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화. 第五章 대류(大溜) [빠른 물살] (3)
아걸이 말했다. 꼼짝하지 말고 이틀 동안 누워 있으라고.
그가 굳이 말할 필요도 없다. 꼼짝하고 싶어도 하지 못한다. 몸을 움직이면 숨 막히는 고통이 밀려오지 않나. 아파서, 정말 아파서 움직이지 못한다.
옷을 입지 않고 있다는 사실도 시간이 지나니 점차 잊혔다.
몸이 담요로 덮여 있고, 배를 타고 강물을 따라서 흘러가니 만나는 사람도 없다.
푸른 하늘을 본다.
철썩!
물결이 뱃전을 두들긴다. 잔잔한 물결이 스르륵 밀려와서 배를 살짝 밀어놓고는 수줍은 듯 잦아든다.
평화롭다.
하지만 몽설은 평화 속에서 긴장감을 읽어낸다. 곧 벌어질 싸움을 기다린다.
“치료.”
아걸이 평화를 깼다.
그가 ‘치료’라고 말하는 것은 담요를 걷겠다는 뜻이다.
‘창피해.’
그녀는 눈을 질끈 감았다.
몸을 가렸던 담요가 걷혔다.
대낮, 따가운 햇볕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나신을 내리쬔다. 전신 구석구석에 햇살이 느껴진다.
아걸은 하루에 세 번 녹색 즙을 발라 주었다.
녹색 즙의 효과는 신묘할 정도였다. 마구간에서 몸을 움직일 때는 끔찍하게 아팠는데, 고작 하루가 지났을 뿐인데도 어느 정도 참을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상처가 많이 나았다.
등에 난 상처는 확인할 길이 없고, 옆구리에 난 상처조차 살펴보지 못했다. 워낙 몸을 움직이지 말라고 핀잔을 주는 바람에…… 하지만 느낌상 상당히 나았다는 것을 알겠다.
“운공.”
등 뒤 명문혈에 장심을 붙이겠다는 말이다.
다만, 몽설은 매번 의아하게 여겼다. 손바닥을 등에 붙이는 것은 느껴지는데, 진기가 흘러들어오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무 느낌도 없는데…….’
단지 손만 붙이고 있는 것 같지만, 몸을 움직일 수 없는 그녀는 아걸이 손을 뗄 때까지 기다릴 뿐이었다.
그녀도 진기 요상에 대해서 알고 있다.
자신의 진기를 불어넣는 방법도 안다. 타인의 내상을 치료하기 위해서 사용한다는 것도.
이럴 경우, 양쪽 모두 운기한다. 진기를 받는 쪽이나 주는 쪽이나 같이 운기한다. 밀어 넣어준 진기를 보다 효과적으로 흡수하려면, 받는 쪽도 같이 운기해야 한다.
아걸은 아무것도 하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고 했다.
그녀가 알고 있는 진기요상술로는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지만, 그가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하니 가만히 있는다. 세상에는 알지 못할 무공이 많으니까.
스읏!
아걸이 손을 뗐다.
‘죽.’
몽설은 아걸이 다음에 어떤 말을 할지 예상했다.
“죽.”
예상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다.
죽을 먹일 테니, 입 벌리라는 소리다. 음식을 먹을 때조차도 움직이지 말라고 한다.
그가 뜨거운 죽을 후후 불어서 식힌다. 그리고 작은 수저로 입에 떠 넣어준다.
아걸은 그녀를 살리기 위해서 최선을 다한다.
“날 왜 살려 주는 거야?”
“…….”
“이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돼. 취화원에 기별만 넣어주면 사람이 올 거야.”
“상처는 이틀이면 나아. 이틀 동안 상처를 공기 중에 노출해야 한다는 점이 좀 그렇지만, 몇 달 동안 고생하는 것보다는 훨씬 낫지. 하루 견뎠으니까, 하루만 더 참아.”
아걸이 무뚝뚝하게 말했다.
이틀째 되는 날, 아걸이 강변에 배를 댔다.
‘왜 공격이 없지?’
몽설은 의아했다.
지금쯤 활검문도가 무섭게 공격해 왔어야 한다. 공격은 하지 않아도 검문이라도 해야 한다.
나루터를 십여 개는 지나왔다.
아걸이 매우 은밀하게 움직인 것도 아니다. 아니, 정반대로 아걸은 전혀 숨지 않았다. 사실, 아걸은 노도 젓지 않았다. 물살에 배가 쓸려서 내려가도록 방치했다.
배가 강변으로 밀려가지 않고 강심으로 움직인 것이 천만다행이다.
이토록 노골적으로 숨지 않았는데…… 활검문 검사들이 일절 검문하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의 몸을 돌보는 것이 우선이라서 길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이상한 것은 사실이다.
