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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홀도-40화 (40/600)

#40화. 第八章 일비일(一比一) (5)

감각망기술(感覺忘棄術)이라는 게 있다.

반사 신경이 너무 예민하면 생활하는 데 불편할 때가 있다. 그럴 경우, 일부러 감각을 잠재운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나와 연관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 얼마나 불편하겠나. 시도 때도 없이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린다면 잠인들 편히 자겠나.

그래서 일부러 감각을 잊어버리는 것이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인 것처럼 생각한다. 그렇게 여긴다. 그렇게 믿고 행동한다. 철저하게. 그러면 감각이 죽는다.

마음이 그렇다고 하면 몸도 따라서 그렇게 된다.

몸이 마음이다. 마음이 몸이다.

몸과 마음은 분리되어 있지 않다. 하나로 합쳐져 있어서 아주 강하게 영향을 끼친다.

마음이 우울하고 불편한데 몸이 날아갈 듯 가뿐한 예는 없다. 몸이 아파서 죽겠는데 마음은 생기발랄해서 온 세상이 환하게 보이는 예도 없다.

몸이 아프면 마음도 아프고, 몸이 건강하면 마음도 건강하다.

마음이 아프면 몸도 아파지고, 마음이 건강하면 몸도 건강해진다.

감각망기술은 이런 이치를 응용한다.

감각이 날카로워지면 마음을 죽인다. 마음을 죽이다 보면 몸이 따라서 죽는다. 몸을 차분하게 가라앉히는 방법이다. 반대로 마음이 불편하면 몸을 일부러라도 움직인다. 활기차게 움직인다. 그러다 보면 마음도 밝아진다.

몸과 마음을 자신이 원하는 대로 조정할 수가 있다.

아걸은 감각망기술을 일으켰다.

상처를 잊어버린다. 육신에서 일어나는 통증을 잊는다.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 모든 반응이 자신과는 일절 상관없이 스스로 일어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감각망기술에서 중요한 것은 믿음이다.

제일 가치를 어느 것으로 결정하느냐에 따라서 몸과 마음을 원활하게 조정할 수 있다.

생각이 실제를 지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실제보다 더 강한 실제를 만들어야 한다.

이것이 감각망기술의 요체다.

이런 일은 일반 사람들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고도의 수법이 아니라 일상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현상이다.

어떤 소리가 두 귀에 전해질 때, 그 소리는 실제다. 소리는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소리를 듣는 사람이 어떤 생각에 깊이 빠져 있다고 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두 가지 경우가 일어난다.

소리가 생각을 무너트리면 소리는 두 귀로 전달된다. 생각에서 깨어나 소리를 듣는다.

소리가 스며들지 못할 정도로 생각에 깊이 몰두해 있다면,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소리가 고막을 두들기겠지만, 머리가 의식하지 못한다.

실제를 밀어낸다.

집중의 문제다. 어느 쪽에 집중하느냐의 차이다.

감각망기술은 누구라도 약간의 수련만 거치면 요긴할 때 써먹을 수 있다.

츠으으읏!

감각망기술을 사용한다.

마음을 완전히 죽여 버린다. 신경을 죽인다. 죽은 자가 된다.

신경을 죽이는 데 그치지 않고 육신까지 죽인다. 마음과 몸을 일시에 죽인다.

죽은 자는 찾을 수 없다.

기척이라는 것도 살아서 움직이는 자가 흘리는 것이다. 죽은 자는 아무것도 흘리지 못한다.

몸도 마음도 다 잊는다.

아걸은 그런 상태로 움직였다.

뒤에서 일어나는 위험을 잊는다. 동박이 쫓아온다는 사실을 망각한다. 앞에서 기다리는 위험도 잊는다. 독사, 맹수, 갑자기 나타날 벼랑 같은 것들…… 모든 위험을 잊는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자신과 무관하다.

파팟! 파파파팟!

날카로운 파공음이 고막을 두들겼다.

모든 사실을 다 잊고 치달렸는데…… 소리 하나가 거세게 밀려 들어왔다.

감각망기술이 말한다. 이 소리는 들어야 한다.

파팟! 파파파팟!

