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화. 第六章 사문(師門) (1)
“이게 누구신가? 제오당 당주 아니신가?”
노인이 유들유들하게 웃었다.
귀찰검은 가히 놀라지 않았다.
동승 사람치고 제오당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활검문 십검을 모르는 사람이 누가 있나.
“그런 넌 아삼(阿三)이라고 했나? 우리 애들 잡아대는 실력을 보면 아삼이라는 이름도 본명은 아닐 테고. 너 뭐 하는 놈이냐? 활검문 턱 밑에서 무슨 짓을 꾸민 거야?”
저벅!
귀찰검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노인은 손을 들어 귀찰검을 제지했다.
싸움을 포기하겠다는 뜻은 아니다. 노인은 허리춤에서 호리병을 꺼내 술을 꿀꺽꿀꺽 마셨다.
‘싸움을 앞두고 술을 마셔……?’
귀찰검은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자신이 술을 마시고 싸워도 충분할 정도로 모자란 무인인가? 하찮은 놈인가?
수치, 치욕, 모욕…… 기분이 몹시 나쁘다.
활검문도는 절대 이런 짓을 하지 않는다. 어떤 상대와 싸우든 싸움 직전에는 몸과 마음을 가장 깨끗한 상태로 정갈하게 가다듬는다. 최선을 다해야 하기 때문이다.
싸움을 앞에 두고 술을 마신다? 목숨을 포기했다는 증거다. 그렇다고 손에 사정을 담아서 살살 싸워줄 생각은 없다. 이런 자일수록 더욱 따끔하게, 치가 떨리도록 혼을 내줘야 한다.
스읏!
귀찰검은 검을 들어 올렸다.
“거참, 조금 참으라니까. 성질머리하고는. 싸울 때 싸우더라도 목은 축이면서 싸워야 할 거 아닌가.”
“후후후!”
귀찰검의 눈에서 살광이 이글거렸다.
죽은 문도들을 생각한다. 이자의 손에 죽어간 수하들 모습을 떠올린다. 하면 분노가 더욱 거세게 타오른다. 검을 전개하는 데 망설임이 없어진다.
노인은 그런 귀찰검의 마음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태연히 말했다.
“그런데…… 이 개새끼들은 계속 이렇게 놔둘 거야? 좀 묶어 놓지? 신경 거슬리는데.”
노인이 다시 유들유들 웃었다.
그르릉! 그릉!
먹이를 노리는 투견들이 금방이라도 달려들 듯 으르렁거리면서 사방을 맴돌았다.
투견은 목줄을 잡아 놓지 않았다. 그러니 언제든지 공격할 수 있다. 사실, 귀찰검이 나서지 않았다면 투견 중 몇 마리는 벌써 달려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투견도 주인을 알아본다.
귀찰검이 나선 순간부터 공격 본능을 억누르고 나지막하게 으르렁거리기만 한다.
“이놈들이 겁나나?”
“겁날 건 없고, 귀찮긴 하지.”
“후후, 귀찮은 정도라면 참아라.”
“설마 귀찰검 정도 되는 무인이 이놈들 도움을 받으려는 건 아니겠지?”
“네놈이 내 검에 죽을 팔자인지, 이놈들에게 뜯어 먹힐 팔자인지 알아보는 것도 좋겠지.”
“그래서야 쓰나, 그래도 사람인데. 사람은 사람 검에 목숨을 맡겨야지, 한낱 짐승에게 뜯겨 먹힌대서야. 그런 생각 자체가 활검문도가 할 게 아니지. 솔직히 투견을 쓴다는 것, 활검문이 할 짓이 아니잖아? 아무래도 정상이 아니야.”
“그건 마음대로 생각해라.”
“그렇지? 킥킥! 아무래도 네놈은 활검문 옷을 입을 게 아니라 산적이나 수적이 됐어야 해. 그럼 지금쯤 아무 거리낌 없이 사람 백정이 됐을 것 아닌가. 그쪽이 낫지 않아?”
