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화. 第六章 사문(師門) (2)
천하제일인(天下第一人)!
가슴 설레는 말이다.
누구든, 어떤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이든 천하제일인이라는 말을 듣고 싶어 한다.
옹기장이는 옹기 분야에서, 직물을 짜는 사람을 직물 세계에서, 각기 자신이 자신하는 분야에서 천하제일인이라고 말해 주는데 싫어할 사람이 있을까?
천하제일인이라는 말은 절대 싫지 않은 말이다.
무림에도 천하제일인이 있다.
누가 더 강할까? 이런 추측을 하는 상태라면 그것은 천하제일인이 아니다. 둘 중에, 셋 중에, 무림오검 중에…… 모두 진정한 천하제일인이 아니다. 그들은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들로 거론되겠지만, 천하제일인은 아니다.
천하제일인은 비교할 상대가 없어야 한다.
‘누구라면 상대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말하는 정도까지는 괜찮다. 그런 말은 천하제일인이라는 말을 훼손하지 않는다. 천하제일인이 상위에 있고, ‘누구’라는 사람이 도전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천하제일인은 그야말로 무적의 패자여야 한다.
그런 연유로 무림에서는 천하제일인이 등장하지 않았다.
양웅(兩雄), 삼대고수, 오대고수, 십대고수…….
이렇게 강자들을 지칭하는 말은 존재했지만, 천하제일인은 글쎄? 엄밀히 말하면 만인이 인정하는 절대 유일 천하제일인은 나타날 수 없는 구조다.
만약 누군가가 천하제일인임을 자칭한다면 그는 거의 매일 혈투를 벌여야 할 것이다.
한데 당금 무림에 천하제일인이 나타났다.
공부(公夫) 허도기(許道琦).
세상 사람들은 당금 무림을 영도하는 제일문파 성검문 문주 허도기를 천하제일인이라고 부른다.
허도기는 십오 년 전, 삼십 년의 은거를 깨고 혜성처럼 등장했다.
영원히 무림에 나서지 않겠다던 맹세를 깨고 홀연히 검을 들었다. 그리고 치밀한 계획과 철저한 준비 끝에 성검문을 급습, 문주와 가족을 참해한 마도 백여 명을 추살했다.
장자 허문승을 공격하여 사망에 이르게 한 음산사마를 비롯해서 노궁인혼마, 원음신녀 등등 성검문을 침입한 모든 마인을 깡그리 소탕했다.
모두 죽었다고 알려졌거나 은거했다고 알려졌던 절대 마인들이다.
허도기는 대가 끊긴 성검문을 내버려 둘 수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문주직에 올랐다.
하지만 허도기가 마인들을 모두 소탕했다고 해서 천하제일인이라고 불린 것은 아니다.
물론 허도기는 천하제일인에 가장 가까운 무인이다.
허도기의 무명은 일초단검(一招斷劍)이다. 일 초면 싸움을 끝낼 수 있다.
젊은 시절, 무림을 종횡할 때도 조명천검을 팔 성까지밖에 풀어내지 않았다.
구성, 십성은 아직 풀어낸 적이 없다.
그로부터 삼십 년을 은거했다. 허도강이 성검문주가 된 후, 소축에 틀어박혀서 오직 무공수련에만 매진했다.
단연 천하제일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허도기는 천하제일인이라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십년무적(十年無敵)!
천하를 휘어잡은 그이지만 향후 십 년 동안은 적수가 없을 것이라는 말을 듣는 것으로 만족해야만 했다.
그런데 현재, 허도기는 천하제일인이라고 불린다.
무림을 물론이고 온 세상 사람들이 천하제일인으로 허도기를 지목한다. 촌각도 망설이지 않고. 무공을 모르는 사람도 ‘천하제일인’하면 ‘허도기’라고 말한다.
묘하게도 허도기가 천하제일인이라는 말을 듣게 된 것은 무림이나 무공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
국군(國軍), 백만대군에게 무공을 가르치는 무공 총 교두.
허도기는 백만대군 총교두가 되었다.
그 후 일 년 뒤, 허도기는 당금 황상(皇上)으로부터 공부라는 직위를 하사받았다.
왕족이 아니라서 왕이라는 칭호는 줄 수 없다. 하지만 왕에 버금가는 신분, 공부를 하사한다. 왕족에 버금가는 명성과 위세를 누릴 수 있는.
왕족 아닌 사람이 오를 수 있는 최고의 위치까지 오른 것이다.
