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第三章 낙성(落星) (1)
깊이만 삼십 장에 이르는 큰 동굴이 있다.
동굴이 구불거려서 한겨울에도 세찬 바람이 휘몰아치지 않는다. 최소한 비바람은 피할 수 있다.
그곳에 허흔을 남겨 두었다.
일곱 살짜리 어린아이를 혼자 떼어놓았으니, 잔인하다거나 야박하다거나 무정하다고 할 수 있다. 정말 인정머리 없는 처사라고 욕할 수도 있었다.
그래서 허흔의 동의를 구했다.
“혼자 있기 무서우면 집으로 데려가마.”
“할아버지처럼 강한 사람이 되려면 무공이라는 것을 배워야 한다면서요?”
“그렇다.”
“여기서 배워야 하는 거죠?”
“그렇다.”
“그럼 괜찮아요. 여기 있을래요.”
“혼자 있어야 하는데, 괜찮겠니?”
“괜찮아요. 사실, 이런 데 혼자 있은 적 많아요. 어머니, 아버지는 모르지만. 집 뒤에 있는 산에도 꽤 큰 동굴이 있어서 자주 놀러 갔는걸요.”
“그럼 있거라. 당분간 아무것도 하지 말고 푹 놀기만 해라. 그것도 공부니까.”
노인은 허흔을 동굴 속에 남겨 두었다.
* * *
동박이 돌아온 날, 슬픔을 간신히 이겨낸 날, 노인은 늦은 밤인데도 불구하고 허흔을 찾았다.
동굴은 깜깜했다. 하지만 구불거리는 길을 몇 굽이 돌아서자 밝은 불빛이 눈에 들어왔다.
꼬마가 모닥불을 피워놓고 땅을 유심히 살피고 있다.
노인은 허흔 곁으로 다가갔다.
꼬마가 인기척을 느끼고 고개를 들어 노인을 쳐다봤다. 그리고는 이내 환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오셨어요? 웬일이세요? 밤에는 안 오시잖아요.”
“심심해서 들렸다. 뭐 하고 있었니?”
“싸움 구경요.”
“싸움 구경?”
“전갈하고 사슴벌레하고 싸우는데, 사슴벌레가 이겨요.”
“이놈들은 어디서 났누? 이 동굴에 이런 것들도 사나? 밖에서 잡지는 않았을 거고.”
“진작 잡아다 놨어요. 제가 먹이를 주면서 키우는 걸요. 이것들 외에도 다른 곤충들로 많이 잡아놨어요.”
“그래? 좋은 취미를 붙였구나.”
“취미가 아녜요. 싸움 붙이려고 일부러 키우는 거예요. 얘네들에게는 불쌍한데, 제게 큰 도움이 되거든요.”
“도움?”
“얘네들은 모두 자신만의 무기가 있는데, 그게 통하면 이기는 거고, 통하지 않으면 져요.”
“그래?”
노인은 방바닥을 쳐다봤다.
전갈이 배를 깔고 죽어 있다. 전갈의 목 밑 부분은 사슴벌레의 집게발에 만신창이가 되었다.
‘이놈, 정말 천재다!’
노인은 새삼 허흔을 다시 봤다.
세상에 천재는 많다. 네 살에 사서삼경을 모두 읽었다는 천재도 있고, 예닐곱 살에 어른들도 다루기 힘들어하는 병기를 척척 사용하는 천재도 있다.
문무(文武)를 막론하고 천재는 수두룩하게 깔려 있다.
무림에도 천재가 많다.
현재, 무림에서 칼밥을 먹는다는 사람 치고 어렸을 때 천재 소리 한 번 안 들어본 사람이 없다. 오직 인내와 노력만으로 무공을 닦은 사람도 있지만, 거의 ‘근골이 뛰어나서 무공을 배우면 좋겠다’라는 말 정도는 듣고 입문했다.
그러면 그 많던 천재들이 왜 몇 십 년이 지난 후에는 모두 평범해지는 것일까? 모두가 뛰어난 검을 얻어서 천재들의 놀이판이 되어야 하는데, 왜 명성을 떨치는 사람은 몇몇밖에 되지 않나.
재밌는 말이지만 천재성은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사라진다. 나이가 든 후에도 천재성이 남아 있는 사람은 겨우 한두 명의 불과하다. 어렸을 때는 굉장히 뛰어난 천재였던 사람도 성장해서는 평범해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천재적인 능력을 키우지 않아서다.
말이 이상하지 않은가? 문재(文才)라면 계속 학업을 시켰을 것이고, 무공 천재라면 뛰어난 사부 밑에서 낮이고 밤이고 무공 수련을 했을 터이다.
천재적 능력을 드러냈던 분야를 계속 수련했다. 천재성을 계속 키웠다. 그런데 왜 천재성이 사라지나?
천재성은 타고나는 것이다. 자신의 내면에 있는 것이다. 밖에서 수련을 통해 갈고 닦는 것은 아주 작은 도움을 줄 뿐이고, 정작 본인 스스로 발전시켜야 한다.
천재성을 키워줄 사람은 오직 본인뿐이다.
