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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홀도-48화 (48/600)

#48화. 第十章 무가불가(無可不可 : 어쩔 수 없이) (3)

할배는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 숨만 쉬고 있을 뿐,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상태다.

할배를 농사꾼 부부에게 맡겼다.

“잘 부탁합니다.”

“안 깨어나면 어떻게 해요?”

“깨어날 겁니다.”

“죽으면……?”

“죽지 않을 겁니다.”

“그래도 사람 목숨이라는 것이 어떨 때는 파리 목숨보다 약할 때도 있어서…….”

“죽기 전에 돌아오겠습니다.”

아걸은 할배가 죽는다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다.

살 것이다. 절대적으로 살 것이다. 만약 저승사자가 데려간다면, 저승사자를 베어버릴 것이다. 염라대왕이 끌고 간다면 염라대왕에게 일홀도를 날릴 것이다.

“약속은 지켜주실 거죠?”

“틀림없이 지키겠습니다.”

“안 지키면 곤란한데…….”

“꼭 지킬 겁니다. 제가 오지 못할 것 같으면 다른 사람이라도 보내서 전해 드리겠습니다.”

“약속은 꼭 지키셔야 해요.”

농부 아낙이 몇 번이고 확인했다.

할배를 일 년 동안 간병하는 데 육백 냥을 주기로 했다.

그동안 무공만 수련하느라고 돈에는 관심이 없었다. 있는 것 없는 것 탈탈 털어보니 육백 냥이 나와서 육백 냥씩 주기로 했을 뿐, 딱히 어떤 계산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할배를 절이나 도관에 맡길까 하는 생각도 해봤다. 하지만 여러 가지 생각 끝에 농사꾼 부부를 택했다.

싸움을 시작하면 저들은 자신의 뒤를 샅샅이 캘 것이다. 옷자락만 스친 사이라도 일단은 잡아갈 것이고, 친분이 조금이라도 깊으면 고문을 가할 것이다.

할배가 매우 위험해진다.

절이나 도관처럼 사람이 많이 들락거리는 곳은 안전하지 않다.

‘할배, 나 혼자 싸워야겠네. 빨리 깨어나.’

아걸은 잠자듯 누워있는 할배에게 마지막 인사를 했다. 어쩌면 이승에서 건네는 마지막 인사일지도 모르겠고.

* * *

취화원은 중원 오대 화원 중 하나로 손꼽힌다.

화원은 오대 화원 중 가장 작지만, 꽃의 종류나 모양, 향기는 으뜸으로 꼽힌다.

그 모든 것이 취화원 살수들의 손을 거쳤다.

취화원 살수들, 아니, 여자들이 가장 자신 있게 할 수 있는 일이 딱 두 가지 있다. 하나는 청부살인이요, 다른 하나는 꽃을 가꾸는 일이다.

꽃과 살인.

참으로 어울리지 않는 말이지만, 취화원에는 존재한다.

살수가 꽃을 가꾸는 일은 처음에는 위장술의 일환이었다. 살수라는 신분을 숨기기 위해서 화원을 운영했다.

화원이 커진 후에는 화원 자체가 하나의 일이 되었다.

특별하게 꽃으로 살심을 녹인다거나, 정신적인 휴양을 취한다거나 하는 의미는 없다. 너무 간단하게도 일이니까 더불어서 하고 있었던 것이다.

바로 이것,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이 취화원 살수들의 발목을 잡았다.

“동승에 갔었나?”

한 여인 앞에 느닷없이 사내들이 들이닥쳤다. 그리고 다짜고짜 영문도 모를 소리를 늘어놨다.

“무슨 소리예요?”

“에이. 우리 내숭은 그만 떨고. 아는 사람들끼리 왜 이래. 동승에 정말 안 갔어?”

“절 아세요?”

“아니. 몰라. 당신을 어떻게 알아. 아니다. 아는구나. 취화원 살수. 맞지?”

“사람 잘못 찾아왔어요.”

“이봐. 우리가 당신 동선을 얼마나 힘들게 쫓았는데 잘못 찾아왔다고 그래.”

“정말 잘못 찾아왔…….”

“알았어. 알았어. 알았어. 그래, 동승에는 안 갔다 이거지? 그럼 동승에 가서 강조를 죽인 살수 이름은 뭐야? 그놈의 기망살수 비록을 놓치는 바람에 이 개고생이잖아. 그 여자 이름만 말해. 그럼 살려줄 수도 있고.”

“저는 정말 무슨 말을 하는지…….”

여인이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말했다.

하지만 사내들이 가진 확신을 지우지는 못했다.

낯선 여자가 작은 화원에 나타났다. 그녀는 꽃을 매우 잘 다룬다. 주변에 연고도 없다. 타지에서 온 여인인데 어찌나 꽃을 잘 다루는지 화원 주인이 당장 보물 취급을 한다.

