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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홀도-29화 (29/600)

#29화. 第六章 사문(師門) (4)

시신 세 구가 안으로 옮겨졌다.

노룡검, 그리고 목관에 담겼던 두 구.

키 작은 사내는 활검문 십 검 노룡검을 일수에 베어냈다. 거침없이 죽였다.

허공부는 명문정파다. 강호 제일 가문이다. 조추한은 허공부에서 가장 강한 사람 중 한 명이다. 그런데도 조추한은 명문정파 검사가 죽어 나가는 모습을 지켜보기만 했다.

강호인이 이 모습을 봤다면 뭐라고 할까? 허공부의 위상은 단번에 추락할 것이다.

하지만 불행히도 강호인은 노룡검이 누구에게 어떻게 죽었는지 알지 못한다.

이제 노룡검은 세상에서 사라진다.

죽은 것이 아니라 완벽하게 실종된 것으로 처리될 것이다.

삐걱!

문소리가 나며 한 사람이 들어섰다.

키가 크고, 몸이 단단하고, 눈매가 날카로워서 뱀눈을 연상케 만드는 사내.

그는 방 안을 쓱 훑어봤다.

방안에는 시신 세 구와 두 사람이 있다. 한 사람은 조추한이고, 다른 한 사람은 노룡검을 죽인 키 작은 사내다.

“무슨 일이냐?”

안으로 들어선 사내가 키 작은 사내에게 말했다. 조추한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키 작은 사내가 고갯짓으로 시신을 가리켰다.

“저놈들이 가져오는 일은 하나같이 마음에 들지 않아. 이번에는 또 무슨 일을…….”

시신을 살펴보던 사내가 갑자기 입을 꾹 다물었다.

그는 노룡검은 쓱 훑어보는 것으로 그쳤다. 하지만 목관에 담겨서 가져온 시신 두 구는 부릅뜬 눈으로 뚫어지게 쳐다봤다.

“……누구 짓이냐?”

그가 조추한을 쳐다보며 말했다.

“후후! 이제 흥미가 생기나 보군.”

조추한이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누구 짓이냐고 물었다!”

“활검문 인근에 작은 마방이 있는데, 그곳에서 말을 돌보던 마동이 한 짓이라고 들었지.”

“마동?”

뱀눈 사내가 키 작은 사내를 쳐다봤다.

키 작은 사내는 자신도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어깨를 으쓱거렸다.

“큭큭큭!”

뱀눈 사내가 키득키득 웃으면서 의자에 앉았다.

삐걱!

문이 열리며 두꺼운 가죽옷을 입은 사내가 들어섰다.

그는 머리를 여인처럼 길렀다. 길게 기른 머리를 뒤로 반듯하게 묶었다.

이목구비가 선명한 미남이다. 눈썹은 굵고, 눈이 여인처럼 크다. 콧수염과 턱수염을 길렀는데…… 약간만 다듬어서 거친 느낌이 와락 풍긴다.

그는 문을 밀친 후, 방 안을 쓱 훑어보았다.

살아있는 사람이 셋, 죽은 사람이 셋.

“왔니?”

그가 조추한을 향해 말했다.

조추한은 고개만 까딱거려서 예를 표했다.

“이번에는 또 무슨 일이니? 요즘 좀처럼 연락이 없더니…… 흥분된다, 야.”

“큭큭! 일홀도입니다.”

뱀눈 사내가 말했다.

순간, 가죽옷을 입은 사내의 눈에서 불똥이 파앗 피어났다.

“너…… 뭐라고 했니?”

“일홀도입니다.”

“일홀도?”

뱀눈 사내가 손을 들어서 반듯하게 누워있는 시신 두 구를 가리켰다.

가죽옷을 입은 사내가 시신에게 다가가 사흔을 살폈다.

“야……. 이거 재미있네.”

가죽옷을 입은 사내가 씩 웃으면서 말했다.

“이곳 칼, 맞지?”

조추한이 말했다.

“맞다. 일홀도. 우리 칼이다.”

가죽옷을 입은 사내가 시신에게서 눈을 떼며 말했다.

“이놈들, 누가 죽였니? 누가 이 칼을 사용했냐 이 말이다.”

“마동과 노복이랍니다.”

키 작은 사내가 말하기 시작했다. 조추한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그대로.

“이 칼은 우리 아니면 사용하지 못하는데…… 재미있게 됐지 않습니까?”

뱀눈 사내가 웃으며 말했다.

“확실히 재미있네. 우리가 산을 나간 적이 없으니……. 어떤 놈이 우리 칼을 썼다는 건데…… 이게 뭐이야? 사부가 우리 말고 다른 놈을 받았다, 이 말인가?”

“아니, 사부에게 제자는 우리 셋뿐이에요. 그건 제가 보증합니다.”

키 작은 사내가 말했다.

사부에게는 제자가 세 명 있다.