모든 것을 망각하더라도 이 소리만은 들어야 한다. 바로 생명과 직결되는 소리이기 때문이다. 목숨을 부지하는 데 이보다 귀중한 소리는 없기 때문이다.

“아!”

아걸은 나직이 신음을 흘렸다.

동박이다. 그토록 은밀하게 움직였는데도 떨어내지 못했다. 거리를 점점 점점 좁혀온다.

걸음을 멈췄다.

파공음이 감각망기술을 깨고 밀려왔다면, 피하기에는 이미 늦었다.

그는 동박이 어떻게 따라붙었는지 이유를 안다.

옷이 문제였다. 옷에 물기를 묻히고 치달리는 것은 편안하게 쫓아오라는 소리나 마찬가지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해당하지 않는 말이겠지만, 일홀 무인들에게는 그렇다.

이제는 탈출을 포기한다. 상대가 안 되지만 최후를 맞을 장소에 온 것 같다.

숨을 고른다.

진기를 움직이면서 체력을 회복한다.

슷! 슷!

상처에 달라붙은 녹선마황을 떼어냈다.

동박이 그 모습을 보고 웃었다.

“그런 것도 가지고 다녀?”

“당신은 안 가지고 다니나?”

“당신? 당신이 뭐야, 당신이. 그래도 명색이 사형인데. 내가 사형이라는 거 알고 일 저지른 거잖아? 기왕 이렇게 된 것 호칭이라도 사형이라고 부르지 그래?”

동박이 다가왔다.

아걸은 다가온 만큼 물러섰다.

동박이 아걸의 가슴에서 떨어져 나온 녹선마황을 발로 짓밟으며 말했다.

“이런 게 필요해? 일홀문도 정도 되면 말이야. 이런 거 가지고 다니지 않아. 당하면 죽는 거야. 칼을 맞았으면 죽어야지. 칼을 맞고도 살 생각을 하면 되나.”

아걸은 동박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허점을 살핀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다. 동박은 여유 있게 웃으면서 말하지만, 허점 같은 것은 흘리지 않는다.

동박이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그러니 칼을 맞지 마. 일홀도를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사실…… 아니, 사실이 아니고 신념이지. 후후, 사형으로서 한 마디 해 주는 거야.”

“고맙군. 충고는 받아들이지.”

“이제 곧 알게 될 거야. 이런 거머리 따위로는 해결할 수 없는 칼이 있다는 걸.”

스릉!

동박이 반도를 꺼냈다.

아걸이 반철도를 꺼내 가슴을 방어하며 말했다.

“그런데…… 잘못 말한 게 있어.”

“잘못? 그게 뭘까? 뭘 잘못 말했을까?”

동박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사형이라는 말. 같은 사부를 모셨다고 해서 전부 사형은 아니지. 서리 성을 받지 못한 자는 사형이 아니야. 그러니 사형으로서 한마디 한 것이 아니라 그냥 한마디 한 거야.”

“뭐? 큭! 큭큭!”

동박이 키득거리며 웃었다. 하지만 눈가에는 살광이 일렁거렸다.

동박에게는 감추고 싶은 부분이 있다.

사부에게 서리 성씨를 받지 못했으니, 엄밀히 말하면 무공을 인증받지 못한 것이다.

동박에게는 굉장한 치욕이다.

나름대로는 일홀도를 얻었다고 생각했다. 한데 사부는 끝내 성씨를 주지 않았다. 죽는 순간까지도.

아걸은 동박의 아픈 곳을 찔렀다.

“어린놈이 꼬박꼬박 반말지거리네. 기분 되게 나쁜데?”

“곧 칼 쓸 거잖아. 기분 좀 나쁘면 어때?”

동박이 기분 나쁘라고 하는 말이 아니다. 사실을 사실대로 말한 것뿐이다.

일홀문도에게 격장지계(激將之計) 따위는 소용없다.

아무리 심한 모욕을 당해도 맑은 물처럼 흔들림 없는 마음을 유지할 수 있도록 수련했다.

실제로 동박은 흔들리지 않는다.

