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화. 第七章 사자유언(死者遺言) (3)
노인은 일홀문 문도와 겨뤄 본 적이 없다. 아예 겨룰 생각을 하지 않았다.
어떻게 일홀문도와 싸운단 말인가.
태어날 때부터 싸움꾼인 놈들과 주먹질을 나눌 때는 이겨도 몸이 성치 않을 것이라는 각오를 해야 한다.
참으로 하기 싫은 싸움이다.
일홀문주가 거둬들인 자들은 인간이 아니다.
몸이 표범처럼 날렵하다. 뱀처럼 은밀하다. 말처럼 빠르고, 곰처럼 강하다.
그런 자들과 어떻게 싸우나.
일홀문도와 손속을 섞겠다는 생각은 아걸을 키우면서 세상을 떠도는 동안에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 싸우게 되었다. 권각(拳脚)으로 싸우는 것도 아니다. 검과 칼을 들고 싸운다. 차가운 쇠붙이로 상대의 육신을 갈라내려고 한다.
이 싸움에서 이길 가능성은 거의 없다.
냉정하게 판단하면 동박의 손에 들린 칼이 육신 어딘가를 갈라낼 것이다.
죽음은 예정되어 있다. 그런데도 싸우고자 한다.
이게 마지막 할 일이다.
이 일만 마치면 이 세상에서 그가 할 일은 더 없다. 일홀문주를 위해서, 자신을 위해서.
“네놈과 맞서면 상당히 떨릴 줄 알았는데, 별로 떨리지 않네. 다른 때와 똑같아.”
“계속 느끼고 있는 건데…… 우리에 대해서 정말 잘 알고 있나 봐?”
“알지. 잘 알지. 후후!”
“내가 머리가 나빠서 말이야, 영 생각이 안 나. 누군지 약간 언질이라도 줄 수 없나?”
“언질…… 후후! 사람은 공기가 있어야 살아. 늘 공기를 들이마시고, 내쉬지. 하지만 공기에 대해서 생각하지는 않아. 난 공기와 같은 존재였어. 늘 곁에 있지만, 생각할 필요는 없는.”
“뭐야? 그럼 우리 주위에 있었다는 말이잖아? 그 말을 들으니까 더 헷갈리는데? 당신 누구야?”
“후후후!”
노인은 웃었다.
자신이 누구인지 숨길 생각은 전혀 없다.
동박이 가진 칼은 세상에 선보인다. 반면, 아걸이 지닌 칼은 꼭꼭 숨긴다.
이것이 마지막까지 할 일이다.
자신이 누구인지 말해 주면, 동박은 당장 네 번째 제자를 생각할 것이다. 아걸을 알지는 못해도 일홀문주가 제자를 받아들인 사실은 눈치챈다.
그 정도도 알려주지 않으려고 한다.
자신이 누구였는지 말해 주지 않는 이유는 그것뿐이다.
동박이 말했다.
“늘 사부 곁에 있었다면, 내 칼이 어떤 칼인지도 알겠네? 아니다. 그 후로 많이 변했으니까 넌 모르겠구나. 하지만 내가 당신을 죽일 수 있다는 것은 알 테고.”
“잘 알지. 잘 알아. 하하!”
“우리가 싸우게 되면 똑! 딱! 그사이에 너는 죽어. 그것도 짐작하고 있나?”
“안다니까.”
“이러니 이상하지. 부딪치면 죽는다는 걸 빤히 알면서 왜 죽음을 자초하는 건지 모르겠다는 말이지. 솔직히 말해 봐. 왜 내 앞에 나타난 거야?”
“그나마 다행이다.”
“뭐가?”
“사부 등에 칼까지 꽂은 놈들이 잘 먹고, 잘 살고 있다면 상당히 배 아팠을 텐데. 네놈 꼴을 보니까 잘 사는 것 같지 않아서 말이야. 어때? 신발 바꿔 신어도 그게 그거지?”
순간, 동박의 눈가에서 번갯불이 번쩍 튀었다.
파팟!
살광이 노인을 훑었다.
죽봉에서 벌어진 일은 단 네 사람만 안다. 허도기와 세 제자만 안다.
노인은 그 일을 말하고 있다.
옛날…… 십여 년도 훨씬 이전에 있었던 일을 알고 있다.
아무도 모르는 죽음, 첩첩 산골에서 죽어간 노인네에 대해서 알고 있다.
“정말 궁금해지네. 네놈과 아걸이라는 놈, 누굴까?”
“문주는 절대로 남에게 허리를 굽히지 않았는데…… 제자들이라는 작자들이. 하하.”
“냄새도 묘해. 이건 마치 사부를 위해서 우리를 죽이겠다는 투로 들리는데?”
“맞아. 그럴 생각이다.”
동박의 눈가에 이채가 번뜩였다.
“킥킥! 기분 더럽네. 어떤 귀신이 무덤 속에서 기어 나와 발목을 잡는 느낌이야. 넌 이 자리에서 죽을 테고…… 활검문도를 벤 아걸, 그 애송이가 우릴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지?”
