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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홀도-61화 (61/600)

#61화. 第十三章 진참패(眞慘敗) (1)

“하하하, 하하하하하!”

서리형개가 거칠게 웃었다.

취화원 살수들의 무공을 파악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귀적삼흔이 나설 때도 만류하지 않았다.

암영검쯤은 너끈히 상대할 수 있다.

그런데 불쑥 다른 검이 튀어나왔다. 암영검보다 훨씬 은밀하고 고요한 검이 뒤를 쳤다.

방심했다. 그 결과 귀적삼흔이 모두 죽었다.

정동에는 수하가 이백여 명이나 있다. 하지만 귀적에 이름을 올린 자는 겨우 일곱 명뿐이다. 오직 일곱 명만이 인간이 가지는 감각을 포기하고 귀적에 들었다.

서리형개에게 귀적삼흔은 한낱 수하가 아니다. 자신을 위해서 인간이기를 포기한 충신이다.

별것 아닌 것 같았던 이번 출행에서 귀적칠흔을 모두 잃어버렸다.

아걸에게 잃은 것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귀적칠흔보다는 아걸이 훨씬 뛰어났다. 제대로 수련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일홀문도이니 당연한 귀결이다.

하지만 이번에 죽은 세 명은 뭔가? 이까짓 취화원 살수 따위에게 죽을 귀적삼흔이 아니지 않은가. 방심이 없었다면 절대 일어나지 않았을 사단이다.

서리형개의 분노는 하늘을 찔렀다.

쒜에에에엑!

이 장로와 취화원 살수를 벤 것으로 만족할 리 없다. 취화원 살수들 모두를 죽여야 직성이 풀린다.

퍽! 퍼억!

다른 나무에서 귀적삼흔을 떨궜던 장로와 살수가 피를 흩뿌리며 쓰러졌다.

장로들이 사생락을 전수받았지만, 서리형개에게는 역부족이다. 아무리 은밀하게 검을 써도 환히 드러난다. 그리고 사나운 칼이 물밀듯이 들이닥친다.

퍼억! 퍽!

살을 찢어내고, 뼈를 가르는 소리가 울렸다.

서리형개는 위험을 감지하고 땅 위로 뛰어내린 두 명을 단칼에 베냈다.

이로써 귀적삼흔을 죽였던 일당은 모두 제거했다.

장로 세 명, 살수 세 명이 그야말로 숨 한 모금 들이쉴 사이에 쓰러지고 말았다.

* * *

이럴 줄 알았다.

몽설은 굴을 파지 말고 무조건 피했어야 한다. 마주쳐서 발버둥 칠 때는 이미 늦다. 마주치기 전에 쥐구멍이라도 찾아서 숨는 쪽을 택해야 한다.

하지만 말을 하지 않았다.

몽설은 일홀문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한다.

인간이 아닌 놈들, 아주 강한 놈들, 공부 허도기에 버금가는 놈들…… 말로는 많이 들었지만, 몸으로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만만하게 본다.

그렇다고 몽설이 일홀문을 경시하는 것은 아니다.

그녀는 사형들이 길러낸 수하와 싸워봤다.

고작 수하들일 뿐인데, 그녀는 그 싸움에서도 죽을 고비를 넘겼다.

일홀문이 얼마나 강한지는 안다.

다만 상대할 수 있을 정도라고 판단한다. 터무니없이 강하지만 무공 외에 다른 방법으로 상대하면 물리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형지물과 함정을 잘 이용하면 능히 방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기지는 못해도 막아낼 수는 있다고.

아주 큰 착각이다.

이런 착각은 실제로 사실을 체감하지 않는 한은 고쳐지지 않는다.

몽설의 잘못이 아니다. 중원에서는 모든 무인이 몽설처럼 생각한다. 그녀는 상식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일홀문도가 상식적이지 않을 뿐이다.

일홀문도가 어떤 사람들인지는 직접 겪어봐야만 안다.

공부 허도기와 사부는 승부를 자신할 수 없는 호적수였다. 누가 강한지는 병기를 맞대봐야 안다.

이런 경우, 거의 모든 무인은 자신이 이길 것이라고 자신한다. 상대가 강하지만 결국은 자신이 이길 것이라고. 질 수도 있지만, 최선을 다하면 된다고.

허도기는 사형들을 이용했다. 삼인독을 써서 사부의 내력을 갉아먹었다. 일차로 사형들에게 칼을 맞대게 하고, 독이 완전히 퍼진 후에야 검을 들고 나타났다.

허도기는 일홀문주를 두려워했다.

그가 두렵다고 말한 적은 없다. 두려운 내색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한 행동은 매우 비굴하다. 상대를 두렵지 않다면 취하지 않았을 행동이다.

허도기는 일홀문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고, 허도기 같은 일부 사람들만 일홀문을 아는 것이다.

‘어차피 언젠가는 마주쳐야 할 사람…….’

아걸은 몽설이 싸우게끔 내버려 두었다.

