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일홀도-16화 (16/600)

#16화. 第四章 십오년(十五年) 후(後) (1)

삐이걱……!

나무문이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열렸다.

순간, 마구간 특유의 건초 냄새와 말똥 냄새가 와락 콧속으로 밀려들었다.

여인의 눈살이 살짝 찌푸려졌다.

이런 냄새에 익숙해질 정도로 마구간을 많이 들락거렸지만 좀처럼 적응되지 않는다.

말똥 냄새는 언제 맡아도 고약하다.

냄새보다 더 싫은 것도 있다. 지저분한 것이다. 말을 빌릴 때는 깨끗한 말을 건네받기 때문에 모르지만, 마구간에 들어와 보면 온통 똥 천지다. 발을 디딜 엄두가 나지 않는다.

이곳도 다른 곳과 별반 다르지 않겠거니 생각했다. 그런데,

‘응?’

그녀는 찌푸리던 눈살을 더욱 깊게 찡그렸다.

이상하다? 이곳은…… 깨끗하다!

마구간 특유의 냄새는 숨기지 못하지만, 이제 막 신축한 듯 매우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다.

그녀는 마구간을 쓱 둘러봤다.

말 스무 필 정도가 좌우 마사에 갇혀 있다. 마사 하나에 말 한 마리씩 구분해 놨다.

다른 곳은 이렇지 않다. 대부분 한 마사에 말들을 모두 몰아넣고 기른다. 그러면 먹이를 주기도 쉽고, 오물 묻은 짚단을 갈아 주기도 편하다.

마사 하나에 말 한 마리씩 나눠 놓으면 말 관리는 잘되겠지만, 손이 무척 많이 간다.

그런데도 마구간을 쭉 가로지르는 땅에서는 오물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매우 깨끗하다.

‘마동(馬童)을 많이 쓰는 마방(馬房)인가?’

여인은 말을 살폈다.

모두 건강해 보인다.

볼에 살이 통통하게 올라 있다. 털에서도 윤기가 자르르 흐른다. 무엇보다도 말이 깨끗해 보인다.

말을 고를 필요가 없다. 어떤 말도 괜찮아 보인다.

스읏!

그녀는 마구간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말, 황색보다는 조금 더 짙은, 갈색에 가까운 말을 골랐다.

힘이 넘치는 게 잘 달릴 것 같다.

말을 골랐으면 망설일 것이 없다. 빨리 이곳을 빠져나간다. 최대한 빠르게.

그녀는 마사 문을 열기 위해 크게 한 걸음 내디뎠다. 순간,

“앗!”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경악성을 쏟아내며 비틀거렸다.

발이 문지방에 걸렸다.

그녀는 매우 당황했다.

아무리 마음이 급해도, 문지방에 걸려 넘어질 뻔했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그녀는 발목에 차인 것을 쳐다봤다.

문지방이 아니다. 작은 나무토막이다. 나무토막이 왜 문 앞에 박혀 있는지 모르겠는데, 땅에 깊숙이 박혀 있다.

‘내가 왜 이걸 못 봤지?’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도 바늘을 찾아내는 안목이다. 바닥에 유리가 가득 깔려 있어도 밟지 않고 걸을 수 있다. 그 정도 수련은 했다고 자부한다.

한데 나무토막 하나를 발견하지 못하고, 덜컥 걸려 버렸다니.

‘내가 너무 당황했나 보네. 서두르지 말자. 서두르면 죽어. 마음을 차분히 가다듬고.’

그녀는 바닥에 꽂혀 있는 나무토막이 또 있는지 살펴보았다.

없다. 이번에는 확실하다.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다른 것이 있다. 아주 위험한 것!

스릉!

그녀는 즉시 검을 뽑았다. 그리고 찰나의 틈도 주지 않고 어둠을 갈랐다.

파라라락!

후덥지근한 공기를 차디찬 검 바람이 갈랐다.

쉬잇! 척!

그녀가 뻗어낸 검에 한 사내의 목이 걸렸다.

“훅!”

사내는 깜짝 놀란 듯 헛바람을 토해냈다.

사내는 마구간 한구석에 짚단을 깔고 누워 있었다.

마구간 창살을 통해서 달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누워 있는 사내의 얼굴을 환하게 밝혔다.

봉두난발, 때에 가득 절어 있는 얼굴, 누더기나 다름없는 옷, 지독한 말똥 냄새…….

마구간에서 일하는 일꾼이다.

여인은 싸늘하게 물었다.

“누구냐?”

“아, 아걸.”

일꾼이 얼떨결에 대답했다. 잠을 자다가 난데없이 봉변을 당한 표정이다.

아걸(阿杰)…… 평범한 이름.

“일어나!”

일꾼이 엉거주춤 일어나 앉았다.

