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화. 第八章 일비일(一比一) (1)
똑똑똑!
목탁 소리가 들려 왔다.
“아이고! 스님, 오셨습니까!”
문지기가 제일 먼저 반색을 하며 달려 나왔다.
인근 구달산(龜澾山) 오선사(悟禪寺) 주지 스님인 보림(寶林) 대사(大師)다.
보림 대사는 일 년에 한두 번꼴로 활검문을 방문한다.
활검문주와 친분이 매우 두터워서 방문할 때마다 한두 시진씩 독대한다.
활검문에서 이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잘 있었는가.”
“네. 소생이야 잘 있었습죠.”
“문주님께서는 안에 계신가?”
“네. 계십니다. 안으로 드시죠.”
문지기가 공손하게 보림 대사를 안으로 모셨다.
“아미타불! 아미타불!”
보림 대사는 안채로 들어가면서 만나는 사람마다 두 손 모아 합장하며 불호를 외웠다.
보림 대사는 문주나 십 검이나, 하인이나 시종이나……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대한다. 모든 사람에게 활짝 웃어준다. 맑은 미소, 다정한 말을 전해준다.
활검문에서 보림 대사를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 * *
“지금, 이 순간부터 밀행자(密行者)에게 우리가 취득한 모든 정보를 전한다.”
활검문주가 명령을 내렸다.
‘또 밀행자!’
대청에 모인 팔 검은 당연히 이런 명령이 내려올 줄 알았다.
보림 대사가 방문한 후에는 항시 이런 식의 명령이 하달되었다.
밀행자는 허공부에서 공무상 파견한 무인을 말한다. 공적 임무를 띠고 활동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전 무림 모든 문파가 협조할 의무를 가진다.
천하제일인 허도기에 대한 예우이기도 하다.
“알겠습니다.”
청수검 왕유가 차분하게 대답했다.
활검문이 취합하는 정보라면 제오당 담당이다. 제오당에서 취급하는 정보를 전해주라는 말과도 같다.
“그런데…… 그 밀행자, 누구인지요?”
청수검이 물었다.
그의 음성은 활기차지 않다. 우울하다.
십 검 중에 두 명이 죽었다. 한 명은 죽었고, 한 명은 행방불명이다. 시신을 허공부에 전하고 돌아간 사실까지는 확인됐는데, 그 이후로 행적이 묘연하다.
활검문에 어떠한 연락도 취하지 않는 것으로 봐서 아마 죽은 것으로 판단된다.
당연히 분위기가 침울해질 수밖에 없다.
거기에 누군지 알지도 못하는 밀행자에게 모든 정보를 전달하라니 더 우울해진다.
활검문주가 말했다.
“이 명은 지금부터 즉시 시행한다.”
문주는 그 말만 남기고 일어섰다.
청수검은 더 묻지 않았다. 허리띠를 붙잡고 사정사정해도 알려주지 않을 것이다.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
문주는 밀행자와 연관된 일은 한 번도 말해 준 적이 없다.
허공부에서 파견한 사람, 또는 문주 선에서 이야기된 사건은 절대 비밀이다.
다른 문파와는 아주 다르다.
만약 다른 문파에서 십검 정도의 위치에 올랐다면, 문주는 모든 일을 십검과 상의할 것이다. 십검 역시 문파를 이끌어가는 중요 대들보이기 때문이다.
문주를 제외하면 바로 다음 위치에 있는 사람이 십 검인데, 십 검에게 말하지 못할 게 무엇인가.
물론 활검문주도 다른 일은 십 검에게 위임한다.
문파의 존망이 달린 일일지라도 가끔은 파격적으로 십 검에게 믿고 맡긴다.
하지만 밀행자가 개입한 사건만은 절대 침묵한다.
“……지금부터 즉시 행하겠습니다.”
청수검은 이미 일어서서 대청을 나서고 있는 문주의 등에 대고 말했다.
