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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홀도-62화 (62/600)

#62화. 第十三章 진참패(眞慘敗) (2)

서리형개의 살기는 곧바로 아걸에게 전달되었다.

‘흐음!’

아걸은 속으로 신음했다.

몽설에게는 몸 하나 정도는 얼마든지 빼낼 수 있다고 했지만, 그게 정말 어렵다. 일홀문 무인에게서 도주한다는 것은 저승에 갔다가 살아 돌아오는 것만큼이나 힘들다.

서리형개가 살기를 머금었다.

자신도 살기를 지녀야 한다.

도주할 생각을 하면 당한다. 도주하고 싶어서 몸을 빼내기 힘들지만, 그런 생각을 하면 싸움을 더 못하게 된다. 안 되더라도 여기서 승부를 본다는 마음으로 싸운다.

팟!

아걸의 눈에서 진한 녹광이 흘러나왔다.

들개의 눈이다. 먹이를 노리고 달려들려는 눈, 기필코 잡아먹고 말겠다는 필살의 눈이다.

“이것저것 물어봤자 대답 같은 건 하지 않을 테고. 그럼 어디 솜씨나 볼까?”

슷!

서리형개가 칼을 들어 올렸다.

그가 칼끝을 까딱거린다. 공격해 보라는 신호다.

아걸은 공격하지 않았다. 반철도를 두 손으로 잡고, 칼을 가슴에 바싹 붙인 채 눈을 반개(半開)했다.

공격보다는 방어다.

서리형개의 삼도일살은 매우 거칠게 달려오면서 터트리는 폭류도(瀑流刀)다. 폭류에 휩쓸리면 여지없이 죽는다. 하지만 폭류를 벗어날 수 있다면 반격을 취할 수 있지 않을까?

지금까지 폭류를 벗어난 사람은 딱 한 명, 사부밖에 없다.

아걸은 사부의 칼을 생각해냈다.

중봉에서 사부는 선제공격을 가하지 않았다. 제자들이 달려들 때까지 기다렸다. 그리고 일격에 두 제자를 모두 거꾸러트렸다.

그 일격, 기억한다.

폭류도의 허점은 배에 있다. 폭류를 빗겨내면서 배를 가격한다.

스으읏!

왼발을 살짝 앞으로 내밀었다.

폭류가 들이치면 왼쪽 어깨와 등으로 받아내고, 오른쪽에 있는 칼로 복부를 친다.

“후후! 네놈, 정말 중봉에 있었나? 어디에 숨어있었지? 정말 그때는 꼬마에 불과했을 텐데, 지금까지 이 자세를 기억한단 말이야? 후후! 이거…… 나도 원한이 있지.”

서리형개도 아걸의 모습에서 사부를 떠올렸다.

“어디 해보자!”

타타타탁! 타타타탁!

서리형개가 달리기 시작했다.

두 사람 사이의 거리는 겨우 오 장에 불과하다. 신법을 펼치면 한달음에 좁힐 수 있다.

그래서 서리형개는 직접 공격하지 않고, 아걸의 주위를 맴돈다. 신법을 펼쳐서 매우 빠르게 주위를 회전하기 시작했다. 점점 더 빠르게, 더 빠르게.

단순히 아걸을 공격할 생각이었다면 이런 방법까지는 취하지 않았다. 사실 서리형개 정도 되는 무인이 아걸을 공격하지 못해서 주위를 맴돈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그는 아걸의 기수식을 보고 주위를 맴도는 것이다.

아걸이 취한 기수식은 사부가 중봉에서 취했던 기수식과 흡사하다. 그리고 그때는 폭류검이 무너지면서 배를 베였다. 그때와 똑같은 기수식이다.

“타앗!”

사부를 공격했을 때처럼 신형을 둥실 띄웠다.

