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일홀도-56화 (56/600)

#56화. 第十二章 도치(刀齒) (1)

스슷! 스스스슷!

무인들이 매우 은밀하게 움직였다.

산자락에 초옥 한 채가 있다.

현재 초옥에는 남자 한 명과 여자 한 명이 있다. 하인과 시비다. 그 외에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다. 초옥이 마을로부터 워낙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무인들은 초옥을 중심으로 해서 사방 오 리를 봉쇄했다.

봉쇄에 동원된 무인들은 검은색 무복을 입었다. 머리에는 흑건을 둘렀다. 요대, 신발, 손덮개…… 모두 검은색이다. 들고 있는 검도 검다.

오직 한 군데, 가슴에만 붉은 자수로 검(劍)이 새겨져 있다.

흑검대(黑劍隊)다.

흑검대는 성검문 내원 수비대다. 독안혈검 전가성이 탁월한 자들을 엄선하여 특별히 수련시켰기 때문에 내원에 대한 충성심이 골수에까지 박혀있다.

또 이들은 성검문 자체 비무대회에서 매년 우승자를 배출해왔다. 그러니 콧대가 하늘을 찌를 수밖에. 자신들 스스로 일류라는 자부심을 가질 수밖에.

“소축 사람 말고는 아무도 들이지 마라.”

“넷!”

흑검대주가 검을 꽉 잡으며 대답했다.

* * *

현장은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다.

“십칠연검.”

전가성이 중얼거렸다.

십칠연검을 펼치면 검기가 난무한다. 나무도 베고, 풀도 벤다. 검기에 베이기 때문에 실제로 갈라지지는 않아도 칼 맞은 자국은 선명하게 남는다.

십칠연검이 사방에 퍼져있다.

조추한이 십칠연검을 펼쳤다. 일수에 끝내지 못하고 수차례에 걸쳐서 공방이 펼쳐졌다.

조추한은 십검 중에서도 가장 매서운 사람이다. 혼인도 하지 않고 오직 무공 수련에만 전념하던 무공 광인이다. 오죽하면 ‘수련제일’이라고 불릴까.

“으음!”

전가성은 신음을 흘리면서 주변을 탐색했다.

발자국, 풀잎이 쓰러진 흔적, 검기…… 그리고 도기까지 세밀하게 살폈다.

상대방은 칼을 썼다.

칼에는 두 종류가 있다. 날이 예리해서 흘러내리는 머리카락도 갈라내는 예도(銳刀)가 있고, 거센 힘으로 짓뭉개듯이 몰아치는 둔도(鈍刀)가 있다.

상대는 둔도를 사용했다.

칼날이 예리하지 않다. 하지만 도법은 예도를 사용한 듯 가볍다. 십칠연검을 가뿐하게 받아냈다. 도법이 십칠연검 만큼 빠르고 현란하다는 소리다.

마지막으로 그의 시선이 조추한의 가슴을 향했다.

“미치겠군.”

그는 어처구니없는 듯 중얼거렸다.

조추한이 상대방의 칼을 놓쳤다. 한순간, 어디를 공격하는지 알지 못했다.

가슴을 너무도 정확하게 격타당했다.

조추한 정도 되는 강자를 이토록 정확하게 타격하려면 손발을 묶어놓아야만 한다. 그렇지 않고는 가슴팍을 확 뜯어내듯이 갈라버릴 수 없다.

환도다!

눈속임, 눈가림으로 일시 정지 상태를 이끌어냈다.

조추한이라면 상대가 환도를 펼치는 순간에 이미 경각심을 끌어올렸을 것이다. 그런데도 당했다. 칼의 변화가 꼼짝하지 못하고 당할 정도로 감쪽같았다.

‘혹시?’

전가성은 십이살환도(十二殺幻刀)를 떠올렸다.

조추한의 가슴은 짓이겨져 있다. 마치 곰 발바닥에 확 쓸려나간 것 같다. 칼에 맞은 상처가 아니라 오골조(五骨爪) 같은 것에 뜯겨 나간 것처럼 보인다.

칼날에 맞은 것이 아니라 칼의 앞부분, 도첨(刀尖)에 쓸려나간 것이다.

흉수의 칼을 살펴보면 도첨 부분을 깨끗이 마무리하지 않아서 매우 울퉁불퉁할 것이다. 일류 도장(刀匠) 솜씨라고는 할 수 없고, 칼 만들 줄 모르는 자가 어설프게 만든 칼이다.

잘 만들어진 칼에 당했다면 조추한의 가슴은 수저로 연두부를 떠내듯이 깨끗하게 파였을 거다.