* * *
할배를 숨겼다.
숨이 붙어 있기는 하지만 깨어난다고 장담은 할 수 없는 상태다. 어쩌면 영원히 깨어나지 못할 수도 있다. 숨이 붙어 있는 것만 해도 기적이랄까?
사실은 호흡도 매우 불안정하다.
숨이 끊어졌다 이어지기를 반복한다.
길어봤자 하루 이틀 산다. 금방 죽어도 이상할 것이 없다.
누가 봐도 살 수 있는 가망이 없다.
할배를 그런 상태로 남겨 두었다. 그리고 황망히 자리를 떠서 십 리를 치달렸다.
활검문도를 유인한다. 활검문의 시선을 할배에게서 자신에게로 돌린다. 동박이 자신에게 오게끔 만든다. 할배는 완전히 죽어버린 사람으로 인식해야 한다.
저벅! 저벅!
길을 걸었다.
그는 단순히 길을 걷고 있지만, 이미 수많은 시선이 달라붙었다. 그리고 시선은 점점 많아진다.
“달은 본시 술을 마실 줄 모르고 그림자는 내 몸 따라 움직일 따름이지만, 그런대로 잠시 달과 그림자 데리고 이 봄이 가기 전에 즐겨나 보세.”
취객이 이백(李白)의 시를 읊조리며 비틀비틀 걸어왔다.
아걸은 사내를 봤다.
술 취한 듯 비틀거리고 있지만 취하지 않았다. 중심을 잃고 흔들리는 걸음걸이가 아니다. 인위적으로 비틀거리기 때문에 중심이 잘 잡힌다.
사내에게서는 이상한 냄새도 난다.
비린내 같기도 하고, 풀 태우는 냄새 같기도 하고…… 일반 사람들은 맡지 못할 냄새다.
아걸은 냄새를 단번에 맡았다.
‘초향!’
할배는 초향을 몸에 묻혔다. 그리고 그때부터 비둘기와 투견의 추격을 떨치지 못했다.
할배가 초향을 몰랐을까? 아니다. 알았다. 알면서도 몸에 묻히도록 내버려 두었다.
일부러 상대를 유인하려고 작정한 사람이다. 그런 사람에게 당신을 추격하겠다고 활검문도가 다가선다. 거절할 이유가 눈곱만큼이라도 있는가.
“하늘이 만일 술을 즐기지 않으면 꺽! 어찌 하늘에 주성이 있으며, 땅이 또한 술을 즐기지 않으면 어찌 땅에 주천이 있…… 꺼억! 으리요.”
취객이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비틀거리면서 걸어왔다.
스읏! 척!
아걸은 반철도를 들었다. 그리고 허공에 겨눴다.
사람을 겨누지는 않았다. 텅 빈 허공…… 그저 가슴 앞으로 들어올리기만 했다.
“초향인 줄 안다. 어떤 시도라도 하면 넌 죽는다. 못 믿겠으면 시험해 봐도 좋다.”
술 취해서 비틀거리며 걸어오던 사내가 움찔거렸다.
그는 내색하지 않는다고 조심했지만, 아걸은 솜털까지 곤두서는 긴장감을 읽어냈다.
“천지가 하냥 술을 즐기…….”
취객이 계속 이백을 읊으며 다가서려다가 우뚝 멈춰 섰다.
츠으읏!
반철도에서 살기가 피어났다.
취객 같은 사람도 충분히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강렬한 살기가 줄기줄기 뻗어 나왔다.
취객은 잠시 망설였다.
아걸에게서는 어떠한 허점도 드러나지 않는다. 그리고 정말로 반철도를 쓸 생각이다.
“에잇!”
취객은 갑자기 몸을 홱 돌려서 오던 길로 쏜살같이 사라져갔다.
계속 고집을 부리고 아걸에게 다가섰다가는 여지없이 칼밥이 될 것이라는 점을 깨달은 것이다.