어린아이도 예외가 없다. 스스로 키워야 한다. 천재성이 사라지지 않도록 계속 노력해야 한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발적인 노력, 흥미 지속이다.
무공 천재라고 해도 무공에 관심이 없거나, 하나를 배우면 열을 깨우친다고 해서 자만하거나, 게으르거나…… 무공 증진을 방해하는 모든 요소가 천재성을 죽이는 역할을 한다.
몇 번이고 말할 수 있다. 천재성은 본인 스스로 지극한 관심이 있어야만 사라지지 않는다. 지루함이나 싫증, 고통을 느낀다면 그만큼 사라진다.
허흔은 용골 중 용골, 진골이다. 근골로는 무공 천재다.
하지만 지금까지 무공을 전혀 배우지 않았다.
노인도 허훈에게 무공을 가르치지 않았다. 농가 부부에게서 데려온 지 육 개월이 지났지만, 산을 마음껏 돌아다니면서 놀게 해 주었을 뿐이다.
사실, 이런 놀이조차도 일곱 살짜리 어린아이에게는 대단한 위험하다.
산에는 맹수가 많다. 뱀에게 물릴 수도 있고, 전갈에게 찔릴 수도 있고, 늑대에게 잡아 먹히거나, 낭떠러지에서 떨어지거나, 계곡에서 미끄러질 수 있다.
일곱 살짜리 어린아이에게 깊은 산이란 곳곳에 죽음의 함정이 도사리고 있는 죽음의 땅이다.
노인은 허흔을 철저히 방치했다.
허흔을 학자로 키울 요량이었으면 정성껏 보살폈을 것이다. 하지만 일홀도의 주인이 되게 하려면…… 지금보다 더한 환경 속으로 밀어 넣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으로 여겨야 한다.
마음껏 돌아다녀라.
사실, 마음껏 돌아다니지 못한다. 어린아이는 겁이 많다. 그래서 거의 돌아다니지 못한다. 시간이 지나서 안전하다 싶으면 조금씩 움직인다.
그렇게 움직이는 범위를 넓혀 가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허흔은 처음부터 온산을 뛰어다녔다. 육 개월 동안 안 가본 곳이 없을 정도로 줄기차게 뛰어다녔다.
노인이 한 일이라고는 끼니때마다 밥을 준 것뿐이다.
다른 세 명의 사형들처럼 식사까지 혼자 해결하게 하기에는 아직 너무 어리다. 그래서 밥만 갖다 줬다. 다른 것은 일절 주지 않았다. 물론 가르침도 마찬가지다.
노인이 육 개월 동안이나 허흔을 내버려 둔 것은 허흔이 진정 어떤 것을 원하는지 알고자 해서다.
허흔이 진정으로 무공에 관심이 있어야지만 천재성이 개발된다. 나이가 들어도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성검문주의 자식으로 태어났지만, 용골을 타고났지만 무공에 관심이 없을 수도 있다.
그래서 무공에 관심이 있는지 없는지 살펴봤다.
허흔은 산을 뛰어다녔을 뿐만 아니라 곤충들을 잡아 놓고 곤충들의 생존을 연구했다.
사마귀와 말벌이 싸우는 모습을 뚫어지게 지켜봤다. 개미 떼가 지네를 죽이는 장면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지켜봤다. 뱀과 뱀이 싸우는 모습, 뱀이 뱀을 먹는 모습도 눈 한 번 깜짝이지 않고 주시했다.
- 무공을 가르쳐 주겠다.
- 그거 안 배우면 안 돼요?
- 거짓말. 네 몸과 마음은 이미 무공을 탐하는 중인데 왜 거짓말을 하지?
- 제가요? 전 그런 적이 없는데…….
- 너는 아직 모르겠지만, 네 몸과 마음은 무공을 향해서 이미 열려 있다. 무공을 배우려고 노력하는 중이야. 너 스스로. 이게 중요하다. 무공이란 누가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니다. 자신 스스로 터득해야 한다. 초식이나 심공 등등을 가르쳐주기는 하겠지만, 그것은 사부의 무공이지 네 무공이 아니다. 너 스스로 자신의 무공을 가져야 한다.
허흔을 데려온 날, 그 말을 듣는 순간부터 허흔은 완전히 달라졌다.
허흔은 무공에 관심이 있다. 그리고 허가 진골의 천재성이 눈을 뜨기 시작했다.
곤충들을 잡아 놓고 싸움을 붙이는 행동은 악심(惡心)이다. 하지만 악심을 넘어 측은함을 느끼면서도 지켜본다. 그 속에서 자신만의 싸움 기술을 터득하려고 한다. 곤충들의 움직임을 관찰한다. 싸우는 방식을 배운다.
본인 스스로 싸우는 방식을 찾아내고 있다.
원래는 허흔을 대략 일 년 정도 내버려 두려고 했다. 그 정도는 뛰어다녀야 일홀도를 배울만한 체력이 향상된다. 허흔의 나이가 어린 점을 생각하면 이삼 년 정도 뛰어다녀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 시간이 없다.
