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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홀도-67화 (67/600)

#67화. 第十四章 탈태(奪胎) (2)

도박꾼들이 흔히 하는 말로 ‘돈에 눈이 멀면 손발이 잘려나가는 줄도 모른다’라는 말이 있다.

물욕과 색욕은 도박꾼들이 경계해야 할 제일 장애물이다.

도박꾼이 경계해야 할 것이 어디 물욕과 색욕뿐인가? 각종 취미도 삼가야 한다. 술도 마시지 말아야 한다. 금욕주의자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자신을 경계해야 한다.

진짜 도박꾼들은 항상 정제된 생활을 한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을 주변에서 보기는 무척 어렵다. 금욕하는 도박꾼이라니? 오히려 도박장에는 각종 욕망에 눈이 멀어버린 장님들이 발 디딜 틈도 없이 가득 차 있다.

그래서 취화원 살수들은 도박장에서 사람을 종종 끌어다 쓴다.

내 논에 물을 대기 위해서 옆에 있는 논의 물을 잠시 빌어다 쓰는 것처럼, 아주 작은 용도로 활용한다.

오늘 걸려든 자는 돈에 눈이 멀었다.

돈을 다 잃고 빈털터리로 나서는 도박꾼을 유혹하기는 무척 쉽다. 묵직한 전낭을 슬쩍 보여주기만 해도 썩은 생선에 파리 꼬이듯 달려든다.

전낭을 가진 사람이 주먹 한 대도 쓸 필요가 없는 연약한 여자라면 말할 것도 없다.

그중에서 무공이 무엇인지 정도는 아는 하급 무인을 선택한다.

그가 여인을 점찍은 게 아니다. 여인이 그를 선택했고, 달려들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었다.

먹이를 잘못 탐한 대가는 처절하다.

우선 실컷 두들겨 맞고, 이리저리 끌려다니고, 여인이 시키는 대로 은밀히 숲을 기어가야 한다.

도박꾼은 여인의 손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죽는다는 생각밖에 없다.

약간 틈을 보이면, 무공 맛을 본 자답게 필사적으로 도주한다. 발각되면 또 두들겨 맞으니까, 몸을 납작하게 엎드리고 조용조용 도주한다.

* * *

몽설은 도주하지 못했다. 아니, 처음부터 도주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신법으로 삼군을 따돌릴 자신이 없다.

더욱이 자신보다 훨씬 무거운 아걸까지 업고 도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은신을 택했다.

삼군이 도박꾼에게 달려가는 시간은 찰나에 불과하다. 그는 눈 깜짝할 순간에 되돌아온다.

삼군이 아걸 곁을 떠나는 순간, 몽설은 갈고리를 던져 아걸을 낚아챘다.

슈우웃!

아걸이 단숨에 끌려왔다.

몽설은 아걸이 손에 잡히자마자 즉시 신형을 띄워 나무 위로 솟구쳤다.

땅에는 끌려온 자국이 남아있다. 그리고 앞으로 치달려 나갈 시간도 없다.

지금 이 자리에서 사라진다!

나무 위로 올라서기 무섭게 아걸에게 위장포를 씌웠다. 동시에 미리 준비해놨던 허리띠로 아걸과 자신의 몸을 묶었고, 아걸의 혼혈(昏穴)을 격타했다.

쓰읏! 푹!

혈을 짚자마자 아걸이 정신을 잃고 고개를 푹 떨궜다.

몽설도 귀식대법(龜息大法)을 펼쳤다. 원래는 땅속에 숨어서 펼치는 대법인데, 장소를 가릴 시간이 없다. 이후는 운에 맡기고 최선을 다한다.

스으으읏!

진기를 휘돌리자, 숨이 잦아졌다.

보통 사람이 열 번 호흡하는 것을 기준으로 하면 십 분지 일, 한 번 호흡으로 바뀌었다.

생체의 흐름도 느려졌다. 거의 죽은 시신처럼 가라앉았다.

귀식대법은 몸의 활동을 최대한으로 억제시킨다. 사람이 의지로 움직일 수 없는 위장이나 창자의 움직임까지도 제한한다. 신체의 움직임이 죽은 사람과 흡사한 상태가 된다.

즉, 귀식대법을 펼치는 동안에는 완전히 무방비 상태가 된다. 독사가 기어 와서 물어도 막지 못한다.

몽설처럼 나무 위에서 귀식대법을 펼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다. 삼군 같은 고수의 이목을 속이려면 완전히 죽는 방법 이외에는 없다. 괜히 어설프게 숨으려고 했다가는 당장 발각된다.

스으으읏!

몽설은 깊고 깊은 침묵 속으로 스며들어 갔다.

* * *

“이런!”