“흠!”
아걸은 반철도를 거뒀다.
할배가 만들어 준 반철도를 처음으로 꺼냈다. 하지만 사람을 베지는 않았다. 피를 묻히지 않았다.
처벅! 처벅! 스스스스!
처벅! 처벅! 처벅! 스스스!
아걸이 걷는다. 바람 소리가 조용히 따라붙는다.
아주 조용한 바람이다. 은밀한 바람, 볼을 스치는 바람…… 초상비(草上飛)!
활검문에서 초상비를 사용하는 사람은 몇 명 되지 않는다.
제오당 무인 중에서도 겨우 한두 명만이 초상비를 펼칠 줄 안다.
초상비는 매우 뛰어난 경공(輕功)이다. 그리고 미행하는 데는 이보다 더 적합한 경공이 없다.
저벅! 저벅! 스스스!
그는 걷고, 어김없이 미행이 따라붙는다.
터엉!
아걸은 허리춤에 꽂힌 반철도를 손가락으로 퉁겼다.
손가락에 퉁겨진 반철도가 맑은 금속성을 토해냈다.
아걸이 말했다.
“지금 거리가 십 장이다. 지금부터 열 걸음에 일 장씩 물러서라. 그렇지 않으면 벤다. 믿지 못하겠으면 시험해 보고.”
허공에 던진 말이다. 하지만 상대는 들었다.
그가 말하는 순간 흠칫하는 기운을 읽었다.
일홀도를 수련하면 전신 감각이 극도로 발달한다. 맹수처럼 예민하게 발달한다.
아걸은 미행하는 자를 감지할 수 있다.
그가 숨 쉴 때마다 내뿜는 구취까지도 맡는다.
미행자가 점심때 무엇을 먹었는지 맞혀 볼까? 아마도 국수를 먹었을 것이다. 입에서 밀 냄새가 풍긴다. 매운 냄새, 채소 냄새가 풍기지 않는 것으로 보면 담백한 국수를 먹은 것 같다.
이 정도는 알아낼 수 있다.
저벅! 저벅!
아걸이 걸었다.
상대는 뒤따라오지 않는다.
아걸은 두 가지를 말했다.
지금 거리가 십 장, 미행자 위치를 정확히 파악했다는 소리다. 그리고 벤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는 활검문도를 베었다. 공연한 협박이 아니다.
이런 경우를 대비해서 마구간에서 활검문도를 가차 없이 벴다.
활검문도를 벤 목적은 당연히 사형들을 끌어내기 위해서였다. 그것이 할배가 원했던 것이고. 더불어서 자신의 칼이 살도(殺刀)라는 사실도 알려줄 생각이었다.
가차 없이 베는 칼!
만약 그런 신념을 심어 주지 않았다면 지금쯤 활검문도가 불나방처럼 달려들었을 것이다. 자신은 이유 없이 더 많은 사람을 죽여야 했을 것이고.
마구간에서 활검문도를 벨 때, 지금 같은 경우까지 충분히 예상했다.
* * *
밤이 깊었다. 한 시진 정도만 지나면 자정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집 안에 있지 않고 밖에 나와 있다.
대청에 앉아서 담소를 나누는 사람.
담 옆에 서서 밀애(密愛)를 나누는 남녀.
한두 명이 밖에 나와 있다면 모른 척해 줄 수도 있는데…… 너무 많은 사람이 자지 않고 있다.
무인이 아니다. 그냥 사람이다.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 민초들이다.
민초들은 정탐을 할 줄 모른다.
밀명이 떨어져서 동정을 살피기는 하는데, 은밀히 살피는 법을 모른다.
초향, 미행, 그리고 민초들을 동원하는 것……. 이 세 가지는 활검문 삼대 추격법이다.
민초에게 물러서라고 협박할 수는 없다.
