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화. 第七章 사자유언(死者遺言) (5)
삐이걱!
동박은 마방 문을 밀치고 들어섰다.
이른 새벽이라서 아직 마방 문을 열지 않았는데…… 문을 뜯다시피 밀쳤다.
아삼을 죽였는데 기분이 영 좋지 않다.
누군가가 길 한가운데에 함정을 파고 분뇨를 가득 담아 놨는데, 멍청하게 자신이 푹 빠진 느낌이다.
온몸에 오물이 묻은 듯 꾸물꾸물하다.
다른 때 같으면 당장 아걸이라는 놈을 쫓아갔을 것이다. 아니면 죽은 아삼을 지켜보면서 술이나 마셨을 게다. 그러면 놈이 찾아올 테니까.
이번만은 직접 놈들을 조사해 볼 생각이다. 그만큼 마음이 개운치 않다.
“누, 누구요?”
빗자루로 마당을 쓸던 하인이 뜨악한 얼굴로 동박을 쳐다보며 물었다. 귀찮게 아침부터 뭐냐는 표정이다.
동박은 근육질 사내가 아니다. 몸이 작고, 팔다리도 가늘다. 머리는 크고, 이마에 주름이 가득하고, 눈은 거죽 눈이라서 눈꺼풀이 반이나 내려 감겼다.
한 대만 톡 치면 나가떨어질 것 같다.
“아삼, 아걸이 여기 있었다고?”
동박이 눈을 가늘게 뜨고 물었다.
순간, 하인의 얼굴에 묘한 긴장감과 또 묘한 호기심이 어른거렸다.
동박을 보면 전혀 무인처럼 보이지 않는다. 옆에 칼을 차고는 있지만 무시해도 좋을 성싶다. 사납다거나 포악하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
이자를 무시해, 말아? 무인은 아닌 것 같은데, 누구지? 아삼과 아걸에 관해서 묻는 것을 보면 무가(武家)의 심부름을 온 것 같은데, 곱게 대답해 줘?
동박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공손하게 대답하는 게 괜히 손해 보는 건 아닌지…… 낯선 사람을 만났을 때 일어나는 순간적인 망설임이 얼굴 가득히 엿보였다.
동박이 여전히 눈을 가늘게 뜬 채 말했다.
“우선 아삼이 머물렀던 방부터 안내해.”
“안……내……해?”
하인이 마음의 결정을 내린 듯 기분 나쁜 어투로 동박이 한 말을 되짚었다.
“안내하기 싫어?”
“보아하니 어린놈 같은데, 아침부터 재수 없게…… 악!”
하인은 말을 하다 말고 비명을 냅다 내질렀다.
빡! 빡! 빠악!
뼈마디 부서지는 소리가 뒤늦게 울렸다.
동박이 하인을 세 번 후려쳤다.
발길질 한 번에 다리가 부러졌다. 또 한 대에는 갈비뼈가 으스러졌고, 이어진 발길질은 이빨을 우스스 떨궈냈다.
“아악! 악! 아악!”
하인은 돼지 멱따는 비명을 내지르며 엎어졌다.
입에서 핏물이 꾸역꾸역 흘러나왔다. 하지만 피를 멈출 생각도 하지 않고, 파랗게 질린 얼굴로 동박을 쳐다본다. 또 때릴까 봐 몸을 잔뜩 웅크린다.
“말 되게 많네. 귀찮게. 안내해.”
동박은 쓰러진 하인을 쳐다보지도 않고 다른 하인에게 말했다.
“네? 네!”
눈길을 받은 하인이 쪼르르 움직였다.
“꼭 맞아야 말을 듣는다니까. 이러니 개돼지 소리를 듣지. 좋은 말을 할 때 들으면 오죽 좋아.”
동박은 피식 웃으면서 앞서가는 하인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덜컹!
문이 열렸다.
아삼이 머물렀던 방은 어느 하인들이 머무는 방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한 사람이 누우면 간신히 발을 뻗을 정도로 작은 방이다.
사방은 흙벽이다.
벽에 나무못이 두 개 박혀있다. 옷을 걸었던 자리인 듯 보인다.
방 한구석에 이불 한 채가 놓여 있다. 그 밖에는 지푸라기 한 올 떨어져 있지 않다.
사람이 살지 않았던 방이라고 해도 믿겠다.
‘……응?’
동박은 눈살을 좁혔다.
이 방 모습…… 어디선가 본 것 같다. 기억은 나지 않는데, 어디선가 느꼈던 분위기다.
‘어디서 봤지?’
동박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걸이 머물던 곳으로 가자.”
“저…… 아걸은 마구간에서 생활했는데요.”
“…….”
동박이 무슨 말이냐는 듯 하인을 쳐다봤다.
“아걸은 마구간에서 생활했습죠. 마구간에 틀어박혀서 밖에 나온 적이 없습니다요. 먹고, 마시고, 자고, 똥 싸고…… 모두 마구간에서 해결했습죠.”
“그래? 가 보지.”
“넷!”
하인이 재빨리 움직였다.
