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일홀도-34화 (34/600)

#34화. 第七章 사자유언(死者遺言) (4)

아걸에게는 서리흔이라는 다소 생소한 이름이 있다. 서리 성에 이름이 흔이다.

아걸도 자신의 이름인가 싶을 정도로 잊힌 이름이다.

사부는 제자 네 명 중 세 명에게 서리 성을 주었다.

서리가헌, 서리형개, 서리흔.

-네 이름은 흔이다. 서리흔.

-전 이제 겨우 무공을 배우기 시작했는데요? 성은 일홀도를 완성한 다음에 갖는 거라고 하셨잖아요.

-그랬지.

-그러면 다음에 가질래요. 완성한 다음에.

-오늘이 아니면 주지 못할 것 같아서 주는 것이야. 잊지 마라. 서리흔. 나중에…… 일홀도를 완성한 다음에 가져도 좋고. 그건 네 마음대로 해라.

-어디 가세요?

-가지. 멀리. 하하하!

사부와 마지막 만남은 매우 특별했다. 성과 이름이 생긴 날이니……. 사부가 돌아간 후에도 ‘서리흔’이라는 이름을 몇 번이나 되뇌었는지 모른다.

사부는 다음 날 죽었다.

억울한 죽음은 아니다. 무인과 무인이 맞부딪혔고, 결전 끝에 죽은 것이다.

물론 사형들의 암수에 당한 점은 아쉽다.

하지만 그것도 사형들을 탓할 수는 없다. 사부 잘못이다. 사부가 자신을 돌보지 못했다. 칼을 든 자는 잠들어 있는 순간에도 세상을 경계해야 한다.

최후의 결전에서 사부는 일홀도를 사용했다.

허도기는 조명천검을 펼쳤다.

각기 최상의 검법을 사용했다. 벼락과 벼락이 부딪쳤다.

이런 싸움에서 상대방의 사정을 봐주며 싸울 수는 없다. 손속을 약간만 늦춰도 바로 반격당하는 상황이다. 오직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다.

두 사람은 목숨을 걸고 싸웠다. 그리고 한 사람이 졌다. 비록 삼인독이 발작한 탓에 치명적인 일격을 당했지만, 사부가 방심해서 중독된 것이나 허도기를 탓할 수는 없다.

사부가 죽은 것은 괜찮다. 무공이 약해서 진 것이니, 무공을 더욱 가다듬으면 된다. 하지만 사형들이 허도기에게 무릎을 꿇은 것은…… 수치다.

이것이 일홀문도의 관점에서 본 죽봉 싸움이다.

일홀문도의 입장이라면 사부가 패해서 죽은 싸움이지만 마음에 담아둘 것이 없다.

복수? 내 칼이 강해지면 된다. 일홀도를 완성하면 내가 나서기 전에 허도기가 먼저 찾아온다. 서리가헌, 서리형개, 동박이 찾아와 겨루자고 할 것이다.

일홀문의 복수는 그런 식으로 한다.

하지만 할배는 그렇지 못하다. 할배는 일홀문이 추구하는 강함을 알지 못한다.

사부를 배신했으니 죽여야 한다. 사부에게 암산했으니 죽여야 한다. 허도기에게 달라붙어서 영락을 누리고 있으니 뼈를 갈아서 강물에 띄워보내야 한다.

혈한정명(血恨頂命)!

피 맺힌 한은 목숨으로 보상하여야 한다.

할배가 누누이 했던 말이다.

가족을 죽인 자, 목숨으로 보상하여야 한다. 제자가 사부를 죽였다면 당연히 복수해야 한다. 벼락을 동원해서 튀겨 죽이는 한이 있어도 반드시 죽여야 한다.

할배의 복수는 이런 식이다.

어떤 식이든 일홀도를 얻는 게 먼저다. 칼을 드는 것은 시급하지 않다.

할배, 무엇이 그리 급했나.

아걸은 아삼을 할배라고 불렀다.

