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화. 第九章 파란(破卵) (2)
“다 왔어요. 내리세요.”
마차가 취화원에 도착했다.
‘이제 정말 다 끝났어.’
몽설은 깊은 한숨을 토해내며 마차 문을 열었다.
그런데 낯선 풍경이 보인다. 그녀가 아는 장소가 아니라 한 번도 보지 못했던 곳에 도착했다. 이곳도 취화원인가? 취화원에 이런 곳이 있었나?
“여기가……?”
“형옥(刑獄)이에요. 놀라시는 것을 보니 처음이신가 봐요? 기망살수(欺妄殺手)는 전부 여기로 와요. 별다른 일은 없고, 약간 취조만 하는 것 같으니 놀라지 마세요.”
어자석에서 마차를 몰던 여인이 친절하게 설명했다.
형옥은 절대로 친절한 곳이 아니다. 마음 편하게 있을 곳은 더욱 못 된다.
몽설 눈에 동굴 수십 개가 보였다.
큰 절벽에 인위적으로 굴을 파서 동굴을 만들었다.
동굴 안으로 일 장쯤 들어가면 쇠창살이 앞을 막는다. 한두 명 정도 가둘 수 있는 작은 석옥이 기다린다.
몽설은 형옥을 처음 방문한다.
취화원에 형당이 있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다. 형옥에 대해서도 들은 적이 있다. 하지만 형옥을 직접 방문한 것은 처음이다. 형옥은 누구도 알지 못하는 곳에 설치되어 있다.
취화원에 해를 끼친다면 모를까 결코 구경할 수 없는 장소다.
이곳에 꼬리 잡힌 살수, 기망살수도 오는구나.
몽설은 취화원에 대해서 모르는 것이 너무 많다는 사실을 알았다. 평생을 취화원에서 살아왔는데, 그런데도 처음 듣고 보는 것이 이렇게나 많다.
형옥에서 붉은색 무복을 입은 여인이 나왔다.
“눈가리개다.”
그녀가 검은 천을 건네주었다.
“제가 무슨 잘못을 저지른 거죠?”
몽설이 물었다.
“꼬리 잡힌 죄. 차라리 목숨을 잃는 것은 괜찮다. 기망살수는 자칫 본원 전체에 화를 끼칠 수 있어. 넌 운이 좋아서 빠져나왔지만, 다른 애들은 너처럼 운 좋지 못했지.”
몽설은 검은 천으로 눈을 가렸다.
듣고 보니 그렇다. 꼬리 잡힌 살수는 죽임을 당한 살수보다도 못하다.
이런 것도 이미 배워서 알고 있는데…… 잠시 잊고 있었다.
“살행 명령을 받고 취화원을 나서는 순간부터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모두 말해라. 거짓 없이.”
“전부요?”
“하나도 빠짐없이.”
“명령을 받고 먼저 정보부터 모았습니다. 강조에 대한 것에서부터 활검문에 대한 모든 것을…….”
“모든 것, 어떤 것? 상세히 말해라.”
“수칙대로 했는데, 모두 말해야 하나요?”
“빠짐없이 말하라고 했을 텐데?”
“그럼 말하는 것만 해도 며칠 걸릴 거예요.”
“할 일 있어?”
“…….”
“이제부터 너와 난 한 달이고, 두 달이고, 몇 년이 걸리더라도 이번 살행에 대해서 전모를 밝혀나갈 것이다. 살행부터 지금까지 모든 것을, 하나도 빠짐없이. 호호! 시간은 많아. 밥 먹고 할 일도 없는데 수다나 떨자고.”
“휴우! 알았어요. 그러니까 명령을 받고…….”
“그때가 몇 시였지? 명령을 받은 시간.”
“진시(辰時)요.”
“하나도 빠짐없이!”
“네. 그러죠. 진시에 명령을 받고, 보전각(寶典閣)부터 들렸어요.”
몽설은 눈가리개를 한 채 말을 이어나갔다.
취화원 보전각에는 많은 책이 있다.
살수가 되기 전에는 무공 비급 때문에 많이 찾는다. 어린 눈으로 봤을 때, 보전각에는 없는 비급이 없다. 살수가 된 후에는 살행에 필요한 정보를 얻기 위해서 보전각을 찾는다.
보전각의 또 다른 기능이 정보 취집이다.
그리고 보전각에는 매우 특이한 책도 구비되어 있었다. 살행에 실패한 사례들인데, 매우 구체적이다. 책을 읽다 보면 마치 자신이 살행을 하는 중으로 착각되기도 한다. 그리고 왜 실패했는지 단박에 깨닫게 된다.
그 책들이 이런 과정을 통해서 적혀진 것 같다.
아걸을 어떻게 말할까?
마방에서 탈출한 과정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아걸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취화원에서 가장 궁금해 하는 것도 아걸과의 관계일 것이다.
강조를 죽인 후, 마방에 침입했다. 아걸을 먼저 만났고, 말에 안장을 얹으라고 했다. 그때 아삼이 들어와서 검은 말을 가리키며 그 말이 더 낫다고 했다.