순간, 그의 칼이 정확하게 세 개로 갈라졌다. 좌우에 있는 두 개는 무척 빠르게 공격해 온다. 가운데에 있는 칼은 한 호흡쯤 느리게 쫓아온다.

서리형개가 삼도를 펼쳐냈다.

지금까지 가벼운 마음으로 펼쳤던 삼도가 아니라 전력을 다해서 펼친 진신절학 삼도다.

이 삼도를 피해야 한다.

단순히 피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삼도를 피하면서 복부를 베어야 한다.

쒜에에엑!

아걸의 손에서 반철도가 튀어 나갔다.

몰안이 서리형개의 복부를 보고 있다. 자신을 노리고 다가오는 삼도는 보지 않는다. 서리형개의 칼은 육신으로 받아낸다. 그리고 자신도 복부를 친다. 그런데,

퍼억!

갑자기 옆구리에서 가죽 북 터지는 소리가 났다.

‘맞았구나!’

직감이다.

아픔은 없다. 아니, 조금 있으면 정말 참기 힘든 고통이 밀려올 것이다. 당장, 이 순간…… 칼에 맞는 순간에만 아무런 느낌도 없을 뿐이다.

휘이잉!

반철도가 빈 허공을 휘저었다. 헛손질이다.

“큭!”

아걸은 뒤늦게 비명을 쏟아냈다.

이제야 고통이 밀려온다. 옆구리 살이 한 무더기나 떨어져 나간 느낌이다. 아예 옆구리가 뻥 뚫려서 창자가 쏟아져 나가는 느낌이라고 할까?

스읏!

상처를 돌볼 겨를도 없이 반철도를 고쳐잡았다.

어디서 잘못되었을까? 분명히 몰안으로 배를 노렸다. 빈틈을 찾아냈고, 공격했다. 그런데 왜 허공을 친 것인가? 삼도를 맞을 각오는 되어 있었다. 피한다고 피했지만, 완전히 피하지 못하면 어쩔 수 없는 거다.

왜? 왜? 배를 치지 못했을까?

“후후! 역시 딱 생각대로. 이 정도 무공일 줄 알았다. 지금 굉장히 이상하지? 막 혼란스럽지? 왜 배를 가르지 못했을까? 피하는 모습도 보지 못했는데.”

서리형개는 사형이 사제에게 무공지도를 하듯이 세세한 부분까지 말했다.

‘수신도(守身刀).’

아걸은 이십오대 일홀문주의 일홀도를 떠올렸다.

이십오대 일홀문주는 서른여섯 명의 일홀문주 중에서도 가장 강한 사람 축에 들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는 너무 강해서 칼을 쓰지 않았다.

자신이 칼을 쓸만한 대상이 있어야만 칼을 쓰는데, 그가 접한 무인들은 모두 그만한 대상이 되지 못했다. 칼을 뽑기도 전에 우열이 드러나는 상대뿐이었다.

그래서 칼을 쓰지 않았다.

허나 싸움은 벌어진다. 상대방은 일홀문주를 기필코 죽이겠다고 악착같이 달려든다.

그때 펼친 도법이 수신도다.

말뜻을 풀이하면 몸을 지키는 칼이라는 뜻이다. 실제로도 그랬다. 일홀문주는 칼을 뽑았지만, 상대를 베지 않았다. 오직 자신의 몸을 보호하는 데만 사용했다.

상대방은 수십 합을 공격하지만, 결국은 역부족을 깨닫고 물러났다.

그렇다. 이십오대 일홀문주는 상대방을 죽이지 않았다. 일홀도는 반드시 상대방을 죽여야 한다는 불문율도 이십오대에서만큼은 지켜지지 않았다.

비무 상대를 반드시 죽이려는 이유는 비밀 누출 때문이다. 일홀도가 무엇인지 알려지면 대응 방법도 생겨난다. 다음에 다시 만나면 파훼법으로 상대할 수도 있다.

그런 부분을 아예 차단해 버리는 것이다.

