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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홀도-39화 (39/600)

#39화. 第八章 일비일(一比一) (4)

아걸은 위험을 느낀 순간 즉시 몸을 빼냈다.

느낀 순간!

‘순간’이라는 말이 들어가면 이미 늦었다. 느낌과 동시에, 순간이라는 말이 들어간 틈도 없을 만큼 재빨리 몸을 빼내야 한다. 오직 짐승 같은 본능만 남는다.

일홀도를 피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촤아아악!

눈앞에서 번개가 흐른다.

“큭!”

아걸은 짧은 비명을 토해냈다.

가슴에서 예전에는 전혀 경험해 보지 못한 통증이 일어났다. 불꽃이 확 피어났다.

최선을 다했는데도 동박의 칼을 피하지 못했다.

‘대단하다!’

머리카락이 쭈뼛 곤두서는 충격이다.

동박이 전개한 칼을 보지 못했다.

일홀도는 눈여겨볼 수 있을 만큼 여유를 주지 않는다. 직접 부딪치면서 감각으로 봐야만 한다.

아걸은 한순간, 감각이 막혔다.

쉬이이잇!

뒤로, 뒤로, 뒤로…… 아걸은 멈출 생각을 하지 않고 계속 물러섰다.

이미 도권(刀圈)은, 칼의 거리는 벗어났다.

동박이 계속 쫓아온다면 모를까, 멈췄다가 다시 칼을 쓴다면 충분히 피할 수 있을 정도까지 거리를 벌렸다. 그런데도 겁에 질린 쥐처럼 계속 물러선다.

턱!

드디어 물러설 수 없는 곳까지 이르렀다.

암벽…… 등에 암벽이 닿았다.

순간, 아걸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암벽 위로 솟구쳤다.

슈우우웃!

아걸의 신형은 거대한 흡입력에 휘말린 듯 빠르게 암벽 위로 빨려 올라갔다.

“밧줄? 큭! 큭큭!”

동박은 어이없어서 피식 실소를 흘렸다.

아걸은 싸움 준비를 어디까지 한 것인가? 암벽에 밧줄까지 늘어놓았다니.

아걸이 미리 준비해 놓은 밧줄을 잡고 암벽을 올라갔다.

암벽 타는 모습을 보니 한두 번 타 본 솜씨가 아니다. 예전에도 숱하게 타 본 듯하다.

“뭐야? 밧줄을 마련해 놓은 거야? 하하하! 그러니 졌지. 하하!”

동박은 웃었다.

이길 것이 확실한 자, 절대적으로 이길 것으로 생각하는 자는 탈출 준비를 하지 않는다.

탈출이 필요 없다.

혹여 일이 잘못돼서 내가 당하면 어쩌나 하는 그런 걱정 따위는 애당초 하지 않는다.

힘센 장한과 이제 갓 태어난 갓난아기가 싸운다고 하자. 장한에게 혹시 갓난아기가 반격할지 모르니 탈출구를 준비하는 게 어떠냐고 말하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웃는다. 누구를 막론하고 웃는다.

장한에게는 탈출구가 필요 없다. 탈출구 따위는 생각하지 않는다. 아니, 질 것이라는 생각도 하지 않는다. 질 것을 생각하지 않는데, 탈출구는 어떻게 생각하겠나.

이것이 절대강자의 싸움이다.

일홀문도는 항시 이런 싸움을 했다.

아걸이 탈출 방도를 준비해 놓았다는 것은 혹시 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는 거다.

질 수 있다는 가정!

불길한 가정을 하게 되면, 실제로 패배할 가능성이 훨씬 커진다.

절반 정도 승산이 있는 싸움이었다고 하면, 탈출구를 준비하는 즉시 그만큼 승률이 떨어져 나간다. 도망갈 곳이 있다는 심리가 승산을 훨씬 떨궈 버린다. 적어도 승률 일 할은 잃는다.