할배라는 말 속에는 많은 관계가 포함되어 있다. 그는 할아버지다. 아버지다. 삼촌이고, 형제다. 사부이고, 사형이며, 사제다. 그리고 친구다.

할배라는 말에는 인간 세상에 살면서 만들어질 수 있는 모든 관계가 녹아 있다.

아삼이 오직 할아버지와 손자라는 관계뿐이었다면 어떤 일이 있어도 이번 죽음을 만류했을 것이다. 죽지 못하도록 앞을 가로막았을 것이다.

아걸과 아삼은 친구라는 관계도 있다.

서로가 서로를 가장 잘 이해한다. 친구가 무엇을 원하는지, 가슴에 어떤 한을 품고 있는지, 무엇을 이루고자 하는지 누구보다도 잘 이해한다.

그래서 할배가 죽을 자리로 들어서는 것을 보면서도 만류하지 않았다.

할배는 죽고 싶어 한다.

세상에서 가장 하고 싶은 일, 절대적으로 원하는 일이 바로 죽는 것이다.

일홀문주 곁으로 가고 싶어서 십 년 전부터, 그 훨씬 전부터 죽고자 했다. 이 세상에 대한 미련은 터럭만큼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니 육신이란 게 완전히 빈껍데기다.

할배는 오직 아걸 때문에 죽지 않고 목숨을 부지해 왔다.

아걸이 준비될 때까지 기다렸다.

아걸을 입히고, 먹이고, 수련시키고…… 완성된 일홀문도로 키워내겠다는 일념이 그를 살게 해주었다.

-일홀도는?

-아직.

-너 바보냐? 남들은 다 찾는 걸 넌 왜 아직도 못 찾고 있어? 너 정말 바보지?

아걸은 정말로 일홀도를 찾아내지 못했다. 그래서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강력한 도법을 펼칠 수 있다.

누구도 상대하지 못할 거력으로 칼을 휘두른다. 단숨에 목표를 쪼갠다.

하지만 일홀도가 아니다.

아걸이 펼쳐 보인 것은 사부의 일홀도다. 그것도 약간 흉내 낸 것에 불과하다.

진짜 일홀도를 얻으려면 아직 멀었다.

하지만 아삼은 아걸이 정말로 일홀도를 찾았는지, 아니면 아직 미완성인지 구분해내지 못한다. 그에게는 일홀도를 구분할 만한 감각이나 눈이 없다.

아삼이 보기에 일홀도는 이미 완성되었다. 아걸이 쳐낸 칼을 받아낼 수 있는 사람이 없어 보였다. 이 정도면 다른 일홀도와 맞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아걸에게 필요한 건 실전과 자신감이야. 싸움을 해 보지 않아서 피하는 거야.

아삼은 완전히 잘못 판단했다.

하지만 내버려 두었다. 할배가 희망에 들떠 있는 모습을 보는 게 싫지 않았다.

그래서 할배는 오비아를 찾는 데 주력한 것이다. 아걸은 이미 준비되었다고 생각하고.

그리고 드디어 문주의 딸을 찾았다.

그녀가 아걸의 정혼녀라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

문주의 딸! 살아 있다! 무사하다!

여기서 망설일 이유가 있나? 없다. 기꺼이 죽음을 향해서 달려가는 게 마땅하다.

할배는 아걸이 이번 일에서 절대로 발을 빼지 못하게끔 단단히 못을 박았다. 깊디깊은 우물 속에 던져 버리고 뚜껑을 닫아 버렸다. 자신이 죽음으로써.

자신이 죽어서 아걸로 하여금 칼을 들게 만든 거다.

이제는 칼을 들고 싶지 않아도 들어야 한다. 일홀도가 완성되었건 말건 싸워야 한다. 자신이 싸우고 싶지 않아도 서리가헌, 서리형개, 동박이 찾아온다.