수신도에는 비밀이 없다. 공격해 오는 병기를 막기만 했기 때문에 특별한 초식을 구사하지도 않았다. 비밀스럽거나, 음흉하거나, 필살이라고 불릴 만한 초식이 없다.

이것이 세상에 알려진 수신도인데, 아걸이 아는 수신도는 또 다르다.

사부는 수신도를 초식 형태로 풀어서 시전했다. 칼을 몸 주위로 휘돌리는데, 모두 삼백육십 합을 지닌다. 칼의 길이 삼백육십 개나 된다는 말이다.

삼백육십 합을 완벽하게 펼쳐낼 수 있을 때, 칼은 육신을 철옹성처럼 보호해준다.

아걸은 반철도를 두 손으로 잡았다.

한 손은 손잡이를 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날을 잡았다.

수신도 기수식이다. 물론 기수식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냥 지나칠 수도 없다. 칼을 잡은 모습이 워낙 특이해서 ‘희한하게 칼을 잡네. 뭐지?’ 하는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뭐 하는 짓이야?”

서리형개가 물어왔다.

서리형개도 수신도는 알지 못하는 것 같다. 아니, 사실은 다른 일홀도도 알지 못한다. 사부의 입을 통해서 전대 일홀문주들의 무공을 들은 게 고작이다.

일홀도를 직접 시연해준 사람은 아걸이 최초이자 마지막이다.

사부는 일홀도를 전부 보여주었지만, 설마 서른여섯 개의 일홀도가 모두 한 사람의 머릿속에 기억될 것이라고는 기대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걸이 워낙 어릴 때이기도 했고.

이런 칼도 있다. 참고하여 네 일홀도를 탄생시켜라. 적어도 이 정도의 칼은 되어야 일홀도라고 할 수 있으니.

사부가 일홀도를 시연해 보인 것은 그런 의미가 아니었을까?

“네놈은 전대 일홀도를 모두 아는 듯한데…… 어떻게 아는 거야? 사부가 전수해 주기라도 했나?”

“…….”

“이 정도는 말해줄 수 있잖아?”

“…….”

“그래. 그럼 빨리 가라. 나도 빨리 내려가서 따뜻한 물에 목욕이나 해야겠어. 산에서 밤을 보냈더니 몸이 찌뿌둥해. 참! 충고 한마디 하지. 지금부터는 네 일홀도를 써라. 전대 일홀도는 네게 맞지 않는 옷이야. 너무 크거나 너무 작아.”

“…….”

아걸은 대답하지 않았다.

사실 대답할 여력이 없었다. 전신 진기가 모두 반철도에 집중되어 있다. 입을 열어서 말을 하게 되면 단단하게 뭉친 진기가 일시에 확 흩어진다.

슷! 슷!

서리형개가 아걸을 향해서 걸어왔다.

그는 먼저처럼 신법을 펼쳐서 질주하지 않았다. 몸 주위를 맴돌 생각도 없다. 아걸 정도는 가볍게 손만 놀려도 죽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전신에 철철 넘쳐흐른다.

아걸은 칼을 잡은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쒜에엑!

삼도가 날아온다. 먼저는 칼이 세 개로 쫙 분리되었었는데, 지금은 앞뒤로 늘어진다. 칼이 세 개인 것은 맞는데, 세 칼이 순차적으로 내리쳐진다.

반철도로는 칼 하나만 막을 수 있다.

두 번째 칼은 반철도를 갈라버릴 것이다. 세 번째 칼은 갈라진 틈을 비집고 들어와서 가슴을 쪼갠다.

쉬링!

아걸이 반철도를 휘둘렀다.

삼도가 정면으로 부딪치지 않는다. 대신 삼도의 옆면을 타격한다. 강하게 밀어내는 것이 아니지만 방향은 충분히 바뀐다.

퍼억!

삼도가 터졌다.

일도가 오른쪽 어깨에 떨어졌다.

