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화. 第十三章 진참패(眞慘敗) (5)
끊겼던 혈(穴)이 이어진다.
옆구리, 복결혈(腹結穴)과 대횡혈(大橫穴)이 끊어졌었다. 진기를 이어갈 수 없었다. 지금도 진기를 이끌지는 못하지만, 실낱같은 연결선이 그어졌다.
가슴에서 겨드랑이, 주영혈(周榮穴)과 극천혈(極泉穴)도 베였다.
굉장한 손상이다. 혈도 자체가 완전히 사라져버릴 정도로 강력하게 베였다.
삼도일살은 단순히 육신만 베는 게 아니다. 전신 경략을 철저하게 무너트린다. 그래서 육신이 회복되더라도 진기를 이끌어 올리지 못하게 만든다.
무인일 경우, 삼도일살을 당하면 죽는 게 낫다.
육신이 완쾌되더라도 예전 무공은 전혀 펼치지 못한다. 보통 사람보다도 힘을 쓰지 못한다.
물론 삼도일살은 살려주지도 않는다. 서리형개와 부딪쳐서 살았다는 사람이 없다. 일홀도에 대한 소문이 전혀 나지 않는 것은 산 사람이 없어서다.
아걸은 그런 칼을 아주 심하게 맞았다.
상처만 보면 즉사하지 않은 게 기적이라고 말할 정도다.
조금씩, 조금씩…… 아주 미미하게 혈이 이어진다. 지렁이가 기어가듯이 꾸물꾸물 이어진다.
몸 안에서 녹선마황이 약효를 발휘하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녹선마황이 작은 항아리로 하나 가득 있어서 말이 상처를 입을 때도 아낌없이 사용했다. 하지만 이제는 모두 쓰고 없어서 아주 귀해졌다.
몽설에게 사용하고, 남은 것은 할배에게 전부 다 쏟아부었다.
그런데 딱 한 마리가 할배에게 달라붙지 않고, 아걸의 소매에 달라붙었다.
항아리를 쏟으면서 한 마리가 잘못 떨어진 것 같다.
그 한 마리가 남아있어서 두참멸공을 생각한 것이다. 만약 그 한 마리마저 없었다면 아무 준비도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서리형개와 싸우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서리형개와 싸우기 전, 녹선마황을 풀어놨다.
녹선마황은 제일 먼저 상처 난 곳, 옆구리를 통해서 체내로 침입했다. 한편으로는 피를 빨아먹고, 다른 한 편으로는 지혈에 효험이 있는 녹선을 흘린다.
체내로 침입한 녹선마황은 일단 뇌를 점거한다.
뇌에 기어들어 와서 녹선을 흘린다. 동물로 말하면 일종의 영역 표시다.
그즈음, 머리를 타격당한다.
두타멸공은 녹선마황 없이 펼치는 기공이다. 하지만 녹선마황이 있다면 성공 가능성이 훨씬 높아진다. 단순한 운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계략을 펼치는 것이 된다.
녹선마황이 상처를 지혈시켜 주고 있다.
다행히도 신도파 역시 지혈 치료를 해주어, 덕분에 목숨이 보존되었다. 끊어질 듯 위태롭게 생명줄이 이어져갔다. 비록 한 마리뿐이지만 녹선마황이 몸 안에서 단단히 제 몫을 해주고 있다.
하지만, 어느 순간에는 녹선마황을 밀어내야 한다. 피를 빨아먹은 녹선마황이 점점 커지기 때문이다.
범인들은 칼로 살을 째서 끄집어낸다. 하지만 무인은 진기로 밀어내면 된다.
“으음!”
아걸은 옅은 신음을 흘리며 눈을 떴다.
제일 먼저 서리형개에게 당하던 모습이 생각났다. 그리고 작은 사내가 걸어오는 모습도 기억났다.
‘으음!’
이번에는 속으로 침음을 흘렸다.
자신이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 단박에 알아챘다.
그는 슬쩍 주위를 흘겨봤다.
어두컴컴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작은 동굴 같은 곳에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공기 냄새 속에 진한 말똥 냄새가 섞여 있는 것을 보면…… 아! 여기가 어딜까? 자신이 어디에 있는 것일까?
자신이 신도파에게 넘겨졌다는 것은 한다. 그렇다면 성검문으로 끌려가는 중이다.
성검문에 도착한 건가? 뇌옥에 갇혔나?
저벅! 저벅!
발걸음 소리가 들린다. 누군가가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 땅을 딛는 소리가 무척 가볍고, 보폭이 일정한 것을 보면 무공이 상당한 고수로 짐작된다.
덜컹!
문 여는 소리가 열렸다.
“닭인가?”
바로 옆에서 사람 음성이 튀어나왔다.
아걸은 깜짝 놀랐다. 옆에 사람이 있는 줄은 전혀 몰랐다. 어두컴컴한 공간에 혼자 있는 줄 알았다.
“네. 잘 구워졌는지 모르겠습니다.”
“먹을 수 있으면 되지.”