신도파는 이를 꽉 깨물며 신음을 흘렸다.

아주 간단한 성동격서(聲東擊西)에 당했다. 암습자가 나타날 것이라는 생각이 너무 강했다. 그래서 기척을 듣자마자 의심하지 않고 곧바로 신형을 쏘아냈다.

아걸이 쭉 끌려간 흔적을 찾았다.

풀이 눕혀져 있다. 낙엽이 쓸려있다. 땅에 끌려간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있다.

하지만 흔적은 갑자기 뚝 끊긴다.

쭉 끌려갔다가 수증기처럼 사라져버렸다. 하늘로 솟구친 흔적도, 땅으로 꺼진 흔적도 없다.

아걸을 낚아챈 놈, 이런 일을 한두 번 해본 게 아니다.

사람을 은밀히 죽이는 데는 무공이 강한 자보다 살수가 낫다. 도둑질을 하는 데는 무인보다 도둑이 낫다. 술자리에서 사내를 유혹하는 데는 기녀를 따를 사람이 없다.

어느 분야에나 전문가가 있다.

이자는 납치 전문가다.

관도를 폭파시켜서 경계심을 자극한다. 늘 신경 한구석을 일깨워놓는다. 말을 죽여서 걷게 만든다. 마차 안에 감춰져 있던 아걸이 세상 밖으로 노출된다. 화살을 쏘아서 논두렁길로 들어서게 만든다. 당시에는 귀찮아서 빨리 모습을 보이라고 뜻대로 해 주었는데, 이것이 실수인가?

논두렁길을 걷다가 조금 쉴만한 작은 숲을 찾았다.

숲이라고 할 수도 없다. 나무 십여 그루가 서 있는 작은 언덕, 햇볕을 피하는 쉼터다.

이곳에서 신경이 분산된다. 그리고 아걸이 사라진다. 감쪽같이.

이런 계획을 세우려면 먼저 지형을 잘 알아야 한다. 이곳 사람이거나, 이곳 사람에게서 지형 설명을 자세히 듣지 않으면 세울 수 없는 계획이다.

놈은 멀리 가지 않았다. 근처에 숨어있다.

신법을 펼쳤다면 눈에 들어오지 않을 리 없다. 작은 동산을 제외하고는 사방이 확 트인 논이다. 논두렁 사이 어디엔가 숨어있을 게 뻔하다.

찾지는 못한다. 지금도 놈은 몸을 숨긴 채 조금씩 이동하고 있을 것이다. 기척을 흘린다거나 하는 미숙한 짓은 하지 않을 게 뻔하니, 실수를 기대할 수도 없다.

놈을 놓쳤다.

중원 무림에서 이런 수법을 사용할 수 있는 곳은 많지 않다. 성검문과 싸워도 좋은 무리들 중에서 납치 전문가를 찾아내는 것이니 무척 쉽다.

아니, 아니다. 지금 당장 생각나는 곳이 있다.

‘취화원!’

취화원 살수들은 청부살인 전문이다. 하지만 잠입, 납치, 교란 등의 임무도 탁월하게 해낸다.

“간이 배 밖으로 나왔구나. 감히 취화원 따위가.”

신도파는 좌정을 하고 앉았다.

진기를 이끌어 두 귀에 집중시킨다. 전신 감각을 최고 상태까지 끌어낸다.

소리를 듣는다. 백 장 밖에서 움직이는 개미 소리까지 파악한다. 모든 소리를 귀에 모으고, 걸러낸다. 수많은 소리 중에서 사람이 만들어내는 소리만 찾아낸다.

이런 공부를 세간에서는 천시지청술(天視地聽術)이라고 한다.

공부? 소축십검에게 이런 수련은 공부에 포함되지도 않는다. 특별히 공부라고 생각해서 수련한 적이 없다. 그저 검을 숙련시키는 데 필요한 신체 개발의 일부다.

츠으으읏! 츠읏! 피윳! 쏴아아아!

수많은 소리가 들려온다.

자연이 일으키는 소리는 저절로 소멸되고, 사람이 만들어내는 소리만 남는다.

모든 소리가 지워졌다. 그리고 남은 소리는…… 없다.

백 장 이내에서 사람이 만들어내는 소리는 없다. 사람이 없거나, 전혀 움직이지 않는다.

‘다시!’

신도파는 다시 소리를 모았다.

첫 번째 운집한 소리 중에서는 찾지 못했지만, 두 번째 운집에서는 찾을 수 있다. 세 번, 네 번, 다섯 번…… 소리 운집을 계속해 나간다. 그러다 보면 반드시 걸려든다.

* * *

“후후!”

전가성의 눈빛이 반짝 빛났다.

