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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홀도-14화 (14/600)

#14화. 第三章 낙성(落星) (4)

저벅! 저벅!

밖에서 발걸음 소리가 또 들린다.

올 사람은 다 왔다. 누가 오는 것인가? 발걸음 소리가 익숙하다. 누군지 알겠다. 동박이다.

“쿨룩!”

노인은 기침을 크게 하면서 미간을 찌푸렸다.

중년 부인은 입가에 묻은 피를 닦으면서 침착하게 두 제자를 쳐다봤다.

서리형개는 여전히 화로를 살피고 있다.

서리가헌은 차가운 눈으로 사부를 쳐다본다.

어떻게 된 영문인지 알겠다. 오늘, 세 제자가 사부에게 검을 들기로 작정한 것이다.

제자가 어떻게 사부를 암습할 수 있나!

그런 말은 하지 않는다. 제자가 사부를 암습할 수도 있고, 사부가 제자를 죽일 수도 있다. 무림이란 이해관계에 따라서 얼마든지 서로에게 검을 겨눌 수 있는 곳이다.

일홀도는 이 모든 벽을 깨부수고 우뚝 서야 한다.

엄밀히 말하면 일홀도는 천하무적, 천하제일이 아니다. 무공 천재 십만 명 중 한 명일 뿐이다. 때에 따라서는 십만 명 중 두 명이 나올 수도 있고, 세 명이 나오기도 한다. 그만큼 희소하다는 것이지, 꼭 십만 명 중 한 명일 필요는 없다.

백만 명 중 한 명이 얻는 칼도 있을 수 있다. 그럴 때는 일홀도가 아니라 일미도(一微刀)라고 해야 한다. 하지만 그런 숫자는 의미가 없어서 생략한다.

사실, 일홀도는 그 누구도 완성하지 못했다.

일홀문주 서른여섯 명 중 진정한 일홀도를 완성한 사람은 아직까지 존재하지 않는다.

노인도 일홀도를 완성했다고 자부하지 못한다.

일홀도를 완성했다고 해서 서리 성을 주고는 있지만, 일홀도에 미치지 못하는 일사도(一絲刀) 정도를 가졌을 뿐이다. ‘이 칼을 가지고 무림을 활보하면 최소한 당하지는 않겠구나’하는 생각이 들면 서리 성을 주었다.

진정한 일홀도를 갖는 것은 일홀문도의 꿈이다.

덜컹!

문이 열리며 키 작고 바싹 마른 동박이 들어섰다.

“하! 벌써 시작하셨네?”

동박은 사부와 사모의 모습을 보고도 놀라는 기색이 없었다. 이럴 줄 알았다는 듯 히죽 웃기까지 했다.

“이거 삼인독인 것 같은데, 맞느냐?”

노인이 침착하게 물었다.

“맞습니다.”

대답은 서리형개가 했다.

삼인독은 세 가지 독이 모였을 때 비로소 독성이 일어난다.

첫 번째 독은 서리형개가 가져왔다. 칼에 묻은 분진이 독이다. 칼을 털면서 첫 번째 독을 퍼트렸다.

두 번째 독은 찻잔에 있다.

서리형개는 차를 끓여서 사부와 사모에게 대접했다.

두 번째 독이 두 사람을 침범했다.

세 번째 독은 서리가헌이 가져왔다. 옷에 묻은 분진 속에 세 번째 독이 있다.

서리가헌과 서리형개도 한두 가지 독은 흡입한 상태다. 하지만 찻잔 속에 든 독이 빠졌다. 차 한 잔만 마시면 서리형개도 중독을 피할 수 없는 상태인 것이다.

하나, 둘, 셋…… 세 가지 독이 하나로 합체되어서 삼인독이 완성되었다.

“너희가 허도기의 비수인 거야?”

중년 부인이 세 제자를 쳐다보며 말했다.

그녀는 침착했다. 중독된 상태인데도 얼굴에 미소를 잃지 않았다.

“그렇습니다.”

서리가헌이 차게 말했다.

“일홀도는 주인 없는 망나니 칼이어야 하는데, 자유분방해야 하는데. 쯧! 너희는 주인을 모셨구나.”

노인이 말했다.

“사부님도 주인을 모시지 않았습니까?”

“……?”

“지우(知友)라는 허울 좋은 이름으로 성검문주의 손발이 되어준 것은 분명히 주인을 모신 겁니다. 그러면서도 허울 좋은 이름을 지키느라 산속에 틀어박혀 사는 것이고요.”

“그런가?”

“그렇습니다. 일홀도는 세상 속에서 날뛰어야 진가가 드러나는 칼입니다.”

“살수도구나.”

“칼의 본성이 베는 겁니다. 칼은 원래 흉기입니다.”

“허허허!”

노인이 웃었다.