옆에서 이야기하던 자가 닭을 받아드는 듯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울렸다.
구운 닭 냄새가 구수하게 번졌다.
매우 좁은 공간이다. 닭 냄새가 퍼지지 않고 고인다. 흘러나가지 않는다. 폐쇄된 공간이다.
‘말똥 냄새!’
아걸은 모든 상황을 파악했다.
상쾌한 냄새에 섞여 있는 탑탑한 냄새는 마차 의자에 덮어씌운 가죽 냄새다.
자신은 마차에 실려서 움직이고 있다. 아직 성검문에 도착하지 않았다.
옆에서 말한 자가 신도파다.
정상적인 상태였다면 옆에 사람이 있는 것을 모를 리 없다. 하지만 지금은 진기가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감각도 엉망진창으로 흩어졌다. 마방에서 일한 지 꽤 됐으니, 마방 일이라면 모르는 것이 없다 그런데도 마차 냄새를 맡고도 즉시 알아보지 못했다. 감각이 얼마나 엉망인지 알고도 남는다.
더욱이 신도파는 매우 뛰어난 고수다. 평소에도 숨소리를 숨기는 것이 습관화되어 있다.
그가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것은 당연하다.
아걸은 몸을 일으키려고 했다. 그런데 손과 발이 묶여 있는 듯 꼼짝도 하지 않는다.
“응? 깨어났어?”
신도파가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듣고 말했다.
“그냥 죽지 왜 깨어나. 어차피 죽을 목숨, 하루 이틀 더 살아서 뭐 하겠다고.”
신도파가 구운 닭을 으적으적 씹어먹으며 말했다.
투툭!
아걸은 손발을 다시 움직여봤다. 역시 움직여지지 않는다. 아니, 움직일 때마다 살에 찰싹 달라붙은 가죽 밧줄이 점점 안으로 조여 들어왔다.
‘망승(蟒繩)!’
아걸은 눈살을 찌푸렸다.
망승은 약물로 제련한 이무기 가죽 밧줄이다. 도검에도 잘리지 않고 불에도 타지 않는다. 묶은 자가 풀어주지 않으면 끊어낼 방도가 없다.
“……시신을 꽁꽁 묶어서 압송할 정도로 겁이 많았나? 삼군이?”
아걸이 포기한 듯 힘을 풀고 마차 천정을 보며 말했다.
“시신이 아니잖아. 그리고…… 조추한이 당했으면 나도 당할 수 있는 거지. 일홀도는 무서워.”
신도파는 속을 긁어대는 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닭을 뜯어먹었다.
“쾌속제일 삼군이 할 말은 아닌 듯한데.”
“솔직히 지금의 너라면 한 줌 거리도 안 되지. 하지만 일홀도를 수련한 놈들은 워낙 변수가 많아서 말이야. 오죽하면 귀신도 안 데려갈까. 그렇게 묶어놓은 걸 다행으로 알라고. 마음 같아서는 확실하게 죽여서 데려가고 싶었거든.”
“많이 아픈데, 치료도 안 해주나?”
“아까 말했잖아. 어차피 죽을 목숨이라고. 그냥 가. 가다가 죽으면 그것도 좋고.”
아걸은 더 말하지 않았다.
말 몇 마디를 나눠보니 신도파라는 사람을 알겠다.
신도파가 하는 말은 허언이 아니다. 진심으로 말하고 있다. 조금이라도 위험부담이 있는 일은 하지 않는다. 또 위험부담을 감수하느니 차라리 죽이는 쪽을 택한다.
아걸이 입은 부상은 매우 심각하다. 응급조치만 취해서는 죽음을 면치 못한다. 하지만 더는 치료하지 않는다. 붕대도 갈아주지 않는다. 상처가 곪고 썩어도 내버려 둔다. 길어야 하루 이틀밖에 더 살지 못한다는 말도 진심이다. 그러니 내버려 둔다.
곧 죽는 자!
아걸은 신도파가 보기에는 굳이 힘들여서 살릴 필요가 없다.
그러니 밥도 주지 않는다. 지금이야 혼절 중이라서 저녁 준비를 못했다 치자. 다음 끼니때 보면 알겠지만 아걸이 먹을 것은 아예 준비조차 하지 않는다.
물? 물은 줄지도 모르겠다.
“흐음!”
아걸은 모든 것을 포기한 듯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신도파 말이 맞다.
일홀문도는 워낙 변수가 많다. 금방 죽을 것 같아도 아주 사납게 칼을 휘두른다. 언제 어느 순간에 칼을 쓸지 모른다. 칼이 없으면 주먹질이라도 한다.
어떻게 이런 행동이 가능할까?
일홀문에는 타 문파에는 없는 기공이 많나? 그래서 변수가 많은 것인가?
아니다. 일홀문도는 태생 자체가 그렇다.
백만 명 중의 한 명이 선택된다. 무인 백만 명을 늘어놓고 그중에서 가장 근골이 억센 한 명을 골라낸다. 천성적으로 가장 싸움 잘하는 놈을 찾아낸다.
