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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홀도-25화 (25/600)

#25화. 第五章 대류(大溜) [빠른 물살] (5)

시신이 앞에 놓여 있다.

‘못난 놈들!’

활검문주는 시신을 보기도 전에 인상부터 찡그렸다.

활검문은 부쩍 커졌다. 옛날처럼 제자 한두 명 옆에 끼고 무공에 심취하던 시절은 지났다. 지금은 문도라고는 하지만 제자의 제자, 또 그 제자까지 사대가 이어져 있어서 얼굴조차 알지 못하는 문도가 부쩍 많다.

그러니 그가 직접 문도들의 시신을 검시하는 일은 없다.

특히, 경계를 서다가 혹은 수색을 하다가 기습당해서 죽은 문도들은 더더욱 쳐다보지 않는다.

이들이 죽은 것은 부주의 때문이다.

그토록 방심하지 말라고 일렀거늘…… 조금만 경계심을 바짝 곤두세웠다면 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점이 괘씸해서 더더욱 직접 검시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번에는 직접 검시한다.

청수검 왕유가 살검을 파악하지 못했다며 시신을 보내왔다.

자신이 직접 거두고 가르친 직제자인데, 자신이 알고 있는 무공을 모두 가르친 명검인데…… 그런 제자가 어떤 수법에 당했는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도대체 어떤 무공이기에…….’

활검문주 송조덕(宋祖德)은 목관에 담긴 시신 두 구를 유심히 살펴봤다.

시신은 흉하지 않다.

가슴 부위에 상처가 있긴 한데, 보기 싫을 정도로 상처가 벌어지지는 않았다.

살이 갈라져서 내장이 드러났다거나 뼈가 보이지도 않는다.

어떻게 보면 시신들은 참 편하게 보이기까지 한다. 마치 잠자다가 죽은 듯 편한 모습이다.

“죽은 상태 그대로냐?”

“네. 그대로입니다.”

“옷을 벗겨 봐라.”

문도들이 즉시 시신들의 상의를 벗겼다.

강건한 상체가 드러났다. 근육으로 탄탄하게 감싼 가슴, 골이 진 복근이 밝은 햇볕 아래 노출되었다.

‘이건!’

활검문주는 가슴에 새겨진 상처를 보는 순간 눈을 부릅떴다.

시신들의 심장 부위에는 면도날이 살짝 그어진 듯 아주 가는 상흔밖에 보이지 않는다.

상처가 깊었다고 했다.

쓰러진 자리에 피가 흥건했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은…… 오히려 상처가 아문 것 같다. 겨우 이런 상처에 죽었나 싶다.

겉모습만 그런 상태다.

실제로는 상처가 매우 깊다. 병기가 살을 쪼개고 안으로 파고 들어가서 심장을 갈라냈다.

대체로 심장을 베면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온다.

이들 역시 살을 베었으니 피가 쏟아지기는 했지만, 심장을 베인 것에 비하면 아주 약간밖에 흘러내리지 않았다.

피가 쏟아질 자리를 칼날이 막고 있었을 것이다.

칼날과 살이 아교로 붙인 듯 바짝 밀착되어서 미처 피가 쏟아지지 못했다.

대신 심장에서 흘러내린 핏물이 오장육부 전체로 퍼져 나갔다.

시신들의 배가 임신부처럼 부풀어 오른 것이 바로 그 때문이다. 바람 든 가죽 북처럼 부푼 배를 살짝 건드려 보면 핏물이 퍽 터져 나올 것이다.

그 후, 다시 상처가 맞물렸다.

매우 빠른 쾌검이다.

‘이건 매우 위험하다!’

활검문주는 검의 달인답게 직감적으로 위험을 감지했다.

문도가 이런 무공에 죽었다면…… 이제는 문주 자신도 방심하지 못한다.

그는 상처를 세밀히 살폈다.

‘칼! 이건 칼이다! 칼! 칼! 칼!’

검법이 아니라 도법에 당했다.

아주 빠르고 강한 도법…… 활검문도들이 경험해 본 적 없는 가공할 수법!

활검문주는 눈을 부릅떴다. 그리고 즉시 말했다.

“놈을 쫓아라!”

“넷!”

우렁찬 대답이 기다렸다는 듯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이어지는 명령은 문도들이 생각했던 게 아니다.

“전 문도가 놈을 쫓는다. 단! 절대로 부딪치지 마라! 부딪히면 죽는다! 너희가 상대할 고수가 아니다. 절대 부딪치지 마라! 부딪히면 죽는다! 다시 한번 말한다. 절대로 부딪치지 마라! 잡으려고 하지 마라. 그러면 죽는다. 잡지 마라. 쫓기만 해라. 그자가 반격해 오면 물러서라. 절대로 싸우지 마라. 절대명령이다.”