칼에 대한 생각은 누구에게나 있다. 그 생각이 자신과 다르다고 해서 가르칠 생각은 없다. 가르침은 일홀도를 완성하는 순간 끝났다. 서리 성을 준다는 것은 곁을 떠나라는 의미다.

두 제자는 서리 성을 받고도 떠나지 않았다.

허도기가 오래전부터 자신 곁에 이들을 심어둔 것이다. 자신이 동박을 통해서 허도기의 동태를 감시한 것이 아니었다. 허도기가 자신을 감시해왔다.

“허도기와는 언제 만난 거야?”

중년 부인이 물었다.

서리형개가 웃옷을 들어 올려 상반신을 노출시켰다.

그의 전신에는 크고 작은 상처가 가득하다. 깊고 얕은 상처들이 거미줄처럼 그어져 있다.

서리형개는 수많은 상처 중 심장에 그어진 상처를 가리켰다.

“조명천검!”

노인이 눈살을 확 찌푸렸다.

검을 찔러 넣는 깊이와 나오는 깊이가 일정하다. 검 끝으로 찔렀으면 검 끝으로 빠져나온다. 일 촌 깊이로 찔렀으면 나올 때도 일 촌 깊이를 유지한다.

노인은 조명천검의 초식을 본 것이 아니다. 조명천검을 유지하는 검리(劍理)를 봤다.

“너도 당했냐?”

노인이 서리가헌을 쳐다봤다.

서리가헌은 대답하지 않았다. 서늘한 눈으로 노인을 쳐다볼 뿐, 꿈쩍도 하지 않았다.

당했다!

허도기는 일찍이 이들을 제압했다. 자신의 수족으로 만들었고, 지금과 같은 상황을 그려냈다.

이런 것을 까마득히 몰랐다니.

“한 시진 정도 시간이 필요하다. 오늘 정오, 죽봉(竹峰)에서 너희 칼을 보자.”

“킥킥! 사부, 삼인독은 해약이 없어요. 그래도 칼다운 칼을 쓰려면 지금이 나을 텐데. 이따가 정오면 칼 들 힘도 없을 거예요. 아! 그건 그렇고, 이제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그동안 제게도 종이 한 장 주시죠?”

서리 성을 달라는 소리다.

노인이 빽 소리쳤다.

“이놈아, 네 칼은 시정잡배도 받아낼 수 있어!”

* * *

문주와 부인이 서로에게 의지해서 비틀거리며 걸었다.

두 사람은 죽봉이라고 불리는 정상에 오르는 것도 힘들어 보였다.

삼인독은 굉장한 극독이다. 펄펄 날뛰는 황소도 촌각 만에 쓰러트린다는 맹독이다.

그런 독에 중독되고도 두 시진 동안이나 목숨을 부지하고 있다는 것이 기적이다. 하물며 두 사람은 산 정상을 향해 한 발, 한 발 힘겹게 떼어놓았다.

산을 오를수록 피가 빨리 돌고, 독기는 강렬해진다.

“후회, 없으세요?”

“후회가 왜 없어. 없을 수 없지. 잠깐 눈 돌린 탓에 이 지경이 되었는데.”

“그 아이가 정말 진골이에요? 제 눈에는 가헌이나 형개가 더 강해 보였어요.”

“진골은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법이야. 오죽했으면 허도기가 몰랐을까. 아이가 진골이 아니라 용골 정도만 되었어도 흑방 살수들은 진작 죽었어.”

“그러니까요. 제 눈에는 지금도 그 아이, 매우 평범해 보여요. 도저히 가헌이나 형개를 상대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하물며 허도기는…….”

부인이 말끝을 흐렸다.

아이는 이제 겨우 일곱 살이다. 그러니 함께 살지도 않았던 부모의 죽음 같은 것은 잊어버리고, 이대로 평범하게 사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

“우리 비아는 결국 살수가 되겠네.”

“그곳밖에 맡길 곳이 없었어요.”

“그걸 왜 모르나. 알지. 다만 고사리 같은 그 손에 피를 묻힐 생각을 하니 안쓰러워서 그러지.”

두 사람은 주거니 받거니 이야기를 하며 정상에 올랐다.

정상에는 이미 서리가헌과 서리형개가 올라와 있었다.

동박은 두 사람 뒤에서 불쑥 나타났다. 두 사람이 혹여 다른 꿍꿍이를 부릴까 봐 미행까지 했다. 물론 문주는 미행 사실을 진작 알고 있었고.

스릉! 스릉! 스릉!

칼들이 뽑혔다.

서리가헌은 칼을 뽑은 후, 자세를 낮게 가라앉히고 칼끝에 정신을 모았다.

서리형개는 칼을 뽑을 필요가 없다. 그는 칼집 없는 칼을 축 늘어트리고 있다.

동박도 칼을 뽑았지만, 그를 주시하는 사람은 없다.

남소는 싸움에서 비켜섰다.