그는 몽설과 신도파의 움직임을 제삼자의 눈으로 지켜봤다. 그들로부터 멀리 떨어져서 낱낱이 관찰했다.

몽설이 나무 위로 올라가는 것을 봤다.

신도파 머리 위…… 하지만 은신술의 워낙 뛰어나서 찾아내지 못하고 있다.

“귀식대법인가? 상당하군.”

전가성이 진심으로 감탄했다.

젊은 후기지수 중에서 귀식대법 같은 기공에 신경을 쏟는 자는 무척 드물다. 그런 것을 수련하느니 차라리 검이라도 한 번 더 휘두르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귀식대법은 도망자의 기공이다.

고요한 적정 상태는 운공으로도 유지할 수 있다. 인위적으로 숨까지 늦추는 공부는 아무리 좋게 생각해도 궁지에 몰린 쥐새끼를 연상시킨다.

그런 공부를 몽설이 수련했다. 그것도 아주 뛰어나게 구사한다.

솔직히 저 정도 은신술이라면 목숨을 하나 더 가지고 다니는 것과 진배없다. 칭찬받아 마땅하다. 다른 살수가 몽설 모습을 봤다면 귀식대법에 대한 인식이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다.

하지만 귀식대법은 오래 유지하지 못한다는 맹점이 있다.

이제 곧 진기를 풀어야 한다. 신도파가 바로 나무 아래 있는데, 그 앞에서 모습을 드러내야 한다.

신도파는 그런 점을 알고 있다.

암습자가 움직이지 않지만 인근에 있다는 것을 안다. 자신이 움직이지 않으면 그도 움직일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안다. 그래서 움직이지 않는다.

“조금 도와줄까?”

전가성이 피식 웃으면서 검으로 나무를 쳤다.

툭!

아주 미미한 소리가 울렸다.

신도파가 있는 위치에서는 온 신경을 곤두세워서 듣지 않으면 결코 들을 수 없는 소리다. 한데 신도파가 바로 그 일, 온 신경을 곤두세워서 듣고 있지 않나.

신도파는 움직이지 않는다. 하지만 이미 이목은 이쪽으로 집중되고 있다.

“이번에는 뭘 해줄까?”

스읏! 툭!

발로 풀을 찼다.

역시 귀 기울여서 듣지 않으면 들을 수 없는 소리다. 순간!

쒜에에엑!

신도파가 대뜸 신형을 쏘아냈다.

전가성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신법을 쏘아냈다.

본신 절기를 펼칠 수는 없고…… 마도 신법 귀류향(鬼流香)을 펼쳤다.

귀류향을 펼치면 귀신처럼 표홀해진다. 취화원의 암영보나 귀문의 귀영보가 흡사하다. 하지만 귀류향은 고추를 태운 것 같은 매캐한 향냄새를 피운다.

후각을 마비시키는 강렬한 냄새.

귀류향을 전혀 모르는 사람도 냄새만 맡으면 어떤 공부인지 즉시 떠올릴 수 있다.

쒜에에엑!

전가성이 빛살처럼 빠르게 질주했다.

신도파가 포기하지 않고 쫓아온다.

귀류향을 펼쳤기 때문에 냄새만 쫓아오면 된다. 결코 놓칠 리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몽설이 귀식대법을 풀려면 한 시진 정도가 필요하다.

‘반 시진 정도 따돌리고…… 반 시진은 돌아가는 데 쓰고. 후후!’

전가성은 몽설을 도와줄 생각이 없다. 신도파만 따돌리면 된다. 자신은 아걸을 쫓다가 그곳까지 간 것이고, 거기서 몽설과 아걸을 만난 것으로 하면 된다.

몽설은 살려줄 이유가 없다. 발견하는 즉시 죽인다. 자신이 돌아갈 때까지 귀식대법을 풀지 못했다면 편히 죽을 것이다. 만약 풀었다면 처참하게 검을 맞고 죽는다.

아걸만 둘러업고 가면 된다.

신도파가 아걸을 잘 묶어놨기 때문에 자신이 따로 신경 쓸 부분은 없다.

기다리고, 기다리면 반드시 기회는 온다.

쒜에에에엑!

그는 전력을 다해서 귀류향을 펼쳤다.

귀류향은 마도가 자랑하는 쾌속 신법이지만 성검문 신법에 비하면 한 수 아래다. 무엇보다도 상승공부를 수련한 사람이 질 낮은 신법을 전개하려니 자꾸 막힌다. 부지불식간 자신의 신법이 튀어나오려고 한다.

그래서 전력을 다한다.

자신의 신법이 드러나지 않게끔, 귀류향에 온 신경을 집중시킨다.

쒜에에엑!

매캐한 냄새가 진하게 풍겨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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