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화. 第六章 사문(師門) (3)
외당 월직(月職)은 사실상 성검문을 대표하는 경우가 많다.
외당 특성상, 외당 무인들은 성검문에 안주하기보다는 중원 무림을 돌아다니며 활동하게 된다. 각 문파를 돌아다니면서 시비를 조절하고, 국군 훈련도 주관한다.
그렇기 때문에 소축십검 중 성검문에 남아 있는 사람은 한 명 내지 두 명이 고작이다.
그래서 한 명씩 돌아가며 월직을 맡는다.
월직은 한 달 동안 성검문 외당에서 일어나는 모든 대소사를 관장한다.
허공부에 도전하는 모든 도전자를 그가 상대한다.
외장이 개입하는 일 중 거의 대부분을 혼자 판단하고 처리할 수 있다.
월직에게는 그만한 권한이 주어진다.
이런 점은 세상 사람들이 다 안다.
오죽하면 허공부에 도전하더라도 월직이 누군지 알아보고 도전하라는 말까지 있다. 검이 부드러운 사람과 부딪치면 죽었어야 할 패배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시신이 외장에 맡겨진 이상 월직을 맡고 있던 팔제에게 전권이 넘어간다.
이제 시신은 팔제 조추한 담당이다.
조추한 이외에는 어떤 사형제도 시신에 간여하지 못한다.
시신이 들어온 날, 외장 월직을 맡았던 사람이 조추한다. 한 달 동안.
조추한은 매서운 무인이다.
십검소축 중에서도 가장 매서운 사람 축에 속한다. 검이 독하기로는 아마 세 손가락 안에 꼽을 것이다.
조추한은 노룡검으로부터 자세한 이야기를 들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들었다. 그리고 시신을 여러 번에 걸쳐서 살폈다. 이미 마음속에서는 확신을 내렸는데, 그래도 다시 한번 살펴본다는 심정인 것 같다.
이윽고 그가 노룡검을 쳐다보며 말했다.
“문주님께 전해라.”
‘……전해라?’
노룡검 구지유는 계속되는 반말에 비위가 확 상했다.
시신에 관해서 물을 때도 반말이더니, 이제는 아예 아랫사람 취급하고 있지 않나.
노룡검이 인상을 쓰건 말건 조추한은 태연히 말했다.
“시신들이 어떤 칼에 당한 건지는 알겠다. 하지만 일을 해결해 줄 수는 있어도 말해 줄 수는 없다. 마동과 노복이라고 했나? 곧 그놈들 목숨이 떨어질 것이라고 전해,”
“어떤 칼인지 말해 주지 못하는 이유라도 알고 싶소이다만.”
노룡검은 비위가 상하는 것을 꾹 참으면서 공손하게 물었다.
기분이 나쁘지만, 아쉬워서 찾아왔다.
자신들은 어떤 칼에 당했는지 알아보지 못했는데, 조추한은 시신을 보자마자 즉시 알아챘다.
허공부는 확실히 한 수 위다.
하지만 무작정 돌아가서 문주에게 ‘허공부에서 마동과 노복을 베어 주겠다고 합니다. 그렇게만 전하랍니다.’ 하는 식으로 답답하게 보고할 수는 없다.
조추한은 노룡검의 말을 무시했다. 그가 한 말을 못 들은 듯 대꾸도 하지 않는다.
더는 말하지 않겠다는 뜻이 분명했다. 아니, 그는 더는 노룡검과 말 섞을 이유가 없다는 듯 쳐다보지도 않고 유유히 마차에 올라 말고삐를 거머쥐었다. 마차를 움직이려고.
노룡검이 즉시 마차에 올라탔다.
조추한이 옆에 앉은 그를 쳐다보며 말했다.
“내려.”
“시신을 옮기려는 겁니까?”
“맞아.”
“우리 문도입니다. 제가 마지막까지 확인하는 게 맞습니다.”
“그건 내 알 바 아니다. 계속 앉아 있으면 죽어. 죽을 생각이 아니라면 내려라.”
“뭐라……!”