이런 도법, 그리고 조추한이 당할 정도로 강력한 환도라면 십이살환도가 퍼뜩 떠오른다.

삼백 년, 사백 년 전에 무림에 나타났다가 사라진 절정도법이다. 너무 뛰어난 절공이라서 이어받을 수 있는 자가 없었고, 전수할 생각도 없었기 때문에 사장되고 말았다.

몇 대째 문주인지는 모르나…… 일홀문주의 도법, 십이살환도!

전가성은 십이살환도를 본 적이 없다. 무공을 배우면서 전설적인 도법에 대해 들은 바가 있고, 지금 문득 그중 하나가 생각났을 뿐이다.

‘이것이 진짜 십이살환도라면 조추한은 검도 뽑지 못했어. 그런데 팽팽하게 싸웠단 말이지. 아직 절정에 이른 도법이 아니다. 그렇다면…… 역시 그놈인가?’

아걸! 활검문 문도를 벤 놈!

분명한 사실은 성검문에 반기를 든 일홀문도가 나타났다는 것이다.

그는 조추한을 망설임 없이 죽였다. 다시 말해서 성검문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전가성은 인상을 찡그린 채 조추한의 가슴을 주시했다. 뚫어지게.

* * *

소축십검은 모두 모여 있었다.

조추한이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외유 중이던 외장 무인도 한걸음에 달려왔다.

월직을 서다가 당한 것이 아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기습을 당해서 죽었다. 암살을 당한 것이 아니라 무공으로 겨룬 끝에 칼에 맞아 죽었다.

소축십검의 안색이 차게 굳을 수밖에 없다.

그들은 흑검대가 펼쳐놓은 방어진 밖에서 전가성이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

전가성이 걸어오자 모두 침울한 눈으로 그를 쳐다봤다.

전가성은 둘째 초가평에게 들어가 보라고 눈짓을 했다.

“흠!”

초가평이 마른기침을 흘린 후, 흑검대를 지나쳐서 소로를 걸어갔다.

* * *

- 미완성 십이살환도.

- 흉수는 아걸로 추측됨.

- 일홀문도로 추측. 미확인.

전가성은 하얀 백지에 몇 글자를 적었다.

조추한의 시신을 보고 판단한 것, 문득 떠오른 것을 종이에 적은 것이다.

시신은 함께 보지 않는다. 한 사람씩 따로 본다.

시신을 함께 보면 서로 말을 섞게 된다. 무의식중에 자신이 생각한 것을 말하게 된다. 사실이 아닐지도 모르는데 입 밖으로 불쑥 내뱉는다. 하면 누군가는 그 의견에 동조한다.

진실이 아닌데도 진실로 여겨지는 일이 발생하는 것이다.

오판을 막기 위해서 일절 의견을 말하지 않는다. 서로에게 티끌만 한 정보도 제공하지 않는다.

오직 혼자서 시신을 보고 판단한다.

자신이 보고 느낀 것은 종이에 적는다. 아무리 사소한 생각이라도 모두 적는다. 남들이 보면 우습다고 여길 만한 판단이라도 거침없이 적는다.

전가성이 밀지에 적은 것도 남이 보면 웃음부터 흘릴 내용이다.

미완성 십이살환도라니? 일홀문은 후인을 두더라도 각기 무공을 창안하게 도와줄 뿐, 자신의 무공은 전수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데 몇백 년 전 일홀문주의 무공이라니.

일홀문에 대해서 약간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코웃음부터 칠 판단이다.

그래도 적는다.

“훗! 내가 봐도 미친 소리야. 십이살환도라니.”

전가성은 종이를 접어서 봉투에 넣었다.

“됐다.”

“네.”

전가성이 봉투를 놓고 물러서자, 시립해 있던 흑검대 무인이 조심스럽게 봉투를 집었다.

“그럼 이대로 보내겠습니다.”

끄덕! 끄덕!

전가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 * *

책상에 서신 아홉 통이 놓였다.

조추한을 제외한 소축십검 아홉 명이 보낸 밀지다.

“쯧!”

그는 서신을 보고는 못마땅한 듯 혀를 찼다.

“죄송합니다.”

그를 모시고 있던 무인이 허리를 굽혔다.

“추한이가 당했다면 죄송할 일도 아니지. 놈이 강한 것일 뿐. 헌데 어떤 놈이기에….”

그는 말끝을 흐리며 서신을 꺼내 읽었다.

한 통, 한 통……. 밀지가 내용을 드러냈다.

그는 밀지를 건성건성 읽었다. 생각하면서 읽는 게 아니라 내용만 쭉 훑어본다.

“십이살환도라…….”

