세 명의 검이 퉁겨 나갔을 것이다. 내력이 절반 이하로 떨어진 상태에서도 호각지세를 이뤘지 않나.
“문주께서 돌아가신 날…… 잘하는 일인지 모르겠네.”
가슴을 가른 자가 중얼거렸다.
그들은 쓰러진 허문기를 쳐다봤다.
허문기의 몸에서 흘러내린 피가 하얀 눈을 붉은색으로 물들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