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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홀도-51화 (51/600)

#51화. 第十一章 일선희망(一線希望 : 한 줄기 희망) (1)

‘어디서 이런 괴물이…….’

취화원주는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사내는 그녀를 단숨에 제압할 정도로 강하다. 아주 뛰어난 무인이다. 강호에 이런 고수가 존재하는데 취화원주가 되어서 존재 여부조차 모른다면 말이 안 된다.

그런데 모른다. 전혀 모른다.

이 정도로 강한 자가 무명일 리는 없는데, 이런 자가 있다는 말을 풍문으로 들어본 기억조차 없다.

완전히 새롭게 나타난 고수다.

사내가 전개하는 무공도 낯설다. 일정한 초식이 없이 마구잡이로 휘두른다.

대체로 이런 무공은 둘 중의 하나, 초식이 필요 없을 정도로 빠르거나, 아니면 받아내기 힘들 정도로 강한 힘을 싣는다.

사내는 두 가지를 모두 겸비했다.

칼이 무척 빠르고, 칼에 실린 진기도 감히 맞받지 못할 정도로 강하다.

그러니 초식이란 것이 필요치 않은 것이다.

“하아!”

취화원주가 숨을 조절하며 검을 들었다.

사내가 강하다는 것은 알겠다. 하지만 죽을 때는 죽더라도 최대한 살기 위해서 발버둥을 쳐봐야 하지 않겠나. 손 놓고 죽을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않나.

“형옥주를 죽였다고?”

“단칼에.”

“그럼 너도 죽어야지.”

“당연한 말. 손에 피를 묻혔으니 나도 곱게 죽을 생각은 없어. 다만 누가 날 죽일 수 있느냐 하는 건데, 죽고 싶어서 안달하면 뭐 하나? 죽여줄 사람이 없는데.”

“걱정도 팔자구나.”

취화원주는 검을 들어 사내를 겨눴다.

순간, 취화원주의 모습이 일변했다.

그녀의 얼굴에서 온화함이 일시에 사라졌다. 인간다운 따뜻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죽은 지 오래된 시신을 보는 것처럼 섬뜩한 귀기가 느껴진다.

죽는다!

취화원주와 마주 선 사람은 모두 같은 생각을 할 것이다.

살려달라고 두 손 두 발 모두 모아서 싹싹 빌어도 절대 살려주지 않을 죽음과 맞닥트렸다.

“훗! 재미있군.”

사내가 피식 웃었다.

사내의 눈가에 이채가 번뜩였다. 누가 봐도 취화원주의 무공을 알아본 표정이다.

“말은 많이 들었는데, 진짜 암영검을 보게 될 줄은 몰랐군. 아무래도 오늘 내가 운이 좋나 봐. 후후!”

스읏!

사내가 칼을 들어 올렸다.

* * *

‘암영검?’

몽설은 취화원주를 살폈다.

취화원주를 보고 있는 사람은 몽설만이 아니다. 살아남은 장로들과 살수들 모두 취화원주를 쳐다보았다.

취화원 사람치고 암영검을 모르는 사람이 누가 있나.

암영검은 취화원 제일 절기다. 당연한 말이지만 누구나 수련하고 싶어 한다.

취화원에 갓 입문해서 검을 처음 잡아본 초보 수련자조차도 암영검에 대해서는 꽤 많은 질문을 쏟아낸다. 언제쯤에나 암영검을 배울 수 있느냐, 암영검을 배우는 데 조건이 있느냐 등등.

취화원 살수건 살수가 아니건 상당히 많은 사람이 암영검을 안다. 하지만 진실은 알지 못한다. 암영검이라는 검법이 있다는 것만 알고 있을 뿐, 어떤 무공인지는 전혀 알지 못한다.

도대체 암영검이 어떤 검법인가?

이 물음에 딱 부러지게 답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취화원 일급 살수들조차도 암영검이 어떤 검법인지 말해주지 못할 정도다.

이것인가 하면 저것 같고, 저것인가 하면 이것 같다.

암영검은 그만큼 난해하다.

하지만 지금 취화원주가 펼치고 있는 검공이 암영검이 아니라는 사실만은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

암영검을 제대로 펼치려면 우선 귀신처럼 표홀하게 움직이는 보법부터 배워야 한다.

초식을 전개하기 전에 귀신 같은 움직임, 형체를 잡아낼 수 없는 움직임이 선행되어야만 한다.

그래서 암영검에는 기운을 싣지 않는다.

강기(剛氣)가 되었든 살기가 되었든, 그 어떤 기운도 담지 않는다.