사실, 백만 명 중에서 한 명을 골라낸다는 행위 자체가 불가능하다.
실제로 한 명이 남을 때까지 백만 명에게 싸움을 시켜보면 남는 자가 없다. 모두 죽는다. 지쳐서 죽는 것이 아니다. 백만 명 중 백여 명 정도는 최상위 싸움꾼이다. 서로 실력이 엇비슷해서 동사(同死), 같이 죽는다.
그러니 백만 명 중 일홀에 해당하는 자는 거의 백여 명이나 된다. 그 백 명 중의 한 명을 골라내는 것은 신의 안목을 가지고 있어도 찾기 힘들다.
일홀문주가 그런 역할을 한다.
백 명 중에서 한 명을 고르지 못하겠다면 백 명 모두 포기한다.
그들은 진짜가 아니다. 가짜 일홀이다. 진짜 일홀은 망설임 없이 찾아져야 한다. 이놈이 백만 명 중의 한 명이겠다 하는 확신이 들어야 한다.
사부도 실수를 했다.
셋째 제자 동박은 일홀 무인이 아니다. 한데 일홀무인이라고 착각했다. 제자로 받아들일 때는 일홀무인이라고 확신했을 것이다. 수련을 시키다 보니 가짜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것이고.
그럼 진짜와 가짜는 어떻게 다른가?
진짜는 목숨이 끊어지는 순간까지 포기하지 않는다. 오직 칼만을 고집한다. 상대가 죽기 전에는 절대로 칼을 놓지 않는다. 목표만 생각한다.
무공이 강해서, 강한 무공을 수련해서 일홀무인이라고 하지 않는다.
원래 성격이 독종이라서 일홀무인이다.
무공을 수련하지 않았어도 천성적으로 싸움판을 전전할 악종이라서 일홀 무인이다.
‘후웁!’
아걸은 진기를 운집했다.
진기가 모일 리 없다. 운공을 하는 것보다 몸을 치료하는 것이 우선이다. 아걸과 같은 상태에서 운기하면 주화입마(走火入魔)에 빠지기 쉽다.
그러나 아걸은 무리하게 진기를 운집했다.
녹선마황이 깔아놓은 녹선에 진기를 보태야 한다. 가는 실선에 진기를 더해서 굵은 선으로 만들어야 한다. 자칫하면 녹선마저 끊어지고, 그러면 영영 진기를 이끌 수 없게 되겠지만…… 신도파 말처럼 어차피 며칠 후면 죽는다.
선택의 여지는 없다.
‘끄으으윽!’
진기를 움직이자 살이 찢기는 듯한 고통이 밀려왔다. 큼지막한 송곳 수십 개가 무자비하게 찔러댄다.
비명이 쏟아져 나온다.
아걸은 혀를 깨물어서 쏟아지는 신음을 억눌렀다. 그리고 계속해서 운기했다.
경맥이 가닥가닥 끊어진 상태다. 가만히 있어도 고통스럽다. 그런데 계속해서 움직인다. 일부로 자신을 학대하려고 작심한 듯 아주 크게 움직인다.
육신을 움직이면 상처를 건드린다. 그 고통은 필설로 다하지 못한다. 하지만 진기가 움직여서 끊어진 경맥을 건드릴 때 일어나는 고통은 그보다 훨씬 크다. 뼛골이 울리고, 머리가 멍해지고, 눈에서 노란 불꽃이 일어난다.
‘하악! 훅! 하아악!’
아걸은 배 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거친 숨을 꾹 눌러 참았다. 입에서 가죽 타는 듯한 냄새가 풍기지만 이를 악물며 참았다. 그리고 녹선마황을 수색했다.
‘여기 있구나!’
녹선마황을 찾았다.
녹선은 마취 작용을 한다. 한 마리가 뿜어내는 녹선은 양이 매우 미미해서 큰 효과가 없다. 하지만 녹선마황이 자신의 움직임을 숨기는 데는 효과가 뛰어나다.
모기에 물리면 가려운 것처럼 녹선마황은 마취액을 흘린다. 피공격자에게 자신을 숨기기 위한 보호장치다. 모기는 가려움 때문에 알게 되지만, 녹선마황은 모든 느낌을 지워버리기 때문에 찾는 게 불가능하다.
오직 진기로만 녹선마황을 찾을 수 있다.
녹선마황은 창자에 달라붙어 있었다.
‘네가 나 좀 도와줘야겠다.’
아걸은 진기로 녹선마황을 자극하기 시작했다.
당연히 녹선마황은 거칠게 대항한다. 마취액을 더욱 많이 뿜어낸다.
한 마리가 두 마리 역할을 한다. 하지만 그 정도로는 여전히 부족하다. 더욱 힘차게 자극해서 네 마리, 다섯 마리 역할을 하게 만들어야 한다.
츠으읏!
아걸은 살이 덜덜 떨리는 고통을 이 악물어 참으며 녹선마황을 밀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