입으로는 기분 나쁘다고 말하지만, 칼을 든 손은 전혀 동요하지 않는다. 무심하다. 조용하다. 오직 강한 힘만 느껴진다. 들뜬 기운은 전혀 없다.

동박이 비웃듯이 말했다.

“흐흐! 내 칼이나 받고 난 다음에 일홀도 운운하지 그래?”

“그래. 받아보지.”

스읏!

아걸이 반철도를 비스듬히 뉘었다.

그때, 동박이 갑자기 생각난 듯 부리나케 물었다.

“참! 넌 언제 입문했냐? 오랜만에 칼을 써서인지 약간 흥분했나 봐. 정작 궁금한 걸 안 물어봤네. 하마터면 궁금한 것도 안 물어보고 죽일 뻔했잖아? 말해 봐. 언제 입문했어. 사부가 살았을 때는 우리 셋밖에 없었는데, 어떻게 된 거야?”

“글쎄? 대답해 주기 싫은데.”

아걸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아삼이라는 그놈, 우리에 대해서 잘 알던데. 누구야?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놈인데, 우리에 대해서 너무 잘 알아. 어때? 이 정도는 말해 줄 수 있지? 이미 죽은 놈이잖아.”

“그런 건 직접 알아내야지.”

“너무 비싸게 구는 거 아냐?”

“아니면 입을 열게 만들든가.”

아걸은 깊이 생각하지 않고 대답했다.

사실, 대화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대답을 해 줘도 그만이고, 안 해 줘도 무방하다.

아걸은 동박을 탐색하고 있다.

일홀문도의 기본, 상대방의 상태를 탐색한다. 숨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상대방의 숨에 내 숨을 얹고, 은밀히 내 숨을 따라오도록 유도한다.

아걸은 말을 나누는 게 아니다. 싸움 중이다.

동박이 말했다.

“그럼 대답할 수 있는 부분을 물어볼까? 네 칼, 사부의 칼과 흡사해. 언제 어떻게 배웠어? 네 칼은 사부의 시연을 보지 않고는 펼칠 수 없는 칼이라서 묻는 거야.”

동굴에서 딱 한 번 봤다.

넓고 깊은 동굴에서 찬바람을 맞으며 지켜봤다. 일곱 살 어린 눈으로 봤다.

그 칼을 기억한다.

지금 아걸이 펼치는 칼이 바로 그 칼이다.

사부는 자신의 칼 외에도 전대 문주들의 칼을 보여 주었다. 매우 느리게 시연했다. 한 번 보여 주기만 하면 다 가르친 것처럼 여기는 듯했다.

그런데 정말 이상하다.

문장은 몇 번을 보고 외우고 써 봐도 잊어버리는데, 그때 본 기억은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기억된다. 지금도 생각난다. 사부의 숨소리도 들린다.

아걸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다른 말을 했다.

“사부가 돌아가실 때까지 일홀도를 완성하지 못한 것으로 아는데, 언제 완성했어? 칼이 꽤 날카롭더라고. 하지만 일홀도라고는 하지 마. 성질이 완전히 달라.”

“이놈이 날 끝까지 무시하네.”

스읏!

동박이 반도를 들어 올렸다.

“네 말이 맞아. 난 서리 성을 받지 못했다. 그러니 네 사형도 아니지. 일홀도? 사부가 죽기 전에 얻었다. 그런데 그 늙은이가 성을 주지 않았어. 너무 난폭하다나?”

“그렇군.”

“자! 그럼…… 사부가 인정하지 않은 칼에 뒈져 봐!”

쒜에에엑!

동박은 더는 말도 하기 싫다는 듯 득달같이 달려왔다.

아걸은 반철도를 들어서 가슴에 댔다. 가슴에 일격을 당한 적이 있어서 철저히 가슴을 보호했다.

쒜엑!

동박이 칼을 번뜩였다.

순간, 세상이 갈라졌다. 밀림이 갈라졌다. 반철도가 두 쪽으로 갈라졌다. 머리 위에서부터 가랑이까지 쭉 그어졌다. 풀이, 나무가 반으로 갈라져 무너졌다.

동박의 칼은 온 세상을 갈라버린다.