아걸은 삼도 중 다른 두 개의 칼은 어디로 흘러갔는지 보지 못했다. 깜빡 놓쳤다.

퍽! 퍽!

다른 일도가 등을 훑었고, 또 다른 일도는 앞으로 돌아와서 가슴을 훑고 지나갔다.

“후욱!”

아걸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뒤뚱뒤뚱 물러섰다.

전신이 피로 물들었다. 어깨, 등, 가슴, 옆구리에서 쏟아진 피가 빗물처럼 철철 흐른다.

칼에 맞아 죽지 않아도 과다출혈로 죽을 판이다.

상처가 너무 크고 넓어서 혈을 눌러 지혈시킨다는 것도 불가능하다. 금창약을 바르는 데도 한계가 있다. 솔직히 이 정도 상처면 어떤 의원도 치료할 엄두를 내지 못할 것이었다.

서리형개가 웃으면서 말했다.

“충분히 즐겼나?”

“아직……. 칼이 생각보다…… 무뎌.”

아걸은 힘들게 말했다.

지금 그는 서 있는 것 자체가 힘들었다. 상처가 너무 심해서 두 다리가 부들부들 떨렸다. 피를 흠뻑 쏟은 탓에 정신은 혼미해지고, 몸은 펄펄 끓었다.

그래도 태연함을 유지하면서 말했다.

아직 한 칼이 더 남았다. 마지막 칼은 자신의 목숨을 빼앗아 갈 것이다.

서리형개가 단 일도에 목숨을 빼앗지 않은 것에는 이유가 있다.

아걸의 정체를 탐색하고 있다. 아걸을 죽이는 과정에서 아걸이 어떤 경로로 일홀도를 배웠는지 추측해간다. 또 아걸이 사용하는 일홀도도 분석한다.

모든 게 그에게 도움이 된다.

현재, 서리형개는 무공을 시험할 상대가 없다. 그의 삼도일살을 몸으로라도 막아줄 사람이 없다. 아걸이 형편없이 무너지고 있지만, 그래도 다른 무인들에 비하면 제법 버텨주고 있다.

이런 점들이 마지막 순간에 한 푼의 힘을 빼게 만든다.

어차피 아걸은 죽는다. 빠져나가지 못한다. 그러니 삼도일살을 최대한 시험한다.

하지만 그것도 마지막이다.

아걸은 이미 초주검이 되었다. 더는 삼도일살을 시험할 대상이 아니다. 죽기 직전이기 때문에 삼도일살이 아니라 평범한 도법을 펼쳐도 막지 못한다.

그러니 다음 칼은 목숨을 빼앗는 칼이 될 것이다.

문득, 아걸에게 사부가 생각났다. 할배도 생각났다.

‘후……. 아직 안 된다고 했잖아. 이놈들은 귀신이라니까. 겨우 칼 좀 휘두르는 걸 가지고 귀신하고 싸우라고 하면 어떻게 해. 그러니까 이 꼴이지.’

그는 할배에게 투덜거렸다.

동박에게는 통했던 수법들이 모두 막혔다. 이십오대 일홀문주의 수신도까지 막혔다. 초식을 제대로 운용했는데도 마치 아무 짓도 하지 않은 것처럼 거칠게 당했다.

문제는 삼도를 정확하게 맞았는데, 어떻게 맞았는지조차 모른다는 것이다.

실력 차이가 워낙 벌어진다.

소축십검과도 싸워봤지만, 서리형개와는 상대가 안 된다. 이 정도 무공이라면 소축십검 정도는 가볍게 처리할 수 있다. 공부 허도기를 제외하고는 최강자다.

‘수신도도 안 먹히면…… 방법이 없는데…….’

아걸은 암울한 눈으로 서리형개를 쳐다봤다.

그가 칼을 들어 올리고 있다. 아걸에게 보라는 듯이 천천히 들어 올린다. 이게 마지막 칼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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