아걸은 절벽에 밧줄까지 준비해 놨다.

자신을 유인하는 과정 중에 이런 준비를 했을 텐데…… 은밀히 밧줄까지 준비한 용의주도함에는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하지만 이래서야 어떻게 이기겠나.

“이렇게 해서 도망이나 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냐. 설마 내가 이 정도도 쫓지 못할 거로 생각한 건 아니지? 그래, 그 정도로 바보는 아닐 거야. 하하!”

동박은 아걸을 쫓아서 암벽을 기어 올라갔다.

아걸은 밧줄을 잡고 올라갔지만, 그는 백 장 암벽을 맨손 맨몸으로 기어오른다.

일홀문도는 무공을 배우기 전, 범인들은 상상할 수도 없는 지옥 수련을 한다.

절벽에 서 있는 산양을 보았나? 산양이 절벽을 잘 타는 것은 튼튼한 발굽 때문이다. 절벽 조그만 틈바구니에 발굽을 밀어 넣어서 몸이 밀리지 않도록 한다.

일홀문도도 그런 수련을 한다.

인간은 산양처럼 튼튼한 발굽이 없으므로 열 손가락, 십지(十指)를 철갑처럼 단단하게 훈련한다. 손가락을 절벽 틈바구니에 밀어 넣고 잠을 잘 수 있을 정도로.

무림에서 말하는 벽호공(壁虎功)이 아니냐고? 맞다. 다만 일홀 무인은 벽호공 같은 공부를 특별히 배우지 않고도 능숙하게 펼칠 수 있다.

신체 능력을 극한으로 끌어올리는 것이다.

이런 상태가 되면 무공을 배우지 않았어도 이미 무인이 되어 있다. 무공은 그 후에 전수된다. 근골과 신경이 최고 상태에 이른 후에야 비로소 무공이라는 것을 접한다.

진기를 이끌 수 있는 운공법, 진기로 운용하는 초식…… 신법, 심법, 검법, 도법…….

모든 무공이 일사천리로 습득된다.

아걸이 밧줄을 이용해서 암벽을 타는 것은…… 뭐라고 할까? 아직 일홀문도가 덜 되었다는 증거다. 이런 정도는 칼을 잡기 전에 습득했어야 한다.

쉬이이잇!

동박은 빠른 속도로 암벽을 올라갔다.

아걸이 보인다.

그는 밧줄을 이용하면서도 힘들어서 숨을 헐떡인다.

하지만 그에게는 여유가 없다. 이미 동박이 암벽에 올라서고 있기 때문이었다.

머리가 보이고, 상반신이 보인다.

아걸은 급히 급류 속으로 뛰어들었다.

폭포를 향해 쏟아지는 물살, 여지없이 떠내려갈 것 같은 위태로움 속에서 물살을 헤쳐 나갔다.

“하하하하!”

한 걸음씩 힘들게 나아가는 아걸을 바라보며, 동박은 웃음이 터져 나와 견딜 수 없었다.

아걸은 치밀하게 계산했다. 폭포를 향해 흘러가는 급류는 폭이 제법 넓다. 단숨에 뛰어넘기에는 무리다. 중간에 두어 번 정도 발을 디뎌야 한다.

아걸은 그 점을 노렸다.

급류 이쪽에서 저쪽으로 밧줄을 늘어놓았다.

자신이 급류를 가로질러 가면 동박을 떼어놓을 수 있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하하하! 하하하하!”

동박은 웃었다.

아걸의 행동은 일홀문도가 취할 행동이 아니다. 아니, 일홀문도라면 꿈에서도 생각하지 못할 추한 행동이다.

일홀문도는 절벽을 오르는 것과 마찬가지로 거대한 급류 속에서도 몸의 중심을 유지할 수 있다.

두 발에 천 근 무게의 납을 단다.

천근연(千斤鉛)!

