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第二章 역천(逆天) (5)
동박은 척박한 산골로 돌아왔다.
무척 깊은 산이다.
가장 가까운 마을이 삼십 리쯤 떨어져 있으니 아예 사람 발길이 닿지 않는 곳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고 울창한 수림이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람이 서 있으면 어디에 있는지 환히 보일 정도로 야트막한 나무들만 가득하다.
그래서 깊은 산중인데도 매우 그윽하다.
그곳에 나무와 흙으로 얼기설기 지은 사냥꾼 움막이 있다.
산속에 집 한 채만 덩그러니 지어져 있다.
“키킥!”
동박은 웃었다.
이곳으로 다시 올 줄은 몰랐는데, 어떻게 하다 보니 다시 돌아오게 되었다.
떠날 때는 온통 푸른색이었다. 지금은 흰색이다.
산 전체에 눈이 소복이 쌓여 있다.
원래 이렇게 눈이 많이 오면 인적이 완전히 끊긴다. 외지인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주변 인근 마을 사람들조차도 발길을 들여놓지 못하는 땅이 된다.
눈이 쌓이지 않으면 들어설 수 있나? 들어올 수는 있지만 살아서 나간다고 장담하지는 못한다.
산은 온갖 독물(毒物)로 들끓는다.
길이만 십 장이 넘는 대망(大蟒)은 피부가 두꺼워서 도검(刀劍)이 들어가지 않는다. 사람도 한 입에 삼킬 수 있으며, 놈이 휘감으면 물소도 뼈가 으스러진다.
숲은 거미들의 낙원이기도 하다.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독거미만 삼십여 종이 넘게 서식한다.
그 밖에 늑대, 곰, 호랑이……. 온갖 맹수들이 득실거려서 어지간한 담력이 없으면 눈길도 주지 못한다.
가장 가까운 마을이 삼십 리나 떨어져 있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동박은 들어서지 못할 땅을 지나쳐왔다.
몸이 표범처럼 날렵하고, 다람쥐처럼 빠르고, 곰처럼 강하고, 새처럼 가볍다.
그런 사람들만 눈 덮인 산중을 뚫고 들어설 수 있다.
일홀도를 수련한다는 일홀문의 땅.
졸졸졸!
산굽이를 돌아서자 개울물 흐르는 소리가 들렸다.
사부가 식수로 사용하는 개울물인데, 물소리가 명확하게 들리는 것을 보면 얼음을 깬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다. 얼음이 두껍게 쌓이면 물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멀리…… 사부의 모습이 보였다.
사부가 밖으로 나와서 길게 기지개를 켠다.
“크크크!”
동박은 사부를 노려보았다.
사부는 자신을 데리고 지옥으로 갔다. 그리고 그곳에 내팽개치고 왔다.
싸우지 말라고 했는데, 사람을 만나지 말라고 했는데, 몇 번이고 다짐한 말을 어기고 살인까지 한 것은 잘못이다. 하지만 사부는 제자를 버렸다.
생각 같아서는 기습이라도 취하고 싶다. 사부의 목에 칼을 대고 왜 버렸냐고 캐묻고 싶다. 하지만 동박은 생각과는 전혀 다르게 행동했다.
“사부님!”
동박은 무척 기쁜 듯 온산이 떠나가라 쩌렁! 고함을 내질렀다.
* * *
사모(師母)는 언제 봐도 온화하다.
칠순에 가까운 노인네, 마흔 중반의 사모, 그리고 이제 겨우 다섯 살밖에 되지 않은 딸내미.
정말 비정상적인 가족이다.
사모가 사부 곁에 온 지 칠팔 년밖에 되지 않았다고 하니, 중년에 갓 들어선 여자가 다 늙은 사람을 좋아했다는 소리인데, 이게 말이 되나.
사모가 부족한 사람도 아니다. 아니, 매우 아름답고, 현숙하고, 고고하다.
이런 여인이 왜 사부와 사는 것인가?
사모에게 피치 못한 사정이 있을 거라고 짐작된다. 분명한 것은 사모가 사부를 좋아해서 부부가 된 것은 아닐 것 같다. 눈이 삐지 않았으니까.
“겨울이라 먹을 게 없네. 이거라도 먹어.”
사모가 고구마를 쪄 왔다.
‘이놈의 고구마!’
일홀문 생활은 무척 고달프다. 늘 배가 고프다. 춥고, 외롭다. 솔직히 거지보다도 못한 것 같다.
사부는 음식을 쌓아놓지 않는다.
겨울이 다가오면 겨울 양식을 준비하는 것이 마땅한데, 그마저도 못하게 한다.
생활이 곧 싸움이다.
지금 이 자리에서 적과 싸울 수 있어야 한다. 언제 어떤 자리에서든 싸우고, 버티고, 살아남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디서든 즉시 식량을 구할 수 있어야 한다.