활검문주는 ‘부딪치지 마라’, ‘싸우지 마라’는 명령을 수없이 반복해서 말했다.

* * *

“쫓지 말라…… 부딪치지 말라……. 후, 그럴 순 없지.”

귀찰검이 인상을 찡그리면서 말했다.

“절대명령입니다.”

“사부님이 나이가 드시더니 많이 나약해지셨어. 옛날, 강호를 누비실 때의 문주님이 아니야.”

귀찰검은 수하의 강한 만류에도 불구하고 하고 싶은 말만 했다. 문주이자 사부의 말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말인데도, 지극히 태연하게 중얼거렸다.

수하가 다시 말했다.

“문주님이 아주 강하게…… 명령하셨습니다.”

“그동안 태평세월이 참 길었어. 자고로 무인은 칼밥을 먹고 살아야 하는데.”

귀찰검이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저희가 상대할 고수가 아니라고 합니다.”

수하가 다시 말했다.

귀찰검이 수하를 힐끔 쳐다보았다. 그리고 입가에 냉소를 피우며 말했다.

“네놈…… 검 풀어라.”

“네?”

“네놈은 검을 만질 자격이 없다.”

“죄송합니다.”

“검을 든 놈이 죽음을 두려워해?”

“죄송합니다.”

“넌 네놈보다 더 강한 놈이 나타나면 안 싸우겠구나?”

“싸웁니다.”

“그런데 왜 안 싸우겠다는 거냐? 너보다 강한 놈이라서? 싸우면 죽을 것 같으니까?”

“죄송합니다.”

“이게 칼밥이라는 거다. 나보다 강한 놈이든 약한 놈이든 누구하고든 칼을 부딪쳐야 해. 선택의 여지는 애당초 없는 법이지. 적이라면 무조건 싸워야 해.”

“네! 알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가자!”

귀찰검은 문주의 명령을 거부했다.

상대가 감당하기 벅찰 정도로 강한 자라는 사실을 안다. 하지만 도망치는 것을 두 눈으로 보면서 놓아 줄 생각은 없다.

길고 짧은 것은 대 봐야 알지 않나. 누구 검이 더 강한지는 검을 섞어 봐야 알지 않나.

활검문 검보다 약한 검은 어떤 검이고, 강한 검은 어떤 검인가.

검법에 우열이 미리 정해져 있기라도 하나?

저쪽은 외톨이 늑대 정도 될 것이고, 이쪽은 잔뜩 화가 난 사냥개들이다.

늑대가 사냥개보다 강하다는 점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외톨이 늑대가 무리 진 사냥개보다 강하다는 점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초강자도 상황에 따라서는 약해지는 거다.

구구구구! 구구구!

비둘기가 하늘에서 알았다.

컹컹! 컹컹컹!

개들이 입에 거품을 물고 쫓아가기 시작했다.

* * *

“후후!”

노인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빙긋 웃었다.

하늘에 비둘기들이 수백 마리나 모여들었다.

활검문 비둘기는 전서구 역할이 주된 임무다. 하지만 제오당에서 기르는 전서구는 다른 역할도 한다. 추격자의 눈이 되어서 하늘을 지배한다.

그의 몸에 달라붙은 향기, 초향에는 비둘기 발정제가 섞여 있다.

비둘기는 발정 기간이 따로 없다. 혹한기나 혹서기가 아니면 일 년 열두 달 번식한다.

이런 점을 이용해서 초향에 발정 유도제를 섞었다.

비둘기들이 초향을 쫓아오는 것은 당연하다. 아주 심한 냄새, 멀리서도 단박에 감지하는 냄새이기 때문에…… 활검문에서 기르는 비둘기뿐만이 아니라 주변에 있는 모든 수컷 비둘기가 노인을 향해 몰려든다.

초향을 묻힌 상태에서 도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활검문 사냥개, 투견(鬪犬)들도 이 냄새라면 환장을 한다.

활검문은 투견에게 피 묻은 생고기를 먹이로 던져준다. 그리고 고기에는 초향을 묻혀 놨다.

투견은 초향 냄새를 맡으면 즉시 피 묻은 생고기를 떠올린다.

아주 맛있는 고기…… 목줄을 풀어놓는 것은 먹잇감을 찾아서 떠나라는 소리다.

투견은 이틀 동안 굶었다. 그리고 초향 냄새를 맡았다면, 두말할 필요가 없다.

투견이 당도하는 곳에서는 생지옥이 펼쳐진다.

컹컹컹! 컹컹!

투견들이 달려오는 소리가 지옥 야차의 울부짖음처럼 섬뜩하게 들려왔다.

“그럼 시작해 볼까.”

노인은 일어섰다.