암영검에 기운을 실으면 위치가 노출된다.

눈으로 잡아낼 수 없을 만큼 빠르게 움직인다고 해도 기운을 끊임없이 흘리고 있으니,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스스로 말해주는 꼴이 되고 만다.

귀신을 닮아야 하는 보법에 어떤 기운을 담는다는 것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해가 된다.

하물며 원주가 펼치고 있는 것처럼 끔찍한 사기(死氣)를 담아서 어쩌겠다는 말인가.

지금 원주가 암영검을 펼친다면 단지 초식의 빠름과 정교함만으로 승부를 걸 수 있을 뿐, 귀신의 호흡은 바랄 수 없게 된다. 암영검의 진가를 보여주지 못한다.

그런데 사내는 원주를 보고 ‘암영검’을 말한다.

사내가 잘못 알았다.

취화원에 암영검이 있다는 말을 듣고, 자세히 알지도 못하면서 무조건 암영검이라고 생각하는 게 틀림없다. 원주가 사기 담긴 검법을 펼치니 무심히 암영검이라고 말한 것일 게다.

허나 이런 사실이 싸움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

사내는 원주의 무공을 볼 것이고, 임기응변으로 대응할 것이다. 그러니 암영검으로 알았든 말든 아무런 상관이 없다. 단지 그가 암영검이라고 하니, 원주의 검을 다시 한번 살펴봤을 뿐이다. 혹시 정말 암영검인가 하고.

사내가 말했다.

“밑천이 암영검뿐이라면…… 당신, 오늘 살기 힘들어.”

“하룻강아지가 범 무서운 줄 모르는 이유는, 범을 본 적이 없어서지.”

“하하하!”

츠츠츠! 츠츠츠츳!

두 사람은 짤막한 대화를 나누면서 진기를 끌어올렸다.

상대가 진기를 이끌도록 내버려 둔다. 몸 상태가 최고가 될 때까지 기다린다.

“나는 준비됐으니까, 이제 됐다 싶으면 언제든지 공격하라고. 그동안 난 풍광이나 구경하지. 후후!”

사내가 여유롭게 말했다.

순간, 취화원주의 신형이 물 찬 제비처럼 솟구쳤다.

쒜에에에엑!

허공을 찢는 파공음!

다른 소리는 일절 들리지 않는다. 오직 파공음만 들린다. 단지 검을 허공에 휘둘렀을 뿐인데, 어떻게 이런 소리가 날까? 파공음이 너무 커서 오직 소리만 듣게 된다.

파앗!

한순간, 취화원주의 신형이 사라졌다.

확실히 암영검이 아니다. 암영검은 이런 식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원주의 움직임은 암영검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고 은밀하다.

원주가 사라졌다.

그녀가 사라진 자리에는 강렬하게 내뿜던 죽음의 기운, 귀기(鬼氣)만 넘실거린다.

일시 정적이 흐른 것처럼 느껴졌다.

원주가 사라진 시간은 그야말로 찰나에 불과한데, 그 시간이 억겁처럼 길게 다가온다.

죽음이 몰아친다. 곧 죽음이 다가온다!

츄악!

깊고 깊은 정적이 한순간에 깨어졌다.

원주가 나타났다. 사내 머리를 노리고 검을 짓쳐간다. 검과 몸이 하나가 되어서 일직선으로 쭉 날아갔다. 그리고 어느새 사내의 머리를 갈라내고 있다.

이겼다!

검영(劒影)이 하늘을 가득 메우고 있다. 세상에 오직 검만 있는 느낌이다.

그리고…… 검이 떨어진다. 사내를 향해 거침없이 달려든다.

콰콰콰콰! 꽈지지직!

‘피할 곳이 없다!’

내리꽂히는 검영을 본 순간, 누구든 같은 생각을 할 것이다. 그러니 최선을 다해서 막아야 한다. 당장 병기를 들어서 몸 위로 떨어지는 검영부터 막아내야 한다.

그때, 사내가 고개를 들어 검을 봤다.

탓!

그가 발돋움했다.

등이 땅을 향하게, 배는 하늘로 향한 채…… 배영을 하듯이 거꾸로 도약한다.

사내가 원주의 배 밑을 파고들었다. 이미 도약한 원주의 배를 보면서 같이 도약했으니, 나란히 날아가는 형국이다.

파라라락!

원주의 검초가 변했다.

사내가 배 밑으로 달라붙자 즉시 검을 쳐냈다. 사내를 노리고 힘껏 찔렀다.

사내도 칼을 쳐냈다.