“안장 얹어!”

스읏!

일꾼은 군말 없이 마구(馬具)가 걸려 있는 벽으로 걸어갔다.

비칠! 비칠!

일꾼은 비루먹은 망아지처럼 힘겹게 걷는다. 움직이기 싫은데 마지못해서 움직인다는 듯 상당히 귀찮아한다. 정말로 힘이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걷는 모습만 보면 사흘 동안 피죽 한 그릇도 제대로 먹지 못한 듯하다.

여인은 검을 내렸다.

원래는 죽일 생각이었다.

- 목격자는 반드시 죽여라!

지금까지 그렇게 배웠고, 행해 왔다. 자신을 본 자, 자신이 하는 일을 지켜본 자…… 목격자는 모두 죽인다. 그들에게 동정을 베풀면 베풀수록 잡힐 가능성이 커진다.

하지만 이번에는 검을 거뒀다.

일꾼 모습이 너무 비루해서일까? 좌우간 죽일 가치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어차피 조금 있으면 이곳에도 활검문(活劍門) 문도가 달려올 것이다. 그들은 당장 말이 없어진 것을 알게 될 것이고, 마구간 말을 추격할 것이다.

일꾼을 죽인다고 해서 하등 달라질 것이 없다.

일꾼이 능숙한 솜씨로 마구를 챙겼다.

“말은……?”

일꾼이 여인을 쳐다보며 물었다.

어떤 말에다가 안장을 얹을 것이냐고 묻는 것이다.

“쟤.”

여인은 점찍어 두었던 말을 가리켰다.

흐느적! 흐느적!

일꾼은 보는 사람마저 기운 빠지게 만드는 걸음걸이로 여인이 가리킨 말에게 걸어갔다.

무거운 마구를 들고 가는데, 이런 일에 익숙해서인지 전혀 불편해 보이지 않았다.

척!

일꾼이 말에 안장을 얹었다.

그때 마구간 밖에서 비칠거리며 한 노인이 걸어왔다.

마당을 가로질러 오는 노인이 달빛에 비쳤다. 등에 볏짐을 한 짐 지고 힘들게 걸어온다.

노인은 곧장 마구간으로 다가왔다.

꾸욱!

여인은 다시 검을 움켜잡았다.

‘뭐야? 오늘은 왜 이렇게 걸리적거리는 것이 많지? 겨우 마구간에서 말 한 필 훔치는 건데……. 마동만 해도 께름칙한데 이자는 또 뭐야?’

살려 주려고 했는데…… 역시 죽이는 게 나을까? 한 명이면 살려 주겠는데, 목격자가 두 명이나 생겼으니…… 죽이는 게 낫겠다.

삐걱!

노인이 반쯤 열려 있는 문을 거칠게 활짝 열어젖히며 마구간 안으로 들어섰다.

“이놈아! 이런 건 네가 해야지! 다 늙은 내가 이런 것까지 하랴! 이 문드러져 죽을 자식아!”

노인은 마구간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대뜸 고함부터 내질렀다.

그때, 어둠 속에서 찬바람이 밀려왔다. 노인의 목에 검이 닿았다.

“헉! 이, 이게 뭐야!”

노인은 깜짝 놀라서 쿵! 엉덩방아를 찧으며 주저앉았다.

스읏!

검이 노인을 따라 아래로 겨눠졌다.

노인은 벌벌 떨기만 할 뿐, 입을 열지 못했다. 그저 눈만 끔뻑일 뿐이다.

마구간에서 일하는 노복(老僕).

역시 몰골이 말이 아니다. 비쩍 말라서 뼈만 남은 몸에, 다 떨어진 넝마 옷을 입고 있다. 흰 머리는 거칠고 빳빳하며, 깊게 팬 주름 속에는 고된 세월이 담겨 있다.

불쌍하기 짝이 없다. 오늘은 왜 이렇게 모두 불쌍해 보이는지 모르겠다.

“……안으로 들어가!”

“네, 네네.”

노복이 겁에 질려서 엉덩 걸음으로 물러섰다.

“빨리해!”

여인이 일꾼을 재촉했다.

일꾼은 노복을 쳐다보고 있다가 재촉을 받고는 급히 손을 놀리기 시작했다.

안장을 단단히 묶었다. 등자도 고정했다.

그때, 노복이 뜻밖의 말을 했다.

“저기 저……. 그놈보다는 이 말이 더 좋은데. 이 말이 두 배는 빨리 달립죠.”

노복이 슬쩍 안쪽에 있는 말을 가리켰다.

여인은 뜻밖의 말에 노복이 말한 말을 쳐다봤다. 하지만 곧 눈살을 찌푸렸다.