민초들은 활검문의 검을 제일 무서워한다. 활검문 눈 밖에 나면 살 수가 없다. 당장 생활에 직결된다. 그러므로 웬만한 협박에는 물러서지 않는다.
한 사람은 물러서게 해도 다른 사람은 여전히 숨어서 지켜본다.
이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 아무 짓도 하지 못한다. 이들의 눈길을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이쪽이 알아서 피해 주는 것뿐이다. 눈에 띄지 않도록.
아걸은 음침한 구석을 향해 걸어갔다.
깊은 밤이라서 사방이 어둡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그늘진 곳으로 걸어갔다.
으슥한 어둠이 밀려왔다.
슷! 팟!
아걸은 한순간에 사라졌다. 지켜보던 사람들이 일순간에 종적을 잃어버렸다.
“엇! 어디로 갔지? 방금까지 있었는데?”
“여기도 없어. 그쪽은?”
“이쪽도 없는데? 귀신이 곡할 노릇이네. 분명히 이쪽으로 걸어왔는데. 그 사이에 어디로 사라졌지?”
사람들이 수군거리면서 아걸을 찾았다.
아걸은 완전히 사라졌다. 사람들 눈앞에 두 번 다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상대방을 읽을 수 있다면 피할 수도 있다.
아걸 같은 사람에게 사람들 눈을 피해 움직인다는 것은 솔직히 어린애 손목 비트는 것보다도 쉽다.
사람들은 그가 눈앞을 지나가도 모를 것이다.
그는 사람들의 기운을 읽을 수 있는데, 사람들은 그를 느끼지 못한다.
이것이 일홀도다.
일홀도라고 해서 특별한 검초가 아니다.
일홀도는 몸 전체를 싸움 병기로 만드는 것이다.
모든 신경을 팽팽하게 곤두세우고, 또는 완전히 늦춘다. 긴장감을 일으키고, 죽인다. 상대을 읽어서 진기를 일으키기 전에 공격한다. 강한 곳은 피하고, 약한 곳은 친다.
이 모든 것을 본능적으로 해낼 수 있을 때 일홀도가 완성된다. 감각적으로 승기를 잡은 후에 비로소 칼을 쓴다. 그러니 초식을 보면 안 된다.
일홀도는 무공이 아니다.
일홀도는 인간을 싸움 병기로 만드는 것이다.
아걸이 파악한 일홀도는 그렇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싸움 병기가 됐을 때 일홀도가 완성된다. 어느 한순간이라도 허점이 생기면 일홀도는 무너진다. 완성되지 않은 것이다.
사형들이 얻은 일홀도는 무엇인지 모른다. 앞으로 보면 알겠지만. 분명한 것은 동박이 펼친 일홀도는 자신의 일홀도와는 상당히 거리가 있다는 점이다.
칼을 반듯하게 쳐내는 것?
아걸의 일홀도는 그런 게 아니다. 바늘로 찔러 죽여도 무방하다. 결전 순간에 몸 전체가 병기였다면 일홀도다. 어느 한 부분이라도 병기 아닌 곳이 없어야 한다.
동박과는 정말 차이가 크게 벌어진다.
그런 일홀도를 추구하겠다는 사람이 사람들 눈길조차 피하지 못한 데서야 말이 되나.
아걸은 어둠 속으로 걸어갔다.
많은 사람이 지켜보지만 그를 찾아내지는 못한다.
지금부터는 매 순간이 싸움이다.
할배를 벤 자, 동박과 그의 승부다.
지금까지 그에게 다가왔던 모든 사람이 동박 편이다. 그를 위해서 일한다. 그래서 피한 것이다. 경고를 무시하고 달려들면 벨 생각이었다.
‘진짜 싸움이 시작됐어. 죽이지 않으면 죽는 싸움. 그러면…… 죽여야지.’
스으으읏!
아걸은 전신 신경을 바짝 곤두세웠다.
언제 어디서 동박이 튀어나올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