무인들이 말하는 천근추(千斤墜)와 흡사하다. 다만 천근추는 진기로 펼치는 무공이고, 천근연은 온전히 하반신의 무게로만 일궈내는 신체 능력이라는 점이 다를 뿐이다.

두 발이 땅에 뿌리박히면 아무리 거센 급류라고 해도 몸을 떠밀지 못한다.

아걸…… 진짜 사제가 맞나? 너는 일홀문이 어떤 곳인지 전혀 알지 못하는구나. 일홀문도가 어디까지, 어떻게까지 할 수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해.

첨벙!

동박은 서슴없이 급류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두 다리가 철주(鐵柱)가 되어서 강바닥에 박혔다. 발을 떼어서 앞으로 옮길 때마다 발목 깊이까지 푹푹 박힌다.

급류가 거침없이 그를 밀어낸다. 하지만 밀리지 않는다. 하반신이 워낙 굳건하게 틀어박혀 있으니, 다소 흔들리기만 할 뿐 밀어내지 못한다.

반면에 아걸은 금방이라도 떠밀려 내려갈 듯 위태위태하다.

밧줄에 몸을 의지하고 있는데, 하체는 이미 떠밀리고 있다. 밧줄을 잡은 두 손에 의지해서 물살을 헤쳐 나간다.

동박은 아걸을 골려 줄 생각까지 치밀었다.

밧줄을 잘라 버리면 어떨까? 하면 아걸은 정신없이 떠밀려 내려갈 텐데. 이미 중간 이상은 건너갔으니, 폭포 아래로 떨어지지는 않을 것이고.

남은 밧줄 길이로 보면, 밧줄을 잘라 버린다고 해도 반대쪽 건너편으로 떠밀려 갈 것이다.

단지 그 정도뿐이라면 잘라 버리겠는데…… 물속에 틀어박혀 있는 바위들이 보인다. 아걸이 떠밀려 가면 틀림없이 바위에 머리를 부딪칠 것이다.

아걸처럼 못난 놈은 저런 바위도 피하지 못한다.

일홀문도가 한낱 바위 따위에 머리가 찍혀서 죽는다면 말이 되나. 일홀도를 보여 줘야지. 그래도 사제인데 죽더라도 칼 맞고 죽어야지. 굳이 골탕을 먹일 필요가 없었다.

스읏! 스읏!

동박은 빠르게 급류를 헤쳐 갔다.

아걸은 반대쪽 강변에 도착하자마자 죽을힘을 다해서 질주하기 시작했다.

강변 너머는 밀림이다.

쫓아오면서 봤지만 두 사람은 아주 깊은 산 속으로 들어섰다.

협곡에 발을 디딜 때부터 사람 발길이 닿았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다.

밀림은 잘 정리된 나무숲과는 전혀 다르다.

무척 거칠다. 풀이 허벅지 높이까지 자라있다. 풀숲에 뱀이 있는지 멧돼지가 있는지 전혀 알 길이 없다.

아걸은 그런 원시림 속으로 쏜살같이 뛰어들었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냅다 달아난다.

하지만 무작정 달려가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나름대로 일홀문도다. 그래서 흔적을 남기지 않으려고 꽤 노력한다.

동박을 유인할 때는 일부러 발자국을 남겼다. 이번에는 애써서 흔적을 지우며 도주한다. 실제로 전혀 흔적이 남지 않는다. 풀을 밟았으니 흔적이 남을 만한데, 전혀 찾을 수 없다.

“……영 바보 같은 놈이네.”

동박이 중얼거렸다.

밀림 속으로 도주할 생각이었다면 급류를 지나지 말았어야지.

물방울이 튀고 있다. 옷에 묻은 물방울이 풀에 묻어 있다. 그런 흔적들을 모아서 한 줄로 쭉 그어 보니, 아걸이 어디로 도주했는지 뚜렷하게 보인다.

정말 이놈이 일홀문도가 맞나 싶다.

