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第三章 낙성(落星) (3)
첨벙!
차디찬 물에 몸을 담근다.
두껍게 얼어붙은 얼음을 깨고 물속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조용히 눈을 감는다.
청년은 머리가 매우 길다. 여인처럼 길다. 긴 머리를 뒤로 넘겨서 질끈 묶었다. 눈썹은 송충이처럼 굵고 짙다. 눈코입, 이목구비는 또렷하고 굵다.
잘생긴 얼굴이다.
하지만 미남자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청년은 콧수염과 턱수염을 거칠게 길렀다. 피부도 매우 거칠다. 비바람을 고스란히 맞으면서 살아온 사람처럼 야생적인 느낌이 물씬 풍긴다.
사실이 그렇다.
청년은 편안하게 살았던 적이 한 번도 없다. 침상을 사용해 보거나 이불을 써본 적이 없다. 잘 차려진 음식상을 받아본 적도 없다. 좋은 옷감으로 짠 옷도 입어보지 않았다.
오직 야생에서만 살아왔다.
그런 면모가 전신에서 물씬 풍긴다. 가만히 이목구비를 뜯어 보면 잘생긴 얼굴이지만, 전체적인 인상은 매우 난폭해서 말 붙이기도 꺼려진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굉장히 사나운 싸움꾼을 보는듯한 느낌이다.
발가벗은 몸도 상처투성이다. 상처 아닌 곳이 없다. 어깨에는 살점이 떨어져 나갔던 흔적이 있다. 가슴, 배, 등, 다리, 허벅지…… 상처 없는 곳이 없다.
짐승에게 물어뜯긴 곳도 있고 칼에 맞은 상처도 있다.
배에 움푹 들어간 상처가 있고, 등에도 무엇인가에 꿰뚫렸던 자국이 있다. 창에 관통을 당한 것으로 추측된다.
그는 물속에서 눈을 감고 숨을 죽였다.
세상도 죽고 그도 죽었다. 살아있는 생명은 없다. 모두 죽었다. 매우 고요하다. 그때,
사박! 사박!
멀리서 눈 밟는 소리가 들려왔다.
노인이 걸어오고 있다. 청년이 목욕하는 개울을 향해서 곧장 걸어온다.
청년은 눈 밟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리는데도 눈을 뜨지 않았다.
이미 걸어오는 사람이 누군지 알고 있다. 사부다. 그렇다고 반갑다는 내색 같은 것은 하지 않는다. 사부에 대한 존경심이나 예의도 드러내지 않는다.
그는 물에 몸을 맡기고 있다.
사박! 사박!
노인은 계속 걸어왔다. 그러던 어느 순간, 청년이 번쩍 눈을 떴다.
노인과 청년의 눈이 허공에서 얽혔다.
“삼 장이군. 삼 장이라. 이게 네 거리냐? 그간 꽤 많이 벌려 놓았구나. 이젠 제법 칼이 매섭겠어?”
노인이 걸음을 멈추며 중얼거렸다.
“거리를 벌리지 않으면 죽이겠다는데 벌려놔야지 달리 방법이 없지 않습니까?”
청년이 노인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말했다.
“전에는 이 장쯤 됐었나?”
“이 장하고 넉 자는 더 됐었는데, 넉 자는 왜 생략합니까?”
“이놈아! 이장 넉 자나 삼 장이나 내겐 그게 그거야!”
“칼 한 번 써볼까요?”
“자신 있으면 언제든 쓰라고 했지? 그런 걸 물어보고 쓰는 놈이 어디 있어? 왜? 지금 쓰면 승산이 있을 것 같으냐?”
“…….”
청년은 대답하지 않고 사부만 쳐다봤다.
삼 장 거리가 청년이 칼을 쓸 수 있는 거리다.
물속에서 앉은 채로 칼을 쓰면 목숨을 빼앗을 수 있다고 자부하는 거리다.
삼 장이라면 창을 쓰기도 어렵다. 먼 거리다. 한데 청년은 자신 있게 노려본다. 지금 당장 칼을 쓰고 싶어서 안달이 난 사람처럼 눈에서 광망이 터진다.
청년은 몸을 일으키지 않았다. 물속에서 피식 웃었다.
사부에게 반말을 했다.
“칼은 쓰되, 목숨을 취할 자신이 없으니…….”
“이놈아, 시답잖은 소리는 그만하고. 준비해라. 같이 가서 칼 좀 써야겠다.”
“동박이 돌아왔다고 들었습니다. 성검문입니까?”
청년의 눈에 살기가 번뜩였다.
“성검문이 될지 무림 전체가 될지. 일단 가 봐야겠다. 내일 아침에 출발할 테니 그리 알고.”
노인이 몸을 돌렸다.
청년은 다시 눈을 감았다. 몸을 차디찬 물속에 담근 채 고요한 세계로 침잠해 들어갔다.