노룡검이 눈살을 확 찡그리며 말했다.
“…….”
조추한은 결정하라는 눈으로 노룡검을 쳐다봤다. 내릴 것인가, 죽을 것인가.
“천하의 허공부라고 해도 말이 심하군. 나 역시 활검문 십 검 중 한 명이다.”
“아, 불쾌했나?”
“시신을 어디로 데려가겠다는 건가?”
노룡검도 존대를 버렸다. 조추한보다 연배가 어리지만, 같이 말을 놓았다.
“후후! 내 말에 기분 상했나 본데, 그럴 필요 없어. 내가 손을 쓰겠다는 것도 아니고. 허공부에 도전해 온 사람이라면 모를까, 도전도 하지 않은 사람에게 검을 들이대지는 않아.”
조추한의 말은 마치 너 정도는 언제든지 벨 수 있다는 말처럼 들린다.
허공부 팔제가 건방지고 도도하다는 말은 들었다. 안하무인이라고. 하지만 이처럼 거침없을 줄은 몰랐다. 활검문 십검을 아예 거지발싸개 취급하고 있지 않나.
조추한이 말했다.
“이 마차는 다른 곳으로 옮길 거다. 그곳에 있는 사람은 인간 같지 않아서 말이지. 모르는 사람이 나타나면 죽일 게 뻔해. 그래도 좋다면 앉아 있고.”
“하! 활검문 무공은 아예 안중에도 두지 않는군. 내가 죽이고 싶으면 죽일 수 있는 사람쯤으로 보였나 본데, 활검문 무공이 그렇게 약하지는 않지.”
노룡검은 자존심이 확 상했다.
그래도 활검문은 한 지방을 다스리는 패족(覇族)이다. 그리고 노룡검은 십 검이다. 검에 대해서 일가견을 지닌 검사다. 그가 가르치는 제자도 많다.
조추한은 그런 사람을 철저하게 무시하고 있다. 또 사실, 무시할 만하다. 조추한이 꺾은 고수 중에는 노룡검이 상대하지 못할 정도의 고수도 많다.
확실히 조추한은 몇 수 위 고수다.
하지만 노룡검은 활검문 입장을 생각했다. 자신이 활검문을 대리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니 자신이 무시당하는 것은 활검문이 무시당하는 것과 같다.
조추한이 피식 웃었다.
“자존심을 세우고 싶으면 정식으로 홍첩(紅帖)을 내밀어. 언제든 상대해 주지. 이유야 어쨌든 홍첩조차 내밀지 못하는 무인이 자존심은 세워서 뭐 하나?”
“뭐라고!”
“설혹 홍첩을 내밀고 검을 맞댔어도 허공부는 상대를 죽이지 않는다. 비무는 비무에서 끝나야지. 하지만 내가 만나려는 사람은 그런 것에 연연하지 않아.”
“…….”
“그들은 낯선 사람을 살려 둔 적이 없는 것으로 아는데…… 그들이 손을 쓰면 당신은 죽어. 그래서 한 말이다. 이렇게 말했는데도 마차에 타고 있겠나?”
노룡검은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조추한이 거짓을 말하는 것 같지는 않다.
아니, 그 말을 듣다 보니 아주 이상하다. 문도들의 시신을 허공부가 아니라 낯선 사람에게 보이려는 것 같다. 허공부가 활검문에게는 말하지도 않고 다른 사람에게 시신을 보인다? 누구에게?
그러나 누구에게 보이든, 문도들을 마지막까지 지켜봤다가 자신이 화장시켜 주는 게 맞는 것 같다.
노룡검은 눈길을 돌렸다.
그는 조추한을 쳐다보지 않았다. 마차에서 내리지도 않았다. 앞만 쳐다보았다.
“후후! 죽음은 저승사자가 몸을 지나간 다음에나 아는 법이지.”
조추한이 아주 기분 나쁜 말을 했다.
* * *
조추한은 말이 없었다.
성검문 월직이 성검문을 비우고 출타했다. 그것도 꼬박 이틀 동안이나 마차를 몰았다.