그가 눈빛을 반짝 빛냈다.

“죄송하지만 누구 의견인지……?”

허리를 굽히고 있던 무인이 미간을 찡그리며 물었다.

“애꾸눈.”

“…….”

‘애꾸눈’이라는 말에 무인은 입을 다물었다.

“넌 회륜도라고 적었네?”

“가슴에 난 도흔은 확신할 수 없어서 판단을 보류했습니다. 하지만 조추한의 검에 생긴 자국은 분명히 회륜도였습니다. 그래서 회륜도라고…….”

“회륜도는 삼십오대 일홀문주의 무공이다.”

“그것까지는 알고 있습니다.”

“십이살환도는?”

“너무 오래된 무공이라서…….”

“구대다. 구대 일홀문주의 무공이야.”

“아! 네.”

“구대와 삼십오대 일홀문주의 무공이 동시에 나타났다? 너도 미완성, 애꾸눈도 미완성. 그럼 모두 미완성 일홀도라고 생각했단 말인데… 그런 무공에 당해? 아냐. 나름대로는 정심한 거지. 미완성처럼 보였을 뿐. 후후! 너와 애꾸가 이렇게 봤다면 추한이가 당하는 것도 무리는 아냐.”

“…….”

무인은 듣기만 했다.

당금 무림 천하제일인 공부 허도기의 판단이다. 누가 감히 말을 섞으랴.

“아걸, 이놈. 일홀문도다.”

공부 허도기가 단언했다.

“일홀문에 대해서는…… 당시 일홀문도는 문주까지 모두 네 명뿐이었는데.”

“일홀문도가 맞아. 후후! 그 노인네, 한 수를 숨겨놓았군. 하하! 정말 이건 감쪽같아. 깜빡 속았네. 뒤통수 한 대 맞은 것, 인정하지. 하하하!”

허도기가 웃었다.

허도기는 초로에 접어들었다. 검은 머리보다는 하얀 머리가 더 많아 보인다. 그런데도 음성은 여전히 카랑카랑하다. 힘이 넘친다. 눈빛도 여전히 차갑다.

“잡아라.”

허도기가 서신들을 쓱 쓸어서 한쪽으로 치우며 말했다.

“네. 즉시 움직이겠습니다.”

“애꾸에게도 통보해. 움직이라고.”

“같이 잡으라는 말씀이신지……?”

“추한이는 몰랐으니까 당한 것이고, 너희는 이제 이놈을 분석했잖아? 같이 손잡을 필요는 없을 것 같고…… 따로따로 움직여서 잡아봐. 누가 더 빨리 잡나 보자고. 하하하!”

공부 허도기가 웃었다.

한 마디로 능력을 보자는 소리다.

공부는 가끔 이렇게 소축십검을 시험한다. 제자들의 무공은 환히 알고 있고, 다른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점검하는 것인데…… 자존심 상할 때가 많다.

“알겠습니다. 대사형에게 통보하겠습니다.”

살쾡이 산묘 신도파가 공손히 대답했다.

“너무 검만 생각하면 인생이 팍팍해져. 이렇게 생각해. 경쟁은 신선한 것이라고.”

“네. 전 괜찮습니다.”

“후후! 그럼 됐고.”

“그리고 또 한 가지, 무림에 이상한 자들이 나타났습니다. 모습을 보이자마자 진한 피 냄새를 풍기면서 취화원 살수들을 거침없이 도륙하고 있습니다.”

“이상한 자들?”

“정정합니다. 일홀문 수족들이 나섰습니다.”

“후후!”

허도기가 웃었다.

허도기는 서리가헌과 서리형개에게 움직이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충고했다.

그들은 충고를 따라서 침묵하고 있다.

하지만 늑대는 늑대다. 늑대가 조그만 울타리 안에서 가만히 집이나 지키고 있겠나.

일홀문은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한다.

문제는 성검문이 일홀문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는 거다. 달리 말하면 서툰 짓 못 하게 감시한다고 할까? 서리가헌과 서리형개도 자신들이 감시당하는 것을 알고 있으니 십분 조심해서 행동하지만, 그래도 파악할 것은 모두 파악해 놓은 상태다.

무림에 나온 자들은 서리형개가 양성한 무인들이다.

“드디어 연잎이 물 밖으로 나왔군. 그놈들, 많이 참았어. 하지만 연잎을 물 밖으로 내보내면 뿌리가 드러나잖아. 그것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나? 뿌리는 여전히 물속에 있다 이건가? 이런 눈 가리고 아옹이 어디 있어? 하하! 당분간 내버려 둬. 뭘 하나 보자고.’

허도기가 나가보라는 듯 손짓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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