물론 갈라짐의 중심에는 아걸이 있다. 아걸을 가르기 위해서 세상까지 가른다.

몰안(沒眼)!

감각망기술을 머리에 적용하면 몰안이라는 기괴망측한 기공이 튀어나온다.

감각을 잊어버리듯이 머리를 놓아버린다.

모든 감각을 눈에 집중시킨다. 눈이 점점 커진다. 그리고 곧 눈이 머리 전체를 차지한다.

머리는 사라지고 눈만 남는다.

이것이 몰안이다.

몰안은 사부가 가르쳐준 것이 아니다. 사부가 선보인 도법을 되새기다가 자신 스스로 터득했다. 아마도 열네 살이나 다섯 살 즈음에 터득했던 것 같다.

몰안으로 지켜보면 떨어지는 빗방울까지 쫓을 수 있다.

쒜에에엑!

보인다! 반도가 호선을 그리며 날아온다.

세상을 갈라 버린 반도가 그를 반으로 쪼개 온다. 머리 위에서 뚝 떨어진다.

스읏!

아걸은 슬쩍 몸을 돌렸다. 그리고 반철도를 쳐올렸다.

쒯!

반철도가 움직인다.

동박이 세상을 반으로 가르는 순간에 반철도는 한 뼘 가량 앞으로 나갔다.

쒜에엑! 피윳!

동박이 아걸을 가르지 못했다. 반도가 아걸을 지나쳐서 땅을 향해 뚝 떨어진다.

같은 순간, 반철도는 동박의 옆머리를 스치면서 지나갔다. 정확하게 말하면…… 머리뼈를 베면서 지나갔다. 무거운 반철도에 머리뼈가 부서진다.

툭! 쿵!

동박은 비명도 지르지 못했다. 공격하던 모습 그대로 푹 꼬꾸라졌다.

“……후우!”

아걸은 비로소 깊은 한숨, 진정 마음 깊은 곳에서 터져 나오는 한숨을 쏟아냈다.

일순, 전신에 기운이 쑥 빠졌다.

어떻게 싸웠는지 모르겠다. 반철도를 들고 있을 힘도 없다.

아걸은 털썩 주저앉았다.

함정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생각이 이겼다는 생각이다. 동박은 그런 실수를 하지 않는데…… 아주 약간의 방심이 추격하는 과정에서 일어났다.

완전히 이겼다!

저놈 잡기만 하면 죽인다!

아걸을 추격하는 중에 상당히 위험한 자신감이 일어났다. 방심이 일어났다.

거기에 초점을 맞췄다.

아걸의 일홀도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그런 칼로 완성에 가까운 일홀도를 상대하면 어떻게 되는지는 이미 협곡에서 경험해 봤다. 절대 패배다.

그는 처음부터 동박을 상대하지 못할 줄 알았다.

하지만 할배가 이미 싸움을 걸어 놨으니 어쩌겠는가. 죽기 살기로 칼을 부딪쳐야지.

그래서 계속 도주한 것이다. 말도 안 되는 도주를 했다. 벽호공? 그 정도는 할 줄 안다. 그런데도 밧줄을 사용했다. 밧줄 없이 강을 건널 수 있다. 하지만 밧줄의 의지해서 위태위태하게 건넜다.

이겼다는 마음이 들게끔 만들었다.

아무것도 아니다. 별것 아닌 놈이라는 인식이 마음 깊은 곳에서 묻어나게끔 만들었다.

요행히 동박을 쓰러트렸다.

사실, 자신이 쓰러트린 것이 아니다. 동박 스스로 무너졌다. 이겼다는 자만심이 그를 죽였다.

자만심만 없었다면 아무리 몰안을 지녔다고 해도 쓰러트리지 못했을 것이다. 아마도 상황은 정반대로 흘러서, 땅에 쓰러져 있는 자는 자신이 되었을 것이다.

“운 좋게 이겼네. 하지만 가헌, 형개는 이런 실수를 하지 않을 텐데…… 그 사람들과 무슨 수로 싸우나. 사부가 인정하지 않은 일홀도도 이렇게 벅찬데.”

아걸은 암울한 눈으로 하늘을 쳐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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