거기까지는 사실대로 말했다.
“그 말을 왜 했을까?”
“저도 그게 궁금해요.”
“전에 본 적은 없고?”
“저는 바깥출입을 거의 하지 않아요. 한 달에 한 번도 밖을 나가지 않는데 어떻게 알겠어요.”
“무작정 흑구가 낫다고 했다고?”
형옥주는 검은 말이 흑구라는 사실까지 알고 있다. 아마도 더 자세한 사정까지 알고 있을 것이다.
“네. 그래서 안장을 바꾸라고 했고, 흑구를 타고 도주했어요.”
여기까지는 진실이다. 하지만 이후부터는 매우 조심해서 말해야 한다.
활검문 타첩진에 걸려들었다. 그리고 매우 치명적인 중상을 당했다. 적어도 반년 이상은 요양해야 할 만큼 깊은 상처였다. 당연히 당장 움직일 수는 없다.
아걸은 그런 상처를 며칠 만에 치료했다.
그 이야기를 하자면 녹선마황을 말해야 한다. 그리고 자신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아걸이 왜 녹선마황 같은 영물을 소비했는지도 말해야 한다.
그녀가 할 수 있는 말은 ‘왜 도와줬는지 모른다’다.
사실이 그렇다. 하지만 이곳에서 그렇게 말하면 평생을 나가지 못한다. 그 이유가 해소될 때까지 형당에 머물러야 한다. 육신이 속박되지는 않겠지만, 바깥출입도 허락되지 않는다.
타첩진에 크게 당하지 않았다. 아주 힘든 싸움을 했지만, 겨우겨우 빠져나올 수 있었다. 하지만 상처를 입은 것도 사실이다. 며칠 쉬면 될 정도로 가벼운 상처다.
“피곤한데 좀 쉬면 안 될까요?”
“뭘 했다고 피곤해.”
“할 일 있어요? 어차피 남는 게 시간인데, 천천히 하죠. 몸뚱이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이야기를 짜 맞추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했다.
아삼, 아걸의 싸움과 자신의 살행이 겹쳤다.
그들은 활검문과 싸울 생각이었다. 자신이 살행을 하지 않았어도 그들은 싸웠다.
마침 그때 자신이 살행을 한 것이다.
활검문 천라지망을 빠져나갈 자신이 없어서 마방으로 되돌아가기는 했지만, 별다른 이야기는 주고받지 않았다. 목적이 다르니 서로 할 말도 없다.
아삼이 흑구를 가지라고 했다.
사실, 흑구는 마방 말이다. 아삼이나 아걸 말이 아니다. 그래서 타고 나왔다.
그 후로는 두 사람을 보지 못했다.
두 사람이 활검문도를 왜 죽였는지, 왜 그 난리를 쳤는지 아는 바가 전혀 없다.
몽설은 시간과 장소까지 짜 맞춰서 이야기를 만들었다.
“지금까지 한 말, 진실인가?”
“네.”
“좋아. 그럼 눈가리개 풀지.”
몽설은 형옥에 들어선 지 나흘 만에 눈가리개를 풀었다.
“끝난 거예요?”
“지장 찍어.”
형옥주가 거의 다섯 권에 이르는 두툼한 책과 인주를 내밀었다.
“지장을 찍기 전에 들어 둬. 지장을 찍은 후에는 사실을 변경할 수 없다. 그러니 바꿀 게 있으면 지금 바꿔. 우린 이 사실을 확인할 것이고, 만에 하나 다른 것이 나오면…….”
형옥주가 말을 끊었다.
몽설이 말했다.
“어디다 지장 찍으면 되죠?”
나름대로는 이야기를 치밀하게 짜 맞췄다.
아삼, 아걸, 그리고 자신만 아는 이야기가 많다.
타첩진에 당한 이후부터 삼수탈겹을 하기까지 며칠 공백 기간이 있는데, 그 기간에 벌어진 일은 아무도 알지 못한다. 단언할 수 있다. 누구도 모른다.
아삼과 아걸은 무척 치밀하다.
강을 따라가면서, 혈검경을 수련하는 동안, 그리고 마지막 헤어지는 순간까지 누구와도 만나지 않았다.
사람과 일절 접촉이 없었던 기간이다.
몽설은 그 기간에 벌어진 일을 공백으로 남겨 두었다. 숨어서 은신했다고 했으니, 확인할 방도가 없다.
형옥이 사실 확인을 하는데 사흘에서 나흘 정도 걸린다고 했다.
‘기망살수…… 정말 못 할 일이네. 두 번만 꼬리 잡히면 지쳐서 죽겠어.’
그런데 취화원이 이토록 치밀한 조직이었나?
몽설은 놀라고 또 놀랐다. 기망살수가 되지 않았다면 아직도 모르고 있을 부분이다.
덜컹!
뇌옥 문이 열렸다.
“수고했다. 다음부터는 꼬리 잡히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야. 이번에는 정말 운이 좋았던 거고.”
형옥주가 취조를 할 때와는 자못 다른 어감으로 말했다.
