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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홀도-59화 (59/600)

#59화. 第十二章 도치(刀齒) (4)

상량산은 호북성(湖北城)에 있다.

건장한 말을 타고 쭉 뻗은 관도로 질주해도 족히 칠주야(七晝夜)는 걸릴 만큼 멀리 떨어져 있다.

관도로 질주할까? 그렇게 하지 못한다. 편한 길, 좋은 길은 처음부터 고려 대상이 아니다. 힘들고 거친 길로 가되, 성검문이나 일홀문 반도가 쫓아오지 못할 길을 골라야 한다.

도망자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전혀 없다.

아걸은 산등성이를 타고 호북성으로 향했다.

산등성이를 이용해서 움직이면 편한 점이 매우 많다.

일단 높은 산에서 움직이기 때문에 사람들과 만나는 일이 거의 없다. 종적을 숨기고 이동할 수 있다.

두 번째로 산등성이로 걸어가면 생각한 것보다 훨씬 수월하다.

산을 오르는 것은 힘들지만 산등성이로 이어진 길은 상당히 편한 축에 속한다. 굽이진 길도 별로 없고, 오르막내리막 경사도 심하지 않다.

밤이 되면 날씨가 급격하게 추워지지만, 그때는 약간 밑으로 내려와서 바람을 피하면 된다. 또 움푹진 곳에서 불을 피우면 거의 찾아내지 못한다.

할배와 함께 중원을 돌아다닐 때, 산등성이 길을 참 많이 이용했다.

“너무 내놓고 움직이는 거 아냐?”

몽설이 불안한 듯 물어왔다.

“왜? 불안해?”

“너무 노출이 환히 되는 것 같아서.”

“살수들은 팔부(八部)를 이용하지?”

“응.”

“팔부를 이용하는 것과 능선을 이용하는 것이 별반 다르지 않아. 능선을 이용하면 환히 노출될 것 같은데, 밑에서 보면 안 보이는 것은 비슷해.”

“이런 곳으로 많이 다녔나 봐?”

“…….”

아걸은 앞만 보면서 걸었다.

살수들도 침입이나 퇴각할 때 산을 많이 이용한다. 산등성이를 이용하는 경우는 거의 없고, 대부분 팔부능선을 타고 움직인다. 팔부능선은 거의 매우 급한 경사인데도 비호처럼 달린다.

몽설이 보기에는 조심성 없어 보이는 게 사실이다.

“오늘은 여기서 쉬었다가 가지. 이제부터는 절벽을 타고 넘어야 하니까 매우 힘들어.”

아걸이 검날을 꽂아놓은 듯 삐죽삐죽 솟은 바위 군락을 보며 말했다.

* * *

산에서 오래 살았다.

할배는 어린아이를 맹수 앞에 던져놓았다. 살 것 같으면 살고, 정 힘들면 죽어도 좋다고 했다.

늑대무리, 곰, 호랑이, 멧돼지까지…… 온갖 맹수를 피해 다녔다.

할배는 칼 한 자루를 건네주었지만, 사실 나뭇조각이나 마찬가지였다. 칼을 쓸 줄 모르고, 맹수는 너무 사나웠다. 그러니 멀리서 으르렁거리는 소리만 들어도 오금이 저릴 수밖에.

정말 나약했던 시기였다.

지금 몽설이 하는 것처럼,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오직 도망다니는 것밖에 하지 못할 때였다.

밤이 되면 잠을 자야 하는데, 잠도 오지 않았다.

나무 위로 올라가서 자면 괜찮을까? 뱀이 몸 위를 기어갈 때의 느낌을 아나? 깜빡 졸다가 눈을 떴는데, 원숭이가 빤히 쳐다보고 있다면?

온 신경이란 신경은 모두 곤두선다.

그런 날이 지속되다 보면 주위에 아무런 위험이 없을 때도 경계심을 풀지 못하게 된다. 늘 신경이 살아있다. 개울에서 물을 마시면서도 사방을 살피게 된다.

이런 긴장감을 받아들일 줄 알게 되면 비로소 칼을 쓰게 된다. 받아들이지 못하면 자포자기 상태가 된다. 그래서 무작정 산을 벗어나려고 한다.

맹수가 사는 산과 안전한 산에서 지내는 것은 천지 차이다.

아걸은 비교적 빠르게 받아들였다.

어떤 배짱으로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사흘쯤 지난 후부터는 코를 골면서 잤다.

긴장감이 전혀 들지 않았다.

그렇다고 경계심을 늦춘 것은 아니다. 신경 한구석은 늘 살아서 주변을 감시한다. 맹수가 다가오면 즉각 움직인다. 맹수의 종류에 따라서 도주 방법이 달라지는데, 어떤 맹수가 다가오든 도주 방법이 즉각 생각났다.

난 전생에 사냥꾼이었나 봐. 산에서 지내는 게 아주 편해.

할배에게 했던 말이다.

오랜만에 산에서 지내다 보니 그때의 경각심이 되살아난다. 맹수가 다가온다는 느낌이 확 일어난다.

그때와 다른 점이 있다면, 그때는 도주하기에 바빴지만 지금은 오히려 사냥에 나선다는 점이다.