황상이 허도기에게 공부라는 신분을 하사한 것은 그를 친형제로 여긴다는 뜻이다.
허도기의 지인들은 그를 창숙이라고 불렀다. 무인들은 일초단검 혹은 성검문주라고 호칭했다. 하지만 공부 신분을 하사받은 후부터는 모두 공부라고 부른다.
그리고 그때부터 그는 천하제일인이라고 불리기 시작했다.
허도기는 백만대군 총교두가 되면서 정천검법이라는 새로운 무공을 내놓았다.
그동안 깨달은 심득을 정리해서 열 가지 검초를 만들어 배포했다.
조명천검이 세 단계로 구분된 것이다.
첫 번째, 가장 초보적인 단계는 국군 백만대군이 수련하는 정천검법(正天劍法)이다.
정천검법 역시 조명천검이 근간이기 때문이다.
정천검법은 단체로 수련하기 쉽고, 위력은 강하다. 실전용이며, 싸움터에서 막강한 전투력을 발휘한다. 수련 기간도 짧고, 특별하게 진기가 필요하지도 않다.
정천검법은 군사 수련용 검법이다.
실제로 대군이 정천검법을 수련한 이후, 전력이 두 배는 강해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백만대군이 오백만대군처럼 강해졌다.
두 번째 무공은 성검문 진기, 조명천검(照明千劍)이다.
허도기는 슬하에 자녀를 두지 않았다. 성검문주가 된 후에 부인을 여덟 명이나 두었는데, 어느 부인도 자식을 갖지 못했다. 그래서 허 씨 용맥은 끊긴 상태다.
대신 그에게는 소축십검이라고 불리는 제자 열 명이 있다.
그들이 조명천검을 정심하게 수련했다. 과거, 허문승, 허문학, 허문기가 수련한 정도를 넘어섰다고 평가된다. 하기는 소축십검도 이제는 모두 중년이지 않나.
이들 열 명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강하다.
당연히 조명천검은 무림 최강 검법이다. 도전자들이 모두 꺾이고 있다.
하지만 한계가 있다. 소축십검이 수련한 조명천검은 완전한 조명천검이 아니다. 알지 못해도 무방하지만, 알면 획기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것이 빠졌다.
암리(暗理)!
조명천검에는 숨겨진 진실 열 개가 있다. 열 가지 무리(武理)라고도 한다.
정확한 명칭은 조명십해(照明十解)다.
소축십검은 조명십해를 모두 알지 못한다. 열 개 중 세 가지를 전수받지 못했다.
허도기는 완전한 조명십해를 오직 한 명에게만 전수할 생각이다.
이는 이미 공식적으로 선포된 사실이기도 하다.
가장 충실하게 검법을 계승할 수 있는 자가 누군가? 그에게만 전수한다. 그리고 완전한 조명십해를 전수받은 자가 차기 성검문주가 될 것이다.
완전한 조명십해로 펼쳐지는 조명천검, 이것이 가장 지고한 조명천검이다.
허도기는 무림 군웅들을 위해서 허공부(許公府) 정문을 활짝 열어 놓았다.
-도전하고 싶은 자, 누구든지 도전하라! 누구든 조명천검을 꺾는다면 당장 국군 총교두직을 내려놓고 낙향하겠다. 패배했기 때문에 낙향하는 것이 아니다. 국군 총교두는 가장 강한 자가 맡아야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허공부 정문은 하루 십이시진 밤낮을 불문하고 온종일 열려 있다.
많은 사람이 도전했다.
하지만 허도기를 만나 본 사람은 없다. 모두 씁쓸하게 물러서고 말았다.
허도기를 만나려면 무공을 입증해야 한다. 감히 천하제일인에게 병기를 들이댈 수 있는지 증명해야 한다.
증명 방법은 간단하다.
조명천검을 수련한 소축십검 열 명 중 한 명과 싸워서 이기면 된다.
아주 간단하다.
하나, 이 관문조차 통과한 사람이 없다.
허공부는 무림제일가문이다.
* * *
삐이걱!
허공부의 뒷문이 열렸다.
뒷문은 하인들만 들락거린다. 그러니 수문 무인의 콧대는 높을 수밖에 없다.
“뭐야?”
뒷문을 열어 준 하인이 사뭇 거만하게 말했다. 하지만 곧 눈을 부릅떴다.
마차!
정문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큰 마차가 서 있다. 그뿐만 아니라 마차에는 무인도 앉아 있다.
하인이 아니라 무인이 왔다.
‘이게 뭐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곧 ‘앗차!’ 하는 생각도 치민다.