원래 죽고 싶어 했던 사람이 죽어야 할 이유까지 생겼으니 죽지 않고 견디겠나. 어차피 승산이 없는 싸움이지만 상황이 이렇게 되면 할 수밖에 없다.

-나는 여기까지다. 네 주변을 정리해라. 옆에 아무도 두지 말고, 홀가분하게 싸워라.

그 말을 왜 했나 했더니…….

할배는 몽설이 다치는 것을 두려워한다.

아걸이 사형들을 향해 칼을 드는 것은 필연이지만, 문주의 딸만은 무사기를 바란다.

그녀를 데리고 싸우든, 싸움 가장자리로 밀어내든 판단은 온전히 아걸 몫이다. 그녀가 아걸의 정혼녀이니, 오직 아걸만 결단을 내릴 수 있다.

그래서 그녀를 싸움 한복판으로 끌어들였다.

성검문을 공격해서 일홀 악도를 끌어내기에는 위험부담이 너무 커서, 한 다리 건너 활검문을 공격한 거다.

여우같은 할배.

할배는 아걸에게 선택권을 넘겼다.

아걸은 몽설에게 혈검경을 전해 주었다. 그리고 그녀를 싸움터 밖으로 밀어냈다.

할배, 대답이 됐나?

-그래 인마! 대답이 됐다.

* * *

처벅! 처벅! 처벅!

아걸은 할배를 향해 걸어갔다.

주위에 사람이 많다. 활검문도가 할배의 시신을 지키고 있다.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서, 숨죽인 채 눈빛만 날카롭게 빛낸다. 한시도 할배의 시신에서 눈을 떼지 않는다.

활검문도는 문주에게 시신 처리를 물었다.

왜소한 사내가 아삼을 죽였는데 활검문으로 이송하나, 아니면 이곳에서 처리하나?

그들은 답을 기다리고 있다.

문주가 시신을 가져오라고 하면 가져갈 것이다. 이 자리에서 불태우라고 하면 불태울 것이고, 아무도 보이지 않는 곳에 갖다 버리라고 하면 그렇게 할 것이다.

활검문도는 전서구가 도착할 때까지 기다린다.

아걸은 그들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태연히 쓰러져 있는 할배에게 걸어갔다.

‘이제 편하겠네.’

멀리…… 푹 쓰러져 있는 할배 모습이 보인다.

이상하게도 할배의 시신을 보자 정말 편해 보인다는 생각부터 치밀었다.

‘소원대로 죽었으니 좋나. 이렇게 땅바닥에 쓰러지지 못해서 그 안달을 했던 거야? 할배……. 정말 편한 거 맞나.’

할배의 죽음을 예감하고 있었다.

할배는 일홀도를 세상 밖으로 끄집어내고자 했다. 그러니 죽을 수밖에.

한데 막상 주검을 앞에 놓고 보니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린다.

할배가 죽었다.

안 죽어도 될 것을…… 왜 죽기까지 하나.

이유가 있다. 할배는 사형들의 일홀도를 보여 주려고 한다. 죽어서 말을 하려고 한다.

할배는 세상 모든 사람과 은원이 없다. 그러니 다른 사람 손에 죽을 이유가 없다. 누군가에게 죽는다면 목숨을 거둬갈 사람은 오직 일홀 악도 밖에 없다.

이런 식이 아니면 일홀 악도가 나타나지 않는다. 할배에게 칼을 쓸 이유도 없다.

일홀문 칼은 목숨을 걸고 마주 섰을 때만 볼 수 있다.

아걸은 할배 곁으로 다가가서 무릎을 꿇고 앉았다.

생각 같아서는 쓰러져 있는 할배를 부둥켜안고 싶다. 당장 일으켜 세우고 싶다. 하지만 그래서는 안 된다. 할배는 그런 행동을 원하지 않는다.

할배가 원하는 대로 차분하게 도흔을 살폈다.

몸 한복판을 내리그은 칼!

아걸이 상대할 사람은 세 명이다.