동박은 마구간으로 들어섰다.
모든 마구가 한눈에 들어온다. 아삼의 방보다 더 잘 정리된 마구간이다.
“후후후!”
동박은 웃었다.
마구간이 왜 깨끗한지 대충 알겠다.
아걸 성격이 유난히 깔끔해서, 청결한 것을 좋아해서 깨끗하게 정리해 놓은 것이 아니다.
마구간에는 사부의 숨결이 스며있다.
사부는 어디에 머물던 발길이 닿는 곳은 항상 깨끗하게 정리하라고 하셨다.
주변이 깨끗해야 몸도 마음도 깨끗하다고 믿는 사람이다.
마구간에서 그런 모습이 엿보인다. 가장 더러운 곳에서 가장 깨끗하게.
아걸은 이곳에서 사부의 숨결, 무인의 마음가짐을 갈고 닦았다.
동박은 아걸이 머물렀다는 침상으로 걸어갔다.
침상은 무너지고 없다. 그가 마구간을 탈출할 때, 침상까지 뜯어 갔다. 침상은 수레로 변신했고, 나루터에 이를 때까지 살수를 숨겨 주는 보호막이 되었다.
동박은 마구간 한구석에 털썩 주저앉았다.
“저기…… 더 시키실 일이라도……?”
하인이 물어왔다.
“이곳은 내가 나갈 때까지 금역(禁域)이다. 그렇게 전해. 죽고 싶은 자만 들어서라고.”
“네네. 알겠습니다!”
하인이 부리나케 나갔다.
스슷! 스스스스!
사람들이 움직인다.
동박이 마구간에 들어서기 무섭게 활검문도가 들이닥쳐서 마구간을 에워쌌다.
동박을 공격하려는 의도는 아니다. 그를 보호하려는 거다.
그들이 마방 전체를 빙 둘러 에워싸고는 사람들의 출입을 일절 금지했다.
“별도 지시가 있을 때까지 모든 출입을 금한다!”
* * *
아걸은 마구간에서 일홀도 수련을 했다.
두 사람이 동승에 들어선 것은 이 년이 채 안 된다고 한다. 하면 십 년 넘게 타지를 돌아다녔다는 뜻이 된다.
그들이 어디를 다녔는지 알 길은 없다.
이곳에 와서는 매우 일을 잘했다고 한다. 아삼과 아걸에게 일을 맡기면 절대 어긋나지 않았다고. 마치 목동 일을 수십 년 해온 것처럼 능숙했다고.
특히 아걸이 말을 잘 돌봤다고 했다.
동박은 마구간에 있는 말들을 쳐다봤다.
아걸 손을 탄 말들이다.
‘좋은 말이군.’
동박은 감탄했다.
좋은 말을 좋게 기르면 보는 사람이 기뻐진다. 하지만 나쁜 말을 좋은 말로 포장하면 감탄이 나오게 된다.
아걸은 후자다. 동박 같은 사람에게는 나쁜 말이 즉시 보이는데, 웬만한 사람은 좋은 말만 있는 것처럼 보인다. 말의 성질, 형태까지 바꾼 교묘한 위장이다.
일홀문 사람은 한 번 쓱 훑어보는 것만으로도 말 상태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지구력이 강한 말, 순발력은 어떤 말, 성질이 더러운 말, 순한 말…… 보면 딱 느껴진다.
근육을 보고, 다리 길이를 보고, 눈을 보고…… 판단할 근거는 무수히 많다.
상대방을 파악하는 것은 일홀문 수련 과정 중 하나다.
일홀문에서 이런 수련은 아주 중요하다.
둘이 싸워서 한 명이 이겨야 하는 게 싸움이라면, 상대방을 잘 파악하는 것 역시 싸움 중 하나다. 상대방이 어떤 자인지 한눈에 파악한다면 이미 절반은 이기고 시작하는 것이다.
단순히 무공만 말할 때는 상대방이 생략된다.
오직 자신 혼자서 초식을 수련하고, 진기 양성을 하면 된다.
비무도 초식 변화를 능숙하게 해낼 수 있느냐에 초점이 맞춰진다. 반드시 상대를 이길 필요도 없고, 상대방 몸 상태가 어떤지 파악할 필요도 없다.
싸움은 다르다.
반드시 상대를 파악해야만 한다.
어제는 어떤 상태였고, 오늘은 어떤지 알아야 한다. 내일 어떤 상태일지까지 파악한다면 더 좋다. 정확한 판단은 이기는 결정을 내리게 만들어 준다. 만약 오늘보다 내일이 더 안 좋을 것 같으면 내일 싸워야 한다.
싸움은 반드시 이겨야 한다.
상대방을 파악하는 수련 덕분에, 일홀문 무인들은 사람을 잘 본다.
처음 보는 상대라도 척 보기만 하면 얼마나 날쌘지, 힘이 어느 정도인지, 유연성은 어느 정도인지…… 그 사람에 대한 모든 신체 정보가 한눈에 파악된다.
아걸은 이곳에서 말을 관찰했다. 상대방을 관찰했다.
