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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홀도-60화 (60/600)

#60화. 第十二章 도치(刀齒) (5)

“요놈 봐라?”

서리형개는 얼마 전에 했던 말을 다시 했다.

아걸이라는 놈, 점점 흥미진진해진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놈의 칼은 형편없었다. 중원 무림의 관점에서는 상당한 고수이지만, 일홀문도의 관점에서는 아직 칼을 들기에는 요원한 풋내기였다.

놈은 옛 무공을 꽤 잘 흉내 낸다.

원래 선대의 일홀도는 사장되는 것이 원칙이다. 제자들은 백검도(百劒刀)를 보게 된다. 사부가 시연하는 백 가지 무공을 본다. 그놈들을 참고로 해서 자신만의 길을 찾아낸다.

사형, 자신, 죽은 동박…… 모두 같은 백검도를 봤다.

한데 사부가 이놈에게만은 다른 무공을 보여준 것 같다. 백검도를 보여준 것이 아니라 선대 일홀도를 모두 보여주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선대 일홀도는 끊긴 것이 아니라 일홀문주를 통해서 전승되었다는 거다.

‘여우같은 늙은이!’

세 사형제는 일홀도가 전승된다는 사실을 새카맣게 몰랐다.

알아도 상관없기는 하다. 지금 선대의 일홀도를 봤다고 해서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애써서 자신이 길러놓은 일홀도를 버리고 타인의 일홀도를 갖겠다고 하는 것은 바보짓이다.

아걸이 그런 짓을 하고 있다.

자신만의 칼이 없어서인지 선대의 일홀도를 사용한다. 정심하게 구사하는 것도 아니다. 겨우 흉내만 낸다. 무공 안에 깃든 진의는 파악하지도 못한 채 초식 흉내만 낸다.

물론 그 정도의 무공으로도 무림에서는 당당하게 어깨를 펴고 활보할 수 있다.

하지만 역시 흉내만 내서는 상수가 될 수 없다.

진짜 강한 사람들, 일홀문도나 허도기 같은 사람을 만나면 단번에 박살이 난다.

그런데…… 지금은 상당히 달라졌다.

귀적칠흔을 벤 칼에는 흉내가 담겨있지 않다. 오직 본인의 칼만으로 살해했다.

칼에 형식이 담겨 있지 않다.

누가 살펴봐도 어떤 초식에 당했는지 구분하지 못한다. 칼이 어느 방향에서 날아와 어떻게 목숨을 끊었는지는 설명할 수 있지만, 어떤 초식을 구사했는지는 알지 못한다.

중간의 변화를 전혀 짐작하지 못한다.

이것은 아걸이 자신만의 칼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증거다.

그 짧은 시간에…… 이제 며칠밖에 되지 않았는데, 그사이에 깨달음이라도 얻은 것인가?

아니다. 무공은 그렇게 증진하지 않는다.

무공에 존재하는 딱 한 가지 진실은, 수련하지 않으면 성취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무공은 머리로 수련하는 것이 아니다. 오직 몸을 써야만 한다.

그러면 이런 일이 어떻게 일어났나?

아걸은 자신만의 칼을 얻었다!

하지만 자신 스스로 확신하지 못해서 고수를 만나면 옛 무공을 꺼내 드는 것이다. 귀적칠흔은 눈감고도 상대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일어났기 때문에 거침없이 자신의 칼을 쓴 것이고.

“후후! 후후후…!”

서리형개는 진한 살기를 품고 웃었다.

동박의 죽음을 보고 참 재수 없게 당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아걸과 동박이 거의 평수 수준이었다. 거기에 아걸은 긴장했고, 동박은 느슨했다.

동박이 죽은 건 당연하다. 결코, 재수 없게 당한 게 아니다.

서리형개는 귀적칠흔의 시신을 죽은 자리에 그대로 두고 일어섰다.

무인은 무덤이 필요 없다. 하늘이 천정이고, 땅이 구들장이다. 두 발 뻗고 누운 곳이 무덤이다. 혼이 떠난 육신은 들개 밥으로 던져주는 것이 예의.

서리형개는 죽은 자를 돌아보지 않는다.

죽은 자가 수하가 아니라 부모 형제라고 해도 무덤을 세워주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 이놈 어디 있어?”

그가 차게 물었다.

스읏!

귀적칠흔이 손을 들어 산 너머를 가리켰다.

“떠난 지는?”

귀신이 손가락 한 개를 펴 보였다.

“한 시진?”

고개를 끄덕인다.

놈은 떠난 지 한 시진밖에 되지 않았다. 빨리 달리면 향 한 자루가 타기 전에 따라잡을 수 있다. 여유를 가지고 서서히 따라붙어도 중천에 뜬 해가 넘어가기 전에 만날 수 있다.