정작 사형들을 죽여야 할 사람은 자신이 아니라 몽설이다.

자신에게 일홀문주는 사부다. 하지만 몽설에게는 아버지다. 자신에게 남소는 사모이지만, 몽설에게는 어머니다. 사형들은 몽설의 부모에게 독을 쓰고 칼을 들었다.

자신과 몽설의 적이 같다.

그렇다면 적이 얼마나 강한지 알아야 한다. 단지 머리로만 아는 것은 소용없다. 실제로 부딪쳐서 온몸으로 깨달아야 한다. 저들이 지옥에서 튀어나온 악마라는 사실을.

“어디까지 할래?”

“한번 싸워보고 싶어.”

“지금 그 무공으로는…….”

“상대가 안 되는 건 알아. 하지만 위험하다 싶으면 즉각 빠져나올 거니까.”

누가 빠져나가게 내버려 두나.

몽설은 혈검경을 너무 믿는다. 상궁에서 보여주는 니환일검이 신비롭기까지 할 것이다.

혈검경의 주인인 혈해검신은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절정고수였다. 당시, 혈해검신은 일홀문주도 존중할 정도로 최상승 검공을 선보였다.

몽설은 자신의 혈검도 그 정도까지 올라갈 것이라고 믿는다.

혈검이 그런 무공인데, 설마 몸 하나 건사하지 못할까. 여차하면 도주할 생각인데, 그것조차 못할까.

“그래. 해봐.”

아걸은 몽설의 뜻을 받아주었다.

“난 위험하지 않으면 구경만 할게. 단, 내가 나서면 즉각 물러서. 매우 위험하다는 거니까. 완벽하게 물러서는 거야. 문도들을 데리고 즉시 빠져나가. 네가 옆에 있으면 싸움을 제대로 할 수 없잖아. 신경 쓰여서.”

“몸은 빼낼 수 있는 거지?”

“그건 염려하지 말고.”

아걸은 피식 웃었다.

“여기서 빠져나가면 수단 방법 가리지 말고 삼량산으로 가. 그곳에 밀마를 남겨 놓으면 내가 찾아갈게.”

아걸은 몽설의 손에 밀마가 적힌 종이를 건네주었다.

할배와 함께 중원을 떠돌 때 몇 번 써먹은 적이 있는 두 사람만의 밀마다.

“차라리 그만둘까?”

“아니, 해봐. 이런 건 해보는 게 좋아. 희생이 많이 따르겠지만, 잃는 것보다 얻는 게 훨씬 많으니까. 오늘…… 사람 많이 잃을 거야. 그 사람들이 어떻게 쓰러지는지 잘 봐야 해.”

“그만두라고 하는 말보다 더 무섭네.”

“내 말 믿어. 처음에는 말리려고 했는데, 생각해 보니 꼭 필요한 싸움이라는 생각이 들어. 마음껏 싸워봐.”

아걸은 사부의 마지막 모습을 떠올렸다.

할배가 억지로 끌고 가서 보게 했다. 두 눈 부릅뜨고 한순간도 놓치지 말라고 했다.

사모가 죽고 사부가 쓰러진다.

그 모습이 뇌리에서 잊히지 않는다. 저들의 칼과 검이 꿈속에서도 불쑥불쑥 튀어나온다. 그럴 때마다 벌떡 일어나서 무공 수련을 했다. 한시도 쉬어서는 안 되니까.

몽설도 그런 경험이 필요하다.

* * *

몽설이 서리형개를 향해 덮쳐갔다.

그녀의 피부는 잘 익은 홍시처럼 붉게 물들어 있었다. 검을 든 손도 불그스름했다. 두 눈도 새빨갛게 충혈되어서 한눈에 봐도 정상이 아니었다.

쒜에에에엑!

그녀의 손에서 혈검이 튀어나왔다.

“혈검……?”

서리형개가 눈살을 찌푸렸다.

이건 또 뭔가? 여기서 혈검이 왜 튀어나와? 이 여자, 취화원 살수가 아니었나?

혈검은 전대 성검문주 허도강의 내자, 현정부인의 독문절학이다. 엄밀히 말하면 현정부인의 절학이 아니라 본가의 가전절학이다. 현정부인의 죽음과 함께 실전된 검공이기도 하다.

이게 왜 여기서 튀어나오지?

서리형개는 혈검을 한눈에 알아봤다.

“흐흐! 재미있군.”

서리형개는 차게 웃으면서 공격을 피했다.

혈검이 빠르게 쫓아온다. 빈틈을 용케도 찾아내서 찔러온다. 보법이 약간이라도 흐트러지면 어김없이 그 부분을 공격한다. 일부러 어깨를 살짝 내밀었더니 당장 득달같이 달려든다.

혈검은 빈틈을 감각적으로 찾아낸다.

정상적인 움직임은 피하고, 비정상적인 움직임을 노린다.

“얼굴에 붉은빛이 감도는 것을 보니 아직 초보군. 빛이 혼탁해. 절정에 이른 혈검도 아니고. 날 뭐로 본 건가?”