이 싸움은 일홀문의 싸움이다. 특히, 문주의 마지막 싸움이다. 그러니 간섭해서는 안 된다. 조금이라도 살 수 있는 가망이 있다면 간섭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죽음이 너무도 극명한 상황이지 않은가. 마음껏 싸우게 하자.

스읏!

문주가 칼을 엇비슷하게 잡았다. 왼쪽 아래에서 위로 비스듬하게 후려칠 기세다.

단 일합(一合)!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는다. 손을 쓰는 순간에 승부가 결정된다. 칼과 칼이 부딪칠 수도 있지만, 아마 양쪽 모두 부딪침 없이 필살초(必殺招)를 쓸 것이다.

자신의 안위는 생각하지 않는다. 오직 상대만 공격한다.

팟!

서리가헌이 먼저 신형을 쏘아냈다.

일탄십검(一彈十劍)!

파라라랑! 파라라락!

칼이 허공에 난무한다. 거문고 줄을 한 번 튕겨내는 동안 십검을 전개하는 빠름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쉬이잇!

서리형개도 달려들었다.

서리형개는 좌우로 보법을 밟는다. 왼쪽으로 가는 듯하더니, 오른쪽으로 간다. 또 오른쪽으로 가는가 싶으면 어느새 왼쪽으로 돌아서 있다.

서리형개의 보법은 늑대가 산비탈을 치달려 오는 모습과 흡사하다. 비탈길을 뛰어 내려오는데도 속도가 줄지 않고 오히려 달릴수록 더 빨라진다.

팟! 쉿!

칼이 서로를 스치며 지나갔다.

“크윽!”

서리형개가 먼저 복부를 움켜잡고 털썩 쓰러졌다.

움켜잡은 배에서는 붉은 핏물이 졸졸 흐르는 계류처럼 쏟아져 내린다.

상당히 크게 다쳤다.

서리형개만 다친 게 아니다. 서리가헌도 칼에 맞았다. 칼이 이마를 찢고 지나갔다.

피가 주르륵 흘러내린다.

하지만 서리가헌은 비명을 지르지 않는다. 어금니를 꽉 깨물고 피가 전혀 묻지 않은 칼을 내려다봤다.

‘대단한 사람!’

경탄이 절로 튀어나온다.

사부는 삼인독에 중독된 상태다. 내력을 평소의 절반밖에 사용하지 못한다. 그런 상태에서도 일탄십검을 피해냈다. 둘째의 삼도일살(三刀一殺)까지 깨트렸다.

서리가헌의 칼 든 손에서 파르르 경련이 일어났다.

사부의 칼은 사도(死刀)다. 사부가 칼을 써서 죽이지 못한 사람이 없다. 또한, 사부와 칼을 맞댄 사람치고 살아있는 사람이 없다. 죽음의 칼, 사도다!

한데 자신들은 살아있다.

사부가 삼인독에 중독되어서 칼날이 무뎌진 것인가? 아니다. 사부가 손속에 사정을 남겼다. 처음으로…… 사도가 깨졌다. 본인 스스로 사도를 깨트렸다.

동박? 동박은 싸움에 가담하지 않았다. 칼을 뽑기는 했지만 정작 싸움이 벌어지는 순간에는 뒤로 주춤 물러섰다. 양쪽에서 뿜어내는 일홀도의 기세에 짓눌려 버렸다.

확실히 동박은 일홀도를 얻지 못했다.

“내 칼에 패했다고 인정하라는 소리는 하지 않겠다. 한데 하나만은 명심해야 할 거야. 내 칼도 막지 못했다면, 허도기 검은 더더욱 막지 못한다. 이미 허도기 검을 겪어봐서 알겠지만, 백 년이 지나도 너희가 꺾을 수 있는 검이 아니다. 이 점만 명심하고…… 허도기 개만은 되지 마라.”

서리가헌은 입도 벙긋하지 못했다.

스읏!

한 사람이 모습을 나타냈다.

그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면서 다가온다. 불곰이 숲을 거닐 때처럼 느릿느릿 걷는다.

허도기가 왔다. 직접 왔다. 소축십검을 대동하지 않고, 어떤 수하도 거느리지 않고 단신으로 찾아왔다.

스읏!

허도기 앞을 남소가 막아섰다.

“선배는 여전히 예쁘오.”

“넌 여전히 사악하네. 삼십 년이 흘렀으면 개과천선까지는 바라지 않아도 조금 착해질 수는 없는 건가?”

“그렇게 심한 말을. 면전에서.”

“그렇다고 얼굴 붉힐 사람도 아니잖아?”

“하하하! 선배 입담을 누가 당할까.”

남소가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너희 할 일은 끝났지? 그럼 그만 내려가. 너희 앞에서 추한 모습 보이기 싫구나.”

그녀가 세 아들, 세 제자에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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