수문무인은 급히 옷매무시를 단정하게 하며 마차 곁으로 달려갔다.
스읏!
마차를 몰고 온 자가 묵묵히 홍첩(紅帖)을 내밀었다.
“웃! ……활검문주!”
하인은 홍첩을 보자마자 즉시 허리부터 숙였다.
“문주님께서 보내셨습니까?”
“그렇다.”
“마차에는 뭘 실으셨는지……. 아! 이건 아시다시피 정확하게 보고를 올려야 해서 그렇습니다.”
“시신이다.”
“시신? 시신요?”
“그렇다.”
하인이 눈을 멀뚱멀뚱 떴다.
그가 허공부 뒷문을 지킨 게 벌써 십 년이 훌쩍 넘는다. 그동안 기이하다는 물건이 참 많이 들어왔다. 하지만 시신이 실려 오는 것은 처음이다.
“넌 안에 홍첩만 전해 드리면 된다. 빨리 가라. 보는 사람들 눈이 있으니.”
마차를 몰고 온 검사가 사나운 눈길로 말했다.
* * *
“활검문에서 시신을 보내 왔습니다.”
문지기가 보고했다.
“시신? 오랜만에 재밌는 물건이 왔네. 내가 가지.”
다섯째 오진북(吳鎭北)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진중해라.”
둘째, 초가평(楚家平)이 인상을 찡그리며 말했다.
“사형, 본부(本府)에서 시신이 실려 나간 적은 있어도, 밖에서 들여온 적은 없지 않습니까? 딱 봐도 재미있는 거구먼 뭘 진중하라는 거요? 형님도 참.”
오진북이 투덜거렸다. 하지만 밖으로 나가지 않고 돌아와 자리에 앉았다.
두 사람은 소축십검이다.
옛날에는 초가평이 번개라고 불렸고, 오진북이 장반(長班)이라고 불렸다. 점박이라는 뜻이다.
지금은 모두 이름을 가졌다.
그들의 위치가 버렸던 이름을 다시 가져다주었다. 그뿐만 아니라 사형제 간의 서열도 만들어냈다.
이제는 애꾸니 쓰레기니 하는 별칭으로 불리지 않는다. 같은 소축십검이라고 서로 말을 놓지도 않는다. 철저하게 입문 순서를 따져 사형이 되었고, 사제가 되었다.
“대사형. 어떻게 할까요?”
초가평이 상좌에 앉은 사람에게 물었다.
첫째, 전가성(錢家誠)!
왼쪽 눈을 잃어서 항상 검은 안대를 하고 다닌다. 그러니 별호도 애꾸 혹은 독안(獨眼)이었다.
독안이라는 말은 지금도 쓰인다. 그의 별호가 독안혈검(獨眼血劍)이다.
독안혈검 전가성이 말했다.
“둘째 말이 맞아. 진중해야 하는 사건이다.”
“거참, 시신 한 번 보는데 뭐가 이렇게 까다로워요? 난 도저히 이해를 못 하겠네.”
“너!”
둘째 초가평이 다섯째를 쏘아봤다.
“누가 뭐랍니까? 생각할 것도 없는데, 심각하니까 그렇지.”
오진북이 투덜거렸다.
두 사람이 티격태격하는 말이 못마땅한지 전가성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가 다섯째를 쳐다보며 말했다.
“활검문주가 시신을 보내왔다는 것은 활검문 차원에서 해결할 수 없다는 말이고…… 시신을 직접 봐달라는 것은 사인이 기막히다는 말이겠지. 시신을 보는 순간부터 우리 허공부는 이 사건에 개입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거다.”
천방지축 거침없는 다섯째 오진북도 큰형의 말에는 입을 꾹 다물고 듣기만 했다.
초가평이 전가성을 쳐다보며 말했다.
“대사형, 그렇다고 보내 온 시신을 보지 않을 수도 없지 않습니까? 설혹, 우리가 개입하게 된다고 해도 무림제일가로서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고요.”
“글쎄…….”
전가성이 손을 들어 이마를 짚었다.
그는 그답지 않게 매우 신중했다. 누가 봐도 별 볼 일 없는 일인데. 신중해도 너무 신중하다.
그러자 초가평과 오진북의 낯빛도 서서히 굳어갔다.
다섯째 오진북의 얼굴에서는 장난기가 사라졌다. 아니, 차갑게 긴장한다.
대사형 전가성은 천재다.