일홀도를 얻기 위해서 부단히 수련했다는 사실을 마구간만 보고도 알 수 있다.
또 한 가지, 중요한 단서를 얻었다.
말에는 반드시 좋은 말이 있고, 좋지 않은 말이 있다.
마구간에 있는 말 중에는 폐마(廢馬)에 가까운 말도 있다. 물론 좋은 말로 위장시켜 놓아서 갈색 털이 반지르르하다. 눈가에는 총기가 돈다. 하지만 잘 달리지 못한다. 이미 오장육부가 제 기능을 잃어가고 있다.
이런 말을 좋은 말로 위장시킨 이유가 뭔가?
나쁜 말은 도태된다. 씨 종마로 빠져나가거나 아니면 도살장에서 도살되어 고기로 팔려나간다.
아걸은 그런 걸 방지하기 위해서 폐마를 좋은 말처럼 위장시켰다.
동정심이 많은 놈이다.
‘아직 어리군. 큭큭.’
동박은 웃음이 실실 새어 나왔다.
일홀도를 얻으려면 꿈틀거리는 마음부터 죽여야 한다. 자신이 직접 경험으로 터득한 것이다. 칼처럼 차디찬 마음을 갖지 않으면 은밀히 속삭이는 칼의 소리를 듣지 못한다.
동정심을 지녔다는 것은 아직 칼의 속성을 파악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중원 무림에서 말하는 칼의 속성은 알았을지 모르겠으나, 일홀도는 얻지 못했다.
칼에는 오직 살기만 번뜩인다.
칼에 동정심 같은 것은 없다. 차디찬 쇠붙이에 마음 같은 것이 있을 리 없다.
도기(刀氣)가 곧 살기(殺氣)다.
‘큭큭큭……. 네놈이 누군지 모르겠다만, 어떤 칼을 수련했는지 찾아볼까?’
동박은 마구간을 차분히 살폈다.
아걸은 일홀도를 얻기 위해서 무엇인가를 했다. 단지 말만 쳐다보지는 않았을 것이다. 도법을 연성했거나, 도기를 연마했거나…… 어떤 흔적이 남아 있을 것이다.
말들을 살피고, 마구를 살폈다.
하지만 일홀도를 수련한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무공 같은 것은 일절 수련하지 않았는뎁쇼. 어찌나 몸을 움직이기 싫어하는지…… 그렇게 게으른 놈은 처음 봤습죠. 그런 놈이 어떻게 말은 잘 키웠는지…….
‘움직이기 싫어했다……? 움직이지 않았다…….’
동박은 마구간 한구석에서 일홀도 흔적을 찾아냈다.
마구들 사이에 작두가 놓여 있다. 작두 옆에는 날을 갈 때 쓰는 큰 숫돌이 놓여 있다.
아걸은 활검문도를 벨 때 작두를 사용했다.
‘저거군.’
동박은 작두날을 집었다.
‘흐음…!’
작두날을 손으로 쓰다듬었다.
아걸의 숨결이 느껴진다. 작두날을 숫돌에 갈면서…… 쇠붙이에, 숫돌에 혼을 불어넣었다. 살아 있지 않은 무생물에 혼을 넣고자 노력했다.
‘어려. 어려. 어려.’
나무는 나무로, 돌은 돌로, 칼은 칼로.
사물을 있는 그대로 접할 때 일홀도가 생긴다. 사물을 변형시키면 일홀도가 죽는다.
흔히 뛰어난 검호는 검에 생명을 불어넣는다고 한다.
허나 터무니없는 말이다. 피를 너무 많이 먹어 쇠붙이 스스로 살기를 띠고 요사한 기운을 뿜어내는 경우는 있지만, 생명을 불어넣은 검이라니 말도 되지 않는다.
아걸이라는 자는 무시해도 좋다.
그가 수련한 일홀도는 아직 미완성이다. 이 정도의 일홀도라면…… 활검문도의 가슴에 새겨진 도흔을 보고 짐작했을 때와 거의 다르지 않다.
“사제는 사제군. 일홀도를 수련할 줄 알고…… 그 늙은이, 언제 제자를 거둔 거야?”
동박은 마구간 한구석에 앉았다.
오랜만에 옛날 생각을 했다.
-아직 멀었다. 칼을 얻어라.
-모방하지 마라. 유일한 칼을 만들어라.
-부귀영화 따위가 칼을 얻는 기쁨에 비할까. 속세에 대한 미련은 접어라. 진정한 도객(刀客)은 도사나 승려보다도 더 고독한 수련을 해야 하는 법이다.
사부는 제자들을 참으로 혹독하게 몰아붙였다.
제자에게 무공을 가르칠 생각은 전혀 없어 보였다. 싸움 귀신들을 산속에 처박아 놓고 철저하게 통제만 했다. 세상에는 일절 눈길을 주지 못하게.
‘사부, 도대체 제자를 몇 명이나 기른 거야? 이놈이 마지막은 맞아? 늘 사부 곁에 붙어 있었는데, 아직도 믿기지가 않네. 큭큭.’
동박은 키득키득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