그들 모두를 베어야 한다.

할배는 그들의 칼을 모두 보여 주지 못한다. 세 명 중 한 명만 보여 줄 수 있다. 다른 두 개의 칼은 아걸이 직접 맞대면을 한 후에 보게 될 것이다.

하지만 한 명의 칼이라도 보여 주는 게 어딘가.

봐라! 잘 봐라! 상대는 이 정도다! 네가 그들을 베려면, 이기려면, 목숨을 부지하려면 최소한 이 칼보다는 나아야 할 것이다. 부족하다면 대책을 찾아라.

할배가 웃는다.

‘우……!’

아걸은 눈꺼풀을 부르르 떨었다.

매우 강한 칼이다. 오직 죽이겠다는 생각밖에 없는 칼이다. 일홀도, 일홀도…… 일홀도에 대한 말은 많이 들었지만 보기는 처음 본다. 정말 무서운 칼이다.

이게 일홀도다.

웃기는 말을 할까? 일홀문이 정파로 보이나? 일홀문도가 단순히 강함만 추구하는 것 같나?

한 가지만 생각해 보면 대답은 확 나온다.

일홀문은 제자를 세 명에서 네 명 정도 거둔다. 하지만 일홀문주는 한 명이다. 그럼 나머지 제자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나? 다른 사람이 무림에 나왔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나?

사형들은 일홀도를 얻었다.

전대, 전전대, 전전전대 문도도 일홀도를 얻었을 것이다. 타고난 싸움꾼만 데려왔으니까.

그들이 얻은 일홀도는 세상에 나가서는 안 되는 살도(殺刀)다. 칼을 뽑으면 반드시 사람을 죽인 후에야 칼집으로 돌아가는 죽음의 칼이다.

사람을 죽여서 살인귀라고 부르는 게 아니다. 그런 칼을 지녔기 때문에 살인귀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들은 세상에 나가서는 안 된다.

그래서 자가 정리를 먼저 한다. 일홀도를 얻은 사람들끼리 승부를 가려서 한 명만 남게 한다. 그가 일홀문주가 되는 것이며, 비로소 세상에 나갈 수 있다.

일홀도가 일홀도를 꺾음으로써 진짜 강한 칼이 등장하는 것이다.

사부는 이 마지막 작업을 늦췄다.

동박은 일홀도를 얻지 못했으니 논외로 하고…… 서리가헌과 서리형개에게 선택권을 주었어야 했다. 누가 살아남을 것인지, 누가 일홀문주가 될 것인지.

사냥을 할 줄 알게 된 새끼는 자연 속으로 떠나보내는 것이 세상 이치다.

모든 맹수가 그렇게 한다.

악어 새끼에게 강은 살얼음판 전쟁터다. 하찮은 물뱀에게도 잡혀 먹일 수 있다. 사자도 새끼 적에는 들개 먹이가 된다. 하늘을 나는 새도 마찬가지다.

그래도 매정하게 떼어놓는다.

서리가헌과 형개가 미진해 보였어도 일홀도를 얻은 이상 최고를 가렸어야 한다. 그리고 어미가 새끼를 밀림 속으로 떠나보내듯이 무림으로 보냈어야 한다.

절대 칼을 얻고도 산속에 붙들려 있어야 한다면 누가 좋아하겠나. 누가 배신하지 않겠나.

사형들이 배신한 것은 꼭 허도기에게 패해서만은 아니다. 강호로 뛰쳐나가고 싶은 욕망이 더 컸을 것이다. 이미 절대 칼을 얻은 후이기 때문에 더더욱.

일홀문은 절대로 정의롭지 않다. 매우 사악하다. 결과를 아무리 좋게 포장해도 사악하다. 잔인하고 매정하다. 세상에 존재하는 단정검(斷情劍) 중 단연 최고일 것이다.

할배의 몸을 가른 칼이 그렇다. 사악하다.

