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일홀도-20화 (20/600)

#20화. 第四章 십오년(十五年) 후(後) (5)

“아이고! 저희 말은 아무 이상 없는뎁쇼. 밤새도록 꿈쩍도 안했습니다요.”

밖에서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인은 아주 작은 나무 틈새로 마구간 동정을 살폈다.

나무 침상은 밑으로 푹 꺼졌지만, 그녀가 누워 있는 곳에 아주 작은 틈이 벌어져 있다.

마구간 상황 정도는 살필 수 있다.

마동은 한쪽 구석에 앉아서 작두날을 간다. 커다란 작두날을 숫돌에 얹어놓고 쓱쓱 간다.

여인을 치료한 흔적은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살펴보긴 해야지.”

“보여 드리기야 얼마든지 보여 드립니다만, 제가 오늘 아침에도 확인했는데 별일 없었거든요.”

삐걱!

마구간 문이 열리며 낯선 사람 세 명이 들어섰다.

한 명은 마방에서 일하는 장한인 듯하고, 다른 두 명은 손에 검을 든 활검문도다.

“하! 여기는 항상 깨끗해. 아마 동승에 있는 마구간 중에서 제일 깨끗할 거야.”

활검문도 중 한 명이 마구간을 보며 말했다.

“그러게. 어이! 아걸, 뭐 하고 있어!”

활검문도는 아걸을 아는 듯 인사를 건넸다.

아걸은 고개만 까딱거렸다.

“저놈은 언제나 건방져. 저거 언제 한 번 걸리면 크게 혼쭐을 내줄 텐데.”

“아휴! 내버려 두십쇼. 저놈 성격이 원래 저러잖습니까? 말부터 살펴보시죠.”

마방 장한이 두 손을 싹싹 비비면서 말했다.

활검문 무인들은 마사에 있는 말들을 살펴나갔다. 대충 보는 것이 아니다. 한 마리씩 꼼꼼히 살핀다. 앞쪽부터 뒤까지…… 맨 뒤 마사에 있는 흑마도 살폈다.

“없지?”

그들이 말했다.

흑마를 알아보지 못한다.

하기는…… 어제의 흑마와 오늘의 흑마는 완전히 다르다. 어젯밤에는 눈빛을 반짝반짝 빛냈는데 오늘은 왠지 흐리멍덩하다. 같은 말이 아니다.

“얘는 왜 여기 있는 거야?”

활검문도가 흑마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러게. 이놈은 여물도 안 먹여? 왜 이렇게 비쩍 말랐어? 병이라도 든 거야?”

“씨가 좋지 않아서 그렇지 않겠습니까요. 똑같이 먹이는데도 영 살이 찌지 않으니……. 너무 말라서 팔지도 못하고. 그러잖아도 곧 폐기처분을 할 생각입죠.”

“치우려면 빨리 치워. 이놈 때문에 다른 놈들까지 품위가 떨어져 보이잖아. 다른 놈들은 다 튼실한데, 어떻게 이놈만. 이놈 몸에 구더기 붙은 것 좀 봐. 에휴!”

“어! 그러게요? 야! 이놈 안 씻길 거야!”

마방 장한이 마동에게 소리쳤다.

마동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고개조차 돌리지 않고 묵묵히 숫돌에 작두날을 간다.

“에휴! 저놈의 새끼, 저거.”

마방 장한이 답답한 듯 한숨을 내쉬었다.

“가시죠. 저놈한테 신경 쓰면 괜히 피곤만 하다니까요. 오랜만에 오셨으니 화끈하게 한잔! 어떻습니까?”

장한이 활검문도를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휴우!’

그녀는 쏟아져 나오려는 한숨을 참았다.

활검문도가 온다고 해서 바싹 긴장했는데…… 의외로 쉽게 해결된 것 같다.

흑마를 알아보지 못한 게 천운이다.

‘그러나저러나, 저자는 뭐지?’

그녀는 나무 틈새로 작두날을 갈고 있는 마동을 쳐다봤다.

흑마나 마동이나 똑같다. 어떤 때는 반짝반짝 빛나다가도 어떤 때는 흐리멍덩하다. 어제의 흑마와 오늘의 흑마가 다르듯이, 아까의 마동과 지금의 마동이 완전히 다르다.

지금의 마동은 정말 볼품없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신경 쓸 필요가 없는 평범한 마구간 일꾼에 불과하다.

누가 저 마동을 보고 활검문도의 손에서 살수를 빼돌리는 자라고 생각하겠는가. 그를 잘 아는 자나, 이제 처음 보는 자나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지 못한다.

그때, 마구간 밖에서 두런거리는 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마구간으로 들어서는 발걸음 소리도 울렸다.

“글쎄, 보나마나라니까요.”

“아니야. 아까 그놈이 신경에 거슬려. 술도 좋지만 일은 해야지. 살수 놈을 놔줘서야 말이 되나.”