“가장 빨리 따라잡는다. 아무리 늦어도 반 각 후면 만나게 되겠지. 안내해!”

쉬잇! 쉬이이잇!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귀적삼흔이 신형을 쏘아냈다.

그들은 이미 몽설 일행의 종적을 잡아낸 후였다. 한시라도 빨리 쫓아가지 못해서 몸이 근질거리던 참이다. 동료들의 복수도 해주고 싶고.

* * *

“쫓아오지?”

“그래.”

“상대할 수 있어?”

“솔직하게 말해 줘?”

“됐어. 그 말보다 정확한 대답이 어디 있으려고. 어떻게 한다? 이대로 도망치면 잡힌다는 거잖아.”

몽설이 아랫입술을 잘끈 깨물었다.

아걸은 할 말이 없었다.

동박의 방심을 끌어내기 위해서 참 많은 준비를 했다. 싸움도 단시간에 끝낸 게 아니다. 접전은 잠깐밖에 벌이지 않았지만, 그 잠깐을 위해서 나흘을 소비했다.

서리형개는 동박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강한데, 하물며 동박에게 했던 준비조차도 할 수 없다.

서리형개를 만나면 어떻게 될지 눈에 환히 보인다.

“굴을 파!”

몽설이 장로와 십이살수를 쳐다보면서 말했다.

“시간이 없어. 따라잡히는 건 시간문제야. 그러니 굴을 많이 파지는 못해도 치명적인 것으로 준비해. 어서!”

취화원 살수들은 늘 퇴로를 염려한다.

살수라는 직업상 누군가에게 쫓기는 일은 늘 일어난다. 그래서 추격을 끊는 방법을 부단히 연구한다.

굴을 파는 것도 그중 하나다.

한마디로 말해서 함정을 판다는 거다. 짐승을 잡듯이 쫓아오는 사냥꾼을 잡겠다는 거다.

사사삿! 사삭!

취화원 살수들이 바쁘게 움직였다.

풀숲에 철사를 설치한다. 살짝만 건드려도 비침이 쏟아져 나간다.

나뭇가지를 깎아서 땅속에 심어놓는다. 작은 나뭇가지들이라서 심한 상처는 입힐 수 없지만, 신법을 운용하는 데는 지장이 있을 것이다.

올가미도 늘어놓는다.

원래는 올가미 뒤에 치명타를 입힐 수 있는 격타 무기를 매설하는데, 시간도 없고 준비된 것도 없어서 단순하게 올가미만 만들어 놓았다.

이것만으로도 발길을 잠시 붙잡아 놓는 역할은 해준다.

저들이 이런 단순한 함정에 걸려들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기에는 너무 고수다. 취화원 살수들이 사용하는 ‘굴’은 성급하게 달려드는 추격자들을 대상으로 한다. 하지만 이런 것들을 보고 조금이라도 발길을 늦출 수 있다면 됐다고 본다.

시간 싸움이다.

저쪽이 발길을 늦추는 시간보다 함정을 설치하는 시간이 훨씬 빨라야 한다. 만약 이쪽이 늦는다면 굴을 파는 행동 자체가 자살행위가 될 것이다.

* * *

슷! 탁!

귀신이 나뭇가지로 수풀을 건드리자 기다렸다는 듯이 비침 한 무더기가 쏟아져 나왔다.

타타탁! 타타타탁!

비침이 방금 귀신이 섰던 자리를 강타했다.

“어린애 장난질을.”

서리형개가 눈살을 찌푸렸다.

이런 장난은 상당히 귀찮다. 일일이 상대하기가 무척 귀찮은데, 상대하지 않을 수도 없다.

“비켯!”

서리형개가 앞으로 나섰다.

쉬이이잇!

그는 거침없이 앞으로 질주했다.

타타타타탁!

비침이 그를 향해 쏟아졌다. 하지만 몸에 닿은 것은 없다. 비침은 그의 옷깃조차도 건드리지 못했다.

파라라락!

칼이 허공을 휘젓는다. 날아오는 비침을 모조리 퉁겨낸다. 올가미는 잘라버리고, 나뭇가지는 천근추로 짓밟아 버린다. 성난 멧돼지처럼 모조리 뭉개버리면서 나아간다.

쒜에에에엑!

서리형개는 비호처럼 달려나갔다.

* * *

히죽!

귀적삼흔이 입술을 비틀면서 웃었다.

그들은 얼굴 근육이 딱딱하게 굳어 있어서 표정 변화를 일으킬 수 없다. 그래서 늘 무표정하게 보인다. 화날 때도, 기쁠 때도 같은 표정이다.

취화원 살수들의 냄새가 진해지기 시작했다.

느낌이 아니다. 실제로 취화원 살수들의 냄새를 맡는다. 냄새를 맡으려고 일부러 코를 벌름거릴 필요도 없다. 그녀들의 냄새가 후각을 자극한다.