성검문 문주의 판단이 맞는다면 허도기의 수련은 노인을 능가했을 것이다. 어쩌면 그에게 칼을 겨누는 것이 삶의 마지막 순간이 될지도 모른다.
지지 않을 자신은 있다. 일홀도는 누구에게도 꺾이지 않는다.
다만, 만일을 위해서 해 놓을 것은 다 해 놓고 미련 없이 칼을 들 생각이다.
“네 이름은 걸(杰)이다. 사람들은 너를 아걸(阿杰)이라고 부를 것이다.”
“제 이름은 흔이인데요?”
“지금부터는 걸이다. 왜? 흔이라고 불리고 싶으냐?”
“제 이름이잖아요.”
“너에게 성을 주마. 서리. 네 이름이 흔이니 성명은 서리흔이다. 이게 네 성명이다.”
“제 성은 강(姜) 씨인데요?”
허흔은 농부의 성씨를 자신의 성씨로 알고 있다.
노인은 아이의 말을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자신의 말만 이어갔다.
“이 서리흔이라는 이름은 허락 없이 사용해서는 안 된다. 네가 일홀도를 얻은 다음에야 사용할 수 있다. 일홀도를 얻은 사람만 사용할 수 있는 성씨가 서리다.”
“…….”
아이가 침묵했다.
눈을 말똥말똥 뜨고 노인을 쳐다봤다. 노인의 말속에 깊은 뜻이 숨겨져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알지 못하지만.
노인이 허흔을 쳐다봤다. 그리고 머리를 만지며 말했다.
“원래는…… 일홀도를 얻은 다음에야 성씨를 말하는 법이지. 그전에는 ‘서리’라는 말을 절대 입에 담지 않아. 넌…… 꼭 일홀도를 얻을 것이다. 그래서 미리 주는 거야.”
“제가 못 얻으면요?”
“영원히 흔이라는 이름은 쓰지 못하는 거지. 서리 성도 마찬가지고.”
아이가 말했다.
“일홀도는 언제쯤 얻을 수 있어요?”
“숫자를 나타내는 단위가 있다. 할(割), 푼(分), 리(厘), 모(毛), 사(絲), 홀(忽). 홀은 십만 분의 일이다. 일홀도란 십만 명 중 한 명만 가질 수 있다는 칼이야. 것도 무림에 적을 둔 무공 천재 중에서 오직 한 명만 가질 수 있지. 그러니 일홀도를 갖고 못 갖고는 확답할 수 없구나. 하지만 이 사부는…… 네가 꼭 얻을 거라고 기대하마.”
“제가 뭘 해야 하는데요?”
“노력.”
“그리고요?”
“없다. 노력만 하면 돼.”
“알았어요. 할게요. 사부님이 일홀도를 가졌다고 말해주실 때까지 아무 생각하지 않고 노력만 할게요.”
“그건 이 사부가 말해줄 수 있는 게 아니다.”
“……?”
“일홀도를 얻으면 네가 스스로 알게 될 거야. 아! 이게 일홀도구나 하고. 하하하!”
노인이 크게 웃었다.
벗을 잃은 슬픔이 조금은 가신다. 아니, 그런 감정을 느끼는 것도 사치다. 허흔은 아버지, 어머니, 형제를 모두 잃었는데 알지도 못하지 않나. 아마도 의부와 의모 역시 죽음을 피하지 못했을 텐데, 그 또한 알지 못하고.
노인은 그들의 죽음을 일부러 말하지 않았다.
지금 아걸은 오직 일홀도를 얻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그 외의 모든 것을 차단한다.
스릉!
노인이 칼을 뽑았다.
“잘 봐라. 모두 십육식(十六式) 백이십팔초(百二十八招)다. 춤 알지? 춤.”
“네. 광대들이 춤추는 것 봤어요.”
“그 춤이라고 생각하고 봐라. 하지만 네가 바로 따라서 해야 하니까 집중해서 봐야 한다.”
“네.”
노인은 환부살도(幻浮殺刀)를 펼치기 시작했다.
광도(狂刀)라고 불렸던 칼 귀신, 제 일대 일홀문주의 일홀도다.
일홀문주는 당대까지 모두 서른여섯 번 자리바꿈을 했다. 노인이 서른여섯 번째로 일홀문을 이어받았다.
노인은 아걸에게 전임 문주들과 자신의 칼, 서른여섯 개를 보여 주려고 한다.
첫째와 둘째, 셋째에게도 보여 줄 생각이다.
사실, 그들은 삼십육도를 보지 않아도 무방하다. 제자들은 각기 자신만의 칼을 가졌다. 다만, 전임 문주들의 칼도 전승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보여준다.
하지만 아걸은 다르다. 이 칼들을 보고 자신의 칼을 완성해야 한다.
스읏! 스으으으읏!
노인은 매우 느린 속도로 춤을 추었다.
환부살도를 춤처럼 느리게, 또렷하게, 기억에 확실히 새겨질 수 있도록 인상 깊게 펼쳤다.
아이는 곤충들의 싸움을 볼 때처럼 눈을 부릅뜨고 지켜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