피할 생각은 없다. 초향을 감지한 순간부터 이런 일이 벌어질 것을 예상했다.

“어디가 좋을까?”

그는 천천히 걸었다.

싸우기 좋은 장소…… 그런 곳이 딱히 있을 리 없다. 어디서 싸우든 그곳이 최적의 장소다.

익히 아는 장소라면 조금 다르다. 그런 장소에서는 아주 편하게 싸울 수 있다. 하지만 너도 모르고, 나도 모르는 제삼의 낯선 장소라면 모든 조건이 똑같다.

“이곳이 좋겠군.”

노인은 몇 걸음 걷지 않아서 발길을 멈췄다.

이름 모를 숲에서 조금 넓은 공터를 찾아냈다.

주변에는 소나무들이 쭉쭉 뻗어있다. 솔밭이다. 바닥에 소나무 잎이 수북이 깔려 있다.

냄새가 좋다. 불어오는 바람을 타고 솔향기가 솔솔 풍겨온다.

이런 곳에서는 돗자리를 깔고 앉아서 국수 한 그릇 끓여 먹으면 딱 좋은데.

맑고 깨끗한 솔밭에 피를 뿌리는 것이 안타깝긴 하다만.

노인은 허리춤에서 호로병을 꺼내 독한 화주를 꿀꺽꿀꺽 마셨다.

이제 시작이다.

지금까지는 피할 수 있었지만…… 이제부터는 피하지 못한다. 오직 외길, 한 길로만 나아가야 한다.

컹컹! 컹컹컹!

개들이 달려온다.

비둘기도 엄청나게 많다. 때아니게 비둘기들이 수북이 모여들어서 꾸룩꾸룩 울어댄다.

쒜에엑!

노인은 침착하게 검을 뻗어냈다.

꺼엉!

득달같이 달려들던 투견이 피를 뿌리며 나가떨어졌다.

투견 따위에게 당황할 사람이 아니다. 어딜 한낱 개 따위가 늑대에게 달려드나.

쉑쉑! 푹!

검풍이 일어났다. 노호조파검이 허공을 갈랐다.

찌르고, 비틀고, 빼낸다.

그 동작이 너무 빨라서 맨눈으로 식별되지 않는다. 하지만 검을 뻗은 후, 약간 멈칫하는 느낌이 전해진다. 살을 찢고 들어간 노호조파검이 생명을 끊는 순간이다.

깨앵!

투견이 비명을 지르며 나가떨어졌다.

정확히 일 검에 한 마리씩 죽는다.

다시 말해서…… 누가 달려들든 일 검을 맛보려면 목숨을 걸어야 한다는 뜻이다.

노호조파검은 몰인정하다. 생명이 없다. 죽은 검, 죽음만 불러오는 검…… 사검이다.

“이놈들아, 먹잇감이 있으면 빨리 물어야지. 언제까지 기다리게 할 참이냐.”

노인이 투견들을 보면서 말했다.

아니다. 투견 너머에서 은밀히 관망하고 있는 무인들에게 말한 것이다.

활검문도가 쫓아 왔다는 것을 안다.

그들에게 말했다. 빨리 덤벼라.

“후후후! 후후!”

귀찰검은 입술을 비틀며 웃었다.

노인…… 아삼(阿三)이라고 불리던 마구간 잡일꾼…… 그가 이토록 고명한 살수였나?

노인의 검을 알아봤다.

노인의 검은 문도를 죽인 검이다. 살수의 검이다. 노호조파검이라고 불린다.

노호조파검은 구초(九招)가 찌르는 검이다. 베는 검은 일초(一招)밖에 없다. 하지만 무림에는 베는 검이 나타나지 않았다. 찌르는 검으로 모든 살행이 처리되었기 때문이다.

검공 자체만 놓고 본다면 대단한 공부다.

문제는 노인, 아삼이 노호조파검을 펼친다는 것이다.

노인의 진기는 매우 불안정하다. 진기가 끊어졌다가 이어지기를 반복한다. 정심하게 수련하지 않고, 임기응변으로 몇 초 잔재주를 배운 것 같다.

노호조파검이 뛰어난 검공이기는 하지만 아삼이 펼치는 검이라면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잡았어!’

귀찰검의 눈가에 이채가 번뜩였다.

사부는 절대로 부딪치지 말라고 했지만…… 그것은 마구간에서 문도를 벤 아걸이란 놈에 해당하는 말이다. 문주는 노호조파검을 보지도 않았다. 아삼은 잡아도 된다.

스읏!

귀찰검이 몸을 일으켰다.

아삼을 잡을 수 있다는 자신이 있지만, 자신이 직접 나섰을 때 해당한다. 수하들에게 맡기는 것은 무리다. 아삼은 결코 약한 자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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