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화. 第十三章 진참패(眞慘敗) (4)
“아걸이 패했습니다.”
“목숨은?”
“서리형개는 손을 멈출 의사가 없었는데, 마침 삼군(三君)이 왔어요. 삼군이 아걸을 데리고 떠났습니다.”
“아걸이 패했다고 했는데, 상태는 어때?”
“…….”
팔장로가 입을 다물었다.
대답을 할 수 없을 만큼 심하게 상했다. 아마 목숨조차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일 것이다.
“훅……!”
몽설은 가슴이 답답해서 거친 숨을 뿜어냈다.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뜨거운 기운이 치밀어 오른다. 심장이 터질듯이 팽팽하게 부푼다. 육신이 거센 풍랑에 시달리는 듯 토악질마저 쏟아진다.
취화원주가 취화원을 해산했다. 그 결과, 무려 사백여 명에 이르는 취화원 살수들이 피를 쏟으면서 죽어갔다. 원주를 비롯해서 남은 사람도 절명 직전까지 치몰렸다.
원주의 해산 결정은 결과만 놓고 보자면 완전한 오판이었다.
하지만 몽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 당시에는 다른 방법을 생각할 수 없었다. 취화원 해산만이 모두가 살 수 있는 유일한 선택지였다.
그런 경우가 몽설에게도 생겼다.
아걸 사형이 쫓아온다. 그가 부리는 수하들이 먼저 달려와서 공격하려고 한다. 피할 길이 없다. 계속 도주한다고 해도 결국은 꼬리가 잡힐 것이다. 그렇다면 뒤돌아서서 한 번 부딪쳐 보는 것도 좋지 않겠나.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아걸은 도주하자고 했다. 부딪치지 말고 가자고. 저들이 빨리 쫓아오면 더 빨리 도주하자고.
하지만 빠름에서 뒤진다고 판단했다. 자신들이 도주하는 것보다 저들이 더 빨리 쫓아온다. 한 번쯤 기를 꺾어놓지 않으면 결과는 눈에 빤히 보인다.
일홀문 무인이 오기 전에 수하들만 잡는다.
정작 강한 자와는 부딪치지 않고 선발대만 요절내는 것이니 괜찮지 않을까?
이 판단도 결과만 놓고 보면 대단히 미숙한 판단이었다.
생각을 잘못한 탓에 장로 세 분이 죽었다. 이제 네 명밖에 남지 않았었는데, 원주가 떠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세 분이나 절명하게 만들었다.
십이살수는 구살수로 줄었다.
열여섯 명 중 절반에 가까운 일곱 명이 쓰러졌다.
이것이 오판의 대가다.
아걸은 어떤가? 아걸 같은 강자가 힘없이 패배했다. 거의 반쯤 죽은 상태에서 압송되고 있다.
그녀가 내린 결단이 이토록 충격적인 사태를 불러왔다.
“서둘러서 추격해야 합니다. 이대로 아걸을 놓아버리면 영영 구할 수 없습니다.”
팔장로가 말했다.
“추격하면? 삼군을 당해낼 수나 있고?”
팔장로가 입을 다물었다.
무림은 소축십군에게 군(君) 자를 붙여서 부른다. 허도기의 대제가 전가성을 일군이라 부르고, 열 번째 제자 이도창(李燾彰)을 십군이라고 한다.
소축십검은 명실공히 성검문을 이끌어가는 주축이다.
처음 그들이 허도기와 함께 모습을 보였을 때는 소축일검, 이검…… 하고 불렀지만, 시간이 흘러서 위치가 명확하게 자리 잡은 다음에는 존경의 의미로 ‘군’이라는 말을 붙였다. 그리고 이제는 ‘군’이라는 말이 일종의 별호처럼 되어버렸다.
삼군 신도파는 검이 무척 빠르다.
팔군 조추한이 수련제일이라고 불렸다면, 삼군 신도파는 쾌속제일(快速第一)이라고 불린다. 소축십검 중에서 검속(劍速)이 제일 빠르다고 한다.
취화원 살수들은 삼군을 상대하지 못한다.
그가 월직일 때, 성검문에 도전했던 수많은 무인이 일 초도 받지 못하고 나가떨어졌다.
“그렇다고 압송되어 가는 것을 지켜보기만 할 수는…….”
몽설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 후에도 팔장로가 몇 가지 문제를 더 말했지만, 어떤 말에도 대꾸하지 않았다.
그녀는 생각 중이다.
팔장로가 조용히 물러났다.
* * *
쉬이이잇!
몽설은 숨이 턱에 닿았지만, 달리는 속도를 멈추지 않았다. 계속 앞으로 치달렸다.
팔장로와 남은 아홉 명의 살수는 미산(梶山)으로 향했다.
미산은 상량산으로 가는 길목에 있다. 워낙 유명한 도교 성지라서 모르는 사람이 없다.
그곳 태청궁(太淸宮)에 아걸이 파놓은 은신처가 있다.
아걸이 밀마로 적어준 곳이다.