“분명한 것은 너희가 죽는다는 거야.”
“후후! 그래? 상당히 기대되네. 어떤 식으로 내 칼을 부러트릴지 기대 돼.”
동박이 칼을 잡았다.
그가 사용하는 칼은 매우 짧다. 보통 칼의 절반밖에 되지 않는 반도다.
노인, 아삼은 반도의 유래를 안다.
일홀문주는 동박이 사용하던 칼을 반으로 부러트렸다. 멀쩡한 칼을 절반이나 잘라냈다.
-칼을 왜 반으로 부러트려요?
-너무 무겁다.
-무거워요? 전혀 안 무거운데. 이 정도는 가볍게 휘두를 수 있어요. 봐요.
동박이 대두도를 자유롭게 휘둘렀다.
-그렇구나. 네게는 전혀 무겁지 않구나. 하하!
아무것도 아닌 일이 아니다. 동박은 그때부터 반도에 집착했다.
반도가 왜 좋은 줄도 모르고, 칼이 왜 무겁다고 한 줄도 모르고…… 무조건 반도를 사용했다.
동박은 지금도 반도를 들고 있다.
추측건대 아직도 자기 검을 찾지 못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렇다고 동박을 이길 수 있다는 말은 아니다. 그런 일은 불가능하다. 동박이 서리 성을 받지 못했다고 하지만 역시 문주가 데려온 일홀무인이다.
자기 칼을 찾지 못했어도 무림 최강자 중의 한 명이라는 점은 부인하지 못한다.
더욱이 이들은…… 일홀문주가 거뒀던 세 명은 칼에 인정 담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칼날을 날카롭게만 갈았을 뿐, 부드럽게 쓰는 법을 배우지 않았다.
스읏!
노인은 검을 들어 동박의 미간을 겨눴다.
“크크크!”
동박이 웃었다.
‘내가 펼칠 수 있는 건 일 초뿐…….’
노인은 전신 전기를 온전히 끌어 모아 검에 집중시켰다.
육신은 사라지고 검만 남는다.
주인은 이런 경지를 검신일체(劍身一體), 몰아일체(沒我一體)라고 했다.
육신이 사라져야 한다. 그래야 검이 살아남는다.
물론 육신을 완전히 죽이는 것은 아니다.
몰아……. 나를 잊고 검과 동화되어야 한다.
검이 주(主)고 몸이 부(副)다. 검이 날아가고, 그 후에 몸이 쫓아가야 한다. 검이 살아서 움직이고, 몸은 검을 잘 움직이도록 도와주는 도구일 뿐이다.
주객전도(主客顚倒)가 일어나야 한다.
노인은 검신일체의 경지를 이루지 못했다. 하지만 일홀문주가 해준 말은 기억하고 있다.
“차앗!”
검광이 번뜩 빛났다.
검이 동박의 미간을 쫓아간다.
“크크크!”
동박은 여전히 웃기만 했다.
단도를 잡고…… 칼을 떨칠 생각도 하지 않은 채 날아오는 검을 쳐다본다.
노인은 사력을 다해서 노호조파검을 펼쳤다.
검과 미간을 일직선으로 긋는다. 검이 나아갈 수 있는 길 중 가장 빠른 길이다.
그 길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찔러 간다.
검을 굳게 잡아야 하느냐, 살짝 잡아야 하느냐. 검초에 집중해야 하나, 무심(無心)이 좋은가……. 모든 생각을 망각한다. 검과 연관된 모든 일을 잊는다.
검이 나가는 것에 그냥 내맡기면 된다.
그것이 가장 빠른 검이다.
노호조파검이 동박의 미간을 파고들려는 순간, 피윳! 동박이 움직였다.
순간 노인은 하늘과 땅이 짝 갈라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세상이 갈라진다. 하늘이 갈라지고, 허공이 갈라지고, 땅이 갈라진다, 온 세상이 둘로 쫙 쪼개진다.
“컥!”
노인은 답답한 비명을 내질렀다.
가슴에서 복부까지…… 배 한복판을 불로 지진 듯 뜨거운 기운이 훅! 몰아쳤다.
붉은 피가 분수처럼 뿜어졌다.
쿵!
노인은 실소도 흘리지 못한 채 쓰러졌다.
일홀도는 세상 떠나는 시간을 오래 주지 않는다. 뜨거운 느낌이 전신에 휘몰아쳤다면 이미 혼은 저승에 가 있는 것이다.
동박은 쓰러진 노인을 쳐다봤다.
“이상해. 베는 것도 찜찜해. 이게 뭐지? 이놈, 죽으려고 달려든 것 같은데…… 왜 이 지랄을 한 거야? 왜 개지랄을 떤 거냐고. 이럴 이유가 전혀 없잖아.”
동박은 눈살을 찌푸렸다.
노인을 베고, 아걸을 베고…… 그러면 끝난다.