태어나서 웃어 본 적이 없다. 아니, 많이 웃었다. 한데 주변 사람들이 왜 웃지 않냐고 말한다. 웃는 얼굴은 잊어버리고, 웃지 않는 얼굴만 기억한다.
‘사부가 사형에게 들렀다. 그럼 곧 내게도 오겠군.’
사내가 사슴 다리를 불에 구웠다.
옆에는 다리 하나가 잘린 사슴이 죽어있다. 피 냄새를 맡고 온 늑대 무리가 멀리서 맴돌고 있다.
맹수가 더 강한 맹수를 알아보고 가까이 다가오지 않는 것이다.
사내는 키가 크다. 몸이 날씬하다. 이목구비도 굵직굵직해서 사내답다.
하지만 사내를 보고 무서워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눈동자가, 검은 동공이 항상 위로 쳐들려 있다. 그래서 아무 의미 없이 쳐다보는데도 쏘아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마치 시비를 걸려고 일부러 노려보는 것 같다.
이 눈길에 욱해서 시비를 걸면 바로 사달이 난다.
사내는 칼을 주저하지 않고 사용한다. 그리고 칼을 뽑으면 반드시 목숨을 빼앗는다.
단지 눈빛이 싫다고 시비 걸었다가 죽는 일까지 벌어진다.
- 네놈은 화(火)가 칼까지 물들였구나. 성질을 죽이지 않으면 화염도(火焰刀)에서 벗어나지 못해!
- 벗어날 필요가 있습니까?
- 화염도를 택하겠다는 게냐?
- 안 될 이유가 있습니까?
- 없지. 네 칼인데 누가 뭐래. 네가 화염도를 택하겠다는데 누가 뭐래?
사내가 칼을 들면 화가 나서 길길이 날뛰는 악마처럼 굉장히 난폭해진다. 상대방을 갈기갈기 찢어 놓지 않으면 분이 풀리지 않는다는 듯이 보인다.
칼날이 엄청난 속도로 휘몰아친다. 시작부터 끝나는 순간까지 한순간에 끝난다.
사내를 이길 수 있다고 해도 두렵기는 마찬가지다. 사내가 칼을 써오는 동안 오히려 이쪽에서 반격을 취할 수 있다고 해도 무용지물처럼 여겨진다.
사내는 칼을 맞고도 달려들 놈이다.
배가 찢기고, 다리가 떨어져 나가도 악귀처럼 달려들어서 기어이 한칼을 선물할 것처럼 보인다.
싸움꾼, 피에 굶주린 늑대, 승냥이…… 온갖 난폭한 말들을 다 가져다 붙여도 사내를 설명하기는 부족해 보인다. 그냥 맹수, 건드려서는 안 되는 맹수다.
“고기 좀 드시겠습니까?”
사내가 사슴 다리를 들어서 허공에 건넸다.
“됐다. 네놈 저녁을 뺏어 먹으면 안 되지. 딱 먹을 만큼만 구웠을 텐데.”
“형님을 만나셨다고요? 그럼 제게도 올 것 같아서 조금 많이 구웠습니다.”
얼음을 깨고 목욕을 하던 서리가헌(徐離佳軒), 그리고 사슴을 잡아서 다리를 구워 먹고 있는 서리형개(徐離馨凱)…. 이들은 세상을 예리하게 본다.
세상을 경계한다.
이들에게 어떤 사실을 말해줄 사람은 없다. 이들이 무엇인가를 안다면 스스로 찾아낸 것이다. 스스로 알아낸 것이고, 암암리에 지켜본 것이다.
“성검문입니까?”
노인이 고기를 받지 않자, 서리형개가 사슴 고기를 입으로 가져가며 물었다.
“힘든 싸움이 될 것이다.”
“피라미 정도 베는데 힘들 것까지야.”
“내일 보자.”
노인이 등을 돌렸다. 순간,
파팟!
고기를 뜯어 먹던 서리형개의 눈에서 번갯불이 쏘아져 나왔다.
사부의 허점은! 지금 공격하면?
노인은 세 제자를 키웠다. 하지만 세 제자는 사부를 인정하지 않는다. 동문들도 거부한다. 사형제란 언젠가는 꺾어야 하는 적수일 뿐이다. 사부도 마찬가지, 반드시 넘어야 할 장애물이다. 그래서 존중은 하되, 늘 기회를 엿본다.
이것이 일홀문도가 지닌 숙명이다.
일홀도는 천하 최강의 칼, 사부도 꺾어야 한다. 동문도 이겨야 한다. 천하제일로 우뚝 서야 한다. 본인 스스로, 누구에게도 도움을 받지 않고.
믿는 것은 허리에 찬 칼뿐.
으득!
서리형개는 눈길을 거두고 고기를 뜯어 먹었다.
사부에게서는 허점이 보이지 않는다. 공격할 수는 있지만, 목숨을 취할 수는 없다.