“그런 말도 많이 들었다.”
귀찰검은 노인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섰다.
노인은 들고 있던 호리병을 옆구리에 쿡 찔러 넣었다. 그리고 잠시 기다리라는 듯 손으로 툭툭 건드렸다.
“거참, 두어 모금만 더 마셨으면 딱 좋겠는데.”
노인이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쒜에에엑!
귀찰검이 공격을 시작했다.
검에서 거센 파공음이 일어난다. 검광이 허공을 갈랐다.
귀찰검은 활검문 검법 중에서 거의 모든 문도가 선택하지 않는 십이연환검(十二連環劍)을 수련했다.
십이연환검은 수련하기가 매우 까다롭다.
열두 가지의 검법을 각기 수련해야 하고, 또 이 각개의 검법을 하나로 묶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실전에서 사용할 수 있는 절정 검초가 탄생한다.
각개의 검법은 실전용이 아니다.
만약 실전에서 각각 흩어져 있는 검법을 사용한다면 패배할 공산이 크다.
십이 검법을 하나로 연결해야만 비로소 실전용이 된다.
열두 가지의 검법을 모두 수련해야 하니, 시간이 무척 오래 걸린다. 고초도 심하다. 열두 개의 검법을 하나로 연결하는 과정도 수월치 않다. 태반이 실패한다.
활검문에서 십이연환검을 수련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귀찰검은 십이연환검을 제대로 수련해냈다. 그리고 단번에 십검에 올랐다.
십이연환검을 수련하기 전에는 삼류 무인에 불과했는데, 검을 수련한 후에는 단박에 제오당주가 되었다.
그 검이 폭발한다.
일검에서 십이 검까지 연달아서 검초가 터진다. 화약이 폭발하듯, 일시에 터진다.
십이연환검을 전개하다 보면 오검 내지 육검부터 상대방의 육신이 걸려들기 시작한다. 검 끝에 살이 닿는다. 피가 쏟아지고, 뼈가 잘린다.
십이연환검을 모두 전개한 후에는 사람은 사라지고 혈육 덩어리만 남는다.
그래서 십이연환검을 혈사마검(血死魔劍)이라고도 부른다.
쉑쉑! 탁탁탁!
십이검이 연달아서 폭발하듯 터진다.
스으으읏!
노인이 미끄러지듯이 뒤로 물러섰다.
노인이 펼친 보법은 매끄러운 기름 위에서 수련한다는 찰유보법(擦油步法)과 흡사하다.
무릎을 굽히지 않았는데도 스르륵 미끄러진다.
‘웃! 잘못 생각했다!’
귀찰검은 눈을 부릅떴다.
어디서 한두 수 잔재주를 배웠다고 생각했는데…… 보법을 보니 생각을 바꾸지 않을 수 없다.
기름 위에서 서는 데 일 년, 움직이는 데 십 년, 공방을 주고받는 데 삼십 년이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찰유보법은 수련하기가 힘들다. 수련 난이도로 보면 십이연환검보다 훨씬 고되다.
노인은 잔재주 나부랭이를 배운 게 아니다. 어깨너머로 한두 수 훔쳐 배운 무공이 절대 아니다.
정통으로 수련한 무공이다.
아주 강한 고수다. 자칫하면 말려들 수 있다.
“네놈! 누구냐!”
귀찰검은 십이연환검을 터트리는 가운데 쩌렁 일갈을 내질렀다.
“아삼. 알고 있으면서 묻고 그래.”
노인이 놀리듯이 말했다.
파랑! 파라랑! 파라라랑!
검법이 쌓이기 시작한다. 일 검, 이 검, 삼 검, 사 검…… 오 검째 연환검이 펼쳐졌다.
“적랑대냐!”
육 검에 이어 칠 검이 전개되었다.
쫘아아악!
귀찰검의 검이 일곱 개로 확 불어났다. 검을 잡은 손은 하나인데, 검첨(劍尖)은 일곱 개다.
부챗살처럼 펼쳐진 검이 노인을 압박했다.