스읏!

아걸은 미끄러지듯 부드럽게 움직였다.

* * *

뱀은 정말 음흉하다.

뱀은 강적을 만났을 때의 태도와 먹잇감을 사냥할 때의 모습이 완전히 다르다.

강적을 만나면 일단 대기한다. 절대로 먼저 달려들지 않는다. 공격할 기미를 보이면 발악을 하지만, 그전에는 수동적인 공격 형태를 보인다.

힘의 우월을 단번에 알아본다.

음흉한 점은 사냥할 때 나타난다. 먹잇감이 나타나면 느긋하게 여유를 즐긴다. 먹잇감에는 관심 없는 듯 엉뚱한 데로 기어간다. 그러다가 홱 돌아서서 꽉 물어버린다.

물었다가 놓는 경우를 반복할 때도 있다.

이때도 마찬가지다. 물었던 먹잇감을 놓지만, 이때도 몸뚱이는 먹잇감을 빙 둘러싸고 있다. 머리만 관심 없는 듯 다른 쪽으로 이동한다. 왜 그런지 모르겠는데, 정말 먹는 데는 관심 없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다시 달려든다. 꽉 물고 또 놓고, 물고 놓고…… 그러다가는 결국 먹는다.

뱀이 이럴 수 있는 것은 일정 공간을 매우 빠르게 좁힐 수 있는 몸뚱이 근육이 있기 때문이다.

칼을 잘 쓰지 못할 때, 이 전법을 매우 유용하게 써먹었다.

걷는다. 걷는다. 걷는다.

먹잇감이 숲에 숨어있지만, 전혀 모른 척 무관심하게 앞만 보고 걷는다.

먹잇감은 숨죽인다.

이때는 서로 간에 우열 탐색이 끝난 상태다. 누가 강하고 약한지 본능적으로 파악된 후다.

상대가 강했다면 와락 달려들었을 것이다. 약하니까 숨을 죽이는 거다. 반대로 이쪽이 약했다면 도망갈 궁리를 했을 것이다. 강하니까 여유 있게 걷는다.

관심이 전혀 없는 듯 태연하게 걷는다.

한 발, 한 발…… 먹잇감으로부터 멀어진다. 반대로 먹잇감은 안심한다. 아직 긴장감을 늦춘 것은 아니다. 자신이 움직일 수 있는 상태가 되기 전까지는 계속 긴장한다.

느릿하게 걷던 발걸음이 느닷없이 빨라졌다. 방향을 홱 트는가 싶었는데, 어느새 칼을 뽑아 들고 달려든다.

상대가 앗차! 싶었을 때는 이미 늦었다.

칼이 머리 위로 떨어진다.

츄릿!

묵직한 칼이 어둠을 갈랐다. 그리고 피가 확 솟구쳤다.

‘한 명.’

그가 찾아낸 숫자는 모두 넷이다. 이제 겨우 한 명을 제거했다.

‘사기침류공. 사형이 왔다. 이놈들과 같이 움직이지 않은 게 천운이야. 더 따라붙기 전에 빨리 처리하고 움직여야 해. 그렇지 않으면 몰살당해.’

사형이 오면 우열이 바뀐다.

그때는 자신과 취화원 살수들은 강한 뱀의 먹잇감으로 전락한다. 단박에 숨이 끊어지든, 놀림을 받으면서 서서히 죽어가든 결국은 먹힌다.

스으읏!

아걸은 어둠 속을 미끄러지듯 움직였다.

그에게는 사기침류공보다 뛰어난 절기가 있다. 사기침류공은 육신을 버리는 대신에 오감을 키우는 공부이지만, 그는 오감 중 네 가지 감각까지 지워버린다. 오직 하나, 시각만 극대화시킨다. 눈으로 보는 시각이 아니라 감각으로 보는 시각이다.

몰안!

모든 감각을 잊어버린다. 머리를 잊는다. 머리가 사라진다. 귀를 잊는다. 소리가 사라진다. 코를 잊어버린다. 냄새가 사라진다. 시각만 일으킨다. 감각으로 열린 눈이 어둠 속을 꿰뚫어 본다. 자연과 다른 부분, 사람을 찾아낸다.

스읏! 퍼억!

칼이 나무를 베며 지나갔다.

칼이 벤 것은 나무인데, 뼈 부러지는 소리가 울렸다. 일도에 목이 잘렸다.

툭!

숲에 머리가 떨어졌다.

‘둘!’

사기침류공은 일홀문 무공이 아니다. 사파의 무공이다. 그런데도 그가 이들의 무공을 보고 사형을 떠올린 데는 이유가 있다. 이들의 허리에 꽂힌 칼…… 칼이 삼도일살의 발도술을 따라서 꽂혀 있다. 왼손 오른손 가리지 않고 언제든 뽑을 수 있게끔 꽂혀 있다.

이런 식으로 칼을 소지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딱 한 명, 둘째 사형 서리형개뿐이다.

사형이 왔다는 것뿐이 아니라 누가 왔는지도 알겠다.