그동안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정말 기가 질릴 정도로 입이 무거운 사람이다. 아니면 노룡검 정도는 말을 섞을 가치도 없다고 생각하거나.
어찌 됐든 그는 계속 마차를 몰았다.
“이럇!”
갈림길에서 조추한이 말고삐를 옆으로 잡아챘다.
드디어 넓은 관도를 버리고 좁은 산길로 들어섰다.
‘……도착한 건가?’
노룡검은 긴장했다.
산길은 마차가 다니기에는 적합하지 않다. 산곡 초입까지는 마차를 몰 수 있어도 곧 길이 끊길 것이다.
길이 끊긴 다음에는 어떻게 하나? 조추한 혼자서 목관 두 개를 짊어지고 갈 생각인가? 아니면 길이 끝나는 곳에 민가라도 있나? 혹, 목적지인가?
그런데 마차는 산길로, 산길로 계속 나아갔다.
십 리를 지나고 이십여 리를 지난 것 같은데…… 계속 좁은 산길이 이어진다.
‘여기가 어디지?’
노룡검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인적이 완전히 끊어진 길이다. 마차가 다닐 수 있도록 잘 닦인 길인데도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주변에 농사를 지을 만한 땅이 있는데도 개간을 하지 않는다.
인근 주민들이 눈길조차 주지 않은 땅이다.
완전히 죽어 있는 길이다. 아무도 들어서지 않는 길, 위험이 도사린 길이다.
“이곳이 어딥니까?”
노룡검이 물었다.
물론 조추한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말고삐를 잡고 마차를 몬다.
삐걱! 삐걱! 삐이걱!
마차 바퀴가 금방이라도 떨어져 나갈 듯 삐걱거렸다.
길이 점점 험해졌다. 자갈도 많아지고, 풀이 무성하게 자라서 길이 아닌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곡구(谷口)가 그나마 사람 손을 탄 것 같다. 누군가가 길을 다듬었다. 지금 마차가 지나가는 길을 보고 있자니 그런 생각이 저절로 일어난다.
“어허!”
조추한이 말고삐를 낚아챘다.
마차가 섰다.
커다란 느티나무…… 너무 커서 수령이 몇 년인지조차 가늠되지 않는 나무가 나타났다. 마을 어귀에 있었다면 틀림없이 수호목이 되었을 나무다.
‘사내 다섯 명이 팔을 맞대도 모자라겠어. 굉장한 나무군.’
노룡검은 느티나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나무 같은 것을 쳐다볼 여유가 없는데, 이상하게도 나무에게 눈길이 갔다.
“누구야?”
“……헛!”
느닷없이 나무가 말을 걸어왔다.
깜짝 놀란 노룡검이 나무를 쳐다봤다.
아무런 기척을 느끼지 못했다. 사람이 있다는 느낌을 전혀 받지 못했다.
‘고수……!’
노룡검은 전신에 긴장감을 끌어올렸다.
조추한이 잔뜩 긴장해 있는 노룡검을 힐끔 쳐다보면서 말했다.
“활검문 노룡검 구지유. 선물을 가져온 손님이다. 아량을 베풀었으면 한다.”
조추한이 말했다.
“출입자사(出入者死). 외인은 출입 금지야.”
“선물을 가져왔다 하지 않았나.”
“너도 말귀 참 못 알아듣네. 규칙은 규칙이라니까? 이놈의 규칙이라는 것이 한 번 어긋나면 개판이 된단 말이야.”
나무는 조추한에게 태연히 반말했다.
조추한은 천하제일인이 아니다. 일파의 방장이나 장문인도 아니다. 하지만 그가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높다. 그가 나서면 웬만한 시비쯤은 저절로 해소된다.
나무는 그런 사람을 태연히 짓뭉개고 있다.
‘도대체 누군데……?’
노룡검은 자신의 생사(生死)에 대해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는 것임에도 전혀 기분이 상하지 않았다. 아니, 더욱 긴장했다. 그리고 이제야 조추한의 경고, 마차를 타고 가면 죽을 것이라는 경고가 거짓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휴우! 알아서 해야겠다.”