장로와 구살수는 그곳에서 무공을 수련해야 한다. 죽을힘을 다해서 암영검과 사생락을 최고 경지까지 끌어올릴 생각이다. 원주님 말씀처럼 목숨을 내놓고 수련해야 한다.
지금 취화원 살수들은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뭘 하면 할수록 희생만 늘어난다.
상대가 워낙 강하면 이런 일이 생긴다.
하지만 몽설까지 미산 태청궁으로 갈 수는 없었다. 아걸은 즉시 자리를 떠서 그곳으로 가라고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그가 호랑이 굴로 끌려들어 가고 있지 않은가.
물론 몽설도 삼군을 상대하지는 못한다.
혈검경을 더 깊은 수준까지 수련하지 않는 한,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그런데도 무작정 쫓아가 보기로 했다.
뒤를 밟다 보면 운 좋게 아걸을 빼낼 기회가 생길지도 모른다. 아니면 어떻게든 그런 기회를 만들어 내야하고.
아걸은 정혼자다.
그에게 정혼자의 책임을 다하라고 했으니, 그녀도 정혼녀의 책임을 다해야 한다.
아걸의 목숨, 반드시 구한다.
‘너무 가까이 붙으면 안 돼. 겨우 모습만 보이는 선에서 쫓아가야 하고…… 기회는 밤에 만들어야 해.’
* * *
덜컹! 덜컹! 히히힝!
말이 콧바람을 크게 불어내며 걸어갔다.
마차 바퀴가 자갈길을 타고 넘으면서 크게 흔들렸다.
“좀 천천히 가지? 너무 심하게 흔들려.”
“네! 알았습니다!”
어자석에 앉아서 마차를 몰던 마부가 힘차게 대답했다.
성검문은 공무를 집행하는 문도에게 말과 마차를 제공한다. 중원 각지에 마방을 세워놓았거나, 지역 마방과 연계하여 어디서든 이용할 수 있게 했다.
소축십검의 신분은 공부 허도기의 바로 밑이다. 공부를 제외하고는 가장 높다. 일인지하(一人之下) 만인지상(萬人之上)이란 그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들은 말의 수나 마차의 크기에 제한을 받지 않는다.
사두마차도 이용할 수 있고, 팔두마차도 쓸 수 있다. 두 명 정도가 탈 수 있는 소마차부터, 안에 침상까지 준비된 대마차까지 모두 사용한다.
신도파는 사두에 대마차를 빌렸다.
마차에는 성검문 깃발을 꽂았다.
그러니 마차를 공격한다는 것은 성검문을 공격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성검문 깃발이 꽂힌 마차에 시비를 거는 것은 성검문을 모독하는 것이 된다.
삼군 정도 되면 성검문의 위세를 빌릴 필요가 없다. 어느 누가 시비를 걸어와도 기분 좋게 맞서 싸울 수 있다. 하지만, 귀찮은 일은 미연에 방지하자는 차원에서 깃발을 세웠다.
한 사람, 마음에 걸리는 사람이 있다.
대사형 전가성이 아걸을 데려가겠다고 수작을 부릴 수 있다.
전가성은 대사형이지만 그의 검은 두렵지 않다. 전가성은 묘법제일(妙法第一)이라는 말을 듣는다. 무공과는 상관없는 부분에 대해서 칭송을 받는 것이다. 암계, 모략, 신산(神算)…… 한마디로 머리가 비상하고 꾀가 많다.
대사형은 그가 데려가고 있는 아걸을 슬그머니 빼낼 수 있다.
그 점을 염려한다. 그래서 성검문에 도착할 때까지 마차 밖으로 나가지 않을 생각이다. 식사도 마차 안에서 하고, 잠도 자고, 대소변도 안에서 치른다.
그러면 제아무리 신산이라는 대사형도 어쩌지 못한다.
마차에 성검문 깃발이 꽂혀 있는 이상, 마차가 가는 앞길조차 막지 못한다.
‘후후! 부아깨나 치밀 거다. 하지만 한 번은 짚고 넘어가야 할 일……. 이렇게 시작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지.’
이를 부드득 갈며 쫓아오고 있을 전가성을 생각하면 웃음이 저절로 치밀었다.
소축십검은 동문이다. 하지만 성검문이 천하제일문파가 된 이후에는 서로 경쟁자가 되었다. 공부 허도기가 죽을 경우, 사부의 위치는 결국 소축십검 차지가 된다.
소축십검 중 한 명!
누가 그 자리를 차지하느냐 하는 싸움은 반드시 치러야 한다.
소축십검 중에서 ‘에이, 나는 괜찮아. 이대로가 편해.’하고 물러설 위인은 없다.
지금은 내장과 외장의 싸움이다.
내장의 주축은 대사형 전가성이고, 외장은 자신이 주축이다.
먼저 이 싸움을 이겨야 하고…… 그다음은 외장끼리의 싸움이다. 지금은 자신과 뜻을 같이하고 있는 사제들도 내장이 무너진 후에는 바로 등을 돌릴 것이다.
이것이 세상이다.
사부의 위치, 천하제일인이라는 위치는 어느 누구에게도 양보할 수 없다.