스륵! 쿵!
배가 강변에 닿았다.
“자, 여자 옷을 구할 수 없어서 농가에서 훔쳤는데……. 맞지 않더라도 대충 입어.”
아걸이 옷 한 벌을 건네며 말했다.
몽설은 무슨 말인가 싶어서 그를 멀뚱멀뚱 쳐다봤다. 몸도 움직이지 못하는 사람에게 갑자기 옷을 입으라니?
“일어나.”
“일……어나라고?”
“…….”
“나, 다 나은 거야?”
그녀는 믿지 못하겠다는 얼굴로 물었다.
그토록 심한 상처를 입었는데…… 겨우 이틀이 지났을 뿐이다. 나았을 리 없다. 상당히 좋아지기는 했지만, 아직도 운신하려면 몇 달은 고생해야 한다.
그 정도로 심하게 당했다는 것은 알고 있다.
“상처가 대충 아문 것 같아. 저쪽에 개울이 있으니까 씻고 와. 사람 발길이 닿지 않는 곳이니까 안심하고 씻어도 돼.”
아걸이 손짓했다.
아걸은 녹즙을 발라 본 적이 있다. 분명하다. 옷을 주면서 대뜸 개울이 어디 있는지 말해 주지 않나.
사실, 그녀는 진작부터 목욕하고 싶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녹색 즙을 바르는 순간부터 진흙탕 속을 뒹구는 기분이었다.
녹색 즙에서는 심한 악취가 풍긴다.
다른 사람이 맡을 수 있는 악취는 아니다. 뭐라고 말할 수 없는데…… 녹색 즙을 바른 사람만 맡을 수 있는 묘한 냄새가 난다. 머리가 아플 정도로 지독한 냄새다.
그렇다고 파리나 벌레가 꼬이는 것은 아니다.
이 정도로 악취가 심하면 벌레가 꼬일 만한데…… 일절 꼬이지 않는다. 아마도 녹색 즙에 깃든 독성 때문에 벌레들이 달려들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만…… 맞는지 모르겠다.
또 녹색 즙은 무척 끈적거린다.
기분 나쁜 끈적거림? 녹색 즙 묻은 자리를 당장 씻어버리고 싶은 충동이 하루에도 몇 차례씩 일어났다.
독으로도 쓸 수 있고, 약도 될 수 있는 즙액이 아닌가 한다.
“다 씻으면 이리 와. 난 요깃거리를 준비할 테니까. 취화원으로 가도 좋고.”
“가도 된다고?”
“말리는 사람 없어. 빚진 것도 없고.”
“그래도 목숨을 구해 줬는데…….”
“잊어.”
아걸이 무뚝뚝하게 말했다.
* * *
그녀는 아걸이 멀리 사라질 때까지 기다렸다.
그가 다 나았다면서 옷을 주기는 했지만, 막상 몸을 움직이려니 엄두가 나지 않는다.
몸을 움직이면 그 끔찍한 고통이 다시 밀려들 텐데.
꿈쩍!
허리를 살짝 비틀어 봤다.
등을 가른 일격은 매우 치명적이다. 하루 이틀 사이에 나을 수 있는 검상이 아니다. 그런데!
‘안 아파!’
그녀는 눈을 끔뻑거렸다.
이번에는 몸을 더 크게 움직여봤다. 허리를 구부리는 정도까지 움직였다.
‘아프지 않아!’
고통이 싹 사라졌다.
그녀는 두 팔로 뱃전을 짚고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켰다. 천천히, 천천히 일어나 앉았다.
고통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상처가 아물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다못해 면도날에 베여도 상처에 딱지가 앉고 완전히 아물 때까지는 시간이 걸리는 법인데, 하물며 치명상을 입은 몸이지 않나.
“음!”
그녀는 믿을 수 없어서 침음을 흘렸다.
아걸 말대로 몸이 다 나았다. 아무런 고통도 느껴지지 않는다. 검을 맞기 전이나 똑같다.
아니다. 아직 낫지 않았다.
고개를 숙여서 옆구리를 봤다. 등, 겨드랑이, 옆구리…… 그중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상처를 봤다.
옆구리에 검은 구멍이 움푹 패어 있다.
검이 박힌 듯, 푹 들어간 자국이 선명하다.
상처는 그대로인데 고통이 느껴지지 않고, 피가 흐르지 않는다. 몸을 움직여도 괜찮다.
“신기한 약이네.”
그녀는 녹색 즙을 떠올리며 담요를 둘둘 말아 감고 개울이 있다는 곳으로 갔다.
“아!”
그녀는 탄복했다.