어느 것이 허초이고, 어느 것이 실초인지 구분되지 않는다.
“적랑대? 내 검만 보고 그리 말하면 오산이지.”
“그럼 뭐냐! 죽기 전에 말해!”
“쯧! 십이연환검을 이따위로 해석했는데도 십검 자리를 꿰찬 거야? 창피하지 않아? 너무 형식에 치우쳤잖아.”
노인이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귀찰검은 미간을 확 찡그렸다.
십이연환검을 이따위로 해석했다니? 뭘 잘못 펼쳤나? 누구도 이런 말을 한 사람이 없는데. 문주님도 뛰어난 검공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는데.
‘미친놈!’
십이연환검은 절대로 형식에 치우친 검이 아니다. 아니, 정반대로 너무 실전적인 검이다.
연환검 중 십이 검 각 검이 실전에서 성과를 내지 못하는 이유가 실전성에 있다. 너무 노골적으로 검초가 전개되기 때문에 쉽게 피해낸다. 설혹, 몸이 둔해서 피해내지 못하더라도 어떤 검초가 전개되는지 파악 정도는 한다.
십이 검을 연환검으로 묶은 후에야 실전성이 숨겨진다.
검초가 빠르게 전개되면 노골적인 공격 형태가 다소 숨겨지는 형태가 된다.
형식에 치우친 검이 절대 아니다. 오히려 모든 형식을 극단으로 배제한 검이다.
이것을 형식에 치우친 검으로 봤다면 잘못 본 것이다.
귀찰검은 칠 검에 이어서 팔 검을 전개했다.
아직 검첨에 노인의 육신이 걸려들지 않았지만 침착하게 전개해 나갔다.
칠검, 부챗살처럼 펼쳐진 검첨이 노인의 칠대 요혈을 노리면서 파고들었다.
머리!
미간과 미간의 중앙, 인당혈(印堂穴)을 노린다.
목!
양쪽 쇄골의 중앙, 천돌혈(天突穴)을 친다.
심장 밑 기문혈(期門穴)도 파고든다. 배꼽 밑, 대거혈(大巨穴)도 선택되었다. 팔꿈치 밑, 수삼리(手三里)도 노린다. 허리 관절이 있는 충문혈(衝門穴)을 막아라. 무릎 밑, 음릉천(陰陵泉)에도 검첨이 노리고 쏘아진다.
칠검은 어디를 막아야 할지 모르게 만든다. 굳이 방어하자면 몸 전체를 막아야 한다. 그럴 수 없으니 뒤로 물러서야 하고, 물러서는 김에 아예 훌쩍 빠지게 만든다.
다시 말하지만 칠 검 중 허초는 없다. 검첨이 일곱 곳을 노리는데, 모두 실초다.
이 칠 검을 수련하기 위해서는 일시에 일곱 곳을 타격하는 수련부터 해내야 한다. 검초의 변화가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빨라야만 펼칠 수 있다.
팔 검은 일순간 상대의 눈을 가린다. 온 세상을 어둠 속으로 밀어 넣는다.
상대방은 온 세상이 새카맣게 변하는 환각을 느낀다.
환검(幻劍)이다. 눈속임이다.
실초가 환검으로 보이기 시작하면 누가 막겠나. 당하지 않을 수 없다. 온 세상이 새카만데, 눈에 보이는 것이 없고 느껴지는 것이 없는데 무슨 수로 검을 막을 것인가.
그런데 그는 팔 검을 끝까지 펼치지 못했다. 연환검이 전개되는 중인데, 노인은 물러서지 않고 오히려 다가왔다. 상대방이 물러서야 팔 검이 전개되는데, 한 가닥 실선이 부챗살을 뚫고 들어온다.
‘웃!’
귀찰검은 머리끝이 쭈뼛 곤두섰다.
탕탕탕! 탕탕탕탕!
실선과 칠 검이 부딪쳤다.