나라에 황제가 있다면 무림에는 성검문주가 있다.
무림의 왕이 된다는 게 요원한 일이 아니다. 다른 놈들에게는 꿈만 같은 일이겠지만, 소축십검에는 발밑에 떨어진 금화를 누가 먼저 줍느냐 하는 일이 된다.
사부가 대사형과 자신 두 사람에게 아걸을 데려오라고 시킨 것은 두 사람의 능력을 보겠다는 뜻이다. 사부도 외장과 내장의 알력 다툼을 알고 있다.
이번 임무는 꼭 아걸을 데려오는 것에 국한되지 않는다. 아걸을 데려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한 가지 중심적인 내용이 들어있어야 한다.
외장은 무림에 어떤 힘을 구축했는가? 그 힘을 보여라.
내장은 무림에 어떤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가? 외장을 능가할 수 있는가?
얼핏 보면 무림에 관한 일이니 내장보다는 외장이 나을 것 같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내장은 성검문을 유지하는 데 소용되는 모든 살림살이를 관장한다.
성검문의 돈줄을 꽉 쥐고 있다.
내장은 그 힘을 보여야 한다. 그리고 자신은 무림에 퍼져있는 힘을 이용해야 한다.
신도파는 창문을 열고 농촌 풍경을 쳐다봤다.
집집이 저녁밥을 짓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장작이며, 짚단을 태우는 냄새가 구수하게 번져온다.
싸움은 일단 그가 선기를 잡았다.
아걸은 죽은 듯이 누워있다. 서리형개에게 치명적인 부상을 당해서 목숨이 위태위태하다. 옆구리, 가슴, 등, 배…… 상처가 하나같이 커서 피가 시냇물처럼 흘러내렸다.
살아있는 것만 해도 용하다.
그를 마차에 태우면서 응급조치는 했지만 정성스럽게 간호할 생각은 없다.
아걸은 죽어도 무방하다.
그를 꼭 산 채로 데려오라는 말은 없었다. 설혹 그런 명이었다고 해도 칼을 쓴 사람은 서리형개, 그러니 아걸이 죽은 것도 자신의 책임은 아니다.
아걸의 생사유무는 전혀 상관없다.
정작 중요한 것은 전가성에게 시신이나 다름없는 아걸을 빼앗기지 않는 것이다.
“이봐, 우리도 밥 먹어야지?”
밥 짓는 냄새를 맡자, 갑자기 배가 출출해졌다.
“식사 준비할까요?”
“그러지. 기왕이면 고기 좀 준비해봐. 풀때기만 먹으니까 힘이 안 나.”
“마차에서 드실 거죠?”
“그래. 술도 한 병 준비해. 오늘은 기분 좋게 마시고 푹 잘 생각이야. 좀 쉬었다가 가자고.”
“네!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마부가 즉시 마차를 세웠다.
마차가 움직이든 멈춰 서 있든 상관없다. 성검문 깃발이 꽂혀 있으니 누구도 접근하지 못한다.
전가성이 직접 찾아올 수도 있다. 하지만 힘을 쓰지는 못한다. 무력으로 아걸을 빼앗아가지 못한다. 꾀도 부리지 못한다. 마차를 태우거나 부술 수도 없다. 마차에 대해 행하는 모든 공격이 하도기에 대한 공격이 된다.
그러니 특별히 경계심을 끌어올릴 필요도 없다.
신도파가 말한 것처럼 술에 인사불성으로 취해서 축 늘어져 잔다고 해도 아걸을 빼내가지 못한다.
몰래 빼내가면 괜찮지 않을까?
절대 그렇지 않다. 술에 취해서 잠들었는데 아걸이 없어졌다. 그런데 없어졌던 아걸이 전가성 손에 있다. 일이 이렇게 되면 전가성은 마차를 습격한 이유를 말해야 한다. 설혹 본인이 습격하지 않았다고 해도.
* * *
마차가 멈춰 섰다.
삼군이 술을 마신다. 하지만 여전히 접근할 수 없다. 마차를 모는 마부 역시 상당한 고수다.
몽설은 어둠 속에 웅크린 채 육포(肉脯)를 씹어 먹었다.
아걸은 무사할까?
달리는 마차, 그리고 성검문 깃발을 보는 순간 어찌나 마음이 놓이던지.
마차를 타고 간다는 것은 아걸도 그만큼 편하게 이동한다는 말이 된다. 그리고 아마도 삼군이 응급조치를 취해주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아걸, 목숨은 부지하고 있을 것이다.
‘꼭 구해 줄게.’
“……날 구해 줬으니까.”
입 밖으로 흘려낸 말은 자신에게 스스로 한 말이다.
생각은 전혀 달랐다. ‘꼭 구해 줄게. 내 정혼자니까.’ 이것이 본래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하니 왠지 목에 가시가 걸린 것처럼 껄끄러웠다. 그래서 일부러 다른 말을 흘렸다.
“그래, 활검문 손에서 날 구해줬으니까.”
그녀는 입안에서 불리던 육포를 꿀꺽 삼켰다. 눈은 여전히 마차에 고정한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