두 명은 외딴곳에서 오직 무공수련에만 전념했다. 반면에 키 작은 사내는 한동안 사부 곁에서 수련하며 수발까지 들었다. 사부와 한시도 떨어진 적이 없다.

사부에게 제자가 또 있다면 키 작은 사내가 모를 리 없다.

“그럼 뭐이야? 가르침 없이 일홀도를 어째 써. 불가능한 일이지.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이야. 동박(動剝), 네가 틀렸어, 야. 사부가 제자를 거뒀고만. 우리도 모르게.”

“큭큭! 나도 그쪽에 한 표.”

뱀눈 사내가 말했다.

“제자 거둔 적 없는데……. 하! 언제 거두셨대? 내가 항상 붙어 있었는데.”

동박이라고 불린 키 작은 사내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이 칼이 너희 칼이라면…… 이 시신들, 여기 놓고 가도 될까? 사문 일이니 잘 해결해야지?”

조추한이 말했다.

“가라. 그 마동은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

가죽옷을 입은 사내가 말했다.

“그런데…… 이건 내가 잘 몰라서 하는 말인데, 동박이 펼친 일홀도, 마동이 펼친 일홀도. 누가 더 뛰어난 건가? 내가 보기에는 마동이 더 뛰어난 것 같아서 말이지.”

“하하하!”

“큭큭큭!”

조추한의 말에 세 사람이 일제히 웃었다.

일홀도는 상식을 벗어난다. 중원 무학으로는 일홀도를 이해하지 못한다.

일홀도는 무학이 아니다. 무공도 아니다. 살도(殺刀)일 뿐이다.

동박과 마동 중 누가 더 강하냐는 물음……. 허도기 같으면 하지 않는다. 물을 필요가 없다. 시신을 보면 당장 파악이 되는데, 입 아프게 왜 묻겠나.

물론 조추한이 왜 물었는지 이해한다.

마동이 전개한 일홀도는 매우 정교하다. 심장 부위 한 뼘만 살짝 절개했다. 칼로 사람을 죽이지 않고, 도기(刀氣)로 죽였다는 편이 옳을 것이다.

반면에 동박은 매우 거칠다.

노룡검은 오른쪽 어깨부터 옆구리까지 길게 절개되었다.

누가 봐도 칼날로 죽였다. 도기 같은 것은 사용할 생각도 없는 듯하다.

조추한이 봤을 때는 마동이 훨씬 앞선다.

하지만…… 웃는다. 일홀도는 그런 칼이 아니다. 천지양단(天地兩斷), 하늘과 땅을 쩍 갈라버리는 단도(斷刀)다. 강함도 빠름도 정교함도 아니다.

그저 가른다.

동박은 생각 없이 갈라버렸고, 마동은 생각을 깊이 했다. 칼을 쓰면서 여러 가지를 고려했다.

동박이 한 수 위다.

이런 이치를 허도기는 안다. 하지만 조추한은 모른다.

조명천검을 넘어서 조명십해에 이르러야만 일홀도가 무엇인지 이해하게 된다.

가죽옷을 입은 사내가 말했다.

“깊게 알아서 뭐 하게.”

“후후! 사실 굳이 알 필요는 없어. 궁금해서 물은 말이지. 정리하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릴까?”

“오고 가고 한 달.”

“좋아.”

조추한이 미련 없이 뒤돌아섰다. 그러다가 생각난 듯 뒤돌아서며 말했다.

“이번 일은 사부님께 보고하지 않았다. 너희 칼이니 알아서 정리하라고. 다른 뜻은 없어. 호의로 받아.”

조추한이 씩 웃었다.

* * *

“틀림없이 사제야. 사제가 아니면 일홀도를 사용할 수 없어. 큭큭! 사부가 어떤 놈을 남긴 건가? 칼을 보니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애송이 놈인데.”

뱀눈 사내가 말했다.

“아직 모르겠니? 이놈, 우리에게 오라잖니.”

가죽옷을 입는 사내가 시신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말했다.

“그놈, 칼을 전혀 숨기지 않았어요. 사형 말대로 우리에게 오라는 소립니다. 그럼 가 줘야죠. 오라는데 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제가 가겠습니다.”

“아니, 아니. 형개(馨凱) 넌 저번에 나갔으니 이번에는 동박이 나가. 쟤도 콧바람 좀 쐐야 하지 않겠어?”

“네. 사형.”

동박이 재빨리 일어섰다.

“큭큭! 오랜만에 중원에 나가니 신나냐?”

뱀눈 사내, 형개가 말했다.

“올 때 좋은 술 한 병 사다 드릴게. 너무 섭섭해 하지 마시고.”

동박이 반도를 손으로 쓱 문지르며 말했다.

“놈이 사용하는 칼, 일홀도라는 점 명심해라.”

“아! 그거……. 명심해야 하는 거구나.”

동박이 머리를 끄덕이며 몰랐다는 듯 말했다.

모를 리 없다. 일홀도는 애송이가 펼친 것과 절정고수가 펼친 것 사이에 차이가 크게 나지 않는다.