사부에게 지도를 제대로 받지 않고 엉망으로 배웠으니 이럴 수도 있겠다 싶기는 한데.

일홀도를 죽은 아삼이라는 놈에게서 배웠나?

아삼이 사이비 무공을 배워서 엉터리로 가르친 건가? 아삼을 보니 일홀문을 잘 아는 듯한데…… 그래서 이렇게 엉터리인가? 말도 안 되는 행동들만 하고 있으니.

실제로 그렇다면 아주 잘못 배운 것이다. 일홀문 무공은 눈으로 보고 배울 수 있는 게 아니다. 그 속에 직접 뛰어들지 않으면 전혀 알 수 없다.

동박은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쫓아갔다.

아걸은 바보다. 도주하지 못한다. 옷에 묻은 물방울이 마르기 전에 잡힌다. 그리고 죽는다.

* * *

“아!”

아걸은 탄식했다.

가슴에 입은 상처가 의외로 깊다.

살짝 스친 것 같은데 가슴이 쫙 갈라졌다.

동박이 예상보다 훨씬 강했다. 솔직히 이 정도까지 강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세 배 정도 강한 자?

결전에서 상대를 약간만 잘못 읽어도 치명적인데, 세 배 정도 잘못 읽었다면 그야말로 구제할 길이 없다. 아직 죽지 않고 숨이 붙어 있는 것만 해도 다행으로 여겨야 한다.

일홀도는 승부를 찰나에 끝낸다.

칼과 칼이 부딪치지도 않는다. 상대방의 칼을 흘려보내고, 단번에 살을 갈라 버린다.

일홀도는 이런 싸움이 가능하다.

손속을 수십 차례나 섞을 때도 있다.

이때도 일방적으로 받아내기만 하는 경우는 없다. 공방을 주고받는다. 나도 치지 못하고, 상대도 치지 못한다. 하지만 계속 공격한다. 수십 번의 공격을 한 호흡에 한다.

일홀도는 언제나 한 호흡이다. 공격이 두 호흡까지 늘어지지 않는다.

그 한 칼을 피해낸 것이니 그야말로 천운이 도왔다고밖에 달리 말할 길이 없다.

물론 천운에 의지한 것만은 아니다.

아걸도 일홀무인이 수련해야 할 과정을 모두 거쳤다. 그래서 순간적인 움직임에는 누구보다도 자신 있다. 물론 사형들도 같은 생각이겠지만.

아걸은 품에서 작은 병을 꺼냈다.

녹선마황을 쓸 일이 없으리라 생각했다. 그래도 혹시 모른다는 심정에서 작은 병에 두 마리만 넣어왔는데…… 첫 접촉에서 쓸 일이 생기고야 말았다.

그는 거머리 두 마리를 꺼내 상처에 붙였다.

“큭!”

신음이 흘러나왔다.

쩍 벌어진 상처에 이물질이 닿으니 극통이 밀려왔다. 한순간 얼음 굴에 빠진 것처럼 정신이 퍼뜩 들었다. 너무 아파서 눈물이 찔끔 흘러내렸다.

녹선마황이 흘리는 즙액은 상처를 마비시킨다. 틍증을 억누르는 데는 즉효다.

쭈우욱!

녹선마황이 꿈틀거리면서 피를 쭉쭉 빨아먹는다. 상처를 따라서 기어간다.

벌써 통증이 가시기 시작했다.

벌레가 상처 부위를 기어가는데도 통증이 치밀지 않는다.

물론 녹선마황이 상처를 깔끔하게 치료해 줄 수는 없다. 녹선마황이 아무리 영험하다고 해도 겨우 두 마리 가지고 상처 부위를 전부 치료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통증을 느끼지 못하면 된 것이다. 거기에 지혈까지 해주니 더 바랄 게 없다.

두 번째 기회가 주어졌다.

다시 한번 몸을 움직일 기회를 얻었다.

쉬이이잇!

아걸은 빠르게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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