아주 간단한 일이다. 신경 쓸 것도 없다. 두 명 베는 것이 어렵지도 않다.
한데 노인이…… 제 발로 기어 왔다. 죽여 달라고.
꼭 함정에 걸린 기분이다. 무엇인지 모르겠는데, 썩 기분이 좋지 않다. 죽이지 말아야 할 자를 죽인다는 느낌? 상대를 꺾으면 쾌감이 강렬하게 일어나야 하는데, 오히려 찜찜하다.
“안에 똥이 든 똥 만두를 씹은 기분이잖아. 아주 좋지 않아. 우릴 아주 많이 아는 놈이었는데.”
동박은 칼을 허공에 휘둘러서 묻어 있는 피를 털어냈다.
* * *
청수검 왕유는 왜소한 사내가 떠난 후에도 한참 동안 움직이지를 못했다.
노호조파검이 갈라지는 장면을 봤다.
뭐라고 말해야 하나? 광풍이 몰아쳤다고 해야 하나? 거대한 파도가 덮쳐 왔다고?
앞을 가로막는 장애물은 그 무엇이 됐든 단숨에 갈라버리는 무적도다.
저런 칼 앞에서는 어떤 초식도 필요 없다. 백 년 내공을 지녔어도 소용없다. 천하 역사가 대감도를 휘두르며 달려들어도 단숨에 갈라질 것이다.
상대할 수 없다. 상대가 없다.
어제저녁. 활검문도는 왜소한 사내를 공격할 뻔했다. 그랬다면 어찌 되었겠나. 아삼이 죽은 것처럼 활검문도 역시 살아남기 힘들었을 것이다.
무슨 칼이 저런가! 도대체 무슨 칼이지?
청수검은 무림에 저런 자가 있다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저 정도의 칼이라면 이미 무림에 두각을 나타내고도 남는데, 전혀 들은 바가 없다.
청수검은 문주를 떠올렸다.
처음에는 문주라면 상대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다가 곧 고개를 저었다.
안 된다. 문주도 저자에게는 무리다.
문주는 분명히 저자를 알고 있다. 저자가 아삼을 벨 것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절대로 부딪치지 말라고 몇 번이고 강하게 말했던 것이다.
저자가 누구인지 문주에게 물어볼까?
문주는 답해 주지 않을 것이다. 막연한 느낌이지만, 맞을 것이다. 절대로 말해 주지 않는다.
“휴우!”
청수검은 한숨을 토해냈다.
무림에는 고수가 구름처럼 많다. 내 검이 강하다고 자부하면 즉시 죽는다.
무인들이 흔히 하는 말이다.
이제야 청수검은 이 말을 뼈저리게 절감했다.
활검문 십검은 왜소한 사내의 무공에 비하면 어린애 장난질에 불과하다.
“시신은 어떻게 할까요?”
문도가 물어왔다.
“활검문으로…… 활검문으로 옮겨라.”
청수검은 무심히 말했다.
문도가 아삼의 시신을 수습했다.
시신 수습이라고 딱히 할 것도 없다. 들것에 시신을 옮겨 놓기만 하면 된다.
청수검이 무심히 아삼을 쳐다봤다. 그러다가…… 헉! 소리가 날 만큼 놀라서 급히 시신을 살폈다.
도흔!
왜소한 사내의 도흔이 보였다.
칼이 아삼의 목 밑에서부터 배꼽 부분까지 한 줄로 쭉 갈라놓았다.
이런 도흔이 생길 줄은 알았다. 왜소한 사내가 전개한 칼이 내리긋는 칼이었다.
청수검이 눈여겨본 것은 칼의 깊이다.
칼이 몸을 파고들었는데, 깊이가 놀라울 정도로 일정하다. 도흔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지점과 빠져나온 지점이 자로 재기라도 한 듯 똑같다.
사람 몸은 굴곡이 있다. 코는 튀어나오고 목은 들어가 있다. 옆모습을 보면 굴곡이 선연하다.
거기에 중심선을 긋는다.
백회혈에서부터 회음혈까지 일직선으로 선을 그어 보자. 정확하게 몸의 중심이 그어진다.
왜소한 사내는 중심선을 그었다.
이마를 치면서 칼이 중심선까지 파고들었다. 그리고 쭉 중심선을 따라서 그어졌다. 빠져나가는 부분에서는 머뭇거림이 없다. 곧바로 빠져나갔다.
굉장히 빠르고, 강하고, 정확하다.
시신을 수습하는 활검문도는 이런 사실을 알지 못한다. 아직 도흔을 볼 줄 아는 안목조차 없다.
“놔둬라. 놔둬! 시신을 여기에 그대로 놔둬!”
청수검이 일갈을 내질렀다.
이런 시신은…… 활검문으로 가져가면 안 될 것 같다. 괜히 활검문에 불똥이 튈 수도 있다. 처음부터 몰랐던 것처럼 손을 빼는 게 상책이다.
청수검은 놀란 눈으로 아삼의 시신을 쳐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