‘할배. 나보고 이것과 싸우라는 거야? 나 이 정도 안 되는 거 알잖아. 이 칼에 비하면 나는 반 푼밖에 안 돼. 대체 나보고 어떻게 싸우라는 거야.’

-이놈아 상대가 안 된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지 않냐. 그냥 할 일만 해라. 그래도 사문 정리는 해야지. 네놈이 할 일을 하라는 건데 왜 내 탓을 하고 지랄이야?

할배의 웃음소리가 들린다.

사형들이 너무 강해서 사문 정리 같은 것은 꿈도 꾸지 못하지만 그래도 이제는 해야 한다.

아걸은 등에 짊어지고 온 가죽 주머니를 끌어냈다.

안에는 기름이 들어있다. 할배를 소천시켜 줄 기름이 주머니 가득 담겨 있다.

그는 할배의 얼굴을 다시 한번 쳐다봤다.

이승에서의 마지막 만남!

-이놈아, 어서 빨리 보내. 이별은 짧을수록 좋은 거야. 이미 끝난 인연인데 뭘 망설여. 이까짓 육신 몇 번이고 벗어던질 수 있다. 이 할배는…… 할 일 다 해서 아주 홀가분해. 이제부터는 네 싸움이니까 잘 싸워.

할배가 웃는다.

‘살아남으라니까. 살아서 내 술 한잔 받으라니까.’

아걸은 할배의 몸에 기름을 부었다. 그리고 화습자를 켰다. 그때!

쿵!

아삼의 몸에서 작은, 아주 미미한 울림이 일어났다. 귀로는 들을 수 없고, 오체진감으로 느껴야만 하는 소리다.

‘살았어!’

아걸은 눈을 부릅떴다.

어떻게 살 수 있을까? 일홀도를 맞고도 살아있다는 것은 하늘이 무너진 후에도 살아있는 것과 다름없다.

퍼뜩! 한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칼을 쓴 자가 동박이다. 서리가헌이나 서리형개가 칼을 썼다면 절대로 살 수 없다. 동박이 펼쳤기에 미진한 점이 남았다. 칼을 쓰면서 정신을 올곧이 모으지 못했다. 무엇인가가 찜찜한 느낌이 있었을 것이고, 그것이 칼을 무디게 했다.

그렇다. 칼이 무뎠다.

칼이 날카로웠다면 도흔이 목 밑에서 시작하지 않는다. 정수리에서 시작한다. 머리를 가르고, 목을 가르고, 가슴을, 배를 가른다. 완전히 반으로 갈라낸다.

도흔이 목 밑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은 무엇인가가 칼 쓰는 손을 머뭇거리게 했다는 거다.

두 번째, 할배가 적랑대 출신이다.

적랑대 살수는 마지막 순간, 진기 한 모금을 단전에 남겨 놓도록 훈련받는다.

그런 행동으로 죽음을 막지는 못한다. 다만, 시신이 상하는 것을 최대한 늦출 수는 있다. 동료에게 자신이 어떻게 죽었는지 몸으로 알릴 수는 있다. 어떤 무공에 어떤 식으로 당했는지 몸으로 알려주는 것이다. 다시는 똑같은 방식에 당하지 말라고.

그런 방법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할배가 서슴없이 동박 앞에 섰는지도 모른다.

이외에도 또 다른 이유가 있겠지만……

아걸은 재빨리 붓짐 속에서 녹선마황이 들어있는 항아리를 꺼냈다. 그리고 안에 들어있는 거머리를 할배의 몸에 들이부었다.

할배는 요긴할 때 쓰라고 녹선마황을 가져왔는데…… 그것이 자신에게 쓰일 줄은 정말 몰랐을 거다.

아걸은 즉시 할배를 안아 일으켰다.

뛴다!

전력을 다해서, 그야말로 젖 먹던 힘까지 모두 쥐어짜 내서 숲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쉬이이익!

그가 일으킨 바람 소리가 숲을 흔들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