무척 고달프다. 하지만 그것이 곧 일홀문도가 가는 길이니 버티라고 한다.
“비아(飛娥)는?”
“자. 눈이 온다고 하루 종일 밖에 나가 놀더니 피곤한지 초저녁부터 떨어졌어.”
사모가 입을 작게 오므리고 소곤대듯 말했다.
“아, 네.”
동박은 고구마를 먹었다.
사부의 딸답지 않게 비아는 무척 앙증맞다. 예쁘고 귀엽다.
그때, 사부가 말했다.
“고생했다. 그만 가서 쉬어라.”
“네?”
동박은 잘못 들었나 싶어서 되물었다.
사부는 가타부타 말이 없다. 눈을 어둠이 깊어진 회색 하늘로 던지고 있다.
사부가 다시 말했다.
“고생 많았다. 가서 푹 쉬어라. 그런 고생도 언젠가는 도움이 될 테니, 좋은 공부 했다 여기거라.”
참으로 냉정한 말이다.
일홀문도는 같이 모여서 살지 않는다. 산속 여기저기에 뿔뿔이 흩어져서 산다.
동박이 자신의 거처로 가려면 산봉을 넘어야 한다.
오늘 같은 날, 눈이 수북이 쌓인 날, 그 고생을 하고 왔는데 산을 넘어서 거처로 가라니.
동박은 눈을 끔뻑이며 사부를 쳐다봤다.
사부는 말이 없다. 어깨를 힘없이 떨구고, 수심 깊은 얼굴로 겨울 하늘을 쳐다볼 뿐이다.
하룻밤 자고 가도 될 텐데, 자리를 내어줄 생각이 없다.
“……그럼 저는 이만.”
동박은 눈빛을 차갑게 굳히며 일어섰다.
* * *
노인은 밖으로 나가 동쪽을 향해 절을 했다.
일 배, 일 배.
재배를 마친 후에는 묵묵히 서서 동쪽 하늘만 쳐다봤다. 망연히…… 영원히 굳어버린 돌부처처럼 회색 하늘만 봤다.
중년 부인이 나와서 노인의 손을 살며시 잡아주었다.
그래도 노인은 무표정인 채 회색 하늘만 쳐다봤다. 아무 감정도 드러내지 않았다. 아니, 사실은 수백, 수천 가지 감정을 떠올리고 있는 중이다.
허탈, 분노…….
노인이 표출하고 있는 감정은 너무 많고 복잡하다. 그래서 한 가지로 표현할 수가 없다.
모든 감정이 총체적으로 섞이면 무표정이 된다.
지금 노인처럼 분노하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노인처럼 인생무상을 절절히 느끼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모든 최악의 감정이 일시에 회오리친다.
중년 부인은 노인의 감정을 알기 때문에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어떤 말도 위로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단지 손을 잡아주는 정도의 가벼운 위로만 할 수 있는데, 노인의 감정에 비하면 그것조차도 사치스럽게 느껴진다.
성검문주가 죽었다.
노인에게 성검문주는 단순한 벗이 아니다. 성검문주는 아우다. 혈육이다. 피를 섞은 형제는 아니지만, 피보다도 진한 뜻을 섞었다. 세상에서 서로를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들이다.
두 사람은 서로 이십 년이라는 나이 차이가 있었지만, 친동생보다도 더한 우애로 벗을 사귀었다.
그런 사람이 죽었다.
동박이 돌아왔다는 것은 성검문주가 죽었다는 뜻이다.
허도기가 동박을 풀어준 이유는 딱 하나, 일홀문주를 잡겠다는 것이다.
동박은 허도기를 일홀문주에게 안내하는 길잡이다.
다시 말해서, 동박이 돌아왔다는 것은 곧 허도기가 들이닥친다는 뜻이다.
기습하듯이 들이닥치지 않을 수도 있다.
일홀문주 같은 사람에게는 기습이 무의미하다. 정식으로 도전을 하는 것과 기습하는 것에 차이가 없다. 언제든 싸울 준비를 하고 있는 상태이니.
동박만 오고 다른 자들은 눈에 띄지 않는 것을 보면 최소한 기습은 취하지 않은 것 같다.
일홀문주가 몸을 빼내면 어쩌나?
그런 걱정도 하지 않는다. 일홀문은 도전을 피하지 않는다. 감당하기 벅찬 도전이라도 기꺼이 받아들인다. 세상에서 가장 강한 칼을 추구하는 문파가 일홀문이다. 나보다 강한 자에게 죽는 것을 기쁘게 여긴다.
어쨌든 지금쯤 일홀문의 위치가 허도기에게 전달되었을 것이다.
노인은 이럴 경우를 짐작했다. 일홀문의 거처가 세상 밖에 노출되는 것까지 고려하고 동박을 성검문에 꽂아 넣었다.
“참지만 마시고 그냥 말하세요.”
“……허허허!”