먹잇감 둘을 해치우자 다른 먹잇감들이 더욱 깊이 숨었다. 숨소리조차 죽였다.

아걸도 숨을 죽였다.

몰안을 일으키면 굳이 숨을 감출 필요가 없다. 모든 감각이 잠재워지기 때문에 숨은 저절로 감춰진다.

은대은(隱對隱)!

어둠과 어둠의 싸움이다. 감춤과 감춤의 대결이다. 사기침류공 대 몰안의 승부다.

슷!

아걸이 부드럽게 움직였다.

세 번째 먹잇감은 아걸이 움직이는 것조차 알지 못했다. 다른 때 같으면 아걸을 찾기 위해서 이리저리 둘러보겠지만, 지금은 그런 행동조차도 하지 않는다.

모든 기능을 숨긴 채 정지해있다.

푸욱!

아걸은 그의 등 뒤로 다가가서 칼을 푹 찔러 넣었다.

먹잇감이 부르르 떨더니 이내 잠잠해졌다.

사기침류공을 수련한 덕분에 음성을 잃은 것이 오히려 해가 되고 있다. 비명이라도 지르면 사달이 벌어진 곳을 짐작할 텐데, 이들은 그마저도 하지 못한다.

‘마지막!’

아걸은 네 번째 먹잇감도 찾아냈다.

그는 죽음을 예감했는지, 손을 살그머니 움직여서 땅에 글을 쓰고 있었다.

* * *

밤이 깊었는데도 몽설은 잠들지 않았다.

그녀는 모닥불 위에 솥을 걸어놓고 물을 끓이는 중이었다.

아걸은 그녀를 흘끔 본 후, 스쳐 지나가려고 했다.

“이리 와서 불 좀 쫴. 아직 불을 피울 계절이 아닌데, 산속이라서인지 춥네.”

몽설이 아걸을 불렀다.

아걸이 그녀 맞은편에 앉았다.

몽설은 아걸을 보지 않았다. 늦은 밤에 어디를 다녀왔다고 묻지도 않았다. 그녀는 무심히 솥뚜껑을 열고 팔팔 끓이고 있던 쌀죽을 퍼서 내밀었다.

“한 그릇 먹어.”

“밤이야.”

“밤이면 어때? 한 그릇 먹어. 출출하잖아.”

아걸은 마지못해 죽을 받아들었다.

뜨겁지만 구수한 냄새가 확 풍긴다. 배가 고프지 않았는데, 죽 냄새를 맡자 식욕이 돋는다.

그는 죽을 후후 불어서 마시듯이 먹었다.

“칼 줘.”

몽설이 불쑥 손을 내밀었다.

아걸은 죽을 먹다 말고 몽설을 빤히 쳐다봤다.

“이미 닦았겠지만 그래도 밤에 닦은 거잖아. 피가 묻어 있을 거야. 닦아줄게, 줘.”

아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몽설은 알고 있었다. 그가 슬그머니 움직일 때부터 은대은의 싸움이 벌어질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리고 죽을 끓이면서 그를 기다린 것이다.

“눈썰미가 예리하군.”

“잊었나 봐? 나 살수야.”

몽설은 아걸이 내미는 칼을 받았다. 그리고 미리 준비해 놨던 마른 천으로 칼을 정성스럽게 닦았다.

“몇 명이었어?”

“넷.”

“어느 쪽?”

“사형.”

“아……!”

몽설이 탄식했다.

사형의 수하가 왔다고 하면 빠져나갈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아걸은 ‘사형 쪽’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사형’이라고 말했다. 사형이 왔다는 뜻이다.

“어떻게 할 거야?”

몽설이 칼을 닦으며 물었다.

“도망가야지.”

“그게 돼? 사형을 찾기 위해서 소축십검까지 죽였잖아.”

‘너를 보호하는 것도 내 임무거든. 돌아가신 사부님께 할 말은 있어야 하니까.’

아걸은 마음속 말을 하지 않았다.

“후우!”

다 식어버린 죽을 입김으로 불어 마셨다.

* * *

귀적칠흔에게는 움직이는 방식이 있다.

어떤 적을 추격하든 선과 후를 나눈다. 절반이 앞에 서고, 나머지 절반이 뒤에서 따른다. 그러다가 앞서서 추격하던 사람들이 지치면 선후 교대를 한다.

이런 움직임은 추격하는 데 매우 용이하다.

선발대가 급습당해서 죽는 경우는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일홀문도 정도 되는 무인 외에는 자신들을 찾아낼 수 있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앞서서 추격하던 네 명이 당했다.

다른 두 명은 움직이지 않았다. 추격할 생각도 하지 않았다. 네 명이 당했다면 그들 두 명이 당하는 것도 시간문제다. 그러니 앉은 자리에서 주인을 기다린다.

그들은 귀적칠흔의 시신을 손대지 않았다.

동료들이 어떻게 죽었는지 주인이 봐야 한다.

사흔을 많이 볼수록 주인의 눈이 넓어진다. 아걸이라는 자를 더 깊이 알게 된다.

츠으으으읏!

흘러온 바람 속에서 동료들의 피 냄새가 맡아졌다. 아주 진한 피 냄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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