그는 다른 사람보다 두어 수 앞을 내다보며 행동한다. 당장은 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데, 시간이 지나고 사건들이 연이어 터지다 보면 그때야 전구성이 여기까지 수를 보고 행동했구나 하고 깨닫게 된다.
십오 년 전, 전대 문주와 용골 세 아들을 처리할 때도 전가성의 역할이 컸다.
그가 모든 세부 계획을 수립했다. 마공들을 철저히 분석해서 끌어모았고, 누가 봐도 마인들의 짓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현장을 꾸몄다.
전가성이 심각해 하면 정말 심각한 것이다.
전가성이 미간을 찡그리며 말했다.
“시신을 보기는 봐야겠지. 그럼…… 이번 일은 팔제(八弟)에게 맡길까?”
“팔제에게요? 이런 일까지 내원, 외장을 구분할 필요가 있나요?”
초가평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그냥 시신만 봐주면 된다. 어떤 검에 당했는지, 어떤 검초를 사용했는지, 어느 정도의 무인에게 당했는지…… 시신을 보고 알아낸 것을 말해 주기만 하면 된다.
그런 일까지 내원, 외장을 구분하나?
전가성이 웃으며 말했다.
“이번 일은 꽤 골치 아파. 괜히 머리 아플 필요 없잖아? 그리고 이건 엄연히 무림사니 외장이 봐야지. 그래, 그게 좋겠어. 팔제에게 맡겨.”
권력이라는 것이 뭔지…… 세월이 지나다 보니 소축십검 사이에도 알력이라는 것이 생겼다. 대사형을 따르는 축과 셋째 산묘를 따르는 축으로 갈린 것이다.
이는 내원(內院)과 외장(外莊)의 다툼이기도 하다.
외장(外莊)에서는 무인들의 도전을 해결한다. 전국 군영을 돌아다니면서 정천검법을 전수한다. 직접 병사들을 도맡아서 지도할 때도 있다.
내원은 성검문의 살림을 관장한다. 하지만 이는 명색일 뿐, 주로 황궁에 관한 일들을 도맡아서 하는 편이다. 일의 성격상 주로 비밀에 속한 것이 많다.
외장 무인은 이름을 떨칠 수 있고, 내원 무인은 숨기에 바쁘다.
내원 책임자인 전가성과 외장 총책인 신도파(申屠波) 사이에 알력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현재 상황은 외장이 다소 유리하다.
내원은 세 명, 외장은 일곱 명이다. 산묘 신도파를 따르는 자가 두 명 더 많다.
일의 성격상 외장 일에 더 많은 인원이 투입되었는데, 그것이 그대로 세력 판세가 되었다.
팔제(八弟), 조추한(趙秋嫻)은 금월 외장 월직(月職)이다.
그에게 시신을 넘긴다.
전가성은 내원보다 외장에서 맡는 게 좋겠다고 판단했다.
그렇게 결정된 것이다.
* * *
“시신?”
조추한이 눈살을 찌푸렸다.
“네. 활검문에서 보내왔습니다.”
“그래?”
조추한이 일어섰다.
그 역시 활검문에서 시신을 보내왔다는 말을 듣는 순간, 사흔을 살펴봐 달라는 소리라는 것쯤은 짐작했다.
그 전에, 그에게도 정보가 있다. 시신이 뒷문으로 들어왔다는 사실을 안다. 외장보다 대사형에게 먼저 건네졌다. 그걸 굳이 무림 사건이라며 외장으로 보내온 것이다.
시신만 살펴보면 되는데, 대사형이 손을 대지 않았다. 왜? 궁금하기 짝이 없다.
“어떤 사흔(死痕)이기에…….”
그가 걸어가며 중얼거렸다.
덜컹!
목관이 열렸다.
목관에는 시신이 실려 있었다.
방부 처리가 되어서 죽은 지 오래됐는데도 아직 썩지 않았다. 살 색은 하얗게 변색하고 머리카락이 빠지기는 했지만 썩는 냄새 대신에 방부제 냄새가 진동한다.
“!”
조추한의 눈길이 대뜸 심장으로 쏠렸다.
그는 심장을 봤다. 무섭게 부릅뜬 눈으로…… 줄기줄기 살광을 피워내며 쳐다봤다.
“이것 봐라?”
조추한이 입술을 비틀면서 피식 웃었다.
“무슨 칼입니까?”
시신을 가져온 자, 노룡검 구지유가 물었다.
“이 칼, 누가 쓴 건가? 이 칼 쓴 놈 인상착의부터 말해 봐.”
조추한이 구지유를 쳐다보며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