조추한이 노룡검을 쳐다보며 말했다.
스읏!
나무에서 한 사람이 걸어 나왔다.
그는 나무 뒤에 있었다. 나무가 워낙 커서 보이지 않은 탓도 있지만…… 그가 너무 작아서 보이지 않았던 것 같다.
체격은 열서너 살짜리 소동처럼 작다. 얼굴은 크고 머리숱은 거의 없어서 대머리다. 입술이나 볼은 통통한데, 이마에는 굵은 주름이 가득하다.
도무지 나이를 추측할 수 없다.
“칼 한 번만 받아. 그러면 살려준다.”
나무에서 나온 키 작은 사내가 말했다.
“뭣! 사람을 무시해도…….”
노룡검이 발끈 화를 내려고 할 때, 마차에 앉은 조추한이 차분히 말했다.
“최선을 다해라. 저자의 칼 한 번, 나도 받기 힘들어.”
순간, 노룡검은 숨이 막혔다.
세상에! 도대체 이 사내가 누구이기에 조추한이 이런 말을 하나. 조명천검을 수련한 사람이 받아내기 힘든 칼이라니.
파팟! 파파팟!
노룡검은 키 작은 사내를 매섭게 쏘아봤다.
사내는 어떤 살기도 피워내지 않는다. 아니, 아무런 기운도 없다. 너무 기운이 없어서 나약해 보이기까지 한다. 도무지 빠르다거나 강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스읏!
키 작은 사내가 칼을 들었다.
칼도 볼품없다. 원래는 대두도(大頭刀)였는데 어디서 반쯤 잘린 것 같다. 반도(半刀)다.
“이거 안 쓴 지 오래됐는데…… 잘 써질지 몰라.”
사내가 반도를 휘휘 휘둘렀다.
노룡검은 감히 방심하지 못했다.
방금, 조추한이 말했다. 자신도 감당하기 힘든 칼이라고. 그 말을 똑똑히 기억한다.
“후우우웁!”
숨을 길게 고르며 진기를 휘돌렸다.
활검문 십 검으로 두각을 나타낸 적하검법(赤霞劍法)을 서서히 끌어냈다.
검에서 붉은 운무가 피어났다.
“제길, 저 정도는 흥밋거리도 안 되는데. 시간 낭비 없이 빨리 끝내는 게 좋겠어.”
키 작은 사내가 거칠게 말하더니 대뜸 허공으로 신형을 붕 띄워 올렸다.
됐다! 적하검법은 하늘을 베는 검이다. 상대가 허공에 머무른다면 더욱 베기 쉽다. 붉은 운무가 사방으로 번져 가듯이, 검날이 단숨에 하늘을 가른다.
쒜에에엑!
적하검법 중 단천적운(斷天積雲)을 펼쳤다. 한데!
“아!”
노룡검은 탄식했다.
세상이 쫙 갈라진다. 갑자기 온 세상에 사선으로 줄이 쭉 그어졌다.
사선으로 갈린 하늘이 한쪽으로 떨어져 간다. 사선 아래쪽도 뚝뚝 떨어진다. 사선을 중심으로 위와 아래가 구분된다. 세상이 반으로 갈린다.
“커억!”
노룡검은 짧은 비명을 토해냈다.
눈앞에서 핏줄기가 쫙 솟구쳤다.
오른쪽 어깨부터 왼쪽 옆구리까지 일직선으로 갈라버린 사선이 만들어낸 피 분수다.
스륵! 쿵!
노룡검은 힘없이 쓰러졌다.
“다시 봐도 무서운 칼이야.”
“큭큭! 그러게 외인은 데리고 오지 말았어야지.”
키 작은 사내가 웃었다.
“그 칼에 죽은 사람이 두 명 더 있는데, 보고 싶지 않아?”
조추한이 고갯짓으로 마차에 실린 목관을 가리켰다.
“……뭐? 그게 무슨 개소리야?”
순간, 키 작은 사내가 눈가에 기광을 번뜩였다. 상당히 놀란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