방심하면 누구든 당한다는 소리다.

이 자리에 있는 세 사람…… 그들은 자신이 제일 강하다고 생각한다.

누구보다도 강하다. 동박은 두 사형보다 자신이 강하다고 자신한다. 가죽옷을 입은 사내 가헌(佳軒)은 두 사제를 안중에 두지 않는다. 둘째 형개 역시 사형과 사제보다 강하다고 생각한다.

‘누가 제일 강한가?’라고 물으면 즉시 자신이라고 답한다.

그럼 달리 물어보자. 가헌에게 두 사제를 벨 수 있냐고 물어보는 것이다.

이 물음에는 즉시 답이 나오지 않는다.

싸워 봐야 알지.

이것이 일홀도다.

일정 수준 이상에 오르면 위도 없고, 아래도 없다. 상대방 역시 같은 경지다. 그러니 싸워 봐야 승패를 알 수 있다. 비무가 아니다. 목숨을 건 결전이어야 한다.

얼굴도 모르는 사제는 이제 막 일홀도를 잡았다.

사흔을 살펴보니 눈 감고도 팔을 비틀 수 있는 정도다. 코흘리개 수준이라서 웃으면서 지켜볼 수 있다.

하지만 역시 일홀도다. 방심하면 당한다.

가헌이 말했다.

“그놈 베기 전에 성(性)부터 물어봐라. 정식 제자인지 아니면 한두 수 주운 놈인지는 알아야 하지 않겠어?”

“하하하! 걱정하지 마십시오. 꼭 물어볼 테니.”

동박이 말했다.

일홀문(一忽門)!

일홀이라는 말은 십만 분의 일이라는 뜻이다.

할푼리모사홀(割分厘毛絲忽)에서 말하는 바로 그 ‘홀’이다.

무인 십만 명에게 무공을 가르치면 한두 명쯤은 진짜 검귀가 탄생한다.

초식에 구애받지 않고, 진기 고하(高下)나 경륜 같은 것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마주 선 상대를 무조건 베어내는 진짜 강한 놈이 나타난다.

그놈이 일홀이다.

가끔…… 무림에서는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무인이 평생 농사밖에 모르던 농민에게 맞아 죽는 일도 그런 축에 속한다.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다.

일홀이 되려면 천부적인 반사 신경을 타고나야 한다.

뼈와 근육이 남달라야 한다.

무공을 수련하지 않았어도, 십 년 이상 수련한 사람처럼 민첩하고 강하다.

일홀은 타고난다.

만들어진 인간이 결코 아니다. 선천적으로 타고난 싸움꾼이다. 무공을 수련하지 않아도 웬만한 무인쯤은 쓰러트릴 수 있는 진짜 싸움꾼을 말한다.

그러니 일홀문이라는 말은 가당치 않다.

그런 자들을 모아서 무공을 전수하고, 사형제가 되어서 함께 지내는 것.

일홀문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일홀도라고 해서 특별한 무공 구결이 있다거나, 초식이 있는 게 아니다. 각기 백여 가지 이상의 무공을 수련하고, 특징들을 모아서 자신에게 맞는 무공을 만들어내는데…… 지도하는 사람을 쫓아서 특정한 무공이 형성된다.

일홀문 같은 경우에는 천지양단, 단도(斷刀)다.

사부가 도를 사용했고, 특히 단도에 능했다. 그러니 제자들도 단도를 쫓아간다.

일홀도는 그렇게 탄생했다.

만약 일홀문을 이끈 사부가 허도기였다면, 아마도 세 사람은 조명십해에 가까운 검공을 수련했을 것이다. 사용하는 병기도 검이었을 것이고.

세 사람이 자신만의 무공을 만들어낸 날, 사부는 성(性)을 하사했다.

일홀문 대대로 전해오는 성씨, 서리(徐離) 씨다.

왜 서리 씨를 하사하는지는 알지 못한다. 전대 일홀문주 서른여섯 명 중에 본명으로 서리 성을 가진 문주는 한 명도 없었다. 모두 다른 성씨였다.

그들이 일홀도를 가지는 순간 서리 씨가 된다.

첫째 가헌은 서리가헌이며, 둘째는 서리형개, 셋째는 동박이다.

세 사형제 중에서는 가헌이 제일 먼저 서리 성을 받았다. 서리형개가 이년 늦게 받았고, 동박은 끝내 성씨를 받지 못했다. 사부가 죽기 전까지 졸랐는데도.

가헌이 사제를 베기 전에 성씨를 전해 받았는지 물어보라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서리라는 성씨를 전해 받았으면 마동은 진정한 사제가 된다.

그때는 베는 것이 아니라 포섭해야 한다. 포섭이라는 말을 사용할 필요도 없다. 사형이 나타나면 찍소리도 못하고 그냥 머리를 숙일 것이다.

스으읏!

그날 밤, 동박이 풍도곡(風途谷)을 벗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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