여인은 여인 특유의 살냄새를 풍긴다.

땀과 살이 어우러져서 특유의 냄새를 풍기는 것인데, 사내들이 풍기는 냄새와는 사뭇 다르다.

이런 냄새는 무공으로 맡아내는 것이 아니다. 일반인도 냄새에 민감한 자는 즉시 알아낼 수 있을 정도로 선명하다. 특히 일행 중에 달거리를 하는 여인이 있다면 냄새가 더 진해진다.

이제 몽설 일행은 눈 감고도 쫓아갈 수 있게 되었다.

슷!

귀적삼흔이 손을 들어 앞을 가리켰다.

“바로 코앞에 있었군. 후후후!”

서리형개가 웃었다.

앞에 사람 모습이 보인다. 부지런히 나무 위에서 뭔가를 설치하고 있는데, 척 봐도 여인이다.

슷!

귀적삼흔이 허리에 꽂힌 칼을 잡았다.

저 여자들, 자신들이 잡겠다는 거다.

“가라!”

서리형개는 웃으면서 명했다.

쒜에에엑!

나뭇가지 사이에서 느닷없이 칼이 튀어나왔다. 사람은 보이지 않고 칼만 보였다.

칼이 여인을 노린다. 목덜미를 노리고 확 달려든다. 순간,

팟!

함정을 설치하던 여인이 물거품 꺼지듯이 일순간에 사라졌다.

귀신들의 칼, 음도가 움찔거렸다.

목표를 잃었다. 공격하던 자를 놓쳤다는 것은 반대로 이쪽이 위험하다는 소리다.

피해야 한다! 그런데 어디로? 적이 어디 있는지 알아야 요령껏 피할 수 있지 않은가. 개미 새끼 한 마리 발견하지 못한 상태에서 무작정 튀어 나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귀적삼흔이 잠시 움찔거리는 순간,

퍽!

뒤에서 날아온 검이 그의 목덜미를 후려쳤다.

그가 공격했던 방식 그대로 자신이 공격당했다. 사실, 그는 공격당하는 줄도 모르고 절명했다.

툭! 쿵!

육신과 머리가 나무 아래로 거칠게 떨어졌다.

“후욱!”

귀적삼흔을 베어낸 이장로는 의식적으로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희열이 솟구친다. 사생락이 통했다는 희열이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치솟는다.

취화원은 절대로 혼자서 함정을 설치하지 않는다.

함정을 설치하는 사람 뒤에는 항시 보호자가 존재한다. 사방을 주시하면서 동료가 당하지 않도록 경계한다.

함정을 설치하는 동료는 미끼 역할도 한다. 지금처럼 적이 급습해 와도 일부러 피하지 않는다. 적이 피하지 못할 순간까지 만들어 놓고 움직인다.

미끼와 보호자가 합을 잘 맞춰야만 성공할 수 있는 함정이다. 만약, 손발이 조금이라도 흐트러진다면 미끼는 여지없이 죽는다. 그리고 보호자 역시 공격 기회를 잃어버린다.

슷!

사라졌던 살수가 모습을 나타냈다.

암영보를 은신술로 사용하면 지금처럼 사라질 수가 있다. 순간적인 사라짐이라서 당하는 사람은 매우 곤혹스러워하는데, 사실은 옆으로 살짝 이동한 것에 불과하다.

나무 위에서 나무 뒤로 몸을 숨긴 것일 뿐.

툭! 투투투툭!

십여 장쯤 떨어진 나무 위에서도 거친 소리가 울렸다.

방금 죽은 귀적삼흔과 흡사하게 생긴 자가 힘없이 떨어져 내리고 있다.

사생락이 제대로 통하고 있다.

사생락은 암영검을 한 단계 뛰어넘은 무공이라서 은밀함으로는 단연 으뜸이다. 눈앞에서 펼치면 공포스럽지만, 뒤에서 펼치면 소리 없는 검이 된다. 그때,

푸왁!

갑자기 눈앞에서 파란 인광이 번뜩였다.

“뭐야?”

이 장로가 급히 경각심을 끌어올렸다. 그런데,

“큭!”

그녀는 얕은 비명을 흘렸다.

상대를 미처 보기도 전에 목구멍이 따끔거리는 것을 느꼈다. 마치 생선 가시가 목에 콱 걸린 듯 매우 따가웠다. 아니, 그것보다 더 기분 나쁜 것은 뜨거운 물이다. 어디선가 뜨거운 물이 부어져서 가슴을 적시고 있다.

뭐야, 이 기분 나쁜 뜨거움은?

그녀는 고개를 숙여 가슴을 봤다.

피다. 피가 흘러내린다. 자신의 목에서 흘러내린 피가 가슴을 흥건히 적시는 중이다.

이 장로는 고개를 숙인 그대로 나무 위에서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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