타탁!

서리형개가 칼을 두 번 연속해서 내리쳤다.

혈검은 칼을 맞받지 않았다. 칼이 내리쳐지는 순간, 옆으로 빙 돌려서 허리를 후려쳤다.

서리형개가 펼친 도법은 허점이 없다. 오직 한 군데, 허리가 살짝 비었다. 아주 살짝…… 순간적으로 사라질 빈틈이다. 하지만 혈검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그런데,

“그래!”

서리형개가 버럭 고함질렀다.

까앙! 타앙!

거센소리가 울리더니, 허리를 후려치던 검에서 불똥이 튀겼다.

“윽!”

몽설은 신음을 쏟아냈다.

칼을 통해서 무지막지한 압력이 쏟아져 들어왔다. 마치 바윗덩어리가 손바닥을 짓이기는 듯한 충격이다. 순간적이지만 손등에서 일어난 전율이 머리끝까지 자르르 울렸다.

손에서 힘이 쭉 빠졌다. 그리고 검이 손아귀를 벗어나 훌훌 날아갔다.

서리형개는 일부러 허점을 내보였다.

혈검은 감각검이다. 그래서 일부러 만든 허점과 불가불 만들어지는 허점을 구분해낸다. 일부러 만든 허점은 공격하지 않고, 방어하기 힘든 허점만 공격한다.

혈검이 가차 없이 허리를 후려쳤다.

일부러 만든 허점이 아니라 나쁜 습관, 혹은 수련 부족으로 드러난 허점으로 인식했다는 거다.

“으으!”

몽설이 신음을 흘리면서 비칠비칠 물러섰다.

“너 뭐야?”

서리형개가 칼을 들고 천천히 다가왔다.

그는 이번 일격에서 몽설의 목숨을 빼앗을 수도 있었다. 칼 대신 목을 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일부러 병기를 쳐냈다. 몽설이 어디서 혈검을 얻었는지 궁금했다.

“혈검을 어떻게 얻은 거야?”

혈검이 혈해검신의 무공이라서 관심을 가지는 게 아니다. 혈검은 일홀문도도 긴장시킬 수 있는 검공이 분명하지만, 몽설은 수련 정도가 너무 낮다.

그가 궁금한 것은 딱 하나, 현정부인의 무공이 왜 이 여자에게서 나왔냐는 거다.

“음!”

몽설은 안색이 새하얗게 질린 채 주춤주춤 물러섰다.

아걸의 말이 맞았다. 이 자는 어떤 무공으로도 상대할 수 없는 악마다. 혈검이 최상승에 이르러 혈해검신 정도가 된다고 해도 이 자를 상대할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

“한 번 더 부딪치면 넌 죽어. 하지만 네 대답 여하에 따라서 살려줄 수도 있어. 혈검하고 약간 얽힌 게 있거든. 마지막으로 묻지. 혈검을 어떻게 얻은 거야?”

스읏!

서리형개가 허리를 살짝 낮췄다.

몽설을 향해서 금방이라도 달려올 기세다.

하지만 그는 곧바로 다시 허리를 폈다. 등 뒤로 살기가 끈적하게 달라붙었다.

그가 돌아봤다.

사내가 검을 들고 있다. 만들다 만 듯 길이가 절반밖에 안 되고, 날도 뭉툭해 보인다.

“반철도. 훗! 네가 아걸이란 놈이냐?”

서리형개가 흥미로운 눈빛으로 아걸을 쳐다봤다.

스읏! 스스스슷!

몽설이 물러섰다. 취화원 살수들도 썰물처럼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서리형개는 그들이 물러서는 모습을 보면서도 피식 웃을 뿐, 쫓지 않았다.

저들은 벌레 목숨이다. 언제든 잡을 수 있다. 지금 이 자리에서 딱 한 명만 죽여야 한다면 그건 바로 아걸이다. 감히 일홀문도를 사칭하는 자, 죽어야 한다.

“반철도를 쓰는 걸 보니 사부를 아는 것 같고. 그런데 난 네 놈에 대해서 들은 기억이 없단 말이지. 웬만하면 기억날 텐데. 언제 입문했어?”

“너와 난 사문이 달라.”

“뭐라?”

서리형개가 눈을 부릅떴다.

“넌 사부를 죽인 사파문파의 출신이고, 난 사부를 모시는 명문 출신이거든. 엄연히 다르지.”

순간, 서리형개의 눈에서 번갯불이 번쩍 튀었다.

“죽봉…… 일을 알고 있군. 어떻게 아는 거지? 그 당시 네놈은…….”

서리형개가 아걸의 전신을 훑어보았다.

“기껏해야 예닐곱에 불과했을 텐데. 죽봉에 오르기도 벅찬 나이 아닌가?”

죽봉 사건을 아는 놈……. 아걸의 신분 내력이 어떻든 반드시 죽여야 할 놈이다.

서리형개의 전신에서 살기가 피어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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