정말 개울이 있다. 어른 허리 높이 정도 되는 폭포가 있고, 그 밑으로 물이 흐른다.
물은 강으로 흘러 들어간다.
아걸은 이런 곳을 어떻게 알았을까?
동승 지리에 익숙한 것은 이해하지만, 개울은 동승으로부터 무려 백여 리 떨어진 곳에 있다.
아걸은 이곳에 와 본 적이 있다.
그녀는 담요를 벗어서 고이 접어놓고, 몸을 물속에 들이밀었다.
촤아아아!
개울물의 시원한 촉감이 전신을 휘감았다.
‘시원해!’
그녀는 십 년 묵은 때가 일시에 훅 날아가는 듯, 매우 홀가분한 느낌이 들었다.
녹색 즙을 씻어낸 것뿐인데, 이런 기분이 들다니.
눈 쌓인 겨울, 얼음을 깨고 물속에 들어간 것 같다. 차가운 기운이 확 밀려온다. 하지만 좋다.
그녀는 느긋하게 시원함을 즐겼다.
부스럭!
바로 그때, 숲에서 소리가 났다.
‘이런 인면수심!’
그녀는 당장 눈가를 싸늘하게 굳혔다.
아걸은 주위에 아무도 없다고 했다. 실제로 오가는 사람이 있을 것 같지 않다. 개울로 다가오는 길은 강 쪽이 유일하다. 다른 곳은 아주 울창한 숲에 둘러싸여 있다. 그리고 그 너머에는 큼지막한 절벽들이 보인다.
매우 외진 곳이다.
그러니 누군가 다가왔다면…… 아걸이다.
여자가 목욕하는 모습을 훔쳐보고 있었나?
그가 말한 것처럼 볼 것 다 봤으면서 목욕하는 광경까지 훔쳐볼 것은 무엇인가.
그녀는 화가 치밀었다.
아걸이 상대하기 벅찬 고수라는 점은 안다. 목숨을 구해 준 은혜도 있다. 그 과정에서 수치를 안겨주는 일이 벌어졌지만, 그에게 잘못을 물을 수는 없다.
그렇다고 아걸에게 여인을 능멸할 자격이 있는 것은 아니다.
‘훔쳐본 건 당신 잘못이야!’
쒜에엑!
그녀는 물속에서 용수철 퉁기듯 솟구쳤다. 그리고 숲을 향해 쾌속하게 덮쳐들었다.
휘릭!
바닥에 떨어진 나뭇가지를 주웠다. 나뭇가지로 검을 대신해서 검초를 전개한다. 상대가 감당할 수 없는 고수이기 때문에, 그녀도 필살초를 사용한다.
파라라라락! 파파파팟!
나뭇가지들이 검초에 잘려나간다. 나뭇잎이 칼에 베인 듯 싹둑 잘려서 떨어졌다.
순간, 숲은 죽음으로 뒤덮였다.
혈검경(血劍經)에 기재된 무학이다.
그녀도 혈검경의 내력을 알지 못하고, 단지 초식 몇 개만 도해를 통해 습득했을 뿐이었다.
초식 명칭도 모르고, 시작과 끝도 모른다. 때문에 평소에는 불완전한 무공이라 사용하기를 꺼렸지만,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상대는 초절정 고수다. 아걸이 작두를 휘두르는 모습은 생각만 해도 소름이 쫙 끼친다. 그 칼이 자신에게 닥칠 생각을 하면 두렵기만 하다.
최고의 무공을 펼쳐야 한다.
쒜에에에엑!
죽음의 검, 사검(死劍)이 숲을 뚫고 나갔다. 한데,
“헉!”
그녀는 급히 헛바람을 내지르며 초식을 거뒀다. 아니, 거둘 수가 없어서 나뭇가지를 하늘로 쳐들었다.
파파파파팟!
혈검을 맞은 나무들이 휘청거렸다.
그녀는 혈검을 거두는 데 온 신경을 쓴 탓에 미처 신형을 추스르지 못했다.
신형이 달려들던 기세 그대로 쏘아진다.
숲에 있던 검은 물체와 거칠게 부딪친다. 쿵! 하는 소리가 울리고, 몸이 절벽에 부딪힌 듯 거센 충격이 밀려온다.
“아! 괜찮아?”
그녀는 자신의 상태는 돌볼 생각도 하지 않고 검은 물체를 쳐다봤다.
히히힝!
말이 울었다.
흑마다. 흑구라고 불리는 흑마가 쫓아왔다.
아걸이 흑마를 버리고 온 줄 알았는데, 흑마가 강변으로 따라왔다. 산을 넘고, 들판을 가로질러서.
“어떻게 온 거야? 따라오느라 고생 많았지?”
그녀는 흑마를 와락 껴안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