노인은 웃기만 했다.
말을 하려고 해도 목이 꽉 막혀서 나오지 않는다. 그만큼 슬프다. 그만큼 허탈하다.
벗의 세 아들은 죽었을 것이다.
벗의 아내도 죽었다.
독사가 숨겼던 독이빨을 꺼내 들었는데 무슨 수로 살겠나. 벗이 죽는 순간, 그들의 죽음은 정해진 것이다.
어떤 점도 용납할 수 없다.
“칼을 쓴 지가 얼마나 됐지?”
노인이 무심히 말했다.
“오래됐죠. 거의 한 이십 년은 된 것 같은데요?”
“그렇게 오래됐나?”
“당신이 나설 만큼 강한 사람이 없었잖아요.”
일홀문은 천하 최강을 지향한다.
성검문주는 천하제일이라는 소리를 들었지만 그런 그도 일홀문주에게는 한발 물러섰다.
그만큼 일홀문주는 강하다.
허도기도 강하지만 일홀문주가 화를 내면 감당하지 못한다.
허도기는 과거 일홀문주를 시험한 적이 있다. 형을 암살하기 위해 함정을 팠고, 더불어서 눈엣가시 같은 일홀문주도 함께 처리하고자 했다.
그가 일홀문주를 잘 몰랐을 때다.
일홀문주 앞에서 마인들은 추풍낙엽처럼 나가떨어졌다. 허도기가 나서지 못할 정도로 절대적인 칼을 뿜어냈으며, 유유히 함정을 뚫고 들어가서 허도강을 빼내 왔다.
그런 경험이 있는데, 또다시 섣부른 행동을 하겠나.
반대로…… 그가 행동했을 때는 일홀문주에 대한 대비책도 세워 놓았다는 뜻이다.
일홀문주를 버려두고 성검문만 장악해서는 두 발 뻗고 자지 못한다.
그러니 틀림없이 공격이 시작된다.
일홀문주가 성검문에 동박을 흘려 놓고 온 것은 분명한 경고다.
성검문주 곁에 자신이 있으니 서툰 행동은 하지 말라는 확고한 질타였다.
동박은 괴롭힘을 당하겠지만 목숨이 위태롭지는 않다.
첫째와 둘째 제자는 이미 일홀도를 얻었다. 절대적인 칼을 손에 쥐었다. 그래서 데려가지 않았다.
일홀도를 얻은 사람은 매우 위험하다.
일홀도는 어떤 경우에도 생포되지 않는다. 칼이 부러지고, 목숨이 끊길망정 사로잡히지 않는다. 그러니 첫째와 둘째를 데려가면 경고가 아니고 전면 공격으로 간주한다.
그래서 아직 일홀도를 얻지 못한 셋째를 데려갔다.
동박이 사로잡힐 것은 이미 예상했던 터이다. 하지만 동박은 이런 모습으로 돌아오면 안 된다. 동박이 제 발로 스스로 걸어와서 어떤 고초를 당했는지 구구절절 설명해서는 안 된다.
성검문 사람이 동박을 압송해 왔어야 한다.
입송해 온 무인이 말했어야 한다. 동박이 성검문에서 어떤 짓을 벌였는지. 동박에 대한 처리를 일홀문주에게 맡길 텐데, 어떻게 처리할 건지.
이것이 순리다.
일이 이렇게 진행되었다면 허도기가 반심을 드러내지 않은 것이다.
문주 곁에 남아서 성검문을 지켜 줄까 하는 생각도 해 봤다. 자신이 허도기의 목줄을 잡고 있으면 피바람이 몰아칠 일도 없다. 문주의 가족을 지키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것은 문주가 원하지 않았다.
부인과 아들이 죽을 게 분명한데, 일홀문주가 스스로 나서서 도와주겠다고 하는데 왜 거부했을까? 아들들이 죽는다는데 아무렇지도 않나?
성검문주 허도강은 무공보다도 냉정한 상황 판단, 사태분석이 뛰어나기로 유명하다. 마인 수천 명에게 둘러싸여도 선승처럼 고요함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까지 말한다.
그런 사람이 판단을 내렸다.
- 그 아이들은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병상에 누운 문주에게 대책이 있을 리 없다. 그런데도 유일한 해결책이나 다름없는 호의를 거절한 것은…… 허도기가 일홀문주를 능가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일홀문주는 승복할 수 없지만, 문주의 판단은 그렇다.
그래서 모든 걸 다 던져 버리고 후일을 도모한 것이다.
문주와 현정 부인은 막내아들이라도 살렸다는 안도감에 편히 눈을 감았을 것이다.
“칼을 갈아야겠어. 녹이나 슬지 않았는지…….”
부인이 노인의 손을 꽉 잡으며 말했다.
“제가 갈아 드려요?”
“아니. 이건 내가 갈아야지. 내가 직접 갈아야 해.”
일홀문주가 힘없이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