이 정도면 ‘나 취화원 살수요’하고 토설하는 것과 진배없다.

스릉! 스르릉!

사내들이 검을 뽑았다.

여인은 눈을 질끈 감았다. 죽어도 취화원 살수는 아니라는 듯 겁에 질려서 오돌오돌 떤다.

정말로 취화원 살수가 아닐까?

“이봐, 그러다가 너 정말 죽어. 최소한 반항이라도 해야 돼. 안 그럼 진짜 죽는다니까?”

“저, 전 정말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어요. 취화원 살수라뇨? 전 누굴 죽여 본 적이 없어요.”

“네 손바닥에 박힌 굳은살은 뭐야?”

“네?”

“검 잡은 흔적이잖아. 하하! 속일 사람을 속여라. 같은 밥 먹는 사람끼리 이러면 쓰나.”

사내들이 유들유들 웃었다.

사내들이 말한 것처럼 여인의 오른손은 굳은살이 단단하게 박여 있다. 손바닥 전체에 굳은살이 박인 게 아니다. 검을 잡는 부분, 손가락이라거나, 손바닥 아랫부분이라거나…… 특정 부위에 단단히 자리 잡았다.

“이건 호미질을 하다 보니까…….”

“알았어. 그럼 넌 계속 호미질해. 우린 칼질할 테니까. 그럼 됐지? 서로 하던 것 하자고.”

사내들이 검을 고쳐 잡았다. 그때,

쒜엑! 퍽! 퍽!

“크악!”

파공음과 비명이 동시에 터졌다.

“우, 원주님!”

방금 전까지 취화원 살수라고 애원하던 여인의 눈가에 이채가 번뜩였다.

“꼬리 잡혔다. 모두.”

“네?”

“다른 애들 행방 알아?”

“몰라요.”

취화원 살수가 고개를 저었다.

당연히 모른다. 제일 거점을 마지막으로 각기 자기 갈 길로 뿔뿔이 흩어진다.

세상 속으로 녹아드는 것이다.

당연히 아무도 몰라야 한다. 취화원 살수가 동료의 행방을 모르는데, 누가 알 수 있단 말인가.

그런데 이 자들은 찾아내고 있다.

한 명, 한 명 찾아서 모두 죽인다. 저항해도 죽이고, 아니라고 발뺌해도 죽인다. 가차 없다.

개중에는 실수로 사람을 잘못 파악한 경우도 있을 것이다.

취화원 살수가 아닌데도 살수라고 오인해도 죽이는 경우인데, 이런 점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취화원 살수’라고 딱 찍으면 망설이지 않고 죽인다.

법도 없고, 정의도 없고, 윤리도 없다. 이들에게는 무소불위의 권위만 있다. 살인하든 뭣을 하던 자신들 마음대로 행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졌다.

위험하다! 이런 자들에게는 취화원 살수들이 추풍낙엽처럼 쓸려나간다.

“넌 날 따라와.”

“네.”

화초를 가꾸던 여인의 눈빛이 날카롭게 변했다.

칠십 먹은 노파이면서도 중년 여인처럼 고운 옷을 입는다. 머리에 염색해서 검은 윤기가 흐르게 하고, 아침이면 하루도 거름 없이 화장한다.

칠 장로의 습관이다.

칠 장로는 꽃도 화사한 꽃을 좋아한다. 장미라거나 백일홍 같은 꽃을 가꾼다.

스읏!

그녀 앞을 젊은 사내들이 가로막았다.

“뭐냐?”

“당신 죽일 사람.”

“휴우! 그럼 죽여야지. 죽여.”

촤악!

칠 장로가 연편을 꺼내 들었다.

취화원이 해산했다는 것은 해산할 만큼 위험한 일을 벌였다는 뜻이다. 더욱이 해산하기 전에 형옥이 붕괴되었다는 소리도 들었다. 당연히 추격자가 있다.

그래서 뿔뿔이 흩어지는 것을 선택했는데, 거기에 장로들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취화원 구장로는 이미 중원에 널리 알려져 있다.

누군가가 장로들을 죽이고자 한다면 중원 끝자락으로 도주해도 쫓아올 것이다.

그래서 해산 명령이 떨어질 때부터 죽음을 각오했다.

다만, 너무 빨리 찾아왔다. 적어도 한 달이나 두 달쯤 지난 후에 찾아올 줄 알았는데.

“하나만 말해 주면 돌아갈 수도 있고.”

“그냥 싸우자. 묻는 모양을 보니 들어도 어차피 말해 주지 못할 것 같은데.”

“간단한 거야. 동승에 가서 강조를 죽인 살수, 누구야?”