칠 검은 실선이 다가오지 못하도록 연신 검신을 후려쳤다. 밑으로 떨구고, 위로 쳐올렸다. 옆으로 비켜내려고도 했다. 그것도 안 되니, 아예 검신을 부러트리고자 했다.
검과 검이 거세게 부딪치면서 빨간 불똥을 퉁겨냈다.
하지만…… 노인의 검은 여전히 뚫고 들어온다. 칠 검이 모조리 튕겨 나간다.
무려 일곱 개의 검선이 한 가닥 실선을 후려쳤는데, 실선은 여전히 꿋꿋하게 살아서 지쳐 들어온다.
강검(鋼劍)!
어떤 무게로도, 어떤 진기로도 떨쳐낼 수 없는 무지막지한 검이다.
‘피해야 해!’
칠 검을 맞이한 상대들이 무조건 몸을 솟구쳤던 것처럼, 귀찰검도 무조건 물러섰다.
피하는 수밖에 달리 방도가 없다.
귀찰검은 위기감을 느끼고 구명보법(救命步法) 사족보(四足步)를 펼쳤다.
사족보는 몸을 자유롭게 해준다. 한 걸음 이내에서 사방 어디든 움직일 수 있게 해준다.
찰나의 칼 겨룸, 생사가 즉각 갈리는 순간에 한 걸음이라는 공간이 지닌 의미는 매우 크다.
검과 검이 교차하는 순간에 한 걸음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다면 온 세상을 가진 것이나 진배없다.
자신은 하늘을 훨훨 날아다니면서 공격한다. 상대방은 땅에 못 박혀서 꼼짝하지 못한다. 움직이지 못하는 자와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자가 뻗어내는 검초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한 걸음이 주는 효과다.
활검문도는 사족보를 지극히 비밀로 유지한다. 활검문주와 십검만 알고 있을 정도다.
스으읏!
귀찰검이 뒤로 물러섰다.
한데 검이 따라붙는다. 사족보를 펼쳤는데, 끝까지 따라온다. 마치 노인도 사족보를 알고 있다는 듯이, 같이 펼치고 있다는 듯이 달라붙는다.
“차앗!”
귀찰검은 사력을 다해서 팔검을 떨쳐냈다.
촤라라라락!
검초가 현란하게 펼쳐진다. 검이 수백, 수천 개의 환영을 그려낸다. 세상을 어둠 속으로 밀어 넣는다. 그러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여전히 사족보를 펼쳤다. 그때,
쒝!
귀찰검은 지극히 짧은 파공음을 들었다.
그 소리를 듣는 순간, 등에서 찬바람이 확 일어났다. 목숨에 위험을 느꼈다.
다행히도 노인의 검은 가슴을 쓸고 지나갔다.
검이 지나간다. 가슴 앞으로 지나가는 것이 느껴진다. 노호조파검이 흘러간다.
노인의 검을 피했다는 안도감이 확 밀려왔다. 그 순간,
푹!
스쳐 지나가는 듯하던 검이 돌연 방향을 비틀더니 그의 가슴을 사정없이 찔렀다.
“컥! 크아아악!”
귀찰검은 거칠게 신음을 쏟아냈다.
그는 믿기지 않는 눈으로,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가슴을 뚫고 들어온 노인의 검을 쳐다봤다.
노인이 말했다.
“일홀도라는 거다. 아, 난 물론 그놈 흉내만 살짝 낸 거야. 그놈이 이걸 펼치면 네놈은 움직이지도 못해. 하지만 이 정도 흉내만 내도 이까짓 강호에서는 제법 큰소리칠 수 있을 것 같지 않냐?”
노인이 허리춤에 찔러 넣었던 호로병을 꺼내서 술을 꿀꺽 들이켰다.
‘말도…… 안 돼……. 세상에…… 이런…… 검이…….’
귀찰검은 가슴을 쳐다보면서 고개를 툭 떨궜다.
그는 마지막 순간에 자신보다 서너 배는 빠르고, 어떤 힘으로도 밀어낼 수 없는 막강한 검초를 봤다. 믿을 수 없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