“네. 조심하겠습니다.”
몽설은 공손히 대답했다.
아직 잠에서 깨어나기에는 이른 시간이다.
몽설은 어둠을 밟으며 화원으로 돌아왔다.
형옥에서 나온 게 자정 무렵이니, 취화원과 형옥은 거의 두 시진이나 떨어져 있다.
“아! 꽃냄새!”
그녀는 싱긋 웃었다.
여기서부터는 그녀가 알고 있던 취화원이다. 화단에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다.
취화원 살수들은 각기 자신만의 화단을 일군다.
몽설은 제일 먼저 화단부터 살폈다.
날이 밝았으면 원주에게 인사부터 드리겠지만, 아직은 시간이 매우 이르다.
진한 꽃향기를 맡으면서 화단으로 걸어갔다.
자신이 가꾸던 화단에도 꽃이 피어있다. 한동안 가꾸지 못했는데, 여전히 아름답다.
‘잘 보살폈어.’
취화원 살수가 살행을 떠나면, 그녀가 가꾸던 화단은 옆 동료가 대신 가꿔준다.
몽설도 다른 동료의 화단을 여러 번 가꿔주었다.
이리저리 화단을 살펴보던 눈길에 키 작은 꽃 한 송이가 잡혔다.
“어! 너 피었구나!”
몽설은 반색하면서 흰 꽃에게 다가갔다.
너무 키가 작아서 다른 꽃들 사이에 묻혀 있다. 다 커봐야 겨우 한 뼘 정도밖에 자라지 않는다.
꽃 색깔이 특이하게도 오색이다.
오색이 뭐냐고 물으면 딱 부러지게 말하기가 곤란하다. 밤에 보면 검은색이고, 새벽에 보면 흰색이다. 낮에 보면 붉은색이고, 저녁에 보면 황금색이다. 그리고 하루에 딱 한 번, 일다경 정도 윤기 있는 청색을 띤다.
오색화(五色花)!
몽설이 제일 아끼는 꽃이다.
오색화는 기름기가 닿으면 즉시 죽는다. 사람 손길이 닿아도 안 된다. 동물이 스쳐 지나가기만 해도 죽는다.
매우 까다로운 꽃이다.
다른 꽃은 다 살아도 오색화만은 죽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살았다.
“누가 보살폈는지 아주 잘 가꿔줬네. 호호!”
몽설은 오랜만에 활짝 웃었다.
“원주님이 직접 보살폈어. 오색화는 가꾸기가 엄청 까다롭다면서. 네가 돌아왔을 때 살아있는 모습을 보면 얼마나 좋아하겠냐고 하시더라.”
“원주님이?”
“매일 오셔서 물도 주고, 흙도 덮어주고, 쥐도 못 오게 막아주시고. 너보다 더 잘 가꾸셨어.”
“그랬구나.”
“인사는 드렸어?”
“아침 회의 중이라서. 회의 끝나면 드리려고.”
“빨리 인사드려.”
“그래.”
몽설은 환하게 웃었다.
취화원주는 어머니다.
모든 취화원 살수들이 원주를 어머니로 받들고 따르지만, 몽설은 특히 잘 따른다.
원주가 그녀를 특별하게 대해준 것은 아니다. 다른 살수와 똑같이 대했다. 밥 먹는 것, 옷 입는 것, 잠자는 것…… 모든 면에서 동일하게 대했다.
아니, 특별한 점이 있다.
그녀는 원주와 비밀을 공유하고 있다.
혈검경!
-이것은 수련이 금지된 마공이다. 하지만 네 것이니 준다. 수련할 생각이면 조심해서 하거라. 누구에게도 발각되면 안 될 것이야. 발견되는 즉시 축출된다는 점도 명심하고.
-이걸 수련하면 몸에 해가 되나요?
-아니다.
-그럼 심성이 변하나요?
-아니.
-그럼 왜 마공이라는 되죠?
-이걸 수련한 사람이 나쁜 짓을 많이 했거든. 그래서 무인들은 이 무공만 보면 치를 떨지. 이 무공 흉내만 내도 당장 몽둥이를 들고 쫓아올 정도야. 그러니 절대로 남 앞에서 펼치면 안 돼.
-무슨 짓을 했는데요?
-나중에 말해주마. 네가 이해할 나이가 됐을 때.
-네.
-이 무공을 수련하면 우리 무공은 수련하지 못한다. 무공이 섞이면 기혈이 엉키니까. 이거든 우리 무공이든 한 가지만 수련해야 하니 잘 생각해서 선택해라. 이걸 수련하면 몰래 수련해야 하니 무공도 배우지 못하는 바보가 될 것이고, 우리 무공을 수련하면 다른 아이들과 웃으면서 지낼 수 있다. 뭘 수련할래?
-이거 수련해도 돼요?
-네가 원하면.
-그럼 이걸 수련할래요.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모르겠다. 무작정 혈검경이라는 무공이 마음에 들었다.
그때부터 원주는 남몰래 그녀의 수련을 도와주었다.
비밀이다.
취화원주와 그녀만의 비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