‘몽설!’

“동승? 강조? 무슨 말인지 모르겠네? 늙지도 않았는데 노망이야? 큰일 났네.”

“하하하!”

사내들이 웃었다.

어차피 싸움은 피할 수 없다. 이미 취화원 살수라는 것을 알고 찾아왔고, 동승 강조 사건에 대해서 수소문하고 있다면 발뺌을 할 수가 없다.

‘네 명. 진법을 펼치는 건 아니고…… 칼에 목숨 건 인생들이야. 들개들.’

무인치고 칼에 목숨 걸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나.

이들의 칼은 살인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모든 형식을 배제하고 오직 살인만 추구한다. 그러니 정당한 싸움 같은 것은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

스슷! 스스스슷!

네 명이 움직였다.

칠 장로를 가운데로 몰아넣고, 자신들이 사방을 차지했다.

쒜에에엑! 촤악!

칠 장로는 연편을 들어서 팔방풍우(八方風雨)로 사방을 휩쓸었다.

사내들을 치겠다는 의도는 없다. 연편 안으로 들어서지 말라는 위협이다. 그때,

쒝!

등 뒤에서 사내가 빠르게 다가왔다.

연편이 휘돌아서 땅을 내리치는 순간을 노렸다. 재빨리 등을 노리고 공격해 온다.

칠장로는 급히 연편을 다시 쳐냈다.

쒜에엑! 쫘아악!

연편이 뒤에서 다가오는 자를 노리며 날아갔다. 그런데, 이번에는 앞쪽에 있는 자가 공격해 왔다.

쒜엑! 쒜에엑!

칠 장로는 부지런히 연편을 휘둘렀다.

저들은 공격을 마무리 짓지 않는다. 공격하다가 연편이 휘둘러지면 재빨리 물러선다. 절대로 부딪치지 않는다. 대신 칠 장로의 등을 본 자는 가차 없이 달려든다.

정당한 승부는 물 건너갔다. 이들은 등만 노린다.

“후웃!”

칠 장로는 거친 숨을 토해냈다.

이런 싸움은 결과가 정해져 있다. 손바닥 한 개로 열 손을 감당할 수는 없다. 일대일 승부라면 얼마든지 이길 수 있는 상대라도 이런 식으로 달려들면 어쩌지 못한다.

‘내 무공을 알아!’

사내들은 편공(鞭功)을 철저히 분석했다. 어떻게 하면 칠 장로를 효과적으로 잡을 수 있는지 안다.

“비겁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칠 장로가 말했다.

하나 마나 한 소리다. 그런 말에 신경 쓸 위인들이면 들개가 되지도 않았다.

휘익!

한 명이 뒤를 노리고 달려든다.

칠 장로는 신법을 써서 피했다. 뒤돌아서며 상대를 쏘아봤다.

그러자 다시 등을 본 자가 달려들었다. 그가 휘두른 검풍이 매섭게 휘몰아친다.

칠 장로는 다시 돌아섰다.

그녀를 향해 달려들던 자는 재빨리 물러섰다. 그리고 어김없이 등을 본 자가 달려든다.

쒜에에엑!

연편을 거칠게 휘둘러서 네 명 모두 멀찍이 밀어냈다.

이들은 밀려 나갔다. 서둘지 않는다. 시간이 모든 걸 해결해 줄 수 있다고 믿는다.

“후웁!”

숨을 크게 몰아쉬면서 어떤 식으로 싸워야 할지 생각했다.

방법이 없다. 이들 네 명을 일시에 칠 방법이 있어야 하는데, 없다. 그러면 등을 노리고 달려드는 자를 낚아챌 만한 빠름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도 없다.

똑같은 속도로는 물러서는 자를 잡지 못한다.

‘일진 한번 사납네.’

칠 장로는 피식 실소를 흘리면서 연편을 고쳐 잡았다. 그때,

쒜에에엑!

“크윽!”

파공음이 터지고, 사내 한 명이 풀썩 꼬꾸라졌다.

사내의 등을 뚫고 들어선 검날이 가슴 앞으로 삐쭉 삐져나왔다.

“너!”

칠 장로가 눈을 부릅떴다.

“시간이 없어요. 다른 장로님들도 당하고 있어요!”

여인, 몽설은 말을 마치자마자 다른 사내를 향해 쏘아갔다.

번쩍!

허공에서 섬광이 번쩍였다.

순간적이지만 그녀가 휘두른 칼이 붉은색으로 보였다. 사내의 피를 묻힌 채로 뽑아냈기 때문에 혈검으로 보인 것이다.

핏빛 혈검이 뽑힌다. 사내가 쓰러진다.

“혀, 혈검! 혈해검성!”

칠 장로는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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