언제 칼을 들어 올렸을까? 갑자기 칼이 불쑥 나타나더니 원주의 배를 푹 찔렀다.

원주는 사내의 급공을 예상한 듯 재빨리 몸을 비틀었다.

푸웃!

칼이 원주의 몸을 스치면서 지나갔다. 그리고 붉은 핏줄기가 안개처럼 흩뿌려졌다.

들이쉰 숨 한 모금을 채 내뱉기도 전에 일어난 공방이다.

사내가 중얼거렸다.

“좋아. 좋긴 좋은데, 아까 말했잖아. 밑천이 암영검 뿐이라면 오늘 살긴 힘들다고.”

사내가 허공에 칼을 뿌려서 도신에 묻은 피를 털어냈다.

“으음!”

취화원주는 신음을 흘리면서 비틀비틀 물러섰다.

이 장로와 삼 장로가 재빨리 다가와서 원주를 부축했다.

원주는 부축을 물리치지 않았다. 적이 앞에 있지만…… 장로들에게 몸을 맡겼다.

그만큼 상처가 위중했다.

칼에 맞은 상처는 무시해도 좋다. 비록 칼이 깊게 들어오기는 했지만, 무인치고 이 정도 칼을 맞아보지 않은 사람은 아마 중원 천지에 한 명도 없을 것이다.

문제는 내상이다.

칼에 진기가 스며 있었다. 아주 강한 살기가 담겨서 오장육부를 건드렸다.

원주는 꼼짝도 할 수 없는 상태다.

움직일 수 없는 것은 몽설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에는 좀 심한 내상을 입었구나 하는 정도였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고통이 심해졌다.

사내가 전개한 격산타우 수법은 단순한 격공진기가 아니다. 격살진기다. 물러서게 하거나 상처를 입히는 선에서 끝나는 공격이 아니라 아예 죽일 생각이었다.

저벅! 저벅!

사내가 걸어왔다.

원주에게 다가가는 것이 아니다. 몽설을 향해서 걸어온다. 칼에 살기를 가득 담고.

“막아!”

원주가 장로들에게 말했다.

물론 장로들이 사내를 상대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혈검이 당했고, 암영검의 정화, 사생락(死生落)이 무너졌는데 장로들이 무슨 수로 막겠나.

다만 몽설에게 몸을 추스를 수 있는 약간의 시간만 벌어줄 수 있을 뿐이다.

그 정도 시간을 벌어주기 위해서 장로와 취화원 살수들이 모두 죽을 수도 있다. 그래도 막는다. 사내가 이곳에 온 최우선 목적이 몽설을 죽이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부터 막아보려고 한다.

“네. 괜찮으시겠어요?”

이 장로가 염려스러운 눈길로 물었다.

“조심해.”

취화원주는 이 장로의 손을 꽉 움켜잡았다.

“막앗!”

이장로가 소리쳤다.

취화원 살수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즉시 사내들을 포위하고 공격 태세를 갖췄다.

사내가 피식 웃었다.

“우릴 막겠다고?”

취화원 살수들은 즉시 공격하지 않았다. 최대한 포위망을 넓게 펼친 채 주위만 맴돌았다.

공격은 불가능하다. 방어도 역부족이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최대한 발목을 붙잡아 놓는 것뿐. 몽설에게 흩어진 진기를 수습할 시간만 벌어주면 된다.

“쯧! 굳이 죽일 생각은 없었는데. 할 수 없지. 자기들 스스로 죽겠다고 달려드는 데는 방법이 없지. 보자. 하나, 둘, 셋…….”

사내가 취화원 살수들의 수를 헤아렸다.

“모두 열여섯이군. 너흰 셋. 똑같이 죽인다고 해도 누군가는 한 명 더 죽이겠어. 가장 많이 죽이는 자에게 오늘 소원 하나 들어준다. 길 터!”

“소원이라면…… 뭐든지 다 들어주시는 겁니까?”

“모두 물러서라. 난 오늘 기루 하나 통으로 빌려서 몸 좀 실컷 풀어야겠다.”

“하하! 겨우?”

“겨우? 그럼 넌 뭔데?”

“장패(張浿) 님 무공.”

“뭐?”

“무공도 넘겨주시는 거죠?”

장한이 사내를 보며 말했다.

“하하하! 말해준다고 모두 받아들일 수 있으면 그건 절기라고 할 수 없지. 얼마나 받아들일지 모르겠지만, 알려는 주지.”

“약속하신 겁니다!”

사내를 쫓아온 장한들이 기쁨에 들떠서 말했다.

그들 눈에는 주위에 늘어선 취화원 장로와 살수들이 보이지 않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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