방금 다녀간 활검문도다.

“보여 드리는 거야 뭐 몇 번이고 보여 드릴 수는 있는데, 괜한 시간 낭비라니까요. 비어 있는 마사가 하나도 없잖습니까요. 말이 없어졌으면 없어졌다고 말씀을 드리지 왜 숨기겠습니까요.”

마방 장한이 말했다.

그들은 곧 마구간 안으로 들어왔다.

“저놈 꺼내 봐.”

활검문도가 흑마를 가리키며 말했다.

“꺼내요?”

“마사에서 꺼내.”

“네. 알았습죠.”

마방 장한이 귀찮은 표정으로 가장 안쪽에 있는 마사 문을 열었다.

“에휴! 어떻게 된 게 구더기가 득실거려! 야! 이놈 안 씻길 거야! 저놈을 쫓아 버리든가 해야지. 야! 아무리 게을러도 씻기기는 해야 할 것 아냐! 이 정도가 되도록 내버려 두면 어떻게 해!”

장한이 마동에게 소리를 지르면서 흑마를 끌고 나왔다.

활검문도 두 명이 흑마를 유심히 살피기 시작했다. 그들은 특히 흑마의 몸에 달라붙어 있는 구더기에 주목했다. 더럽기 이를 데 없는 구더기인데, 유심히 쳐다본다.

“이거…… 구더기 아니잖아?”

“거머리야. 아주 작은 거머리. 이렇게 작은 거머리도 있나? 그리고 녹색? 녹색 거머리도 있어?”

“녹색은 아냐. 검은색인데…… 등에 녹색 줄이 있어.”

‘녹색?’

그녀는 마동이 발라 주던 녹색 물을 떠올렸다.

흑마의 몸에 득실거리는 게 거머리란다. 등에 녹색 선이 그어져 있단다.

설마 자신에게 발라준 것이 거머리 즙액인가?

그녀는 녹색 줄이 그어져 있는 거머리를 알지 못한다. 그런 거머리가 있다는 사실조차도 몰랐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거머리는 검은색 아니었나? 피를 빨아먹으면 피 색깔로 물들어서 새빨간 붉은 빛으로 변하고.

‘거머리 즙액이 시원할 수도 있나? 아주 시원했는데.’

그녀는 나무 틈새로 활검문도를 주시했다. 아무래도 다시 들어온 것이 마음에 걸린다. 흑마를 유심히 관찰하는 것도 불안하다. 꼭 어제 일이 발각될 것 같다.

활검문도는 거머리를 보고 있지 않았다. 그들은 흑마의 몸에 새겨진 검흔을 살폈다.

활검문도가 다른 활검문도를 쳐다봤다.

눈길을 받은 활검문도가 고개를 끄덕였다.

뭔가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웃음이 사라지고 경계심이 바짝 고개를 쳐든다.

스릉! 스릉!

무인들이 검을 뽑았다. 그리고 한쪽 구석에 있는 마동을 노려보며 말했다.

“아걸, 똑바로 말해. 이 말…… 어젯밤에 어디 있었어? 밖에 나갔다가 왔지?”

“사실대로 말하는 게 좋아. 살수는 어디 있어? 이 말에 타고 있었다는 거 알아.”

그들이 들고 있는 장검에서 서슬 퍼런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마방 장한은 돌변한 분위기에 사색이 되어서 벌벌 떨었다. 아니, 혹여 자신에게 불똥이 튈까 봐 한 발짝 멀리 떨어져서 숨죽이며 상황을 지켜봤다.

슥! 스윽!

마동 아걸은 그들의 힐문을 못 들은 듯 작두날만 갈았다.

“아걸!”

활검문 검사가 소리를 빽 질렀다. 순간,

쒜에엑! 퍼억!

마구간이…… 반으로 쩍 갈라졌다.

뭐지? 뭐야!

바람! 눈만 끔뻑이게 만드는 바람이다.

광풍은 특정 대상에게 몰아치지 않았다. 마구간 전체를 반으로 쩍 갈라 버렸다.

비현실적인 광경에 여인은 눈을 휘둥그레 떴다. 마치 마구간을 그려 놓은 그림을 예리한 칼로 쭉 찢어 놓듯, 풍경이 일순간 쪼개졌다.

“큭!”

활검문도 한 명이 신음을 흘리며 풀썩 꼬꾸라졌다.

그가 쓰러진 자리에 피가 흥건하게 고인다. 붉은 피가 샘물처럼 밀려 나온다.

“엇!”

다른 무인이 깜짝 놀라서 검을 쳐들었다. 그 순간,

쒜에엑! 퍼억!

돌풍이 다시 일어났다. 활검문도를 여지없이 갈라 버렸다.

활검문 검사가 손 한 번 써 보지 못하고 피식 꼬꾸라졌다.

짚이나 썰던 작두날이 사람을 벴다.