노복이 하는 말을 믿을 수 없다. 노복이 가리킨 말은 빼빼 말라서 한눈에 봐도 쓸모없는 말로 보인다. 힘도 없고, 멀리 달릴 수도 없을 것 같다.

하지만 눈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눈! 말의 눈!

깊은 어둠 속에서도 반짝반짝 빛나는 큰 눈.

다른 말에서는 볼 수 없는 눈이다. 어린애 눈처럼 맑고 투명하다. 빛이 뿜어진다.

가만히 보니 까만 털에서도 윤기가 흐른다.

말을 잘 먹이지 않아서 말랐고, 씻기지 않아서 윤기가 제대로 드러나지 않지만 좋은 말이 틀림없다.

명마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흑마(黑馬)였다.

“말 바꿔!”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말했다.

“저기.”

일꾼이 떠나려는 그녀를 불러 세웠다.

“뭐야?”

그녀는 날카롭게 물었다.

이자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행운아인지 모른다. 지금 자신들이 지옥을 두어 번쯤 갔다 왔다는 사실을 까마득히 모르고 있다. 아니, 지금도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지 않는다.

“그놈…… 살려만 주십쇼.”

“뭐?”

“그놈 살려만 주시면 어디에 버리든 여기로 돌아옵죠. 그러니 나중에 죽이지만 마십쇼.”

‘……명마다!’

여인은 일꾼의 말에서 비루먹은 말의 가치를 파악했다.

일꾼은 비루먹은 말을 매우 아낀다. 죽이지 말라는 말에서 진정이 느껴졌다.

아주 뛰어난 말이 틀림없다.

“알았어. 죽이지는 않을게.”

여인이 말 등에 올라탔다. 그리고 힘차게 등자를 걷어찼다.

“이럇!”

히히힝! 두두두두두!

비루먹은 말이 힘차게 치달리기 시작했다.

* * *

“저 여자 어떠냐?”

노복이 이상한 말을 했다. 그것도 아주 태연히.

“잘 배웠네. 몸이 가볍고, 검초도 좋고.”

마동이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무신경하게 말했다.

“그런 말이 아니잖아! 지금 밖에서는 난리가 아니다. 활검문 놈들, 불이란 불은 다 켜 놓았어. 장원이 환하다니까. 저쪽은 산불 난 것처럼 환해.”

노복은 활검문이 위치한 동쪽을 가리켰다.

“활검문을 건드린 거야?”

“내야 모르지.”

“왜 이래? 알잖아. 누굴 건드린 거야?”

“정말 모른다니까! 활검문이 저 난리를 치고 있다면 뻔하잖냐? 우리 마방에서 말을 훔치려고 하겠지. 그래서 혹시나 하고 슬쩍 와 본 거야.”

“흑구(黑狗)를 내주려고?”

“내주긴 누가 내줬다고 그래! 그저 흑구가 좋다고 했지. 그리고…… 흑구가 네 거냐! 주인어른 거야! 정신 차려, 이놈아! 여기서 네 것이 하나라도 있는 줄 알아?”

밤이 매우 깊었다. 말 먹일 시간이 아니다. 볏짚을 나를 시간도 아니다. 노복이 마구간을 찾을 이유가 전혀 없다. 활검문에서 난리가 난 것을 보고 일부러 찾아온 것이다.

그동안 활검문이 이런 일을 한두 번 당한 것이 아니었다.

동승(東升)이라는 도읍은 길이 사방으로 쭉쭉 뻗어 있다. 관도(官道)만 세 개가 겹친다. 그러니 탈출로를 생각할 때, 제일 먼저 말을 떠올린다.

당연히 활검문도 이런 도주에 대비하고 있다.

이미 모든 길목이 차단되었을 것이다. 궁수들이 배치되었을 것이고, 말을 타고 이동하는 자는 누구든지 수색할 것이다. 수색을 거부하면 가차 없이 사격할 것이고.

일꾼이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후후, 그래도 안 돼. 흑구를 내줬어도 저 여자는 도망 못 가. 제대로 배운 건 맞는데, 활검문을 상대하기에는 부족해.”

“흑구가 저 여자를 구해 오면?”

일꾼이 노복을 쳐다봤다.

“안 된다니까. 흑구가 빠르기는 해도…… 응? 이상하네? 오늘 무지 신경 쓰는데…… 저 여자 누구야?

“킥킥! 내가 이번에는 느낌이 좋거든. 그래서 판돈 모두 걸었다는 거 아니냐. 만약 흑구가 저 여자를 구해 오지 못하면 내 깨끗이 포기하마. 그때는 네 마음대로 살아!”

노인이 의미 모를 미소를 지으며 웃었다.

“좌우지간 노인네가 짬만 나면 사고 친다니까. 내 이러니 한시도 방심하지 못하지.”

일꾼이 투덜거렸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