일홀도를 얻었다고 인정받은 지금도 사부는 멀리 떨어져 있는 큰 산이다.
서리형개는 세상을 잊고 오직 먹는 데 집중했다.
* * *
“가헌이와 형개를 데려가게요?”
“그래야지. 나는 허도기에게 집중하기도 바쁠 테니까. 두 아이가 주변 정리를 해주면 도움이 되겠지.”
노인은 아침 식사를 마쳤다.
“차 끓여드릴게요.”
“아니. 차는 조금 있다가 애들이 오면 같이 마시지. 그래도 먼 길을 가는데 찬 한잔은 같이하고 떠나야지.”
“그러세요.”
중년 부인, 남소는 상을 물렸다.
세상에서 제일 귀중한 보배, 목숨과도 바꿀 수 있는 딸, 오비아가 늑대에게 물려 죽은 후인지라 슬픔이 깊어 보였다. 두 눈은 얼마나 울었는지 퉁퉁 부어올랐다.
그때, 문밖에서 목이 쉰 듯한 음성이 들려왔다.
“저 왔습니다.”
서리형개가 왔다.
“들어오거라.”
서리형개는 허락을 받은 후에야 방문을 열었다.
밖에 눈이 펑펑 쏟아진다. 방으로 들어서는 서리형개의 옷에 눈이 잔뜩 묻어있다.
서리형개는 몸에 묻은 눈은 떨어내지 않았다. 그보다 급한 것, 손에 든 칼을 휘둘러서 눈을 털어냈다. 몸에는 눈이 쌓여도 좋지만, 칼은 항상 벨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
그래서 서리형개는 칼집도 사용하지 않는다. 날카롭게 갈아놓은 칼을 칼집 없이 손에 들고 다닌다.
서리형개는 칼에 묻은 물기까지 깨끗이 닦은 후, 문 옆에 칼을 세워 놓았다.
도객이 몸에서 칼을 떼놨다.
사부에 대한 최대의 예의다.
서리형개는 노인 앞으로 다가와 화로에 불을 지폈다.
“차를 끓이겠습니다.”
“그래라.”
“더 사나워진 것 같네. 좀 무뎌져도 좋은데.”
중년 부인이 서리형개를 보면서 측은한 표정을 지었다.
노인와 부인은 제자 세 명을 코흘리개 적부터 보아 왔다. 그러니 친자식이나 다름없다. 더욱이 두 부부는 아이가 없었다. 서리가헌, 형개, 동박은 아무리 사나워도 친자식이다.
서리형개는 웃음기 없는 얼굴로 묵묵히 불을 피우고 화로 위에 찻주전자를 올려놨다.
사박! 사박!
눈 밟는 소리가 들린다.
“사형이 온 것 같습니다.”
서리형개가 차가운 말투로 말했다.
“가헌이가 아침 목욕을 거른 것 같네. 진시(辰時)쯤에나 올 줄 알았는데.”
중년 부인이 활짝 웃으면서 반겼다.
제자는 혼자 떨어져서 독립적으로 생활해야 한다는 일홀문 규칙 때문에 제자들을 자주 보지 못한다. 노인은 자주 보지만 부인은 오랜만이다.
서리형개도 반갑고, 서리가헌도 반갑다. 무척 반갑다.
서리가헌의 발걸음 소리는 문밖에서 멈췄다.
서리가헌이 들어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문밖에 서서 조용히 깊고 가는 숨을 쉰다.
벌컥!
남소가 문을 밀치고 밖을 봤다.
“뭐 해? 빨리 들어오지 않고.”
서리가헌이 묵묵히 두 손 모아서 포권을 취했다. 그러나 집 안으로 들어올 생각은 하지 않는다. 인상을 심하게 찡그리면서 깊은 고민에 빠진 듯하다.
하지만 서리가헌의 얼굴이 워낙 싸움꾼 인상이라서 얼굴에 나타난 작은 변화를 눈치챌 수는 없었다.
“얘는! 우리 사이에 무슨 인사야. 어서 들어와. 갈 때 가더라도 차라도 마시고 가야지.”
부인이 서리가헌을 잡아끌었다.
서리가헌이 집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아주 자연스럽게 옷에 묻은 눈을 털어냈다.
그 순간, 노인은 격렬하게 기침을 쏟아냈다.
“쿨룩! 쿨룩! 쿨룩!”
“컥! 쿨룩!”
부인, 남소도 각혈하듯이 기침했다.
실제로 문주와 부인의 입가에는 붉은 피가 줄줄 흘러내렸다. 몸속에서 터진 핏줄기가 역혈하여 쏟아진다.
“쿨룩! 쿨룩!”
“커억! 쿨룩!”
문주와 부인은 몸에 이상을 느꼈다. 그리고 곧 진기를 운집하여 몸을 살폈다.
노인이 놀란 눈으로 서리가헌을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삼인독(三因毒)……!”