‘이게 무슨……?’

여인은 눈만 끔뻑거렸다.

마구간이 반으로 갈라지는 환상!

마동 아걸이 움직이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작두가 어떻게 움직이는지도 볼 수 없었다.

하지만 마사도 베어졌다. 말도 베어졌다. 여물통도…… 작두날이 닿는 곳이면 어김없이 갈라졌다.

그러나 사실이 아니다.

정신을 차려보니 마구간은 그대로 있다. 베어졌다고 생각했던 마사, 말, 여물통이 그대로 있다. 쓰러진 것은 사람뿐…… 나머지는 베어지지 않았다.

‘고, 고수! 고수야!’

그녀는 이런 무공을 본 적이 없다.

아걸이 작두를 사용했기 때문에 도법인지, 검법인지 구분할 수도 없다. 참(斬)을 구사하는 무공인 것만은 틀림없는데, 사용하는 병기는 파악되지 않는다.

어쨌든 굉장히 강력한 무공이다.

만약 아걸이 그녀에게 이런 공격을 가해 왔다면 어떻게 막았을까? 막지 못했을 것 같다. 그녀가 알고 있는 어떤 무공도 이것보다 강하지도 빠르지도 않다.

꿀꺽!

그녀는 마른침을 삼켰다.

끼이익!

그녀를 덮었던 판자가 치워졌다.

그녀는 눈을 말똥말똥 뜨고 마동, 아걸을 쳐다봤다.

“가야겠어. 이대로 옮길 건데, 괜찮지?”

“다, 당신…… 누구야?”

그녀는 상당히 놀랐다. 너무 놀라 말까지 더듬거렸다.

아걸은 고수다. 한낱 마동이 아니다.

“아직 몸을 움직이면 안 돼. 그래서 담요만 덮어 둘 거야. 사람 없는 길로 골라갈 거고.”

아걸은 그녀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자신이 할 말만 했다. 그리고 그녀는 아걸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았다.

“날…… 이 상태로 옮기겠다는…… 거야? 옷도 입히지 않고?”

“이틀만 버텨. 이틀이면 상처가 아물어. 그 정도 시간을 벌 줄 알았는데, 일이 급박하게 됐어.”

“하아!”

그녀는 깊은 한숨을 토해냈다.

따지고 보면 마동 잘못이 아니다. 자신이 활검문에 들어갔고, 강조를 죽였다. 활검문도와 싸운 것도 자신이고, 검도 활검문도에게 맞았다.

마동은 말을 내주고, 치료를 해 줬다.

옷을 입히건 말건 그의 잘못이 아니다. 또 그는 자신 때문에 쫓기기까지 하는 신세가 되었다.

자신이 마동에게 미안해해야 한다.

“가능하면 사람 눈에 안 띄게…… 부탁해.”

그녀는 고개를 옆으로 돌리며 말했다. 차마 아걸과 눈을 마주칠 수 없었다.

아걸은 흑마에 마구를 채웠다.

흑마는 상처가 매우 깊다. 녹색 줄이 그어져 있는 거머리가 득실득실 붙어있다.

그 위에 마구를 올려놓았다.

말을 타고 달릴 생각이다.

그럼 자신은 어떻게 움직인다는 거지? 설마 옷도 입히지 않고 말에 태우는 건 아니겠지?

그녀는 곧 안심했다.

아걸이 마구간 한쪽 구석에서 수레바퀴 두 개를 굴려 왔다.

그가 수레바퀴를 침상 좌우에 꽂고, 걸쇠를 단단히 고정했다. 그러자 침상은 당장 수레로 탈바꿈했다.

침상에 수레째 한쪽을 묶고, 다른 한쪽은 흑마에게 걸었다.

그녀는 비로소 이 상태 그대로 옮기겠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했다.

‘오래 전부터 준비한 게 틀림없어. 언제 어느 때든 수레를 움직일 수 있도록 단단히 준비한 거야. 수레가 필요 없으면 말을 타고 가면 되고.’

그녀는 살수다. 조사, 준비, 점검, 실행…… 일을 준비하고 결행하기까지의 과정에 대해서는 누구보다도 잘 안다. 그중 어느 하나라도 잘못되면 목숨이 위태로워서 모든 과정을 세밀하게 두 번, 세 번 점검한다.

아걸은 살수가 행하는 것보다 훨씬 치밀하게 준비한 듯하다.

‘어디로 가든 당분간은 안전해.’

직감적으로 그녀는 자신이 안전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활검문 검사를 베었으니 곧 피바람 속에 휘말리겠지만, 며칠 동안은 안전할 것이다.

아걸이 그녀의 몸에 덮인 담요를 점검했다.

담요 네 귀퉁이를 침상에 단단히 고정했다. 수레가 심하게 흔들리더라도 흘러내리지 않도록.

그녀가 말했다.

“구해 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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